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장合掌 아닌 포옹을 / 이여헌
“오늘 대구로 내려가는데… 가는 길에 괜찮으면 들리고 싶네요.”
외출 계획이 없는 날의 오전 시간은 한가하다. 햇볕은 거실 깊숙이까지 들어오지만 조금쯤 차가운 가을 날씨가 소파에 자리 잡고 신문을 집어 들기에 딱이다. 이곳저곳을 뒤적이며 천천히 읽다 보면 슬금슬금 냉기가 발등을 타고 올라와서 가을이 깊었음을 알려준다.
애꿎은 마음까지 시리게 될까봐 슬며시 일어나 워킹머신에 두발을 띄운다. 의례 그러하듯 하늘을 본다. 뭉게구름 위에 무심한 시선을 던져놓고 한 발 두발 천천히 걷는다. 소슬한 기분을 밀어내기 위한 운동 같지 않은 내 아침 운동이다.
그때 전화벨이 울렸고, 그가 나를 찾아온다는 전화를 받은 것이다. 그! 지금은 마음 한켠에 곱게 접어놓은 사람.
그녀와 나는 30대 초반 첫아이를 입학시킨 학부모로 만났다. 같은 동네라서 가끔씩 마주쳤지만 말수가 별로 없는 그녀와 내성적인 나는 눈인사로만 스치며 지내기를 여러 달. 어느 날 늦게까지 놀이에 빠져있는 그의 아들아이를 내 집에서 놀고 있다고 전화를 해 줬고, 그녀가 데리러 오는 등의 과정에서 우리는 차츰 편안한 이웃으로 되어 갔다.
지방에서 갓 올라와 아직 서울생활이 시툰 네게 그녀는 이것저것을 알려주며 이끌어주는 진정한 친구로 자리매김을 해줬다. 지금은 없어진 명동의 엘칸토 극장에서 연극을 보았고, 당시엔 초창기인 한국일보 문화센터를 소개하며 그림이나 글쓰기 등의 취미생활도 인도해 주었다.
무엇보다도 지방에서 딴 운전면허로 서울 시내 연수에 엄두도 못 내고 있는 나에게 연수 교습을 자청하며 변두리 외곽에서부터 서대문 안 복잡한 거리까지 차근차근 마스터시켜준 일은 잊을 수가 없다. 여성 운전자가 흔치 않던 그 시절, 그녀의 멋진 운전 솜씨가 너무 부러웠는데 남편도 포기한 겁쟁이인 나를 한결같은 침착함과 부드러움으로 기어이 자가운전자의 대열에 끼어줬으니… 그때부터 난 그녀에게 완전 반해 버렸다.
골목길에서 배드민턴을 함께 쳤고, 시골 출신인 나도 모르는 고들빼기김치를 담가서 맛있게 먹었다며 나눠주기도 했다. 이웃동네로 이사 갈 때는 나보다 먼저 가서 화장실 청소까지 점검하며 이삿짐을 기다려 주던 그녀……. 이이들이 햇병아리 ‘초딩’에서 의젓한 대학생으로 성장하면서 우리의 우정도 그렇게 성장해 갔다.
어느 해 봄, 그녀는 새삼스럽게 불교대학에 입학을 했다. 그리고 한동안 불교학에 심취하여 열정을 쏟더니 마침내는 출가를 결심하고 스님이 되겠다고 했다.
출가라니! 어떻게 그런 결정을! 군대 간 큰아들과 대학 다니는 둘째아들, 또 그 남편을 두고 출가를 하다니! 그 어떤 무엇이 그토록 절실하고 그토록 고뇌케 하기에 출가까지 결심한단 말인가. 삭발식에서 한없이 무심한 그녀의 얼굴을 보았고, 난 눈물을 찍으며 돌아설 뿐이었다.
마음이 허전할 때면 베란다의 관음죽(觀音竹)과 마주섰다. 무더운 여름 혹독한 겨울 추위를 의연하게 견뎌주는 관음죽, 그는 왜 선물이라며 우리 집 베란다에 관음죽 화분을 놓고 갔을까? 생명체가 아닌 듯 강인한 생명체인 그 빳빳한 잎을 한 잎 두 잎 닦아주며 상념에 빠져들던 시간들, 내면의 소리를 듣고자 했던 그 시간들.
그가 주지 스님이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남편과 함께 찾아간 포천의 그 절, 경내는 경건하고 고요했다. 그는 가사 장삼에 염주를 들고 함장을 하며 우리를 맞아주었다. 나도 어색스럽게 합장을 하며 고개를 숙였다. 마주 바라보며 식사를 하면서도 나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남편과 그가 나누는 대화를 옆에서 듣기만 했다. 돌아오는 길이 내내 쓸쓸했다.
“아파트로 들어서고 있어요.”
가디건을 급히 걸치며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니, 저기 주차장에서 승북을 압은 그가 걸어오고 있다. 염주 대신 선물꾸러미를 들고 예전의 그 낯익은 미소를 함빡 지으며 걸어오고 있다. 내가 달려갔다. 그가 양손의 물건을 내려놓으며 나를 안았다. 아니 내가 그를 안았다. 아파트 사잇길에서 우리는 그렇게 한참을 끌어안고 서 있었다. 가냘픈 어깨가, 등허리의 깊숙하게 패인 골이 승복을 통해 전해진다. 내 눈이 뜨겁게 젖어들었다.
친구를 잃은 것이 아니었다. 조금 비켜서 있을 뿐 내 친구는 거기에 그대로 있었다. ‘나보다 더 나를 잘 아는’ 속 깊은 내 벗은 빈 둥지에 홀로 남아 집을 지키고 있는 어미새를, 가뜩이나 여린 감성으로 이 가을을 타며 외로워하고 있을 사바의 한 중생을, 아니, 그리운 친구를 품어주고 위로해 주고 싶어서 이렇게 달려온 것이리라.
우리는 그 옛날로 돌아갔다. 골목길에서 만났을 때, 스치며 지어주던 미소, 주고받는 대화는 없어도 충분히 서로를 알 수 있었던 그 미소로 마주보며 가슴에 싸인 회포를 서리서리 풀어냈다.
“그렇게 떠난 뒤 남은 정은 어찌 하랍니까?” 신파조로 건네는 내 농담에, “함께 있으니 외로워~ 하덜~ 말아요.” 신파조로 받아주는 그의 대답이 진정인양 행복해서 내가 크게 웃었다. 그도 따라 웃었다. 그 옛날처럼 함께 웃었다.
“너무 지체되는 듯합니다.” 운전석 상좌스님의 조심스런 전화를 받고 그가 일어섰다. 차에 오르기 전 그와 나는 합장이 아닌 포옹으로 작별 인사를 했다. “지켜보고 있으니 외로워 말아요.” 속삭여 주는 그의 멘트도 함께였다. 그에게서 연꽃향이 피어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