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히 술을 못 권하것네 - 금주 일지 24일(2022.10.7.)
오늘은 아침부터 조금 걱정이 된다.
금주한 지 3주가 지나면서 확연하게 술 생각이 줄어드는 것을 느끼고 있다.
그런데 오늘은 내 술의 이력과 같은 이력을 가진 형제회의 모임이 있는 날이다.
고등학교 동문 1년, 2년 선배님들과 좋아하고 존경하는 선생님 댁에서 만나 선생님을 중심으로 대학 1학년 때부터 정식으로 모임을 만들어 지금까지 7형제회로 이름하여 역사를 이어왔다.
선생님께서 살아계셨을 때 뿐만 아니라 돌아가신 뒤에도 선생님의 기일을 10년 넘도록 챙길 만큼 남다른 우정을 쌓아왔다.
이제는 선생님을 떠나 선생님이 남겨주신 우정을 지키며 변함없이 모임을 지속해 왔다.
나는 그 중 막내인 후배라서 선배님들이 배려하고 존중해 주는 것이 각별하였다.
나의 상황이나 사정을 세밀하게 살펴서 내 뜻을 받아주고 인정해 주고 응원해 주었다.
모임도 거의 내게 운영의 전권을 맡기다시피 하며 신뢰해 주셨다.
문제는 형님들이 대부분 술을 잘 마신다는 점이다. 횟수나 양이나 종류를 불문하고 술에 관한 한 전천후 선수급들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좀 걱정이 된 것이다.
그러나 이미 1년 금주를 선언한 마당에 돌이킬 수 없는 문제 아닌가.
약속한 시간이 2시간쯤 남았을 때 7형제회의 단톡방에 “나의 금주 선언문”을 올렸다.
형님들이 모임에 나오기 직전에 모두 읽어보고 오면 말씀드리기가 한결 나으리란 생각에서였다.
이윽고 다른 일정이 있어 미리 양해의 말씀을 드리고 약속 시간보다 다소 늦게 모임 장소에 도착했다.
먼저 나와서 술을 마시던 형님들이 반갑게 맞아준다.
회장을 맡은 형님부터 시작하여 차례로 말씀들을 잇는다.
“어서와, 동생. 근디 앗따, 금주선언문을 읽고 나니 감히 술을 못 권하것네 그려. ”
“그래, 쐐기 박듯이 금주선언문을 미리 올려놓으니 누가 술을 먹으라고 권하것어~”
“근디 뭔 일이여, 동생이 술을 끊어븐 것이!”
“어디 아픈 것은 아니제?”
“아따, 근디 대단허시. 그 좋아헌 것을 어찌 참는당가! 어째, 잘 참아지등가?”
“아니여, 동생은 의지가 굳은 사람잉께 한 번 헌다고 했으믄 허고 말 사람이제.”
“그나저나 동생이 술을 참은 당게 나도 생각해 봐야쓰겄네”
모두들 한 마디씩 하신다. 그리고
“어이, 우리들끼리라도 한 잔씩들 허세”하며 술잔을 기울인다.
분위기를 멋쩍게 만드는 것은 아닌가 싶어 조금은 미안하기도 하고 해서 술병을 들고 거듭 빈 술잔을 찾아 술을 따른다.
그러면서도 나의 금주를 지지해 주는 분위기이다. 조금 억지를 부리면서 술을 마시도록 강권하는 분이 아무도 없다. 너무 쉽게 금주를 인정하고 응원해주는 분위기가 감사하면서도 한편 아쉽기도 하다. 좀 마시라고 권하면서 장난이라도 쳐주지.
그래도 이미 시작한 금주가 시간이 지나면서 생각에서 차츰 멀어져가고 있고, 주변에도 하나씩 금주를 알려 나가는 가운데 1년이 훌쩍 지나게 되지 않을까.
첫댓글 좋은 분 주변이라 그런지 늘 좋은 분들이 함께하시네요. 하하처럼요^^
가을 저녁 따뜻하고 흐붓한 분위기, 훈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