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2024. 5. 23. 선고 2020므15896 전합 혼인의 무효 (사) 파기자판
【사건명】
혼인관계가 이혼으로 해소된 후 혼인관계의 무효 확인을 구할 수 있는지 여부가 문제된 사건
【판시사항】
혼인관계가 이혼으로 해소된 이후에도 과거 일정기간 존재하였던 혼인관계의 무효 확인을 구할 확인의 이익이 있는지 여부(적극)
【판결요지】
1. 일반적으로 과거의 법률관계는 확인의 소의 대상이 될 수 없지만, 그것이 이해관계인 사이에 현재 또는 잠재적 분쟁의 전제가 되어 과거의 법률관계 자체의 확인을 구하는 것이 관련된 분쟁을 한꺼번에 해결하는 유효․적절한 수단이 될 수 있는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확인의 이익이 인정된다(대법원 1995. 3. 28. 선고 94므1447 판결, 대법원 1995. 11. 14. 선고 95므694 판결 등 참조).
이혼으로 혼인관계가 이미 해소되었다면 기왕의 혼인관계는 과거의 법률관계가 된다. 그러나 신분관계인 혼인관계는 그것을 전제로 하여 수많은 법률관계가 형성되고 그에 관하여 일일이 효력의 확인을 구하는 절차를 반복하는 것보다 과거의 법률관계인 혼인관계 자체의 무효 확인을 구하는 편이 관련된 분쟁을 한꺼번에 해결하는 유효․적절한 수단일 수 있으므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혼인관계가 이미 해소된 이후라고 하더라도 혼인무효의 확인을 구할 이익이 인정된다고 보아야 한다. 그 상세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가. 무효인 혼인과 이혼은 법적 효과가 다르다.
무효인 혼인은 처음부터 혼인의 효력이 발생하지 않는다. 따라서 인척이거나 인척이었던 사람과의 혼인금지 규정(민법 제809조 제2항)이나 친족 사이에 발생한 재산범죄에 대하여 형을 면제하는 친족상도례 규정(형법 제328조 제1항 등) 등이 적용되지 않는다. 반면 혼인관계가 이혼으로 해소되었더라도 그 효력은 장래에 대해서만 발생하므로 이혼 전에 혼인을 전제로 발생한 법률관계는 여전히 유효하다. 예를 들어 이혼 전에 부부의 일방이 일상의 가사에 관하여 제3자와 법률행위를 한 경우 다른 일방은 이혼한 이후에도 그 채무에 대하여 연대책임을 부담할 수 있지만(민법 제832조), 혼인무효 판결이 확정되면 기판력은 당사자뿐 아니라 제3자에게도 미치므로(가사소송법 제21조 제1항) 제3자는 다른 일방을 상대로 일상가사채무에 대한 연대책임을 물을 수 없게 된다. 그러므로 이혼 이후에도 혼인관계가 무효임을 확인할 실익이 존재한다.
나. 가사소송법은 부부 중 어느 한쪽이 사망하여 혼인관계가 해소된 경우 혼인관계 무효 확인의 소를 제기하는 방법에 관한 규정을 두고 있다.
즉 가사소송법 제24조에서는 ‘부부 중 어느 한쪽이 혼인의 무효나 취소 또는 이혼무효의 소를 제기할 때에는 배우자를 상대방으로 한다’(제1항), ‘제3자가 제1항에 규정된 소를 제기할 때에는 부부를 상대방으로 하고, 부부 중 어느 한쪽이 사망한 경우에는 그 생존자를 상대방으로 한다’(제2항), ‘제1항과 제2항에 따라 상대방이 될 사람이 사망한 경우에는 검사를 상대방으로 한다’(제3항)고 규정함으로써, 혼인당사자 모두 또는 한쪽이 사망하여 혼인관계가 해소되고 과거의 법률관계가 되었다고 하더라도 그 혼인관계의 무효 확인을 구하는 소를 제기할 수 있음을 전제로 구체적인 방법을 마련하고 있다. 이러한 가사소송법 규정에 비추어 이혼한 이후 제기되는 혼인무효 확인의 소가 과거의 법률관계를 대상으로 한다는 이유로 확인의 이익이 없다고 볼 것은 아니다.
다. 대법원은 협의파양으로 양친자관계가 해소된 이후 제기된 입양무효 확인의 소에서 확인의 이익을 인정하였다.
대법원 1995. 9. 29. 선고 94므1553(본소), 1560(반소) 판결은 ‘원․피고 간의 입양이 무효임의 확인을 구하는 이 사건 반소청구는 이미 협의파양 신고로 인하여 원․피고 간에 양친자관계가 해소된 이후에 제기된 것이므로 위 협의파양의 무효를 구하는 본소청구가 인용되어 원․피고 간에 양친자관계가 회복되지 아니하는 한 이는 과거의 법률관계에 대한 확인을 구하는 것이라 하겠지만, 위 입양은 원․피고 간의 모든 분쟁의 근원이 되는 것이어서 이의 효력 유무에 대한 판단결과는 당사자 간의 분쟁을 발본적으로 해결하거나 예방하여 주는 효과가 있다 할 것이므로 이를 즉시 확정할 법률상의 이익이 있다’고 판단하였다.
대법원의 위와 같은 판단은 이혼으로 혼인관계가 해소된 이후 제기된 혼인무효 확인의 소에서 확인의 이익을 판단할 때에도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다.
라. 무효인 혼인 전력이 잘못 기재된 가족관계등록부의 정정 요구를 위한 객관적 증빙자료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혼인관계 무효 확인의 소를 제기할 필요가 있다.
혼인무효 판결을 받은 당사자는 가족관계등록부의 정정을 요구할 수 있고, 그 방법과 절차는 「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제107조 등이 정한 바에 따르게 된다. 즉 혼인무효 판결이 확정되면 당사자는 가족관계등록부 정정신청을 할 수 있는데, 시(구)․읍․면의 장은 ‘혼인무효사유가 한쪽 당사자나 제3자의 범죄행위로 인한 경우’ 에는 가족관계등록부를 재작성하고[「가족관계등록부의 재작성에 관한 사무처리지침」(가족관계등록예규 제442호) 제2조 제1호, 제3조 제3항], 그 외의 경우에는 무효인 혼인이 기록된 부분에 하나의 선을 긋고 무효인 말소내용과 사유를 기록하는 방법으로 가족관계등록부를 정정하게 된다(「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규칙」 제66조 제2항). 이러한 절차규정에 비추어 볼 때 이혼으로 혼인관계가 이미 해소되었을 때 그 무효 확인을 구하는 소는 혼인 전력이 잘못 기재된 가족관계등록부 정정 요구에 필요한 객관적 증빙자료를 확보하기 위해 필요한 것으로서, 가족관계등록부 기재사항과 밀접하게 관련된 현재의 권리 또는 법률상 지위에 대한 위험이나 불안을 제거하기 위한 유효․적절한 수단에 해당할 수 있다.
마. 사법작용은 구체적인 법적 분쟁이 발생하여 당사자가 법원을 통한 권리구제를 구하는 경우에 비로소 발동되는 소극적인 국가작용이나, 재판의 청구가 있는 이상 법원은 가능한 한 이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국민의 법률생활과 관련된 분쟁이 실질적으로 해결될 수 있도록 필요한 노력을 다하여야 한다.
가족관계등록부의 잘못된 기재가 단순한 불명예이거나 간접적․사실상의 불이익에 불과하다고 보아 그 기재의 정정에 필요한 자료를 확보하기 위하여 기재 내용의 무효 확인을 구하는 소에서 확인의 이익을 부정한다면, 혼인무효 사유의 존부에 대하여 법원의 판단을 구할 방법을 미리 막아버림으로써 국민이 온전히 권리구제를 받을 수 없게 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2. 이와 달리 ‘단순히 여자인 청구인이 혼인하였다가 이혼한 것처럼 호적상 기재되어 있어 불명예스럽다는 사유는 청구인의 현재 법률관계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고, 이혼신고로써 해소된 혼인관계의 무효 확인은 과거의 법률관계에 대한 확인이어서 확인의 이익이 없다’고 본 대법원 1984. 2. 28. 선고 82므67 판결 등은 이 판결의 견해에 배치되는 범위에서 이를 변경하기로 한다.
【사실관계】
1. 혼인신고를 하여 법률상 부부였던 원‧피고는 이혼조정이 성립함에 따라 이혼신고를 마쳤음. 원고는 혼인의사를 결정할 수 없는 극도의 혼란과 불안, 강박 상태에서 혼인에 관한 실질적 합의 없이 이 사건 혼인신고를 하였다고 주장하면서 주위적으로 혼인무효 확인을, 혼인의사를 결정할 수 없는 정신상태에서 피고의 강박으로 이 사건 혼인신고를 하였다고 주장하면서 예비적으로 혼인취소를 청구함
2. 원심은, 혼인무효 확인을 구하는 주위적 청구에 대하여는 ‘혼인관계가 이미 이혼신고로 해소되었다면 위 혼인관계의 무효 확인은 과거의 법률관계 확인으로서 확인의 이익이 없다’는 취지의 대법원 1984. 2. 28. 선고 82므67 판결을 인용하면서 원고와 피고 사이에 이미 이혼신고가 이루어졌고 이 사건에서 원고의 현재의 법률관계에 영향을 미친다고 볼 아무런 자료가 없어 확인의 이익이 없다고 판단하였고, 혼인취소를 구하는 예비적 청구에 대하여도 이미 이혼으로 혼인관계가 해소되었으므로 역시 소를 제기할 이익이 없다고 판단하였음. 이에 대하여 원고가 혼인무효 확인을 구하는 주위적 청구에 대하여 상고를 제기함
3. 대법원은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하여 위와 같은 법리를 설시하면서, 혼인관계가 이미 해소된 이후라고 하더라도 혼인무효의 확인을 구할 이익이 인정된다고 판단하고, 이와 다른 입장에 있던 대법원 1984. 2. 28. 선고 82므67 판결 등을 변경하면서 원심을 파기·자판하여 제1심판결을 취소하고, 사건을 제1심법원으로 환송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