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나이
(추천 양소은)
바람 바람
신미균
마로니에 카페 옆에서
몸을 잃어버린 바람이
은행잎을 가만가만 더듬어보네
그림자도 없는 바람이
몸이 없어 울다가
우는 게 슬퍼서 울다가
혹시나 자기 몸인가
이리 갸웃 저리 갸웃
나무를 더듬어 보다가 또 우네
아무리 찾아도 자기 몸을 찾을 수 없는지
우두커니 서 있는 내 머리카락을 날려 보다가
또 아닌지
서점의 벽돌을 휘감아 돌다가
붉은 지붕 위로 날아오르네
한번 빠져나온 몸속으로는 다시
돌아갈 수 없다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시와소금》, 2026년 여름호
■ 시 읽기
없음과 있음의 차이는 무엇인가? 보임과 안 보임의 차이는 또 무엇인가? 바람은 보이지 않지만, 시인은 바람의 ‘몸’을 본다. 몸이 있으되 말하지 않는 사물들이 있고, 그 사물들의 닫힌 말문을 열어주는 건 “몸이 잃어버린 바람”이다. 이처럼 몸이 없는 바람과 말이 없는 사물이 만나 파생하는 쌍방의 존재성은 이 시의 핵심 메시지다. 관계란 어쩌면 이 충돌이 빚어낸 결과일지도 모른다.
“그림자가 없는 바람”은 잃어버린 몸을 찾아 발길을 내딛는다. 은행나무를 더듬고 누군가의 “머리카락을 날”렸다가 " 이리 갸웃 저리 갸웃" “서점의 벽돌을 휘감아 돌”며 바람은 사물의 형상을 빌려 ‘몸’이 된다. 바람이 “울다”를 반복하는 행위를 통해 상실을 반추하는 것은, “한번 빠져나온 몸속으로” “돌아갈 수 없”기에 되돌릴 수 없는 삶의 비가역성을 보여준다. 몸을 찾아 떠도는 바람은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 삶의 본질적인 의미를 탐색한다.
‘바람 바람’에서 앞의 ‘바람’은 물리적인 자연 현상이라면, 뒤의 ‘바람’은 바람의 바람, 존재가 품은 염원이다. 몸은 자신을 드러내는 풍경이자 자아가 머무르는 공간이다. 시인은 ‘몸’이라는 구체적인 사물을 형태가 없는 ‘바람’을 통해 가시화하며, 삶의 흔적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구원하려는 자아의 '바람'을 투영한다. 스스로 규정하거나 머물 곳 없는 방황의 존재인 바람, “자기 몸”을 찾아 헤매는 행위는 단순히 잃어버린 자아를 복원하는 차원을 넘어선다. 되돌릴 수 없는 과거라는 시간의 궤적 속, 자신을 이해하려는 삶의 태도이자 지나온 삶을 탐닉하는 과정이다.
“몸을 잃어버린 바람”은 어디에 정착하고 싶었을까? 현대인들 역시 도시라는 공간, 어디에도 안주하지 못한 채 잃어버린 ‘몸’을 찾아 떠돈다. “한번 빠져나”간 시간 속으로 “돌아갈 수 없”기에 부재하는 존재를 향한 여정을 반복한다. 이때 의식은 육체를 벗어나 삶의 시간과 기억이 축적된 ‘바람의 형식’으로 드러난다. 따라서 바람은 상실과 결핍, 부재의 슬픔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제 자리를 찾아내려는 실존적 되돌림이라 할 수 있다.
내면은 끊임없이 ‘몸’의 궤적을 쫓으며 삶의 진실을 발견하고자 지나간 기억을 호명한다. 붙잡을 수 없는 삶의 새로운 변화를 모색한다. 이러한 실존적 노력은 바람이 사물(세상)과 부딪히는 충돌의 과정을 무한히 반복하며, 우리를 둘러싼 존재론적 사물들의 숨은 가치를 부각한다. (추천 양소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