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화 / 최운
나는 지금 아파트에 살고 있다. 이후에 만일 단독주택으로 이사를 하게 된다면 장화를 한 켤레 장만할까 한다. 아르헨티노들처럼 현관 앞 인도를 물로 청소하고 싶고, 그때 구두나 운동화 대신 장화를 신어야겠다는 생각에서다. 그걸 신고 있으면 호스로 빠져 나오는 물에 발이 젖을까 옷이 젖을까 걱정을 한 해도 될 것이고, 물바닥을 잘박거리는 동안만이라도 소년의 기분을 맛볼 수 있지 않겠는가.
상상만으로도 마음은 벌써 소년이다. 호스에서는 좔좔 물이 뿜어 나오고, 발에는 장화까지 신었는데, 때는 바야흐로 가로수 새 잎이 연두색으로 봉싯거리는 양춘가절 호시절이다. 조금쯤 약동이 된들 어떠랴.
3분 안에 분명 세 명의 아가씨가 우리 집 앞을 지나갈 것이다. 나는 호스를 손에 든 채 물을 튀기며 비키지 않고 있다가, 아가씨가 멈칫거리면 그때 비로소 “빼로돈(미안합니다), 빼로돈” 하며 무척 미안하다는 시늉을 지어 보이겠다.
여자는 속아 살게 마련이라는 말이 있다. 아르헨티나 여자들이라고 예외일 수 있겠는가. 키는 짤막하지만 예의만은 깍듯한 동양 신사인 줄로 알고 얼른 “에스따 비엔(괜찮아요)” 할 것이다. 깊고 검은 눈동자, 윤곽이 뚜렷한 콧날, 고르고 예쁜 치열이 어울려 빚어내는 서글서글한 미소의 파문! 더도 말고 한 모금씩만 훔쳐다가 가슴속 세월의 더께를 씻어 내기만 하면 내 음모는 끝난다. 공은 물론 장화의 몫이다.
요즘은 장화가 눈에 잘 띄지 않는다. 비오는 거리에서 장화 신은 사람을 본 지가 언제인지 까마득하다. 거리를 청소하는 이들도 날이 궂거나 맑거나 한결같이 운동화 차림이다. 우리 아파트 관리인 까를로스가 장화 신고 물청소 하는 모습을 나는 한 번도 못 보았다. 여염집 주부들도 마찬가지다. 물청소를 일과로 삼으면서도 더우면 슬리퍼를 꿸 뿐. 장화는 아예 모르는 사람들 같다. 이제 장화는 세차장이나 수산시장이나 도살장이 아니면 구경조차 어려운 세상이 된 듯하다. 지난날 짚신과 나막신의 퇴역을 지시했던 그 무형의 손가락이며 이미 장화를 지목했는가 보다.
이민 와서 신기하게 겨긴 것 중 하나가 아침이면 집집마다 호스를 들여 놓고 현관 앞 인도를 물로 청소하는 모습이었다. 더욱 호기심을 일으킨 것은 그들이 신고 있는 고무 장화였다. 그것으로 나는 부에노스 아이레스가 아주 순박한 도시라는 인식을 갖게 되었다. 그런데 그 물증이 사라져 가고 있다. 이 도시를 위해서라도 얼마나 섭섭한 일인가.
중학생 때 내게는 신주처럼 여기던 장화가 있었다. 비가 오는 날이나 해토 무렵은 말할 것도 없고, 한겨울이라도 수은주가 치솟으면 통학길 삼십 리는 곤죽으로 바뀌어서였다. 그런대도 일단 날이 들거나 뽀송뽀송한 포장길에 올라서기만 하면 신주는 단박에 애물단지가 되어 나를 애먹였다. 발이 화끈거려 벗어 던지고 싶어도 바꿔 신을 산발이 없고, 설사 다른 신발로 바꿔 신는다 해도 흙 묻은 장화를 들고 다닐 방도는 더욱 없었다.
지금도 안타깝기만 하다. 장화는 왜 자신의 태생적 한계를 못 깨달았을까. 애물단지의 말로가 어떻다는 것을 왜 알아차리지 못했을까. 무엇보다 먼저 우산의 재빠른 처세술을 눈여겨보았어야 하는 것 아니었을까. 빗발을 막아 준답시고 아무에게나 치마폭을 열어젖히는 창녀처럼 내밀한 부분까지 서슴없이 내보이는 짓거리는 낯 뜨거워 차마 흉내 낼 수 없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한껏 움츠린 몸뚱이를 주인의 손에 턱 맡겨 버리는 애첩 기질만이라도 눈 딱 감고 배워 두었더라면 오늘날 소박대기 신세는 면했을 것 아닌가 말이다.
장화는 바보다. 사람들은 눈비음에 약하고, 세상에는 미인계라는 말까지 있는 것을 미욱하게도 혼자만 모르는 셈이니 퇴물이 되는 것을 누구에게 하소연하겠는가.
그래도 나는 장화에 대한 애착을 포기할 수가 없다. 기상 이변이 더러 일어나기는 하지만, 아직도 지구는 강우량으로 보전(保全)되는 땅덩어리일 뿐이다. 과학 만능시대라 해도 로봇에게 물 일을 맡기는 것은 시기상조로 보아야 한다. 구두와 운동화가 제아무리 방수에 자신 있어 해도 고무 장화를 이긴다는 것은 난센스에 불과한 일이다. 장화의 퇴장은 아직 이르다. 단역일망정 역할이 있으니 계속 무대를 지켜 달라 애원하고 싶다.
서양에 이런 얘기가 있다. 외출을 서두르며 장화를 찾았다. 하인이 들고 나온 장화에는 어제 묻은 흙탕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주인이 화를 내자 하인은 태연스럽게 이렇게 말했다.
“주인님, 장마가 아직 개지 않았습니다. 나가시면 다시 더러워질 텐데 애써 닦을 필요가 없지 않습니까? 어제도 아침에 잘 닦아 드렸더니 이 모양인뎁쇼.”
그날 저녁이었다. 이제나저제나 저녁밥을 기다려도 아무 기별이 없자. 하인은 주인에게 영문을 물었다. 주인은 이렇게 대답하는 것이었다.
“자네는 먹고 나면 다시 배고플 테니까 아예 안 먹을 줄 알고 우리 식구끼리만 먹었다네.”
“약빠른 고양이는 밤눈이 어둡다.” 저녁을 굶고 누워서 하인은 혹시 이 비슷한 서양 속담을 생각하지는 않았을까.
여섯 살짜리 큰손자는 좀 맹랑한 구석이 있다. TV에 여자들이 나오면 할아버지는 누가 더 예뻐 보이냐고 다그쳐서 나를 당황스럽게 만드는 놈이다. 이런 푼수로 봐서 십여 년만 지나면 바짝 다가와 애인 고르는 비법을 은근히 물어올지도 모르겠다. 그때를 위하여 이런 답변을 준비해 놓을까 한다.
“비가 오시는 날 말이야. 쎈뜨로(중심가)에 나가실라므네 장화 신고 가는 치까(처녀)가 있거들랑 두 말 말도 찍어. 그러구설랑 냉큼 따라 붙으란 말야. 엔띠엔띠스(알아듣겠니)?”
애 그런지 장화를 신은 사람은 진국일 것만 같다. 여자라면 알뜰하면서도 포근할 테고, 남자라면 수더분하면서도 용기가 있겠다는 믿음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