퇴짜 맞다
方 旻
올해 정초에 일어난 일이다. 문학계 지인들과 만나는 자리에서였다. 요즘엔 사람들이 만나서 밥을 먹고 찻집으로 장소를 옮기는 일이 흔하다. 그날도 우리들은 그렇게 했다. 첫 번째 간 아나키스트적 분위기가 물씬한 찻집 문 앞에서 일행은 퇴짜 맞았다. 늙수그레한 대여섯의 남녀가 몰려드니 젊은 패들이 대종인 분위기에 물 흐릴까봐 그런지 빈자리가 있는 데도 입장 불가였다.
젊은 시절 어떤 여자한테도 퇴짜 맞은 일이 있었다. 친구 소개로 알게 된 동그란 얼굴에 말간 피부가 빛나던 통통한 여자였다. 엽서를 자주 보내며 두근대는 마음을 전달하려 애를 태웠다. 친구가 귀뜸 해줘 지방의 직장으로 내려가는 그녀가 탄 기차까지 동승하며 매달려보았으나, 시골 역사에서 날밤을 새우게 하곤 나를 던져버렸다. 타지의 낯선 땅 밤바람에 열기를 식혀 보내기에 청춘의 피는 너무 괴로웠다. 그 뒤에도 몇 번 더 여자들에게 그걸 맛보았다.
그들도 퇴짜 놓았다. 강사 시절에 전임 자리 구하려고 여기저기 이력서를 들이밀고 다녔다. 서류 심사를 거쳐서 최종 면접까지는 나를 불렀다. 희망을 품에 담고 충청도에도 내려갔고, 부산에도 찾아갔다. 혹시나 이번에는 나를 부를까 기다렸는데, 결국 끝에 이르러 다음 기회에 보자 했다. 수년 동안 반복하여 그런 일을 겪었다. 자주 그러다보니 이력이 날 만큼 길이 들어갔다. 가망이 없어 보여 그만 단념할까 맘을 추스르다가 지금의 직장에서 불렀다. 퇴짜의 끝이 보이는 듯싶었다.
그런데 아니었다. 수필 문단에 발을 들여놓을 때도 여러 차례 퇴짜 맞았다. 초회 추천은 한 번으로 넘어갔다. 완료 추천에선 번번이 탈락했다. 생업에 바쁜데 그것에만 매달릴 수 없어 포기했다. 세월이 10여 년쯤 지난 뒤에 다시 얼굴을 들이 밀었다. 반갑지도 않은지 여전히 외면했다. 한두 번도 아니고 연속된 거부에 점차 지쳐갔다. 나만의 짝사랑으로 끝날지도 알 수 없었다. 짝사랑의 시작은 달콤했지만 결말은 늘 가슴 아리게 하듯, 그렇게 막을 내릴 뻔했다. 자주 맞던 퇴짜지만 그냥 넘어가지 않고 매달렸다. 겨우 문턱을 넘어섰다.
돌이켜보면 내가 을로만 당하며 살았을까. 갑을 관계란 역전 되듯 나도 퇴짜 놓은 적이 있었다. 큰 누나의 처지로는 매우 고가였을 란도셀 책가방을 한사코 밀어냈다. 서울에 단신으로 올라가 공장에 다니면서 힘겹게 마련했을 설 선물이었다. 그 시절 시오리 넘던 길을 보자기로 책을 둘둘 말아 끼고 학교에 오가던 촌놈에겐 가당치 않은 물건이었다. 또래들이 놀릴까봐 겁을 냈을 터였다. 가출하다시피 집을 뛰쳐나가서 막무가내로 거부하였다. 서울에 이사 와선 아버지가 사온 신상품 삼각팬티에도 고갤 돌렸다. 모처럼 보인 부성애를 단식까지 하며 던져버렸다.
알음으로 만나던 여자에게 퇴짜를 놓기도 했다. 입맞춤까지 진행되었고, 그녀 집에 가서 부모한테도 인사를 건넨 사이였다. 누이에게 선을 보였고 나와 동생만이 살던 집에도 왔었다. 그런데 어느 날 밤에 끝내자는 편지를 써서 그녀한테 보냈다. 어찌어찌 한 번 더 만나서 만년필 선물을 돌려주며 마침표를 찍었다. 그녀를 밀어낸 진짜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분명하고 객관적인 이유는 모르겠다. 서로 인연이 아니었다는 상투적 말로 합리화할 밖에. 그 뒤에 두어 명 여자에게 비슷한 일을 저질렀다.
교수로 일하면서 여러 번 다양한 방식으로 퇴짜 놓았다. 휴학원을 들고 온 학생에게 사유가 적절하지 않다고 돌려보냈다. 졸업 논문을 제대로 쓰지 못하였다고 날인하지 않았다. 학자들의 논문을 심사하면서 문제가 있다고 학술지 게재 여부에 불가 표시를 했다. 이곳저곳 이 일 저 일 하면서 수도 없이 퇴짜를 양산하며 지내왔다. 퇴짜 맞은 사연들에 분풀이 하듯 알게 모르게 퇴짜 놓는 일에 꽤 익숙하게 살아왔다.
그런데 엉겹결에 신년 벽두부터 퇴짜 맞고 보니 새벽 찬바람처럼 선득했지만, 앞으로는 한둘씩 더 늘어나지 않겠는가. 머지않아 직장에서도 그럴 것이고, 이것저것들로부터 하나둘씩 맞이하게 될 것이다. 산다는 것은 결국 누군가에게 퇴짜를 맞고 놓는 연속선상에 놓인 게 아닐까. 어쩌면 인생살이 필수 쿠폰이라 해도 멀리 벗어나지 않을 듯싶다. 모름지기 마지막 퇴짜는 세상으로부터 맞는 게 분명하다. 누구도 피할 수 없을 것이지만 아주 늦게 찾아오면 좋겠다.
첫댓글 그날 겪은 일은 역시 퇴짜 많이 맞아보신 방교수님 쓰시는 게 맞네요.
일상의 경험을 이렇게 글로 엮으시니 좋은 글 한 편이 됬네요,
결국 우리 모두 세상에서 퇴출 될 몸이란 귀결에 감동입니다
100세 시대니 우린 조금 늦게 쫒겨나자고요~ㅎㅎ
그렇네요.
세상이 내게 주는 마지막 퇴짜.
그것이 두려워 아니 그럴 듯, 모르는 듯 외면하고 살아가는 우리.
ㅎㅎㅎ, 그날의 퇴짜맞음이 이렇듯 좋은 글 한 편으로 남습니다.
퇴짜에 대한 선생님의 선점, 언제 나오나 기다렸지요.
언제나 수식 없이도 진솔해서 감동을 주는 선생님의 글, 즐겁게 잘 읽었습니다.
세상에서 퇴출 당할 때 당하더라도, 끊임없이 살아있음에 흔적 많이 남기시자구요, 우리...
선생님 말씀대로 퇴자를 맞는것은 꼭 유쾌한 일만은 아니어서 기분이 상할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저는 직업상 오히려 퇴자놓는 일이 겁날때가
많습니다. 의사에게 퇴자를 맞는다는것은 그 환자분에겐 마지막. 즉 돌이킬수 없다는걸 의미하니까요..그 순간이 너무 괴로운데 또한 피할수 없는 운명이니..ㅠㅠ
선생님도 그런 관점에서 "퇴짜"란 글 한 편 쓰시면~ㅎ
퇴짜를 맞아도 별 신경 안쓰고 살고 있습니다.
처녀적에 7년간 펜팔하던 사람을 퇴짜 놓았어요.
부산에서 기대에 부풀어 새벽기차를 타고 왔을 사람을
첫눈에 안경알 두꺼운게 맘에 안들어서 그때부터 태도가
안좋았어요. 그래서 점심먹고 저녁기차로 내려간다고 서울역가서
얘기좀 더 했으면 좋겠다던 남자를 명동서 서울역까지 걸어가면
시간 맞을거라며 집가는 버스에 올랐네요. 친구 고향분이라 가끔
소식 듣는데 지금 고위급 공무원이 되어 있더라고요. 아깝네요. ㅋㅋ
인생은 뭐시라카더라, 아 그런 노래말고, 인생은 때로 퇴짜 맞고 퇴짜 놓으면서 알이 차는 거래요. 퇴짜 맞을 때는 시리고 아프고 퇴짜 놓을 때도 당연히 시리고 아프죠, 고로 왈 인생은 시리고 아픈 거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