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비유환(有備有患) / 박규환
비올 때 우산이 없어서 걱정인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나처럼 우산이 있어서 걱정인 사람도 있다. 아침에 집을 나설 때 하늘이 몹시 찌푸리고 있어서 한바탕 쏟아지려니 했던 게 적중해서 강의가 끝나갈 무렵엔 제법 세차게 쏟아지고 있었다. 염불보다 잿밥에 정신이 쏠리는 격으로 강의보다는 집에 돌아갈 일만 걱정하면서도 대과없이 강의를 끝낸 셈이다. 아침에 책가방 속에 넣어 온, 펴면 보통 우산이로되 닫으면 끈까지 달린 조래기가 되는, 거기다 조금만 손질을 하면 방망이가 되는 말하자면 요즘 문명이 고안해낸 개폐자동開閉自動의 우산이 있으므로 걱정할게 없을 것 같으나 나의 사정은 그게 아니다. 오래 다리를 앓아 지팡이에 의지하지 않고선 촌보를 옮기기 곤란하기 때문이다.
얼마를 기다려도 비가 개일 것 같지 않아서 쌈지 속의 부싯돌을 꺼내듯 가방 속에서 반으로 움츠린 우산을 꺼내 허리를 펴게 한 다음 용감히 빗속을 나서긴 했으나 한손엔 지팡이요, 또 한손엔 책가방인데 내가 손이 셋 달린 기형아가 아닌 다음에야 우산을 받칠 손은 없다. 무거운 책가방을 겨드랑이에 끼고 그로 인해 여유가 생긴 손으로 우산을 들었지만, 몇 발자국 가기도 전에 가방은 미끄러져 내려오지 손엔 힘이 빠져 받쳐 든 우산은 피사의 사탑이 된 데다 바람까지 불어 비는 하늘에서가 아니고 옆으로 기어들어 이미 나는 물에 빠진 생쥐가 되고 가방은 겨드랑에서 뒤로 빠져 나가 땅바닥에 비를 맞으며 나동그라져 있었다.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서 있다가 우산이고 뭐고 집어치우고 가방을 익사로부터 구출해서 택시를 잡도록 까진 나는 이미 화담花潭의 방을 뛰어든 황진이만치나 고혹적인 모습이 되어 있었다.
차라리 그놈의 우산이 아니었던들 슬슬 빗속을 만보하면서 어느 노인의 말마따나 되도록이면 비를 적게 맞을 수도 있었을 것이요, 재수가 좋으면 거기 어디 동굴 속에라도 들려 비를 피하는 동안 같은 목적으로 뛰어든 묘령의 여인을 맞아 얼굴도 모른 채 숨 막히는 로맨스가 이룩될 수도 있었을지 모를 것을, 그 허리까지 꺾였다 펴졌다 하는 문명의 이기를 믿었던 게 잘못이었다.
빗속을 만보하므로 비를 적게 맞는다는 논리는 좀 생소한 느낌일지 모르지마는 알고 보면 자명한 일이다. 옛날 내가 어렸을 적에 해학을 즐기는 노인 한분이 우리 집에 기식하고 계셨는데 갑자기 소낙비가 쏟아지자 집 앞 채소밭에서 일하던 머슴아이가 헐레벌떡 집으로 달려들자 노인이 혀를 차면서 하는 말이
“이 미련한 녀석아, 비가 오는데 달려오는 놈이 어디 있느냐”였다. 소년이 영문을 몰라 하니까 말을 이어서 “비가 오면 천천히 와야지 달리고보면 앞의 비까지 당겨서 맞지 않느냐”하면서 그 소년을 측은해 했다.
동굴 속의 여인이란 어떤 선비가 길을 가다가 소낙비를 피하려 길옆의 깜깜한 동굴 속으로 기어들어 비가 개이기를 기다리는 동안 같은 처지의 또 한 사람이 기어들었는데 어둠 속의 그 정체는 알 수 없었지만 풍기는 냄새하고 감도는 분위기가 분명 젊은 여자인지라 이 선비, 기갈飢渴이 자심했던지 양반이 갓 쓰고 똥 한번 누는 셈치고 그만 안고 궁그는 데 이르렀다. 이 묘령의 여인은 어느 대갓집 노비奴婢였는데 얼굴이 천하의 추물이라 어느 사내고 밝은 데서야 감히 가까이 하려들지 않았던, 그야말로 순결무구한 동정녀였다. 이렇게 해서 하늘이 맺어준 이 기연奇緣으로 열 달 후에 태어난 사내아이가 나중 이 나라의 위대한 성리학자였더란 이야기인데, 나 또한 천재일우의 기회를 놓친 것 같은 아쉬움이 없지 않다. 우산이 아니었던들 그처럼 꼴사납게 비를 맞지 않아도 되었을지 모를 일이고 거기다 동굴 속의 가인佳人을 만나 이미 시들은 젊음이 기사회생起死回生했을지도 모르지 않았겠는가.
하긴 나는 그 요즘 유행하는 길게도 짧게도 접을 수 있는 우산이 싫다. 이건 전연 우산이 갖는 품위를 갖추지 못하고 있다. 깨끗이 말아들면 날렵하고 화사한 개화장開化杖이 되고 중세의 서양 무사들이 결투에 쓰던 칼 같기도 하고 비가 내리면 우산이로되 햇볕 뜨거울 땐 양산이 되며 허전한 신사의 손에 무게를 주는 사치한 휴대품으론 이미 챔버린 수상이 몸소 시범한 바다.
그에 비해 요즘 가방 속에도 쑤셔 넣고 다닐 수 있는 자동식 우산은 아무래도 우산이 아닌 것 같다. 단장처럼 짚고 다니는 신사의 멋은 간 곳없고 끈 달아들고 다니는 모습은 젊은 여자들이 들고 다니는 새끼가방 같기도 하고 어느 인디언 여자의 우줄거리는 치마폭 같기도 하며 포수가 잡은 꿩을 모가지만 잡고 대롱거리며 가는 것 같아 살벌하기까지 하다.
일찍이 영국의 수필가 제롬Jerome도 이 자동식 우산을 저주한 적이 있다. 영국의 4월은 변덕 날씨여서 소낙비가 내리는가 하면 햇볕이고, 햇볕이 났는가 하면 소낙비여서 소위 에리프릴 샤우어April shower란 변덕을 뜻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제롬이 하루는 거리에 나갔다가 소낙비를 만나 백화점에 들려 우산을 하나 사려니까 점원이 “어떤 우산을 드릴까요?” 하기로 “비가 내리면 펴지고 개이면 닫아지며 깜박 잊고 놓고 가면 나 여기 있다고 소리를 내는 그런 우산이 있었으면……”하니까 점원이 “그럼 자동식을 하나 쓰시지요.”였다. 제롬은 두말없이 이놈을 하나 사들고 거리로 나오자 또다시 비가 내리기 시작해서 이젠 걱정할 것도 없이 보도 위에 선 채 가르쳐 준 대로 단추를 눌렀으나 이 빌어먹을 것이 끄덕도 하지 않자 이놈을 잡고 승강이를 벌이는 동안 비는 패연沛然히 쏟아져 이제 우산 같은 건 필요가 없을 지경에 이르렀을 때에야 비는 멎고 4월의 햇볕이 이글거리는데 그제야 ‘이 빌어먹을 것’이 뻐들컹 하고 열리더란 것이다. 그래 이번에 이놈을 닫으려고 또 아까와 반대의 노력으로 승강이를 벌였지만 닫힐 염도 없다. 할 수없이 해맑게 개어 아름다운 하늘 아래 우산을 펴든 채 둠벙에서 갓 건져낸 꼴의 쇼핑 보퉁이까지 끼고 거리를 걷자니까 길 가던 행인들은 어느 미친놈 구경하듯 하더란 이야기다.
비가 오지 않으면 농촌에선 농사를 못 짓고 도시에선 수돗물이 나오지 않아 아우성이지만 사흘만 계속해서 비가 내리면 홍수로 가옥이 유실되고 인명과 가축이 온전치 못한 판국에서는 비란 항시 욕먹기 마련이지만 낮잠 자기 좋고 술 마시기 좋은 게 비오는 날일 수도 있고 파초잎이나 오동잎에 속삭이는 빗소리의 야반의 정취를 머릿속에 그리며 추억에 눈감으면, 하루 낮 유비유환의 나의 고행은 까마득히 잊히고 구름 낀 날의 우비雨備로 가방 속에 간직한 자동식 우산이 미덥기만 하다. 내 앓는 다리가 유죄지 우산일 리 없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