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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 지역에서 여행이나 답사를 다니다 보면, 자연을 배경으로 세워져 있는 정자를 곳곳에서 쉽게 접하게 된다. 개인 소유의 정자라서 접근하기 어려운 곳도 있지만, 대체로 지나는 사람들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도록 개방되어 있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자유롭게 잠시 들러 쉬어갈 수 있다는 점에서, 정자는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유용한 역할을 하는 건축물이라고 할 수 있다. 대체로 높은 다락 모양의 누각과 단층의 정자를 아울러 누정(樓亭)이라 칭하기도 하는데, 주로 산이나 강을 바라볼 수 있는 위치에 세워져 있어 주변의 경치를 즐기는 장소로 활용되기도 한다.
이처럼 누정은 주변의 자연과 조화를 이루어 인공적으로 만든 건축물이다. 그렇기에 주변의 자연환경과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는 위치와 모양으로 누정을 건립하는 것이 보통이다. 흔히 건축물을 지을 때 자연경관과 조화를 이루어, 마치 주변의 자연환경이 건축의 일부처럼 활용하는 기법을 ‘차경(借景)’이라고 일컫는다. 차경이라는 표현은 주변 경치를 빌어서, 건축물이 도드라지지 않도록 자연스럽게 경관을 연출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대체로 지금은 지붕은 기와를 주로 얹지만, 과거에는 볏짚이나 띠와 같은 질기고 긴 풀들을 엮어 이은 초정(草亭) 혹은 모정(茅亭)으로 지어지는 경우가 일반적이었다. 때로는 건물 일부에 벽과 문을 달아서 정자의 주인이 휴식의 공간으로 활용하기도 했다.
이 책은 ‘지리산을 휘감고 돌아 흐르는 섬진강 가에 지어진 누정에 관한’ 기록과 한시들을 모아서 현대어로 번역하여 엮은 결과물이다. 많은 이들이 남긴 ‘누정시문(樓亭詩文)’을 통해서 전통 시대 누정의 모습과 그것을 활용했던 사람들의 생각들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섬진강 가에 위치한 누정들이 적지 않지만, 이 책에서는 남원과 곡성을 비롯하여 구례와 광양 그리고 하동의 대표적인 누정 20여 곳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그동안 각 지역의 문화원을 중심으로 몇몇 자료들이 소개되기도 했지만, 이 책은 여러 지역들의 대표적인 누정에 관한 시문을 함께 번역하여 엮었다는 점이 특징이다.
남원의 누정으로는 <춘향전>의 배경으로 등장하는 관한루와 영사정, 무진정과 농암정, 그리고 금수정 등 모두 5곳에 관한 시문들을 소개하고 있다. 이러한 기록들과 함께 정자의 건축 배경과 없어졌다가 재건된 경위 등에 관해서도 간략하게 정리되어 있어, 누정과 지역 사람들과의 관계를 살펴볼 수 있는 자료로서 역할을 한다고 여겨진다. 이어지는 곡성의 누정도 모두 5곳으로 함허정과 동산정, 청계정과 횡탄정 그리고 영수정 등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구례에서도 방호정과 운흥정, 용호정과 세심정 그리고 운조루 등 5곳의 정자를 꼽아 소개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광양에서는 수월정 한 곳에 그치고 있으며, 섬진강 하류에 위치한 하동의 경우 악양정과 악양루 그리고 섬호정 등 3곳을 대상으로 삼고 있다.
곳곳에 지어진 누정은 다양한 용도로 활용되었는데, 개인 혹은 가문에서 주도하여 세우기도 하고 때로는 마을이나 관의 주도로 건립되기도 하였다. 누정에는 지어진 위치나 지은 사람의 뜻을 반영한 이름이 붙여지고, 대체로 정자 주인과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과 교류하는 장소로 사용되기도 했다. 지역에 거주하는 지식인들의 교류 공간으로 여겨졌기에, 누정을 소재로 하거나 그곳에서 지어진 시문(詩文)들이 적지 않게 창작되었다. 이 책은 섬진강 가에 위치한 정자들을 답사하여 조사하고, 대표적인 누정들과 관련된 시문들을 현대어로 번역하여 소개하는 내용이다. 여기에 수록된 작품들을 통해 당시 사람들이 누정을 어떻게 인식했는가를 살필 수 있으며, 전통시대 누정이 지닌 문화적 가치와 효용을 엿볼 수 있을 것이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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