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와 같이 사랑을 끄고 켤 수 있다면 (장정일) - 김춘수의 꽃을 변주하여
내가 단추를 눌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라디오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단추를 눌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전파가 되었다.
내가 그의 단추를 눌러 준 것처럼
누가 와서 나의
굳어 버린 핏줄기와 황량한 가슴속 버튼을 눌러 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전파가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사랑이 되고 싶다.
끄고 싶을 때 끄고 켜고 싶을 때 켤 수 있는
라디오가 되고 싶다.
핵심정리
운율 : 내재율
성격 : 비판적, 풍자적
어조 : 패러디를 통한 냉소적 어조
제재 : 라디오
주제 : 현대인들의 가볍고 경박한 세태에 대한 풍자
이해와 감상
널리 알려진 김춘수의 존재론적인 시 '꽃'을 시적으로 패러디(parody)한 이 작품은 패러디도 하나의 문학적 행위면서 패러디를 통해 탄생한 작품 역시 문학 창작의 영역 속에 온전히 포함될 수 있음을 보여 주는 예가 되고 있다.
김춘수의 시가 사실적인 존재가 아닌, 관념적인 존재인 꽃을 소재로 등장시켰다면, 이 작품은 가시화(可視化)될 수 있는 사물이면서 생필품의 하나처럼 된 라디오를 소재로 등장시킨다. 라디오는 단추로 작동되고, 또 그제야 전파를 통해서 방송을 들려 줄 수 있는 물건이다. 다시 말해 단추를 누르지 않으면 라디오는 그냥 무용지물에 불과하다. 화자는 그렇게 자신이 라디오의 단추를 눌러 준 것처럼 누군가가 자신의 황량한 가슴속 버튼을 눌러주기를 바란다. 그러면 자신도 그 누군가에게로 가서 그의 전파가 될 수 있는 것이다. 4연에 드러나는 바와 같이 결국 이 전파는 나와 그 누군가를 이어주는 존재면서 사랑의 감정 그 자체를 가리키기도 한다. 서로의 단추를 눌러주면 서로가 서로에게 전파가 되고 이러한 전파에 의해 우리들은 모두 사랑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시는 4연의 마지막 2행에서 의도된 시상의 뒤틀림을 보여 준다.
라디오는 끄고 싶을 때 언제든지 끄고 켜고 싶을 때 언제든지 켤 수 있는 것이다. 즉 사람들의 편의나 실용성에 의해 작동되는 것이다. 만일 사람들의 사랑이 라디오와 같은 것이라면 그 사랑은 일회적이고 편의적인 수밖에 없다. 또 순간 순간의 실리에 의해 그 사랑이 움텄다가 다시 움츠러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어찌 보면 김춘수의 시가 지극히 진지하고 묵직하게 인간의 존재론적 의미를 노래했다면, 이 시는 그와 반대로 가볍고 감각적인 어투로 사랑의 세태를 풍자했다고 할 수 있다. 즉 사랑의 의미를 그저 편하고 가볍게만 받아들이고 사랑 자체를 일회적으로 소비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는 현대 사회의 풍토에 대한 비판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