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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게시판 스크랩 [월간 수필과비평 2015년 1월호, 제159회 신인상 수상작] 길어진 쉼표 - 안치화
권오훈 추천 0 조회 68 15.01.09 14:43 댓글 7
게시글 본문내용

"엄마가 즐겨 부르던 노래를 가만히 불러 본다. 쉰 목소리에서 새어 나온 음이 고르지 않다. 굴곡 많은 우리네 삶처럼 거칠다. 다행히 성대 결절 상태는 아니라고 한다. 부드러운 목소리를 되찾기 위해 당분간 휴식은 필요하다. 악보 위에 쉼표는 그 길이만큼 충분히 쉬어 주어야 한다. 그러나 나에게 영원한 쉼표는 없다."

 

 

 

 

 

 

 길어진 쉼표        안치화


   목소리가 가라앉는다. 목에 추를 달아 놓은 듯 무겁다. 말수를 줄여야 하는 불편함보다 노래를 부르지 못하는 두려움이 더 크다. 소통마저 잃어버리게 될까 봐 조바심 나고 초조해지는데, 문득 깊은 내면의 강을 따라 기억 하나가 흘러온다.
   흥이 많고 노래 부르기를 좋아한 엄마는 고향동네 명가수였다. 접히고 펼쳐지는 노랫가락이 구수한 사투리처럼 구성졌다. 눈썹 아래 관자놀이를 움직여 목젖이 보이도록 크게 노래 부르면 주위의 시선을 한몸에 받았다. 고향 집에 홀로 지내는 세월 동안 지칠 때마다 노래로 위안을 얻었다. 사람들과 즐거움을 함께 나누는 소통의 길이기도 했다.
   건강에 이상 징후를 일찍 알아차리지 못하고 뇌출혈이 진행된 상태로 엄마는 도시 병원으로 왔다. 초조함과 팽팽한 긴장감의 경계선이 허물어지고 남은 것은 후유증이었다. 나는 박하에 쏘인 듯 화하게 목이 메었다. 엄마의 언어는 어눌해진 발음 때문에 미처 말을 다 하지 못한 채 한숨으로 터져 나왔다. 물속같이 고요해 보이는 엄마에게서 가늠할 수 없는 슬픔이 드러났다.
   재활치료와 물리치료를 꾸준히 받으면서 병세는 조금 나아졌다. 수족을 마음대로 쓸 수 없지만, 화장실 출입이 혼자서도 가능해졌다. 찬바람 속에 햇살이 스며들듯이 엄마의 마음에 온기가 들어섰다. 고향으로 내려가겠다는 것이다. 엄마를 따라가서 뒷바라지할 수 없어 우리 집으로 모시고 왔다. 눈꼬리가 축 처지면서 고개를 떨구던 엄마는 힘없이 그대로 주저앉았다. 당신 의지대로 되는 것이 없는 현실 앞에서 더는 우길 명분이 없었다. 고향에서 갖던 일상을 접으면서 삶의 즐거움도 함께 사라졌다.
   고향 집처럼 편안하지는 않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우리와 한식구로 융화되어 갔다. 아이들은 할머니를 따르며 좋아했고, 할머니는 아이들을 잘 챙겨 주었다. 맥없이 널브러져 헐거워진 마음이 촘촘히 되살아났다. 초등학생이던 아들이 피아노 학원에서 돌아와 동요책을 꺼내 들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자, 유치원에 다니던 동생이 율동을 하며 재롱을 떨었다. 와르르 웃음이 쏟아졌다.
   어둔하게 손뼉 치며 아이들을 칭찬하자 할머니도 노래 한번 불러 보라고 졸랐다. 고개를 저으며 손사래를 치는데 검버섯 핀 손등에 파리한 핏줄이 드러났다. 나는 엄마의 어깨를 살며시 만지며 좋아하는 노래 한번 불러보라고 채근했다. “산 너울에 두둥실 흘러가는 저 구름아~.” 내가 선창을 하며 따라 부르기를 유도해 보았으나 강하게 손사래를 치며 거부했다. 당신 자신의 즐거움을 잃어버리고 사는 듯해서 내 마음의 풍선에도 바람이 빠져나갔다.
   텔레비전 가요 프로그램에 엄마가 좋아하는 가수가 나왔다. 주방에서 나는 흥얼거리는 엄마의 노랫소리를 들었다. 가수가 부르는 선율에 옥타브가 낮은 음성이 실려 있었다. 하던 손길을 멈추고 수돗물 스위치를 가만히 내렸다. “고요한 내 가슴에 나비처럼 날아와서~.” 흥겨운 가락이 거실 가득 넘쳐 났다. 엄마의 반응을 살펴보느라 잠자코 있었다. 화면에 눈을 고정하고 따라 불렀으나, 애처로운 곡조는 입 안에서 우물거렸다. 잃어버린 노래를 되찾으려 시도했지만, 마음처럼 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고개를 수그리며 후르르 한숨을 내뱉었다. 부르지 못하는 노래는 그어 놓은 선 안에서 떠돌다가 마음에서 영영 놓아버렸다. 그날 이후로 엄마의 흥얼거림을 다시 들을 수 없었다. 엄마의 쉼표는 길어졌다.
   체중이 늘어나면 병세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하여 음식을 절제시켰던 일도 마음에 남아 있다. 엄마는 먹는 즐거움마저 잃어버렸다. 침묵과 생략으로 소통하던 엄마를 고향에 모셔다 드렸더라면, 어눌한 입놀림으로 고르지 못한 노래를 부르며 삶의 즐거움을 찾고 이웃과 소통하며 살지 않았을까. 그랬더라면 병이 더 깊어지지는 않았을까? 엄마의 노래에는 쉼표가 길어졌다. 흥겨운 엄마의 목소리가 아득하다.
   합창단 단원으로 활동 중이던 나는 일주일에 한 번씩 연습을 나갔다. 악보를 챙기며 분주하게 움직이는데 처연해 보이던 엄마의 눈빛이 나에게 꿰어졌다. 일렁이던 눈동자가 비애로 가득 차 있었다. 어제의 기억을 묻고 언덕 위에서 바람을 맞고 있는 엄마를 두고 내 즐거움을 찾으러 집을 나섰던 그 발걸음이 얼마나 우둔했는지 그때는 알지 못했다.
   엄마가 즐겨 부르던 노래를 가만히 불러 본다. 쉰 목소리에서 새어 나온 음이 고르지 않다. 굴곡 많은 우리네 삶처럼 거칠다. 다행히 성대 결절 상태는 아니라고 한다. 부드러운 목소리를 되찾기 위해 당분간 휴식은 필요하다. 악보 위에 쉼표는 그 길이만큼 충분히 쉬어 주어야 한다. 그러나 나에게 영원한 쉼표는 없다.

 

 

안치화  ----------------------------------------------------
   경북 영주 출생, 대구수필문예대학 수료, MBC문화센터 수필창작아카데미 회원

 

 

당선소감


   바람은 가을을 들추어 업고 겨울을 향해 뛰어갑니다. 서늘하도록 살갗을 에는 그리움 하나가 봇물을 터트렸습니다. 등단의 기쁜 소식을 듣고 내 안의 그리움이 깃발 되어 펄럭입니다.
   글을 쓰고 지우면서 단어와 문장의 질서를 찾게 되었고, 수필을 만나면서 더 큰 세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넓은 나의 글밭에 예쁜 낱말이 뛰어놀 수 있게 곱게 가꾸렵니다.
   수필 교실에 첫발을 딛게 물꼬를 틔워준 친구와 함께 수상의 기쁨을 나누고 싶습니다. 저의 남루한 옷자락을 펴고 접어서 튼실하게 기워주신 스승님, 세상 사는 지혜를 덤으로 이어붙여 주셔서 더욱 감사드립니다. 달리다가 힘들어할 때마다 내 손을 잡아주며, 한발 한발 걸음의 속도를 맞춰준 문우들이 새삼 고맙습니다. 낮은 곳에 묻어 두었던 꿈에 날개를 달아준 심사위원들께 감사드립니다.
   살붙이 내 식구들이 있기에 수필의 얼굴을 그려내는 시간이 길어져도 행복합니다. 창 너머에는 나뭇잎 떨어져 눕는 소리 고즈넉하게 들립니다. 엎드렸던 감성이 툭 살아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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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작성자 15.01.09 14:46

    첫댓글 새해 을미년 1월호로 등단하신 세 분의 신인상 수상자 중에는 우리지역의 안치화 선생님이 계시군요.
    반가운 소식을 본회 카페에서 퍼왔습니다. 마음깊이 축하드리며 함께 문학활동하게 되어 반갑습니다. 두팔벌려 환영합니다.

  • 15.01.10 09:08

    언제쯤 내 이쁜 그녀의 등단의 소식이 뜰까 봤건만....
    미리 축하의 말을 했지만 다시한번 이 공간을 빌어 축하한단 말 다시 해요~~
    물꼬를 틔워진 친구가 나라는 사실이 착각은 아니겠죠?
    이제 대구수비의 그 뻘쭘한? 시공간이 그대의 열정이 있을것이기에 행복해질것 같습니다
    살아계실적 친정엄마의 수발 그리고 엄마를 향한 절절한 그리움~~
    언제나 잔잔한 그리움의 글이었지만 오늘 다시 저의 힐링을 부릅니다
    용 모친~~ 축하해요^^

  • 15.01.10 23:01

    안치화작가님, 신인상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 15.01.11 15:59

    신인상 수상을 축하합니다. 새해와 함께한 신인상이라 더욱 반갑게 느껴집니다.

  • 15.01.13 08:58

    반가운 일이 생겼네요. 안 치화 선생님이 대구수비의 새식구로 들어오다니
    정말 반가운 일입니다. 축하합니다...안 치화 선생님....반가워요...^^

  • 15.01.14 11:48

    축하합니다.
    좋은 글과 멋진 활동을 기대합니다.

  • 15.02.08 19:05

    선생님, 축하 드립니다
    수상식에 함께 할 수 있어 영광이었습니다
    대구수비에서도 자주 뵙고 차 한 잔 나누며
    좋은 글동무가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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