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어있는 자리 / 박규환
원래 우리 가족 수는 따로 나가 사는 자식들을 제외하면 나를 비롯한 아내와 큰자식 내외와 두 손주애들을 합쳐서 모두 여섯 식구였다. 그러던 것이 지금은 다섯으로 줄어들었다. 우리 집 호적등본은 빨간 줄 그어진 이름이 하나도 없어서 그렇게 깨끗하고 고마울 수가 없다고 자랑스러워하던 아내가 먼저 스스로 거기 빨간 줄을 남기고 영원히 가출해 버렸기 때문이다. 아내는 주선(朱線)으로 얼룩진 호적등본을 왔다 갔다는 흔적으로 남기고 이제는 어디를 가도 만날 길 없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그렇게도 허망하게 그가 가버린 지 벌써 두 번째 해가 바뀌었는데 아직도 나는 확실히 아내가 죽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가 않는다. 나 스스로 그의 영구(靈柩)를 장송(葬送)하고 그의 관(棺)위에 마지막 흙을 끼얹었건만 때에 따라 그 사실마저 믿기지 않는 망상(妄想)이 나를 놀라게 한다.
어쩌다 농 틈 같은 곳에서 굴러나온 눈에 익은 단추라거나 경대서랍이라거나 그런 곳에서 흔히 눈에 띄는 머리핀이니 손톱깎기니 그밖에 자질구레한 것들이 한동안 나를 망연자실(茫然自失)케 하는 일이 없지 않다. 그러나 그보다는 지난 날 아내가 있었던 자리에 지금은 그가 없을 때 어리석게도 나는 가벼운 어지러움 같은 허전함과 아울러 아무래도 믿기지 않는 의혹을 어찌할 도리가 없다. 그러나 이거야 시위를 떠난 화살인데 돌아올 길 없으리란 절망이 앞설 때는 구르는 낙엽을 간질이는 갈바람처럼 가슴이 스산하다.
지난 날 우리 집 식탁에 둘러앉은 여섯 식구는 단란했고 행복했다. 지금은 한 자리가 빈 식탁에 앉을 때마다 하루도 그날 그리움으로 목마름 같은 것을 느끼지 않을 때가 없다. 머릿수를 헤아려 맞춘 식탁이어서 누구 딴사람이 침범할 수도, 해서도 안 될 것 같은, 또 누구도 자리를 비워 이 정연(整然)한 치열(齒列)에 흠집을 내는 일 같은 걸 생각할 겨를은 없어도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호적등본에 남보다 먼저 주선을 그은 아내가 동시에 이 식탁의 질서마저 이빠진 옥수수의 열매이게 하고야 말았다.
지난 날 아내의 자리였던 나의 옆자리의 의자는 아예 식탁 밑으로 밀어 넣어진 채 뽑을 기회를 잃고 말았다. 그런데도 이상한 건 나다. 하루 두 번이고 세 번이고 이 식탁에 앉을 때마다 언제나 꼭 같은 의혹과 공허와 실망을 함께 느껴야 되는 것이다.
표현이 없을 뿐 딴 가족인들 내가 느끼는 쓸쓸함을 어찌 느끼지 않으랴만, 나 보기엔 그들은 잊고 넘기는 일이 더 많은 것 같다. 그들은 인생이 나처럼 쓸쓸하거나 공허하기엔 아직 이른 나이이기 때문에 앞날이 슬픔보다는 기쁨이 더 많을 것으로 착각하기 쉬울 때이니 그걸 어찌 탓할 수 있을 것인가. 사람이 가고 없으니 자리가 빈 것이야 자명한 산술인데 식탁 앞에 앉을 때마다 어느 한 때고 가벼운 허전함을 느끼지 않을 때란 없다. 어리석게도 이 자리에 없기로 된 사람임을 마음 속에 다짐하고 나서야 그러는 걸로 해 두는 이 애달픈 버릇이 어느 때나 나를 놓아 줄 것인지 알 길이 없다.
이제 어지간히 세월도 흘렀으므로 여기 남은 다섯 식구가 경우에 따라 거기 비어 있는 자리를 의식하고 각자 나름의 허전함과 슬픔과 아쉬움을 느낄 수도, 혹은 잊고 넘길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 앞에 놓여지는 밥그릇이나 수저처럼 이 식탁에 따라오는 공백의 한(恨)은 영 내게서 떠날 날이 없을 듯 싶다. 나마저 이 식탁에 또 한 자리의 공백을 남기고 나서야 공백이 공백인 것마저 알지 못할 날이 올 것이 아닐까.
오늘은 그 비어 있는 자리가 평소보다 유달리 넓어 보이는데 아마도 내 마음의 공동(空洞)이 오늘따라 넓어진 탓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