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시장에 가지 않는다
배영춘
내가 사는 지역은 안양 시장과도 비교적 가까운 거리 걸어서 5분이면 도착할 수 있다. 매주 쉬는 날이면 아내는 시장을 다니면서 채소도 사 오고 내가 좋아하는 미꾸라지도 사온다. 며칠 전 일요일이었다. 오랫동안 책과 담을 쌓고 살아온 나는 근래에 와서 글 쓰는 재미를 느끼고 보고픈 서적도 생겨 서점에 가겠다고 했더니 아내도 가겠다고 따라나섰다. 우리 내외가 시장과 서점을 함께 나들이하기는 아마도 처음인 것 같다. 나는 안양역과 가까운대동 문고에 가서 찜을 해둔 책 한 권을 들고 아내의 더 사지 말라는 눈치를 보며 진열대를 대충 한 바퀴를 돌아보고는 아내를 따라 붐비는 시장에 들어섰다. 비좁은 시장을 사람과 사람 사이로 서로 부딪히며 빠져나가는 게 여간 스트레스가 아닐 수 없다. 흥정하는 사람들, 구경하는 사람들, 언제나 시장통은 시끌벅적 온갖 사람 들이 모여 소란스럽기만 하다. 그러나 아내는 말없이 요리조리 비집고 다니며 아이 쇼핑을 시작하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맘에 드는 채소나 물건을 찜을 해두고는 시장을 한 바퀴를 다 돌아보고 와서는 흥정을 한다. “아 참. 쪽팔리게 그게 얼마 된다고 깎소?”나는 약간의 신경질적으로 빨리 가자고 아내를 끌었다. “당신도 참 우리 돈은 공짜로 온 거예요? 아낄 만하면 아껴야지요. 당신은 구경만 하시던가 아니면 먼저 집에 가세요.”아내는 나에게 조용히 말하고는 다시 흥정하기 시작했다. 많은 사람들 속에서 사구려 소리가 여기저기 경쟁하며 유난히 목청 높게 들려오고 어디 선가에선 트로트 메들리 소리도 유난히 크게 들려온다. 아내는 이미 면역이 된 듯, 그런 소리는 들리지도 않는 것 같았다. 나는 창피해서 아내 멀리서 아내가 가는 대로 따라다녔다. 아내는 이집 저집 기웃 거리며 물건 값을 물어보는데 여간 재밌는 모양이다. 나는 짜증이 났다. 물건을 사지도 않으면서 왜 값을 물어보는지 나는 집으로 가자고 연신 재촉을 했다. 그러나 아내는 살짝 웃으며“가격을 알아야 담에 와서 값을 흥정할 수 있잖아요. 당신 돈 벌기도 힘든데 아낄 수 있으면 아껴 야지요”“ 장사하는 사람들도 좀 남을 게 있어야 할 게 아니요? 그만 깎고 빨리 갑시다. 그 몇 푼 깎아서 우리가 속 편하겠소?”“ 당신은 시장 잘 안 와서 몰라요. 저기 쭈그리고 앉아 콩나물이랑 판다고 우습게 보지 마세요. 아마도 그분들 수입이 우리보다 나을지도 몰라요.”
“근데 당신은 사지도 않을 물건 값은 왜 자꾸 물어보는 거요?”
“습관이 됐나 봐요. 물건 값 안 물어보면 이상할 정도로 궁금하고 또 다음에 와서 가격 흥정할 때도 유리하고 ….”아내는 정말로 버릇이 되었나부다. 자기가 좋아하는 그릇 가게에 들러 이리저리 유심히 둘러 보고는 가격을 묻는다. 그리고는 아쉬운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중국으로 들고 갈 수 없음을 뻔히 알면서도 그놈의 그릇 사랑은 끝이 없 다. 나는 혼자 그릇 가게에서 나와 시장 밖으로 나가려고 삼덕공원 방향으로 출구를 찾아갔다.
나는 중국에 있을 때부터 재래시장에 대해서 매우 좋지 않은 추억이 있었다. 한국 나오기 전까지만 해도 중국 시장에는 도둑들이 많다. 어느 날 채소류나 과일류를 사려고 고르느라 신경 쓰고 있을 때 도둑은 어느새 내 지갑을 꺼내 사라지고 없었다. 이러한 일을 서너 번을 당하고 나니 시장 간다고 하면은 벌써 모든 신경이 도둑에게 가 있어 쇼핑은 엄두도 못 내고 대충 사서 오기만 했다. 한번은 내 옆에 채소를 고르고 있던 한 여인의 가방을 면도칼로 쭉 찢고 지갑을 꺼내려고 하는 순간 나는 그 여인을 살짝 밀었다. 역시 여인도 눈치 빨라 도둑을 면했다. 좀도둑은 한두 명이 아니였다. 험한 인상으로 나를 째려보면서 나의 뒤를 졸졸 따라 다녔다. 공포감이 엄습해왔다. 나는 부랴부랴 도망치며 시장 밖으로 나왔으나 그놈들에게 잡혀 으슥진 구석에서 얼마나 두들겨 맞았는지 두 눈은 퉁퉁 부었고 온몸이 욱신거리도록 심하게 구타를 당해서 병원 신세를 져야 했다.
물론 한국에 와서도 처음엔 도둑이 있나 신경 쓰여 옆을 몇 번이나 두리번 두리번 살피곤 했던 생각이 난다. 지금도 나는 가끔 혼자 생활 할 때는 시장보다 할인 마트나 아울렛 같은 시원하고 깔끔하게 정리된 곳을 찾는다. 그곳에서 신선한 채소를 사다 먹는다. 그러니 가까운 거리에 있는 시장도 자연적으로 나와는 거리가 멀어졌다. 시장을 다 빠져나올 무렵 어디선가 웃음소리가 귓가에 들리기에 뒤돌아보니 호떡 파는 할머니 단상에서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다른 곳에서는 800원 정도의 호떡이었지만 할머니 호떡은 크고도 두툼한게 가격도 500 원이었다. 아직 이렇게 싸게 파는 호떡도 있다니 나는 맛이 궁금하여 두 개를 사서 아내와 함께 아주 맛나게 먹었다. 500원, 천 원을 깎으려고 서로 티격태격 하는 사람들, 아내처럼 끊임없이 시장을 돌아봐야 생활감을 느끼는 사람들, 구경으로 가는 시장하고 먹고사는 채소류를 사러 가는 시장하고는 모든 인파가 제각각이겠지만 인간 냄새가 나는 사람이 사는 활력이 넘치는 시장인 만큼은 틀림없다.
나도 이젠 시장에 가 보아야겠다. 2017년 8월 22일
동포문학 6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