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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박이 이름의 한자식 표기 - 우리말 토박이 이름을 한자로 억지로라도 적자니 우리식 한자가 필요해 -

요즘 사람더러 우리말 ‘돌쇠놈’을 한자로 적어 놓으라고 하면 막막해할 수가 있을 것이다. ‘놈’자에 해당하는 한자를 별로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 조상들은 이를 ‘乭釗䎛’이라고 적고 ‘돌쇠놈’으로 읽었다. ‘돌’을 ‘돌(石)’의 뜻에 해당하는 ‘石’에 음을 나타내는 ‘乙’을 받쳐 ‘乭’로 적어 ‘돌’의 뜻과 음을 동시에 나타냈고, ‘노(老)’자에 한글 자모 ㅁ 모양의 口(입 구)를 받쳐 ‘놈’을 표기했다. 우리말(한글)과 한자의 조합인 셈이다.

중국의 표음문자인 한자는 우리말을 제대로 나타낼 없었다. 토박이 순 우리말이 많은 우리의 한국어와는 애초부터 좋은 짝이 되지 못했다. 다시 말하면 한자는 우리말을 표기하기엔 완벽하지 못한 글이었다. 특히, 토박이 땅이름이나 사람이름을 적을 때 이를 적을 마땅한 한자가 없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옛날 우리 선비들은 중국에서는 아예 없는 우리식의 한자를 만들어 냈다. 주로 한자와 우리 글자로 조합된 ‘한국식 한자’를 만든 것인데, 이러한 식으로 만들어진 글자들은 중국이나 일본 등에서는 지금도 거의 볼 수 없는 것들이다. 乙(새 을)자를 써서 ㄹ의 음을 대신한 것이 많고, 口(입 구)자를 써서 ㅁ의 음을, 한글 자모의 ㅇ자를 써서 ㅇ의 소리값 음을 보태기도 했다. 이러한 식의 조합은 한글 창제 이후부터 더욱 많아진 것으로 추측된다. 한자와 한글의 자모를 짜 맞춘 글자들이 많이 나와 이용된 흔적이 문헌 등을 통해서 많이 발견된다. 중국에서 만들어진 한자는 역시 음의 체계가 다른 우리말을 제대로 표기하기에는 역부족이었기에 이러한 식의 조합 글자들이 적히고 읽힌 것이다.

우리 조상들은 의적(義賊)으로 알려진 조선시대의 ‘임꺽정’을 어떻게 적었을까? 한자로 ‘林巨正’이라고 적기도 했지만, 이는 ‘임거정’으로 읽혀 원이름과 상당한 차이가 난다. 그러나, ‘꺽’자에 가까운 ‘걱’자를 만들어 적었다. ‘巨(거)’자에 한글 자모의 ㄱ자를 밑에 받쳐 ‘巪’자를 만들어 낸 것이다. ‘이쁜 애’란 뜻으로 ‘이뿐’이란 이름을 지었다면 이를 한자로 어떻게 적었을까? ‘入分(입분)’이나 ‘伊分(이분)’으로 적기도 했지만, ‘伊(이뿐)’으로 써서 완전한 발음이 되게 했다. ‘分(분)’자를 된소리로 만들기 위해 그 글자에 된소리를 의미하는 ‘叱’자를 위나 아래쪽에 붙였다. ‘叱’은 ‘꾸짖음’, ‘성을 냄’의 뜻이어서 ‘분’을 된소리로 발음하라는 뜻이었을 것이다. 참으로 기발한 생각이 아닐 수 없다. ‘곱단’이란 이름을 가졌다는 어느 할머니 이름이 호적에는 어떻게 올라라가 있나 했더니 ‘䯩丹’으로 나와 있었다. 원래의 한자에는 ‘곱’자가 없어 ‘高(고)’자에 ㅍ 발음에 근사한 ‘巴(파)’자를 받침으로 받쳐 ‘䯩(곱)’자를 만든 것이다. ‘보름섬’, ‘그믐섬’이란 이름의 섬이 있다. 이를 한자로 적어야 하는데, 적을 만한 ‘보름’의 ‘름’자나 ‘그믐’의 ‘믐’자가 없었다. ‘르’나 ‘므'자라도 있으면 거기에 ㅁ을 받쳐서라도 만들면 되었지만 그나마도 없었다. 그런데, 결국 연음(延音)을 이용해 이를 해결했다. ‘乶音島(볼음도)’와 ‘今音島(금음도)’로 적어 ‘보름섬’이나 ‘그믐섬’을 표기했다. ‘甫(보)’자에 우리글 ㄹ 모양의 乙을 받쳐 ‘볼’이라는 음을 우리식 한자로 만들어 적은 것도 참으로 재미있는 발상이다. ‘곰달내’라는 땅이름을 ‘고음월천(古音月川)’이나 ‘고음달내(古音達乃)’라고 표기한 것보다 더 앞선 생각이다.

‘바깥 개(浦)’란 뜻의 땅이름인 ‘밧개’는 ‘夞怪(밧괴)’로 적었다. '바깥'이란 뜻의 ‘外(외)’자에 ‘叱(질)’자를 받쳐 ‘밧’자를 만들어 낸 것. '밧'은 '바깥'의 옛말이다. 우리말 ‘움막’은 ‘굴’의 뜻인 ‘厂(굴바위 엄)’에 ‘움’에 근사한 음을 가진 ‘音(음)’자를 넣어 ‘움’으로 읽도록 하고, ‘幕(막)’자를 붙여 표기했다.

전남 고흥 해안에는 '봇돌바위'리는 바위섬이 나오는데, <대동여지도>에서는 이를 한자로 '喸乭島'로 표기했다. '喸乭'이란 한자 역시 우리식 한자다. '질(叱)'자는 이처럼 받침의 구실도 했다.

한자로의 표음이 불가능한 ‘갓’, ‘것’, ‘곱’, ‘넙’, ‘놀’, ‘놈’, ‘늣(늦)’, ‘댐’, ‘덜’, ‘덩’, ‘둘’, ‘둥’, ‘며’, ‘묠’, ‘볼’, ‘섬’, ‘얍’, ‘잘’, ‘줄’, ‘할’ 등의 글자도 한자와 우리 한글의 자모를 짜맞추어 완벽하게 만들어 냈다. 일부 한자의 불가능한 표음 기능을 받쳐 주기까지 하면서 어느 음이나 표현을 가능하게 한 한글은 고금을 통해 우리말을 표기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훌륭한 글자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