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으로 가는 길 (외 1편)
고 영 서
세월이 모든 걸 해결해 준다면 기억이란 믿을 수 없는 걸 거야
해가 스모그에 가리어진 한낮,
터미널 직원에게 물으니 나가서 900번 버스를 타라는구나
너희가 탔던 배가 거치된 후 이 도시 대부분의 버스는
노란 리본을 달고
긴 하루가 될 것 같아… 다시 보게 된다면 말해줄 수 있을까
빛이 널 안내하게 해 네가 가는 곳마다… 모든 길은 언제나
널 집으로 이끌어*
흐르는 노래가 농담 같아 이어폰을 빼면 끝도 없이 펄럭이는 깃발들
잊지 않겠다는 의구심
성공한 추모곡이라니 말이 되니?
입구에 닿아서야 쩌억쩍 갈라진 바다의 가슴팍을 다 들여다보는구나
누운 배가 일어서자 하늘이 쿵 내려앉는 듯,
집으로 가는 길이 영영 멀어서
* 위즈 칼리파 See You Again의 가사. 영화 분노의 질주: 더 세븐의 삽입곡이자 2013년 교통사고로 사망한 주인공. ‘폴 워커’의 추모곡인데 신항 가는 길에 들으니 기분이 묘했다.
하모니카 소리 들리는, 오월이었네
그가 떠난 창가에는
손때 묻은 하모니카만이 덩그렇게
남아있었다고 한다
연락처에는 가족사항 없음
태어난 곳 모름
영신원과 무등육아원에서 자라고
그곳에서 만난 김영철을 친형처럼 따랐으며
들불야학에 몸담았다고 한다
꾹꾹 눌러쓴 투사회보는
보는 이의 마음을 움직였다고 한다
크지 않은 체구에 말수 적던 사람
부끄럽지 않게 일어서리라,
일기장에 쓴 맹세는 면면하여
사망보험금을 종잣돈으로
해마다 (광주 YWCA에서는) 그의 이름으로
장학금을 준다고 한다
최후의 만찬으로
단팥빵을 나눠먹었듯이
묘지번호 2-38 박용준,
‘시대의 어두움을 온몸으로 맞서시다가 숭고히 떠나가신
스물다섯의 외로운 님의 생애, 살아남은 자의 가슴속에
영원히 기억 되오리라’
하모니카 소리 봉분을 감싸고
떠나간 사람도 한번은 돌아올 줄 아는
오월이라고 한다
고영서 : 2004년 광주매일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기린 울음 우는 화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