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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을 사랑함에
군자란은 넘치는 기운을 터뜨리려고 용틀임을 하고 있습니다.
벙그러진 꽃봉오리가 마알간 연두 빛 사이로 붉으스레 물든 꽃잎이 비죽 뛰어나오려고 때를 쓰고 있네 요. 흡사 홍보석이라고 해얄까요?
베란다에는 지금 화려한 불꽃잔치가 벌어집니다. 귀퉁이에는 노오란 양란이 꽃을 막 피어올리고 있습니다. 어~ 날 잊어버리다니 하고 제라늄 새빨간 꽃잎이 새침대기 새댁인양 숨어서 꽃을 피우고요. 보는 제가 외려 조마조마해 합니다.
어쩌면 루이 14세, 베르사이유 궁전 무도회에서 화려한 맵시를 뽐내며 저마다의 아름다움을 한껏 뽐내던 공작부인이라도 저렇게 노골적으로 눈을 어지럽게 하지 않았을 겁니다.
베란다 아래에는 다음 차례는 자기라고 신고하는 개나리는 어쩌고요. 아무튼 시새움 많은 봄날, 내 정원은 이렇게 무르익어 가고 있습니다.
제가 오늘 무슨 넥타이 맨지 아세요? 개나리를 환영하는 의미에서 노란 넥타이를 골랐습니다. 별꼴이라고요? 꽃들의 시새움 넘치는 향연에 저까지 끼어들어 어지럽힌다고요? 뭐 어때요.
저는 말이죠, 봄이란 "어지럽다"라고 풉니다.
저마다의 질서가 잡히지 않은 상태에서 생명의 욕구는 엄청난 에너지로 분출되는데 반해 교통정리해 주는 어떤 힘이 아쉬운 때이기도 하지요.
* * * *
잘 차려진 바뇌의 점심을 우아하게 끝내고서 버스로 길을 나섭니다. 잘 닦여진 아우토반을 달리며 벨기에와 국경을 넘나보니 이제는 독일 땅에 들어섰습니다. 참, 가이드한테 들었는데 벨기에는 고속도로에 가로등이 켜져 있다고 하네요. 그래서 교통사고가 훨씬 줄었답니다. 그러고 보니 우리나라에는 고속도로에 가로등이 있던가요?
두 시간쯤 달렸나, 쾰른입니다. 독일의 북서부 지역의 큰 도시인 쾰른은 라인강 좌안에 위치하며 인구는 약 91만 명의 독일 4대 도시이고 철도교통의 최대 중심지랍니다. 이 도시는 로마의 식민지에서 출발한 탓으로 로마의 유적이 많이 남아있지만 뭐니 뭐니해도 중세기 독일 최대의 성당인 쾰른성당이 가장 유명하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 도시는 활기가 넘쳐흘러 좋았습니다. 지하철의 굉음과 투박하기 짝이 없는 독일어, 거리를 메우고 달리는 아우디, 베엠베, 벤츠가 새삼 여기가 독일임을 깨닫게 합니다.
제일 먼저 쾰른 성당으로 가봐야겠지요. 세계 4대 성당이랍니다. 바티칸, 밀라노..에이, 잘 모르겠습니다만 크기는 대단했습니다. 무엇보다 특이한 것은 성당 외관이 새카맣게 불에 그슬린 듯 별로 깨끗해 보이지 않았고 더욱이 성당 전면에 있는 높이 157미터의 쌍 탑 꼭대기의 유리창은 더러 깨어진 그대로여서 피난민촌에 우뚝 선 성당 같아 별로 정이 안 가네요.
그리고 성당 앞 광장에서 기념사진을 찍으려 아무리 노력해 보아도 한 컷에 그 전경이 다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너무 크고 높다고 해야겠지요. 쉽게 말해 성당 앞 광장이 좁아서 렌즈각을 잡기 어려워서 그렇다는 군요.
이 성당은 1248년 구 성당 대신 건축가 게르하르트에 의해서 착공된 이래 1880년에서야 마무리 되었답니다. 대단하지요! 오랜 세월을 두고 하나 하나 정성을 다하여 완성하는 놀라운 끈기와 집념이 오늘의 부강한 독일을 일으켰나 봅니다.
쾰른 성당은 회중석(會衆席) 좌우측에 각 두개의 측랑(側廊)을 배치한 오랑식(五廊式) 회당부로 짜여져 있습니다. 반구형 제대 전면에는 길쭉한 수직의 스테인드글라스의 다섯 개 창-- 제일 아래 층과 삼 층은 길쭉한 반면, 사이에 끼인 두 번째 창은 나지막 합니다.-- 을 통해 빛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습니다.
스테인글라스가 프랑스에 비해 단조로워 보여 실망했습니다. 하지만 온갖 장식을 거부한 단조로움 덕에 제대 위에 쏟아지는 하얀 빛이 더 눈부시네요.
프랑스 성당을 모방한 프랑스식 고딕 양식에 속하는 이 성당은 열주(列柱)의 간격을 극도로 좁혔습니다. 그래서 수직선의 효과를 강조한 탓에 천정이 더 높아 보이는 효과를 가져왔지요. 그래서 지극히 성스럽고 장엄한 하늘을 보여준다고 할까요? 하지만 수평의 효과를 극력 억제한 탓에 성전의 내부가 단조로워 보이네요. 또한 너무 높기만 해서 사람이 외려 소외감을 느낀다할까, 친근함이 결핍되어 보이는 건 아무래도 제 편견이겠지요.
옛날 중세 유럽 사람들은 하느님을 향한 경건함과 그리움으로 하늘을 향해 높게 높게 뾰죽하니 교회를 올렸답니다. 이것을 일러 고딕양식이라고 하지요. 그래도 오늘은 왠지 심술이 나서 이제껏 보아왔던 성당이 지니는 기도하고 묵상하는 분위기가 모자라 보입니다. 제가 무얼 알겠습니까만 정이 가지 않은 게 사실입니다.
관광객이 많아서인가 어수선하기 짝이 없고 성당 벽을 따라 열주 사이에는 조그만 제대와 성모님상도 많았지만 솔직히 기도하고 싶지 않았다면 어찌 생각하시겠습니까? 이태리와 영국, 프랑스에 꿀리고 싶지 않은 자존심 땜에 덩그렇게 교회만 쌓아올린 게 아닌가하고 터무니없이 트집을 잡아봅니다. 대리석 색감이 창백한 회색이어서 그랬을까요?
제가 몇 년 전에 쾰른에 왔을 때 이런 일이 있었지요.
일행 중에 유명한 성악가 김청자 교수가 있었는데 이곳 쾰른 성당 넓은 성전에서 느닷없이 구노의 아베마리아를 부르더군요. 쾰른 성전에서 많은 걸 느꼈나봐요. 그래서 북받쳐 오르는 열정을 어찌 할 수 없었겠지요. 천하의 김청자도 아베마리아로 시작하는 부분을 떨더군요.
"Ave Mria, gratica plena/Dominus tecum/ Benedicta tu in mulieribus/et benedictus fructus ventris tuis/ Jesus, / Sancta Maria, Sancta Maria, Maria. Ora pro nobis..."
부드럽게 시작한 아베마리아가 차츰 고음부로 올라가면서 가슴을 쥐어짜는 비통한 어머님의 마음을 대변하는 듯 김청자의 성가는 그 어는 때보다 유별났지요. ‘아베마리아를 들으면서 온 몸에 전율이 흐르며 마냥 눈물만 나더라’ 고 고백한 일행들이 많았어요. 때 마침 그 자리에 있던 관광객들, 세계 각국의 사람들이 함성을 지르고 박수를 치는데 감동을 찐하 게 받은 듯 모두 얼굴이 상기되어 있더군요. 얼마나 낭만적인 순례입니까?
그런데, 오늘은 왜 이리 허전해 하는지, 제 변덕을 용서하시라.
아마 바뇌에서 얻은 감동이 오래 묵상으로 남은 탓에 웅장한 교회건물도 우릴 어쩌지 못하나 봐요. 또한 순례를 떠나신다면 일행을 잘 만나야겠지요. 김청자 교수 같은 유명한 성악가도 좋겠지만 미술적인 소양이나 문학에 남다른 분이 계시면 순례가 더욱 빛날 테지요. 물론 순례 내내 우리를 깊은 묵상으로 잘 이끌어주시는 신부님을 모신다면 금상첨화일거요.
쾰른 성당 안에서 느낀 것은 그저 그랬어요. 오늘 하루, 아무래도 이질적인 바뇌와 쾰른을 두루 살핀 거라 머리와 가슴이 정리가 덜 된 터라 그랬을 테지요. 또한 파리의 노트르담과 쾰른이 자꾸 비교가 되나보지요. 아무튼 독일과 프랑스의 뚜렷한 문화적 차이를 기껏 쾰른 성당 둘러보면서 이야기한다는 건 너무 지나친 거지요. 가이드 탓도 컸어요. 가이드가 프랑스 취향인 거 같았어요. 뭐 둘러보는 관광객들의 표정도 기도를 하거나 묵상에 잠긴 모습은 없고 유명하다는 성당 하나 둘러본다는 기록을 남기는 정도라면 제가 지나쳤을까요? 제가 얼마나 무엄한지 왜 모르겠어요.
성당 앞 광장은 약 사오백 평이나 될까요? 이렇게 생각해봤습니다.
대형 성당을 제법 둘러본 경험이 있는데 바티칸, 베네찌아의 산 마르코성당, 피렌체의 두오모와 산타 크로체성당 모두가 웅장하고 압도하는 위엄이 있었지만 규모가 그에 못지않은 쾰른은 뭔가 옹색했습니다.
유럽의 성전을 둘러보면 성전 자체에서 은근히 풍겨 나오는 외경심과 더불어 크고도 높으신 ‘그분’의 권능에 깊이깊이 고개를 숙였는데 정말이지 쾰른은 아니었습니다.
주제넘게 참견해 본다면 광장이 훨씬 더 넓었더라면 어떠했을까? 하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바티칸, 산 마르코처럼 그 넓고도 넓은 ‘그분’의 품에 안기고 싶다는 제 어리광을 그대는 예쁘게 봐 주실테지요.
또 이런 추측을 해봅니다. 쾰른 성당은 이 도시의 쇼핑의 중심가인 것 같아요. 멋진 현대식 건물로 지어진 쇼핑센터가 바로 코 앞에 자리해서 젊은이들이 북적입니다. 그래서인가, 독일 젊은이들도 엄청 억세고 큰 체격 탓에 주눅이 들더이다. 현대식 쇼핑센터와 온갖 가게가 들어선 탓에 성당이 주는 엄숙함이 주위 건물과 조화롭지 못하고 꿔다놓은 보릿자루마냥 껑충했어요.
싼 마르코는 그 너른 광장에 야외 카페가 즐비하여 관광객과 주민들이 커피를 즐기면서 지중해 쪽빛 바다를 내다보는 맛이 괜찮았지요.
그래요 문제는 광장이었습니다.
유럽의 오래된 도시들은 으레 광장을 중심으로 모여들고 발전해 나가지요. 도시의 중심인 광장 한 켠에는 교회가, 다른 한 켠에는 시청사가 있고 즐비한 가게와 건물들이 늘어서며 도시는 발달해갔지요. 광장은 모든 시민의 것이지요. 으레 노천카페가 있을 터이고 카페에서 커피를, 와인을 마시며 사람들을 만나는 사랑방 역할을 한답니다. 오늘날 모든 가치의 중심이자 모든 어려운 갈등의 원인인 소통이 광장을 통해 자연스레 이루어지고 민주주의도 발달한 거래요. 쾰른에서 부족한 것이 바로 이것이 아니었나 생각 해봅니다.
건강해 보이는 독일 청년과 처녀들이 일과를 끝내고 데이트를 즐기려 약속장소로 정한 쾰른 성당 앞 광장을 가득 메우기 시작합니다. 한눈에 봐도 뼈대가 크고 선이 굵은 게르만의 후예들의 모습이 순례 내내 보아온 라틴계의 이태리와 프랑스 사람들과는 무언가 달라보였답니다. 그렇지요 덩치가 비교가 안될 정도로 크지요.
이런 이야기 들어 보셨나요? 로마 군인들의 투구와 투구 위의 붉은 술(?)이 엄청 멋있고 위엄이 넘쳐흐른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이런 이유 때문이랍니다. 그 당시 미개인이 사는 지금의 독일 땅을 정복하려고 로마 군대가 왔답니다. 당시 세계를 지배하던 용감무쌍한 로마 군인들이 게르만, 야만인을 만납니다. 엄청나게 덩치가 크고 억세게 생긴 게르만 사람들에게 겁을 먹고 전쟁을 피하기 바빴대요. 역전의 용사인 로마 군인들의 사기가 말이 아니었답니다. 그래서 덩치가 작은 핸디캡을 만회하기 위하여 투구위로 닭 벼슬처럼 높게 뽑아 올린 붉거나 푸른색의 술을 달아서 위엄을 보이게 하자 로마 군인들이 신체적 핸디캡에서 벗어나 용감하게 싸웠답니다. 글래디에이터가 아마 가장 비슷한 배경이 되겠지요. 무심코 보아 넘긴 군인들의 복장 하나 하나에도 이렇게 나름대로의 의미가 있답니다.
겨울, 쾰른의 저녁은 젊은 연인들로 달아오르기 시작하는 광장에 길게 드리운 성당 그림자를 밟으며 이제 짧은 만남을 아쉬워하며 버스에 다시 오릅니다.
이젠 프랑크푸르트입니다.
아우토반에 올라 속력을 낼 때면 어느새 황혼도 사위어가며 어둠이 스물 스물 밀려오는 쾰른을 지나고 낮은 구릉이 연이어 달려오는 전형적인 독일의 시골 풍경이 언듯 언듯 스쳐 지나고 있습니다. 글쎄요, 아무리 대서양 기후라 해서 우리나라보다 한참 북쪽에 있어도 춥지 않아서 순례를 떠나기에는 겨울이 으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물론 저녁이 빨리 시작하니 관광 시간도 짧아지는 것을 감안해야 겠지만.
그래도 겨울은 역시 다르군요. 밝은 한 낮임에도 둘러보면 주위는 왠지 어두운 톤, 착 가라앉은 브라운 톤이 감싸고 있네요.
여름이었다면 화사하달까 톡톡 튀어 오를 것 같은 녹색과 아주리 불루, 이태리 축구 대표팀 유니폼 색갈처럼 지중해 쪽빛 바다처럼 생명력이 충만한 도시었을까 생각해 봤어요. 몇 시간이나 걸렸을까? 모두들 지친 순례길의 피곤을 잠으로 달래고 있는데 갑자기 나타난 듯 번쩍이는 도시의 불빛이 잠을 깨웁니다. 프랑크푸르트에 도착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창밖으로 다가오는 도시를 신기하게 내다봅니다.
아마 독일 제 2의 도시라지요. 상업도시로서 프랑크푸르트에는 각종 무역관련 전람회가 연중내내 열리고 있답니다. 그래선지 전통 있어 뵈는 오랜 건물은 별로 눈에 띄지 않고 현대식 고층건물이 즐비해서 어쩌면 고향에 돌아온 듯 마음이 편해옵니다. 서울과 비슷해선가요. 프랑크푸르트 역전의 커다란 주차장에 버스를 내리고 두어 블럭, 약간 외진 도로변에 있는 한국식당으로 들어갑니다.
부채와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인형이 소품으로 장식된 아담한 식당에서 김치찌게를 먹습니다. 우리를 종일 태우고 다닌 벨지움 운전기사 아저씨가 베리~굿하며 포크로 둘둘 말아서 잡채를 맛나게 먹고 있네요.
한 편에는 교포들 열 두어 분이 소주잔을 겻들인 식사를 하고 있네요. 맵고 뜨거운 국물을 넘기며 마음은 한없이 가라앉습니다. 긴장이 풀어져서일까요. 가이드가 이르기를 유럽에서 이곳 프랑크푸르트에 한국 교포가 제일 많다고 합니다.
맨 처음 독일로 파견 나온 광부들과 간호사들이 발을 디딘 곳이 이곳이었거든요. 그래서인가 건너 자리의 이곳 교민회 간부들의 모습이 태산처럼 우람해 보였지만 퍽 지치고 외로워보여서 쉽사리 말을 건네지 못하겠습니다.
늦은 저녁을 먹고 나선 거리는 어느새 안개가 자욱하고 가랑비에 도시는 젖어가고 있습니다.
외로운 순례자의 마음도 알 수 없는 고독에 젖어갑니다. 오늘 밤은 깊이 잠들 수 있을까? 숱한 이야기와 감동으로 돌아가는 순례의 마지막 밤은 안타까운 우리 마음을 아랑곳하지 않고 깊어가고 있습니다.
어둡고 쓸쓸한 골목길 모퉁이, 구멍가게에서 담배 하나를 사서 나오다가 가만 걸음을 멈추고 귀 기울여 봅니다. 어디선가 낮으막한 노래가 들리는 게 아니겠어요. 왠지 익숙하다 했는데...
"Ich mußt’auch heute wandern/ vorbei in tiefer Nacht,/ da hab" ich noch im Dunkel/ die Augen zugemacht./ Und seine Zweige rauschten,/ als riefen sie mir zu. ...
오늘 밤도 지났네 그 보리수 곁으로 / 깜깜한 어둠 속에 눈 감아 보았네/ 가지는 산들 흔들려 내게 말해주는 것 같네/ '이리 내 곁으로 오라. 여기서 안식을 찾으라'고/...그곳을 떠나 오랫동안 이곳저곳 헤매도/ 아직도 속삭이는 소리는/ 여기 와서 안식을 찾으라../ 여기 와서 안식을 찾으라..."
어쩌면 길옆에 주차한 베엠베에 라디오에서 나오는 거 같았어요. 제라르 수제이, 그래요, 독일 리트 중에 특히 겨울 나그네처럼 낮고 우울한 방랑자의 실연을 노래하는데 디트리히 디스카우는 너무 지나치다고 꼭 제라르 수제이 노래를 고집하던 사람이 문득 생각났습니다. 아무리 그랬다 해도 이렇게 프랑크푸르트의 가랑비 내리는 밤길에서 보리수를 듣다니...
그리운 이여!!
날이 지날수록 쌓여가는 피곤함과는 달리 더욱 또렷해오는 ‘그분’을 향한 내 그리움, 목마름은 어찌 해얄까요?
굿텐 나하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