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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과 가정사이 끝없는 줄타기
1. 직장과 가정사이, 그 풀리지 않는 갈등
2. 여성이여, 당신의 결정이 지혜로운 것이려면
3. 직장과 가정 완벽한 이중주는 없는가
4. 일도 할것인가, 아이만을 볼것인가
직장과 가정사이, 그 풀리지 않는 갈등
여성의 사회 활동은 현대화의 흐름 속에서 생겨 난 자연스런 결과이다. 직장과 가정을 오가며 고민하는 여성들에게 성경은 어떻게 말하고 있는지 살펴보자.
남자와 여자, 창조의 명령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은 마지막 날에 자기의 형상대로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그들에게 두 가지 사명을 주셨다. 물론, 그때 하나님은 남자와 여자에게 그 사명을 이룰 수 있도록 은사와 능력을 부여하셨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주신 사명 중에 하나는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생물학적인 명령이고 다른 하나는 땅을 정복하고 만물을 다스리라는 일의 명령이었다(창1:28). 전자가 주로 가정을 통해 이루어지는 명령이라면 후자는 직장을 비롯한 가정 밖의 사회에서 이루어지는 명령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전통적으로, 첫번째 명령은 남자와 여자에게 함께 주어진 것으로 생각하는 반면 후자는 자연스럽게 남자들에게 주어진 명령으로 생각해 왔다. 문장의 내용으로는 그렇게 생각할 이유가 없는데 으레 그렇게 생각한다. 지금까지 사회에서 땅을 정복하고 만물을 다스리는 일은 보편적으로 가정 밖에서 남자들에 의해 이루어졌기 때문에 그저 익숙한대로 이 구절을 해석하다보니 그렇게 되었던 것 같다. 그러나 일의 명령은 남자와 여자 모두에게 주어진 것이며 그 명령대로 남자와 여자가 함께 노동에 참여했던 역사적인 증거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신약에 소개된 각종 은사를 보아도 일하는데 필요한 은사들이 남자와 여자의 은사로 구분되어 있지 않다. 남자나 여자가 어떤 독특한 은사를 더 가지고 있고 덜 가지고 있을 수는 있겠으나 은사가 남녀로 확연히 갈리지 않았으므로 그들의 사명을 이분법적으로 구분해서 말할 수는 없다.
남자와 여자의 역할에 대한 확연한 구분은 사람이 타락해서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때에 비로소 나타난다(창3:16-19). 여기서 여자에게는 잉태와 관련된 고통을 말했고 일에 따르는 고통은 남자에게만 부과하고 있다. 그러므로 남자와 여자의 역할에 대한 이분법적 구분은 바로 이 타락의 순간에서 유래되지 않았나 생각된다.
이제 십자가의 보혈로 회복된 사람이라면 이런 이분법적 사고에서 풀려나와야 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남자와 여자가 하나(갈3:28)라고 한 바울의 선언을 받아들인다면 여성이 직장에서 일할 수 있고 또 일해야 한다는 사실을 현실적으로 받아들일 뿐 아니라 신앙적으로도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부정, 그 이상의 대안
보수적인 크리스천들 가운데 여성의 직업에 대해서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자녀 교육의 문제, 가정의 와해 등 현실적인 문제를 거론하면서 부정적으로 말하지만 그런 태도가 문제를 푸는 해결책은 아니다. 왜냐하면 현실적인 문제 때문에 여성의 직장 생활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대안을 찾는 일이다.
바울 사도는 젊은 목회자 디모데와 디도에게 편지하는 가운데 이렇게 권면했다.
“그러므로 젊은이(젊은 과부)는 시집가서 아이를 낳고 집을 다스리고 대적에게 훼방할 기회를 조금도 주지 말기를 원하노라(딤전5:14)”.
“저들로 젊은 여자들을 교훈하되 그 남편과 자녀를 사랑하며 근신하며 순전하며 집안일을 하며 선하며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게 하라 이는 하나님의 말씀이 훼방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니라(딛2:4-5)”.
그들의 서신서에서 언급된 여자들에 대한 권면을 따른다면 여성이 직장에서 일한다는 것은 맞지 않는다. 남편을 내조하고 자녀를 양육하고 가정을 지키는 것이 여자의 본분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이런 구절을 인용하면서 여성이 가정을 이룬 후에 계속 직업을 가지는데 대해 비판한다. 그러나 이 말씀들은 복음으로 인한 새로운 가치관이 아직 사회에 뿌리내리기 전의 사회상을 반영하는 것일 뿐이다. 마치 복음은 노예 제도를 용납하지 않지만 바울이 그 당시 노예들에게 노예로 있으면서 주인들을 잘 섬기라고 말한 것과 일맥 상통한다. 그러므로 노예에 대한 권면이 있다는 사실이 노예 제도를 정당화할 수 없듯이 이런 구절들이 여성의 가정 밖의 활동을 제한하려는 생각을 정당화시킬 수는 없다.
그렇다고 이 권면이 오늘날 직장 여성에게 무의미하다는 말은 결코 아니다. 이 구절은 가정을 지키는 일에 대한 책임이 우선적으로 여성에게 있음을 상기시키고 있다. 그것은 시대를 초월해서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이라고 생각된다. 남자가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다고 해서 여자를 창조하신 사실은 가정을 이루는데 여자의 역할이 필수적임을 암시하고 있다.
일하는 엄마들의 이상형, ‘현숙한 여인’
성경에는 많은 여성들이 소개되지만 어느 여성도 완벽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다. 룻이나 한나같은 가정적인 여성은 가정 밖에서 일하는 여성들에게는 별 도움이 되지 못한다. 반면에 드보라와 같은 맹렬 여성은 직장 여성에게는 좋은 역할 모델이 되겠지만 그녀가 어떻게 가정을 이끌어 갔는지 알 수가 없다. 그런데 잠언 31장에 소개된 이름 모를 여성은 성경에 소개된 모든 여성들의 총화라고 할 수 있는 이상적인 여성상을 보여주고 있다(잠31:10-31).
이 여인은 전통적인 가정 주부로서의 여성상을 초월하고 있다. 그녀는 남자들이 무색할 만큼 노동을 하며 경제적으로도 엄청난 능력을 보여준다. 반면에 흔히 여성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범하기 쉬운 실수도 하지 않는다. 그녀는 남편에게 깍듯하게 대하며 식구들이 편안하도록 배려하며 그래서 남편과 자녀들에게 칭찬을 받았다. 잠언은 이런 이상적인 여성을 ‘현숙한(noble character)여인’이라고 부른다.
크리스천 여성으로서 직장 생활을 하는 것은 창조 원리에 위배되는 일이 아니며 오히려 여성으로서 추구할 수 있는 사실이다. 가장 이상적인 여성은 직장과 가정에서의 책임을 다 이루어내는 사람이다.
크리스천 직장 여성의 현실적인 선택
성경은 많은 이상을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다. 이것은 우리의 삶의 지표가 된다. 그러나 이 땅에서 그 이상이 실현되지 못하고 있음을 솔직하게 인정해야 한다. 산상수훈의 교훈들이 바로 그렇다. 눈이 범죄하면 눈을 빼어버리라는 말씀은 주님이 원하시는 윤리의 이상형을 말하는 것이지 정말로 사람들이 눈을 빼어버리는 것을 원하시는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이런 이상적인 여성을 소개하는 것은 주님이 원하시는 여성이 되도록 동기를 부여하는 것이지 이 수준에 다다르지 않는다고 정죄하려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러므로 크리스천 직장 여성들은 이런 모델을 바라보면서 자신에게 매진할 필요가 있다(빌3:12). 그러나 슈퍼 우먼 신드롬에 빠져서는 곤란하다. 바람직한 자세는 자신의 한계를 솔직하게 인정하고 주어진 상황 속에서 지혜롭게 생각해야 하는 것이다(롬12:3). 생각하는 과정에서 크리스천 여성들은 누가복음 9장 23절의 자기 부인과 십자가 고난을 묵상할 필요가 있다.
(1)자기 부인
여성은 직장과 가정의 책임을 이루는 과정에서 자기를 부인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과감히 직업을 포기하거나 유보할 수 있어야 한다. 반대로 경우에 따라서는 가정 밖으로 나가서 경제 활동을 해야 할 수도 있다. 그래서 이런 질문을 던져보는 것이 유익하다. 내가 직장 생활을 하는 동기는 무엇인가? 가정으로부터의 탈출을 위한 것인가? 경제적인 풍요를 원하기 때문인가? 현재 상황에서 필요한 것인가? 하나님이 주신 은사를 활용하기 위한 것인가? 복음 사역을 위한 준비인가?
(2)십자가의 고난
직장과 가정의 책임에 대해 십자가의 고난을 염두에 두면서 두개의 짐을 질 각오가 있어야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경제적인 고난을 감수하고 직장을 포기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결론 자체가 아니라 결론을 내리게 되는 동기와 과정이다. 역시 이런 질문을 던져보는 것이 유익하다. 현재 내가 당하는 어려움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두가지 짐을 져서 나에게 영적인 유익이 있는가? 나 때문에 주변 사람-가정, 직장 동료 등-이 어려움을 당하지 않는가?
기혼 여성들이 직장과 가정 사이에서 겪는 갈등에 대한 완벽한 해답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둘 다를 완벽하게 하는 것은 실제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결국은 둘 중 하나를 포기하는 쪽으로 가게 되기 쉽다. 그러나 일단 두 가지의 책임을 가지고 있는 동안은 조화를 이루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를 위해 식구들의 도움이 필요할 것이며 직장 동료들의 도움도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도움을 구해야 할 것이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라(빌2:13-14)”.
여성이여, 당신의 결정이 지혜로운 것이려면
일하는 엄마-생존에서 만족으로(Working Mom-fron survibal to satisfaction, Miriam Neff, Navpress)」를 읽고 요약 정리한 것이다.
미국의 상황이므로 우리와 맞지 않는 것도 있지만 그 원리에 있어서는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한다.
잘못된 죄책감
일하는 어머니들의 가장 큰 문제는 양쪽의 책임을 완전하게 하려다가 결국 그렇게 하지 못할 때 생기는 절망감이다. 모든 면에서 완전한 사람이 되려고 하면 결국 죄책감에 빠지게 된다. 그러나 현실을 인정하고 그 현실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중요하다. 일하는 엄마와 전업 주부를 비교할 때 어차피 장단점은 있게 마련이다. 가정으로 돌아가는 것이 정당한 것이라고 생각하면 자꾸만 죄책감이 생긴다. 그럴 때면 “하나님이 지금 나를 이곳에 보내셨을 수 있다” “가정에서 자녀를 키우는 책임은 나한테만 맡긴 것이 아니다”는 믿음을 통해서 죄책감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정당한 죄책감에 대해서는 인정하고 해결해야 하지만 잘못된 죄책감은 바르게 생각해서 고치도록 해야 한다.
여성의 일, 어떻게 생각해야 하나
전통이나 사회 제도 등이 여성의 일을 제한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오늘의 현실은 여러 영역에서 여성을 필요로 하며 이런 여성의 일은 결코 비성경적인 것이 아니다. 이와 관련된 혼동을 피하기 위해서는 여성의 일을 역할(role)로 설명하기보다는 관계(relationship)로 이해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여성의 일은 세상이나 혹은 교회가 정한 어떤 역할로 이해하기보다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이해해야 한다. 즉, 하나님이 주신 은사를 발견해서 그 은사에 따라 일하는 것이다. 이때 여성에게 주어지는 책임은 어떤 역할을 맡느냐가 아니라 그 일에 성실하냐는 것이다. 가정에서는 일에 은사가 있으면 그 일을 할 것이며 직장의 특수한 영역에서 일할 은사를 주셨으면 그 일을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정해진 역할보다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자신의 역할을 이해하는 것이 건강한 것이며 성경적이다.
자신을 향해 이런 질문을 던져보자
여성의 인생에서 결혼과 자녀는 엄청난 변화를 야기한다. 이둘은 다 언약의 관계로서 엄청난 책임을 요구한다. 그러므로 일에 생애를 투자할 소명감이 있는 사람은 결혼을, 혹은 자녀를 유보하거나 최소한으로 제한하여야 한다. 이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 없이 하는 것은 무책임한 행동이 된다. 일단 결혼을 하고 자녀를 가졌으면 어떤 이유로도 책임을 회피해서는 안 된다.
이런 결정을 하는데 다음의 몇 가지 질문이 도움이 된다. 이런 결정이 정말 내게 유익한가? 이 결정이 다른 사람에게도 유익한가? 이것은 나의 자원을 유용하게 투자하는 일인가?
우리는 각기 다른 길로 갔지만
직장에 다니는 엄마들이 문제를 느끼고 사는 만큼 가정 주부들도 그 나름대로 문제를 느끼며 산다. 직장을 다니지 않기 때문에 느끼는 열등감, 경제적인 부족함 등이 그들을 괴롭힐 수 있다. 우리는 이 두 여성 그륩들을 비교해서 그들 사이에 벽을 세우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오히려 서로 자기들의 어려움을 나누고 서로 도울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다. 교회나 지역 사회에서 그런 기회를 마련한다면 피차에게 유익할 것이다. 우선 하나님이 각 사람을 필요에 따라 다른 곳에 보내셨음을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각자가 져야 할 책임은 각자가 져야 하지만 함께 나눌 수 있는 짐은 함께 나누는 것이 지혜롭다. 여성들 간의 대화와 협조는 많은 문제를 해결하게 한다. 이와 동시에 같은 처지에 있는 다른 크리스천 여성과 대화 하는 시간을 가지고 그들의 경험을 통해서 배우는 것도 필요하다.
그리고 남겨진 지혜로운 준비
앞으로 점점 사회에서 여성의 필요가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현실을 부정하기보다는 인정하고 그 현실 속에서 최선이 아니라면 차선의 해결책을 찾는 것이 지혜로운 자세이다. 가정과 직장에서 남자와 여자가 함께서로 돕도록 해야 할 것이다. 기업체나 정부는 이렇게 되도록 여러가지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예를 들어, 자유 출퇴근제라든가 재택 근무라든가 탁아소 마련 등을 말한다. 이런 것은 개인적인 노력도 필요하지만 국가의 정책이 이를 뒷받침해야 하므로 정치적인 영향력을 미치도록 해야 한다.
직장과 가정 완벽한 이중주는 없는가
사례1/일하는 엄마
우리는 ‘올빼미 가족’
이윤미 / 코리아나화장품 상무
현재 내가 하고 있는 일은 코리아나 화장품 사업국 지구장으로서 판매자들을 관리, 교육, 양성하는 일이다. 회사는 압구정에 위치하지만 활동 범위는 전국이다. 고객은 여성이고 회사 동료들도 대부분 여사원이다. 우리 회사가 다른 기업보다는 상대적으로 여건이 좋은 편이지만 그동안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특별히 가정 생활과 직장 생활을 어떻게 병행했는가에 대해서 얘기해 보겠다. 직장 생활을 한지 8년이 되었다. 연애 시절에 직장 생활을 시작했으니 가정 생활과 거의 같은 역사를 가지고 있는 셈이다. 결혼을 조금 늦게 해서인지 나의 가정에 대한 애착은 남다르다고 할 수 있다. 직장 생활이 아무리 바쁘더라도 가사를 소홀히 하지 않으려고 한다. 특별히, 가족들과의 시간은 매우 중요하게 다룬다. 가족들과 보내는 시간은 대개 밤이다. 왜냐하면 낮 시간 동안은 일 때문에 시간을 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우리 가족을 ‘올빼미 가족’이라고 부른다.
딸아이는 이제 일곱 살이다. 밤이 되기 전에는 거의 만날 수가 없기 때문에 낮에는 주로 전화 통화를 이용하고 가끔 회사에 데려오기도 한다. 딸아이는 낮 동안 고용한 아주머니가 돌봐준다. 한 번은 유치원에서 소풍이 있었는데 그날도 나는 바빠서 딸아이와 동행하지 못하고 아주머니를 대신 보냈다. 그런데 밤에 집에 돌아와 보니 딸아이의 입이 십리는 나와 있는 것이었다. 자초 지종을 듣고 보니 다른 아이들은 모두 엄마가 왔는데 자기만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다. 더구나 딸아이에게는 아주머니의 위치에 대해서 거북함이 있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아빠, 엄마는 커녕 친척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아이에게는 상처가 되었던 것 같았다. 엄마가 함께 갈 수 없는 소풍이라면 차라리 그냥 보내는 게 낫겠다 싶었다. 왜냐하면 아무도 없을 경우 선생님과 더욱 친해질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 이후로 나는 딸아이에게 더욱 많은 신경을 쓰게 되었다. 짧은 밤 시간 동안 더 많은 것을 나누려고 한다. 그날그날 있었던 일을 묻거나 아이가 묻는 것을 대답해준다. 그리고 스킨십을 통해서 엄마의 사랑을 딸아이에게 전해준다.
남편은 바쁜 나를 많이 이해해준다. 아내가 바쁜 직장 생활 때문에 비워 놓은 자리를 불평하지 않고 대신 채워준다. 빨래도 해주고 아이도 봐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해의 차원을 넘어 나를 밀어준다는 것이 좋다. 그러나 남편의 ‘친절’이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내가 혜지를 출산했을 때남편은 나의 직장 생활을 반대했었다. 일반적으로 거의 모든 여성이 바로 이 지점에서 직장을 포기하는 것 같다. 기혼 직장 여성이라면 반드시 거쳐야 할 그런 시기에 여성이 직장 생활을 계속할 수 있기 위해서는 직장 생활을 계속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표명해서 남편을 설득해야 한다. 내가 그랬다. 물론, 상당 부분은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개인적으로 여자도 능력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난 돈 좀 번다고 유세하지 않았다. 남편에게 잘하고 아이에게 충실하려고 노력했다. 어쩌면 그점은 생각보다 중요할지도 모른다. 아직까지는 기혼 여성의 직장 생활이 그런 바탕위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직장의 여건에 대해서 말하자면 우리 회사는 앞에서도 이야기 했듯이 거의 모든 일이 여성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따라서 숙직같은 일이 생겼을 때 발생하는 ‘따가운 눈총’은 없다.
출산한 직원이 생겼을 경우에는 상사가 그 직원의 고객을 대신 관리해 준다. 지금까지 체계가 그랬다. 같은 여자 입장에서 돕는다는 분위기가 잡혀 있는 것이다. 아마도 이런 점은 우리 회사뿐만 아니라 다른 곳에도 있으리라 생각한다. 기본적으로 서로 돕지 않고서는 일을 제대로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일을 할 것인데 지금까지 했던 방식이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고 장담할 수는 없을 것이다. 직장과 가정을 조화시키는 문제는 대부분의 직장 여성의 골칫거리인 것을 보면 아무래도 정답은 없나보다. 그렇다고 ‘지혜롭게’라는 말로 얼버무리는 것은 온당한 태도가 아닌 것 같다. 내가 제시할 수 있는 것은 여성이 직장 생활을 하려는 의지가 확고할 때 좋은 결과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그 의지가 어떤 동기에 의한 것이냐도 역시 중요하다. 단순히 직장 생활 자체만을 위해서 가정을 소홀히 한다면 문제는 복잡해질 것이다. 어차피 보다 나은 가정을 위해서 일하는 만큼 최선의 방법을 강구하는게 좋지 않은가? 계속적인 남편과의 대화를 통해서 둘이 충분히 공유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가령 남편을 가사 현장으로 끌어들일 경우에도 단순히 여성의 권익을 쟁취하겠다는 측면에서 요구해서는 곤란하다. 남편과 충분한 대화가 유지되고 있다면 남편은 ‘사랑하는’ 아내를 위해서 기꺼이 가사 분담에 응할 것이다.
이런 작은 범위를 벗어난 문제들은 사회구조적인 문제이므로 사회적인 대안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 부류에서 기본적인 것들은 탁아원 시설을 확충한다거나 조건 없는 각종 특별 휴가를 마련함으로써 여성 인력이 허무하게 사장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사례2/일하는 엄마
한 몸으로 여러 일, 쉽지는 않지만
김영희 / 라이나생명보험주식회사
“엄마가 이렇게 열심히 사는데 저희들도 분발해서 더욱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언젠가 아들녀석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다.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마음이 찡했다. 분주하게 보내온 나의 지난 시간들이 결코 헛되지 않은, 보람있는 것이었음을 확인하는 감사의 순간이었다.
나는 지난 15년 간 직장 생활을 해왔다. 세 아이의 엄마로, 아내로, 며느리로, 그리고 직장인으로서 일인 다역을 한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만은 아니었다. 아니 좀 버겁고 힘든 일이었다고 해야 보다 솔직한 표현이 될 것 같다. 그럼에도 나는 직업을 갖고 일할 수 있었음이 감사하고 자랑스럽다. 그리고 이러한 감사와 자랑은 직업을 가진 여성이기에 느껴야만 했던 여러가지 어려움들을 다 보상하고도 남음이 있다.
일을 시작하게 된 동기는 경제적인 필요였다. 남부럽지 않게 아이들 뒷바라지를 하고픈 소망에서 남편과의 맞벌이를 택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엄마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어린 아이들을 두고 직업 일선에 나선다는 것이 큰 모험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래서 ‘혹 아이들이 비뚤어 지기라도 하면 어쩌나’하는 염려가 늘 마음 가운데 있었다. 그러나 세 아이 모두 비뚤어지기는커녕 오히려 엄마의 입장과 마음을 헤아릴 만큼 훌륭하게 성장해주었다. 나는 이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라고 생각한다. 비록 엄마가 항상 집에 있어서 돌보지는 못했지만 신앙으로 한 교육은 그 어떤 보살핌보다 큰 영향력이 있었다. 나는 나의 이런 경험을 빌어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믿음이 있는 가정의 아이는 바르게 성장할 수밖에 없다고.
매일 9시 30분까지 일터에 나가 하루를 보내는 나는 저녁 6시는 되어야 퇴근길에 오른다. 일주일 내내 정신 없으리만큼 바삐 지내고 주말을 맞으면 완전히 녹초가 되어 쓰러져버리곤 한다. 그런 내가 안쓰러운지 남편이나 아이들은 집안일 분담하는 것에 익숙하고 자연스럽다. 우리 가족 모두에겐 서로의 어려움을 나누려는 넉넉한 마음 씀씀이가 있다. 이런 이해와 지원이 없었다면 아마도 나의 직장 생활은 불가능한 일이 되어버렸을 것이다.
일을 하는 과정에 그만두고 싶은 생각이 엄습하는 고비도 여러차례 있었다. 직장 안의 인간 관계가 어려워지거나 업무 추진이 잘 되지 않는 등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겪게 되는 어려움 외에도 집안에서 발생하는 크고 작은 일들이 자꾸만 나를 주저앉게 만들었다. 하지만 가족들의 격려와 신앙 생활은 그런 위기를 극복할 수 있도록 힘을 주었다.
직장 생활이 나에게 준 유익은 너무나 많다. 먼저는 경제적으로 많은 여유가 생겼다. 특별히 어려서부터 음악에 재능을 보이던 딸아이가 피아노를 전공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었다. 성장한 딸 아이가 음대에 진학했을 때의 감격을 나는 결코 잊지 못한다. 또한 밖에서 시달리는 남편의 고충을 그 누구보다도 잘 이해할 수 있었다. 나의 능력을 펼쳐보이며 성취감을 맛볼 수 있었음도 물론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직장 생활을 통해 자신이 보다 젊고 활력있게 살 수 있다는 점이다. 나는 천성적으로 일을 좋아하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항상 일하는 것이 즐겁다. 일을 통한 성취감이 나로 하여금 보다 열정적인 삶을 살게 한다.
나는 가정 주부이기도 하지만 일터 속에서는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직장인의 한 사람이다. 때문에 무엇보다 성실이 필요하다. 누군가 나의 입장을 이해해주리라는 생각은 스스로를 나약하게 할 수 있다. 하지만 주부 사원 스스로의 굳은 각오와 부지런함만 있다면 충분히 다른 남자 직원이나 미혼의 여직원들과 동등하게 일할 수 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을 보면 참 인내심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무엇이든 쉬운 일은 없다. 물론 가정 생활과 직장 생활의 병행이란 것이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다. 그러나 좀 더 인내심을 가지고 도전해볼 만한, 가치있는 일임을 나는 믿는다. 일을 통해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축복이 어마어마하니 말이다.
자녀들이 어느 정도 성장한 지금, 주변 사람들은 “이제 직장을 그만두고 좀 편히 살라”고 권유한다. 그러나 나는 일 속에서 편안함을 느낀다. 이제 나는 처음 일을 시작할 때와는 또다른 목표를 가지고 일을 지속한다. 자식들의 힘을 빌지 않고도 의미있게 보낼 수 있는 멋진 노후를 설계해보며 나는 오늘도 열심히 일터를 누빈다.
사례3/내가 일을 그만둔 이유는
화려하게 일터로 복귀할 꿈을 꾸며
이경주 / 전 잡지사 근무, 전업 주부
대학을 졸업한 이후 결혼, 임신, 그리고 출산을 거치면서 직장 생활을 해왔던 나는 지난해 마치 출사표를 던지듯 전업주부의 길을 택했다.
직업 의식과 일에 대한 욕심에 관한 한 누구 못지 않았고, 업무에 대해서도 만족하고 있었기 때문에 직장을 그만둘 결심을 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결국 결혼과 육아로 헌신짝 내버리듯(?) 회사를 그만두는 여직원의 숫자를 더하는구나 하는 자괴감과, 하나님 앞에서의 나의 비전과 상통한다고 생각했던 일을 그만두는 것이 곧 신앙적인 실패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가장 나를 괴롭혔다.
똑같은 결혼 생활이라 하더라도 아이가 있고 없고의 차이는 천양지차다. 특히나 직장 여성과 아이 엄마는 현실적으로나 관념적으로나 너무나 모순된 관계인 것 같다. 가장 어려운 문제라면 역시 아이 양육에 관한 문제일 것이다.
나의 경우는 시어머님이 아이를 맡아주셨다. 어떤 면에서 아이는 엄마가 직접 키우는 것보다 조부모의 사랑을 듬뿍 받고 컸다. 매일 잠을 설치고 한 시간 반 정도 걸려 집에 오면 살림하랴 아이돌보랴 나도 비몽사몽이었지만, 더 큰 문제는 어머님의 체력이었다. 처음에는 매일 아침 저녁 우리 집으로(차로 20분거리) 출퇴근하는 생활을 하셨는데, 매일 왔다갔다 두 집 살림을 하는 것이 힘에 부치셨는지 아예 아이를 데려다 키우고 너희들은 회사 근처로 이사를 가 주말에 아이를 보러오는 것이 어떻겠냐는 제안을 하셨다. 그것도 그럴 것이 한 달에 두 주 정도는 늦게까지 야근을 해야 했고 토요일 퇴근 시간마저도 늦어 어머니의 부담이 그만큼 컸다.
토요일 퇴근 시간이 땡하면 눈치볼 새도 없이 바람처럼 뛰쳐나가 시댁으로 달려갔다. 그대로 시댁에서 주말을 보내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어머니에게 최대한 자유 시간(?)과 회복 시간을 확보해 드리기 위해 남편과 함께 아이를 데리고 친정으로 갔다. 친정에서 주말을 보내고 일요일 저녁 식사를 하자마자 다시 시댁으로 부리나케 달려가서 아이를 인계하곤 우리집으로 정확하게 12시 5분 전에 들어오는 생활이 1년 남짓 계속됐다. 월요일 출근 준비다 뭐다 하면 새벽 한두시는 예사가 된다. 당연히 월요일 아침은 끔찍하다. 두고 온 아이 얼굴에다가 잠 못잔 피곤함, 아이를 보고난 후의 신체적 후유증, 주중에 해결해야 할 업무에 대한 부담감 등으로 내 자신이 뒤죽박죽된 비빔밥 처럼 느껴지곤 했다. 그러나 육체적으로 피곤하고 힘든 것보다는 웬지 아이에게 못할 짓을 하고 있는 것 같은 정신적 부담감이 더 컸던 것 같다. ‘아이는 엄마와 같이 자야 하는데’ 같은 말을 지나가는 투로만 들어도 웬지 우리 아이가 비뚤어진 아이가 될 것 같은 상상이 스며올랐다.
일하는 엄마에게 가장 힘들 때는 아이가 아플 때다. 그러나 내 경우는 차라리 내 아이가 아픈 것은 괜찮은데 어머님이 병이 나셨을 때가 견디기 힘들었다. 아이가 7개월쯤 됐을 때 크게 체해서 몇 주간을 고생했다. 문제는 그리 건강 체질이 아닌 어머님이 그동안 쌓여온 피로에다 아픈 아이를 수발하느라 혼이 다 빠져 완전히 탈진 상태가 되셨다. 게다가 평소 어머님과 교대로 아이를 봐주시던 아버님은 고질적인 당뇨 증세가 심해지셨고 설상 가상으로 다리까지 다치셨다. 어머님은 내가 휴가라도 냈으면 하셨는데, 마침 회사 업무는 도저히 휴가를 낼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머리끝까지 바짝 바짝 타들어가는 것 같았다. 회사 화장실에서 혼자 울기도 했다. 형님네와 친정에 겨우겨우 아이를 맡기기도 하고, 시누이에게 시부모님의 수발을 부탁드리기도 했다.
괜한 자격지심이었겠지만 이러다 두 분이 혹시 어떻게 되는 것은 아닐까 불안해졌고 형제들 볼 면목도 없었다. 남편은 남편대로 승진 시험에서 떨어졌다. 주일은 주일대로 상황이 안 맞거나 때론 너무 피곤해서 예배를 못보는 경우도 생겼다. 점차 원하던 가정의 모습에서 멀어지고 있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시부모님은 내가 회사를 그만둘 것을 진지하게 제안하셨다. 다른 때 같으면 부모님의 전통적인 사고방식과도 한 번 싸울법 했는데(정중하게 내 의견을 개진하는 것을 이름.) 여력이 없었다. 사실 그 말은 나에게 달콤한 유혹이 되기도 했다. 남편은 자기가 직장을 그만두고 아이를 키울테니 나는 일을 계속하라고 했지만 현실적으로 그럴 수는 없는 일이었다.
결단은 굉장한 용기가 필요했지만 생각보다 쉽기도 했다. 자식 키우고 살림하느라 몇십 년을 가족을 위해 희생해오신 어머님의 인생을 당신 손자 때문에 더 이상 담보잡아선 안 된다는 생각과 지금 아이는 놀이방에 맡긴다고 해도 둘째가 생기면 어떻게 할 것인가, 내 아이니까 내가 책임지고 키우자 하는 생각이었다. 그 결과 지금 나는 출퇴근도 없고 월급도 없지만, 아이의 ‘사랑’을 대가로 받는 육아 전문가 및 가사 노동가로 일하고 있다. 언젠가 때가 되면(?) 다시 화려하게 일터로 복귀할 꿈을 꾸면서 말이다.
직장을 그만두기 직전, 한 여직원이 지나가는 투로 한 말이 아직도 생생하다. “이러니 회사에서 여직원을 안 뽑으려 하지…”. 꽤 오랜시간 동안 그 말이 상처가 됐었다. 그러나 그 책임이 비단 나와 사표를 던진 많은 여직원들 개인의 책임만은 아님을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은 짐작하리라. 지금은 여성의 사회 참여 의식의 유무보다는 주변 가족과 사회의 분량이 더 큰 것 같기 때문이다. 지금도 어려움 속에서 꿋꿋이 일하고 있는 많은 일하는 엄마들의 용기에 부끄러움을 느끼며, 혹시 내 짧은 글로 인해 정말 헌신적으로 가족을 위해 봉사하고 있는 전업 주부들에게 한 점의 티끌이라도 남기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으로 글을 맺는다.
일도 할것인가, 아이만을 볼것인가
직장 생활을 하는 여성들이 늘어남에 따라서 여러가지 문제들이 발생하고 있다. 그러한 문제들에 대해 ‘직장인 모임’에서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여성의 직장 생활과 가정 생활
● 6년째 직장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아침 6시에 출근해서 저녁 8시에 귀가합니다. 사실, 저는 마음속으로 현모 양처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직장 생활을 3년정도 하면서 생각이 좀 바뀌기 시작했어요. 직장 생활에 대한 매력을 느끼게 되었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 계속 근무하고 있어요.
● 제가 하는 일은 선교와 관련이 있고 또 개인적으로 가지고 있었던 비전을 실현할 수 있는 것이기도 해서 일에 대한 소명 의식을 가지고 계속 근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다른 말씀이 있지 않는한 이 일을 계속할 생각이고, 다만 직장 생활이 힘들다보니까 가사 노동에 대한 부담스러움이 있죠. 아침 7시15분에 출근해서 밤 9시 30분쯤에 귀가 하는데 집에서 집안일을 또 하게 됩니다. 집안일을 마치면 취침 시간은 대개 11시 정도 되니까 정말 힘이 듭니다.
● 직장 여성의 가장 큰 문제는 아무래도 자녀 양육 문제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모든 여성이 공감하리라고 생각하는데 우리가 알다시피 이 문제로 인해서 직장 여성이 가장 많은 어려움을 당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탁아 시설이 마련된 직장이 그렇게 많지 않을 뿐더러 직장 분위기도 여성의 출산 시점을 곧바로 퇴직과 연결시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집안의 분위기도 그런 여성을 도와주기는커녕 더 어렵게 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래서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여성이 애를 낳고 직장 생활과 가정 생활을 모두 잘한다는 것은 정말 어렵습니다.
● 가사 노동에 관해서는 여성만의 일이라는 사회적인 통념이 반드시 깨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남편도 가사에 적극적이어야 합니다. 어떻게 똑같이 일하고 와서 여자만 가사에 매달려야 합니까?
● 저는 인간 관계가 중요한 관건이라고 생각합니다. 직장 생활의 바쁜 와중에서도 집안일이 생겼을 때 어떻게 시간을 할애할 것인가는 중요한 문제죠. 친정과 시댁 어느 쪽에도 불만을 사지 않게 공평한 시간을 할애해야 합니다. 그래야 갈등이 생기지 않고 직장 생활에서도 능률을 올릴 수 있을 것입니다.
● 이런 문제도 있습니다. 직장과 가정에서 바쁘게 생활하다보니까 자기 정체성을 찾지 못하는 현상이 생깁니다. 다시 말해서 역할만 남고 ‘나’는 없는 거죠.
자녀 양육은 여자만의 일인가?
● 아내와 자녀 양육 문제로 다툰 적이 있습니다. 교사인 아내는 일에 몰두하였는데 아이가 생기자 시간 할애를 어떻게 할 것인가로 저와 갈등하게 되었습니다. 아이를 친정에 맡겼다가 시댁에도 맡겼다가 하는 혼란을 빚었죠. 저는 그 문제가 아내의 결단에 달렸다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아이는 엄마의 애정을 더 필요로 하기 때문이죠.
● 직장에서 아이에게 밥은 어디에 있고 반찬은 어디에 있다는 등의 전화를 하는 여성을 보면 참 안됐다는 생각이 듭니다.
● 저는 결혼한지 15년 되었습니다. 그간에 아내는 퇴직과 재취업을 반복했었습니다. 아내가 재취업을 하려고 내세웠던 이유는 여자도 사회 생활을 해야 한다, 부부 생활에 변화를 줘야 한다 등이었지만 실제 이유는 경제적인 것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결국 아내는 아이 양육 때문에 1년만에 직장을 그만두고 말았습니다. 아내도 아이의 인격형성에 엄마의 손길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 앞서 말씀하신 분의 의견에 동감합니다만 저의 경우에는 직장도 자녀를 돌보는 것도 다 포기하지 못하고 있어요. 선택을 해야 한다면 자녀를 위해서 직장을 포기해야겠지요.
●아직은 미혼이지만 제가 그런 상황에 처한다면 직장을 그만 두겠어요. 유치원에 근무하면서 보니까 학력이 높은 여자의 아이일수록 거친 것 같아요. 그것은 아마도 학력이 높은 여성일수록 직장 생활을 많이 하고 그런 여성의 아이는 엄마가 바쁘기 때문에 그만큼 관심과 애정을 덜 받기 때문일 것입니다. 만약 그런 일이 발생한다면 여성은 아이를 위해서 과감히 직장을 그만둘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남자는 여자를 도울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여성에 대한 고정 관념을 깰 것을 필요로 합니다. 그래서 직장 안에서 여성들의 어려움을 남성의 도움으로 상쇄시켜야 합니다. 그리고 여성들은 유아기의 아이들에게 사랑을 주어 올바른 인격이 형성되도록 해야 합니다. 이것이 가능하려면 사회적으로 이 문제를 다루어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그런데 아이를 키우는 일이 왜 여자만의 일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까? 아이를 키우는 일은 공동의 문제입니다. 다시 말해서 가정이면 가정, 직장이면 직장에서 그 문제는 남자의 것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남자는 지금보다 더 적극적으로 그 문제를 다루어야 하고 사회적으로도 해결책이 제시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남자들의 인식 전환이 필요합니다.
가사 노동은 어떻게 해야?
● 전통적인 가부장의 모습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무조건 권위만 내세우고 가사 노동에 무관심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결혼하게 되면 아내를 꼭 도와주겠습니다. 대개의 남성들은 가사 노동을 성격적으로 싫어한다고 하는데 저는 성격상으로도 아무런 거리낌이 없어서 여자를 잘 도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그런데 남성들은 어째서 가사 노동하는 것을 도와준다는 차원에서 생각하는지 모르겠어요. 가사 노동은 여자만의 일이 아니라 남자의 일이기도 합니다. 때문에 남성들은 적극적으로 가사 노동에 임해야 합니다 저는 오히려 여자가 직장 생활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왜냐하면 가정 주부보다는 직장여성이 남편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힘드는 집안일은 남자가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