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사귄 소중한 벗
김 봉 진
걸어서 10분 정도만 가면 누구나 쉽게 오를 수 있는 높지 않은 산이 있다. 한 쪽은 도시를 끼고 다른 한쪽은 공원과 작은 호수를 끼고 있어 바쁜 도시인들에게 한 없이 여유로움을 준다. 하지만 석 달 전만해도 건강하지 않은 노인들이나 오르는 동네 앞산정도로 여겼다.
넉 달 전 담배를 끊었다. 어떻게 지금까지 참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쳐 가는 만큼이나 힘들다. 담배를 끊고 일주일정도 지났을 즈음,
“아빠! 배가 빵빵해요.”
“무슨 소리야! 어디가 빵빵하다는 거야?”
같이 샤워하고 있던 아들의 말에 강하게 부정을 했지만, 전과는 다르게 곡선을 그리고 있는 배의 모양만은 부정할 수 없었다. ‘뱃살만은 용납할 수 없다.’ 이를 악물고 ‘윗몸일으키기’, ‘팔굽혀펴기’를 했다. 욕심이 과해서였을까, 갑자기 무리하게 운동을 하여 허리를 심하게 다쳤다. 몸을 움직이는 것조차 힘들었다. 1년에 한번정도 허리를 다쳤지만 1주일 정도 물리치료를 받으면 낫곤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물리치료를 받아도 나을 낌새가 없었다. ‘디스크 아냐?’, ‘수술하게 되면 어쩌지…….' 걱정이 되었다.
“허리에는 걷는 것이 최고야!”
사무실에 함께 일하시는 분의 조언으로 ‘허리치료를 위해 무언가를 해야 되겠다.’ 마음을 먹고, 걸을 만한 곳을 물색하게 되었다.
‘남산이나 걸을까?’
‘그래도 나이가 있지 남산은 좀…….’
남산에 대한 선입견이 있는 터라 썩 내키지 않았다. 하지만 주변에 마땅한 곳이 없어, 선택의 여지없이 남산을 오르기로 결정하였다.
6시 반에 신정호 공원에 도착하였다. 머리까지 개운하게 하는 3월 초의 아침공기와 새벽이슬을 흠뻑 머금은 새싹들은 오감을 즐겁게 하였다. 이른 아침임에도 신정호를 따라 조깅을 하는 젊은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예상 했던 것과 같이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은 약수통을 메고 남산으로 가고 계셨다.
신선한 바람의 향기를 느끼며 남산을 오르기 시작하였다. 공원을 지나치는 동안 입에서는 노랫말을 흥얼거렸다. 등산로에 접어드니 완만한 오르막길이 나왔다. 다리가 무뎌지고 연신 품어져 나오는 거친 숨소리.
“운동 좀 해야겠는걸 숨넘어가겠어.”
앞질러 가시던 백발의 어르신께서 보기 안쓰러웠는지 한 말씀하시며 지나가셨다. 오르막길을 지나니 꽤나 긴 나무계단이 눈에 들어왔다. ‘만만한 산이 없구나.’ 조그만 동네 산이라고 우습게 봤던 것이 후회스러웠다. 천근 만근한 다리를 질질 끌며 계단을 올랐다. 계단을 오르니 정상과 연결된 능선이었다. 잘 정돈된 능선 길을 따라 걸었다. 오른쪽에는 신정호가 아늑하게 눈에 들어오고 왼쪽으로는 소나무 사이로 아파트가 즐비한 도시가 보였다. 서로 다른 두 풍경이 산의 넉넉함으로 조화롭게 어우러지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예! 좋은 아침입니다.”
아는 사람 하나 없지만 웃는 얼굴로 인사를 하면 평소알고 지낸 것처럼 반갑게 답례들 한다. 산이 주는 여유로움 속에 사람들의 얼굴은 밝다.
‘뛰어볼까?’ 올라 올 때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발상을 하고 있었다. 얼굴에 상쾌한 바람이 부딪쳤다.
‘걷다 뛰다.’를 반복하며 능선 끝자락에 있는 천년바위까지 갔다. 다시 터널위에 있는 정상으로 왔다. 고층건물들 아래에 하얗게 깔려 있는 안개, 밤새 도시의 찌든 때를 깨끗이 청소를 하고 내려와 잠시 쉬고 있는 듯하였다.
“아 ~~!” 아랫배에 힘을 주고 목이 터져라 소리를 질렀다. 속에 쌓여있던 안 좋은 모든 것을 밖으로 빼낸 듯 후련했다. 멀리 보이는 산에 시선을 고정하고. 어제 일과를 되짚어 본다. ‘잘못한 것이 무언인가?’, ‘혹 누군가에게 폐를 끼치지는 않았나?’ 그리고 ‘오늘도 욕심내지 말고 쫌 손해 본다는 마음으로 살자!’ 하고 마음먹었다. 마음 따라 몸까지 가벼워졌다.
물을 받아가기 위해 약수터에 들렀다. 어르신들이 물을 받으시며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으셨다. 가만히 듣고 있으면 허풍이 반이지만, 서글서글하게 이야기하시는 모습이 정겹기만 하다. 공원에 내려와 기구를 이용하여 운동을 하고 8시 정도에 집에 들어왔다.
하루 이틀, 이렇게 매일아침 산을 오르내린지 석 달 가까이 됐다. 아팠던 허리도 많이 좋아졌고, 산을 타는 속도도 점점 빨라져 처음 힘들게 올랐던 오르막길과 계단을 지금은 뛰어 다닌다. 코스도 바꿔 두 배 정도 길게 등산을 한다.
핑계일지 모르지만 노동조합활동을 한다고 밤늦게 집에 들어온 적이 다반사였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아침잠이 많아 자명종의 혹독한 전투를 벌인 후에야 이불과 작별을 할 수 있었다. 시작부터 쫓기다 보니 하루 내내 허겁지겁 이다. 하지만 매일 남산을 오르면서 많은 것이 변하였다. 건강하고 여유롭게 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신을 되돌아보게 하고 반성할 수 있는 것, 바로 남산이 준 소중한 선물이다.
남산, 산이라면 자고로 높아야 하는데 산이라고 말하기도 뭐할 정도로 낮기만 한 산, 산림이 우거진 것도 아니고, 사람들의 눈을 즐겁게 하는 ‘기암절벽’하나 없는 그런 동네 앞산이다.
하지만 이런 볼품없는 산이 소중한 벗이 되었다. 무시하고 쳐다보지도 않아 서운할 법도 한데 내색 한번 없이 마냥 반갑게 맞아주고, 시끄럽게 떠들어도 그 소리 다 들어준다. 사람을 소개시켜주고, 한 없이 여유롭게 한다.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건강을 주고 잘못을 하면 늘 일깨워 주고 반성하게 한다. 세상에 이만한 벗이 또 어디 있을까?
새로 사귄 소중한 벗.hwp
첫댓글 저도 쉬는 날 가끔 남산을 혼자 오르곤 합니다. 이웃같이 편한 산이지요. 즐감하고 갑니다.
저희 동네에 있는 지리산을 설악산과 비교해서 자랑할 때, 기암 절벽은 적지만 사람을 품어주는 산이라고 하죠. 남산도 그런가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