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장 속에서 눈을 뜬다. 서울행 차표 시간을 확인한 뒤 가져갈 준비물(구토방지제인 온세란, 저녁에 먹을 식사대용 미숫가루, 음료수, 과일 조금, 안경통, MP3, 긴소매 윗옷, 비올 가능성이 있는 날은 우산, 맑은 날은 모자, 읽을 책, 휴지 등)을 쌕에 챙겨 넣는다. 준비물을 챙기는 동안 항암할 때의 고통이 몸에 배어서인지 서울 올라간다는 생각만으로 속이 매스껍다.
항암하는 날은 기다림의 연속이다. 기다림은 부산 지하철역에서부터 시작된다.
율리역에서 지하철 2호선을 타고 덕천역까지 가서 3호선을 갈아타고 구포역으로 간다. 구포역에서 예매해 놓은 열차표를 받아 KTX를 탄다. 열차를 타기 전까지는 열차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표정을 보며 나도 저런 평범한 일상이 어서 돌아오기를 간절히 기도해 본다.
서울역에 도착하여 지하철 1호선을 타고 시청역에 가서 다시 내부순환전철 2호선을 탄다. 10여개의 역을 거쳐 잠실나루역에서 내린다. 여기서부터 아산병원까지 약 800m를 걷는다. 모자를 쓰거나 우산을 받쳐 들고 병원으로 향한다. 속이 울렁거린다. 나의 뇌는 아산병원을 보면 항암치료를 하는 것이 학습이 되어 있는 까닭이다.
병원에 도착하면 바로 채혈실로 간다. 채혈실에 도착해서 ‘37941800’ 진료번호를 말하거나 말하기도 싫은 날엔 진료권을 소리 없이 내민다. 진료번호를 받아 채혈을 기다린다. 알림판에 내 채혈번호가 뜨면 채혈대로 가서 1주전에 맞은 반대편 팔뚝을 내민다. 무표정한 간호사는 주사바늘이 들어가는 순간 약간 따끔할 것이라며 바늘을 쑤셔 넣는다. 채혈통 2,3개를 채운 후 바늘을 뽑는다. 5분 정도 지혈을 한다. 치료받으러 올 때마다 2-3번 주사바늘을 꽂는데도꽂을 때마다 매번 긴장이 된다.
채혈이 끝나면 진료실 앞으로 가서 키, 몸무게, 혈압을 재서 진료신청을 한다. 또 2시간 정도 기다려야 한다. 그 시간을 이용해서 병원내에 있는 갤러리에 가서 게시되어 있는 작품을 감상하고 가끔은 암교육센터에 들려 책을 보거나 여러 종류의 암 강의를 듣는다. 그러다가 식 때가 되면 지하로 내려가 점심식사를 한다. 음식점을 보기만 해도 속이 더부룩하다. 아니 매스껍고 울렁거린다. 항암치료와 결부되어 학습이 되어 있기 때문에 벌써 오심증세가 나타나는 것이다. 정말 지랄 같다. 그래도 먹어야 견디기에 중식당에 간다. 중식당에 자주 가는 이유는 이곳에서는 음식을 시키면 가져다주지만 다른 식당은 표를 받아가지고 있다가 음식을 본인이 직접 가져와야 한다. 쌕을 매고 음식을 타러가는 짓은 하기가 싫다. 그래서 중식당을 자주 찾는다. 식당에 가서도 손님들이 많아 줄을 서서 기다린다. 내 차례가 되면 자리를 잡고 앉아 해산물로 구성되어 있는 식단인 유산슬밥이나 잡탕밥을 주로 시켜 먹는다.
다시 진료실 앞으로 와서 진료 알림판에 내 이름이 뜨기를 기다린다. 10분, 20분, 1시간 넘게 기다리기도 한다. 그동안 TV를 시청하거나 책을 펼친다.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러면 잠시 의자에 기대어 잠을 청해 보기도 한다. 많은 사람들이 대기하고 있지만 항암치료를 하러 온 사람이거나 보호자들이기 때문에 편한 자세를 취해도 추해 보이지는 않는다. 다들 힘들고 지친 사람들이기에.
췌장암과 담도암 전문인 장모 교수의 진료실인 8번 방앞에서 대기하다가 이름을 부르면 들어가서 의사와 면담을 한다. 매번 같은 상황이 반복되기 때문에 서로 주고받는 말은 서너 마디. 피검사 결과를 확인하고 항암약을 처방하는데 30초도 걸리지 않는다. 매너리즘에 빠져버린 의사와 상담하는 시간은 서로 부담이 된다. 묻고 답하는 것이 시큰둥하기 때문이다. 다시 밖으로 나와 간호사와 간단한 상담을 한 후 다음 진료 날짜와 시간 또는 검사 날짜와 시간을 예약한다. 오히려 간호사와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의사와 나눈 시간보다 정보도 많이 얻고 진지하다.
자동납부기에 청구된 금액을 정산하고 5층 항암실로 향한다. 다시 진료번호를 죄수번호처럼 복창을 하면 진료밴드를 뽑아 손목에 채워준다. 놀이동산에서 산 자유이용권처럼. 손목에 찬 밴드가 나의 건강을 마음대로 하는 자유이용권이라면 하는 상상을 해본다. 부질없는 생각이라 애잔한 웃음을 흘려 나의 아픈 마음을 숨긴다. 약이 제조될 때까지 2,30분을 또 기다린다. 항암대기자가 적을 때가 2,30분. 대기자가 많으면 1시간 가까이 기다려야 한다. 약을 제조하는데도 시간이 걸리지만 병실 침대가 비지 않기 때문이다. 수십 개의 병상에 항암치료를 받는 환자들이 늘 가득하다. 아픈 사람들이 참 많다는 말이다. 난 그래도 이곳에서는 행복한 사람이다. 1년 7개월째 항암을 하고 있는 내가 행복한 이유는 그래도 항암 부작용을 잘 견디는 씩씩하고도 용감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병에 지치고 항암에 지쳐하는 사람들을 볼 때면 내 가슴이 쓰리다. 늘 같은 시간에 보던 사람들이 어느 날 진료실에 오지 않을 때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완치보다는 불치가 많은 까닭이다. 아직은 용감하게 항암하는 나를 간호사들도 간혹 잘 견디고 계신다고 격려해 준다.
약이 들어가는 동안 서서히 내 몸도 힘들어진다. 이제는 정말로 오심이 생기기 때문이다. 잊으려고 TV를 보거나 책을 펼쳐 본다. 집중이 잘 안된다. 옆 환자와 이야기를 나눠보기도 한다. 동병상련이라 이야기를 풀어나가기가 쉽다. 아픔과 대처방법 등의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100분은 더디지만 다 지나간다. 다 맞고 나면 지혈을 한다. 5분 이상 주사바늘을 꼽았던 곳을 눌러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혈관이 부풀어 오른다. 혈관이 부풀어 오르는 것은 괜찮지만 근육에 항암약이 들어가게 되면 문제는 심각하다. 그래서 지혈이 될 때까지 누르고 또 누른다.
지혈이 끝나면 동생차를 타고 광명역으로 이동을 한다. 50여 차례 항암을 하는 동안 동생이 한 번도 빠뜨리지 않고 못난 이 오빠를 태워준다. 항암하고 나면 힘들어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나의 고통을 나눠 갖으려 한다. 시아버지를 모시고 살면서도 짬을 내어 나를 이렇게 보살펴주고 있는 막내 동생의 고마움을 어떻게 갚아야 할지? 일단은 건강을 회복하는 것이 최우선이라는 생각에 늘 동생에 기대어 나의 힘든 하루를 기대기도 한다.
광명역에 도착해서 또 KTX를 기다린다. 온 몸에 항암제가 퍼져 나를 무기력하게 만들고 있는 이 시각. 열차가 도착하면 지정된 좌석에 내 몸을 맡긴다. 내려오는 동안 고통스럽다. 몸에 한기가 들기도 하고 속이 매스껍기도 하다. 한기를 피하기 위해 가져간 긴 팔 옷을 꺼내 입고 무릎을 덮는다. 속을 다스리기 위해서는 생수를 들이켜 보기도 하고. 구포역에 도착할 때쯤이면 몸과 마음은 지친다. 택시를 타야 하는데 하면서도 속이 쓰리고 토할 것 같아 한참을 서서 기다린다. 조금 진정이 되면 택시를 탄다. 집에 도착할 때쯤이면 안도감과 함께 긴장도 풀린다. 택시에서 내리면 헛구역질을 하고 입에 고인 침을 화단에 뱉는다. 집에 들어와 시계를 본다. 10시 30분이다. 집에 도착했다는 안도감도 잠시 속이 울렁거린다. 먹은 것이 없기에 쏟아낼 것도 없으련만 위액에 음식찌꺼기가 묻어 나온다. 곧 괜찮아질 거라며 스스로를 달랜다. 잠시 후 무기력하게 소파에 앉아 울렁거리던 속을 다스린 후 잠자리에 든다. 밤 11시경에 하루의 일정이 마무리 된다.
기다림과 고통이 이어지는 하루가 이렇게 간다. 내일과 모레는 이렇게 힘든 날이 이어지겠지. 우리나라 겨울의 3한4온이 지금은 잘 지켜지지 않는다고 하는데 항암하는 나의 몸은 철저히 3통4락(3일은 고통스럽고 4일은 편안함)이 지켜지고 있다. 그래도 나의 의지로 조금씩 2통5락으로 바뀌어 가고 있기는 하다.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지난 날 권태로웠던 나날이 얼마나 행복했던가를 생각해 본다. 건강한 사람들아, 권태로운 나날이 바로 행복한 나날임을 잊지 말고 건강 잘 챙기거라.
첫댓글 2012.3.15. 별세한 최상신 친구가 재부목포사범교대동문회 다음카페에 2010년 가을에 올린 글을 스크랩하여 전재합니다.
친구의 명복을 빕니다.
많이 늦었지만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그 곳에서는 아프지 말고 평온하시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