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당연필 (외 1편)
이 영 화
고향집 문지방이 백세를 바라본다.
서른 가구 남은 마을 대소사
꾹꾹 눌러 쓴 공책
훤히 꿰고 계신다.
혀를 휘두르는 칼바람 달래기는
가마솥에 소머리 고우는 일
한생 우직했던 소의 살과 뼈는 분해되고
타닥타닥 타는 장작불에
섣달 혹한 견딜 아들 손자 가슴에 담는
아궁이 앞
노모는 잉걸불이다
마디 굵은 손끝 닳아
펄펄 넘치는 솥뚜껑 열기는
몇 번이나 용을 써야 하고
굽은 허리 영~~차 지팡이가 후들거린다.
애간장을 끓이던 막내손자 취직소식
“목소리가 재미나여”
수화기에 넣어주신 헛기침
다시 사립문에 귀 기울이신다.
시간에 갇히다
예매 없이 도착한 서울 역 17;00
KTX 승차 시간 20;40
무얼 하지?
롯데쇼핑 안에 겨울 코트 세일에도 가격이 비싸다
기우뚱거리다 나왔다
대합실 티브이 앞에 60대쯤 보이는 대여섯 명의 남자들이
최순실 이야기에 열불을 태운다.
전자시계 오늘따라 거북이 같다
카페에서 지친 걸음 넋 놓고 앉았다가
싸늘해진 커피 맛
졸고 있는 남편을 두고 나왔다
건너 좌석 젊은 연인들 배낭을 옆에 두고
어깨에 기대 졸고 있다
전주비빔밥을 느슨하게 나물 종류 세어가며 먹어본다.
시간을 쳐다보며 이제 뭘 하지?
또 롯데쇼핑 한 바퀴 구석구석 돌아본다.
발가락의 골수염으로 병원에 묶여있던
그 한 달보다
오늘이 더 길었다.
이영화 : 선린대학교 문예창작과정 수료. 2016년 [시인정신] 등단.
시인정신 2017 여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