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냉면 특히 평양냉면을 좋아해서 시키면 곱배기 또는 사리 하나 추가 합니다.
그런 저에게 냉면 값이 1만원 전후로 뛰어버리니
냉면 하나 먹는데도 '적자생존' 법칙이 느껴진다면 너무 과민한 걸까요?
먹을라면 먹고 말라면 말라는 듯이...
청계 4-5가 사이에서 을지로 4-5가 사이에 있는 집인데 한번 가보아야지 대충 찾아서는 헤매기 쉽습니다.
찾기 힘들 것 같지요? 오죽하면 괄호열고 대왕탕 옆이라고 써놓았을까요?
사실 메밀은 쌀이 귀하던 시절 추운지방에서 기근을 면하기 위해 쌀대신 농사짓던 곡식이라고 합니다.
이팝대신 메밀로 국수를 만들어 말아 먹었던 것이지요.
그러나 이런 애매한 구전보다는 아래 1967. 10. 5 동아일보에 실린 여인삼기자의 글에서
좀 더 현실적으로 막국수의 원형을 찾아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역시 을지로 4가 춘천막국수 만큼이나 연식이 오래 됐습니다.
"메밀막국수. 씹을 때 찌걱찌걱 하는게 별미, 술꾼 해장국으로도 좋아
막국수는 평양냉면이나 함흥냉면처럼 질긴 것이 아니라
씹을 때 흙 돌가루 같은 것이 한데 섞인 것처럼
찌걱찌걱하는 맛이 별미이다.
...긴긴 겨울밤..배가 출출해지면...메밀을 맷돌에 막갈아 체로 쳐서 반죽을 갠 다음
나무로 만든 분틀에 눌러 사리를 만들어 막김치를 숭숭 썰어서 국수 위에...
좋은 냉면 그릇보다는 바가지에 담아 먹어야 제 맛이 나며
국물도 지금은 김치국을 부어 먹지만 막간장에 비벼먹는 것이 제맛이 난다...."
불쑥 카메라를 들이대는 나를 보고 잠시 놀랜 듯하더니
묻는 말에 차근차근 깔끔하게 설명을 해줍니다.
쥔장 아덜이라는데 낮에도 열심히 국수를 뽑더니 저녁나절에도 변함없이 면발을 내고 있습니다.
위의 글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확실히 막국수는 귀한 집에서 먹는 음식이라기 보다는
출출함이나 허기를 때워주는 거친 음식이었음을 보여준다 하겠습니다.
그러나 돈을 받고 파는 음식이라면 당연히 찌걱찌걱한 별미나
단순한 맛보다는 지금의 형태로 변화하는 것이 순리일 수는 있겠지요.
우중충할 때는 뜨거운 국물이 좋다고 닭한마리 먹자는 후배를 끌고 찜닭과 막국수로 쏘주 한잔하자 꼬셔서 데리고 왔습니다.
막국수엔 2가지 김치만 나오고 찜닭을 시키니 풋고추와 양파, 마늘이 나옵니다. 조촐합니다.
닭고기만 먹으면 느끼해질 수 있는 입맛을 새콤한 김치와 매운 마늘로 자극을 줍니다.
요새는 잡곡값이 쌀값을 넘어가는 게 보통일겁니다.
조선일보에서 1만원짜리 냉면값을 분석하고 원가는 2천 얼만가 한다는 기사가 난 적이 있습니다.
물론 임대료, 인건비를 추가해야 한다하지만 좀 심하다는 생각이 마니마니 듭니다.
더구나 오른 음식값이 내려가는 걸 본 적이 없으니
더욱 섭섭해지게 마련입니다.
이집 특징이 이 육수와 주전자입니다.
너는 너대로 나는 나 생긴대로 놀겠다는 주전자 속에는 얼음이 뜬 닭육수가 들어 있습니다.
이렇게 천정부지로 올라가는 냉면값을 보고 있으면 막국수 값은 착한 셈입니다.
물론 냉면과 막국수는 출생부터 다르고 맛도 다르지만
그나마 막국수도 메밀이라고 덩달아 오르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요새는 꿩대신 닭으로 막국수를 먹어 주는데
한편으로는 '그까짓 평양냉면 흉내나 내는 냉면보다는 차라리 이게 더 낫다'라며
짐짓 아무렇지 않은 체 막국수를 먹지만 여전히 무언가 모자라는 느낌이 드는게 사실입니다.
찜닭입니다. 무얼 넣고 삶았는지 모르지만 약한 향긋함이 묻어 있습니다.
육질과 껍데기가 감촉이 좋습니다. 둘이서 이거 하나만 먹어도 배가 불러오기 시작하더군요,
흔히 막국수를 몇마디로 특징짓자면
매운 양념에 깨와 김이 잔뜩 들어가서 양푼에 비벼먹는 메밀국수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평양냉면을 추월한 함흥냉면과 같이
맵고,달고, 신 음식을 좋아하는 젊은 세대의 입맛과 맞아 떨어지는 면이 있습니다.
먹고나면 뜨거운 육수로 매운 맛을 덜어내야 하지요.
대표적인 게 천서리 이포 막국수입니다,
이전에 친구와 먹었던 메밀전입니다.
지난 번 을지로 4가 춘천막국수집에서 손님들에 치어서 혼난 경험을 얘기했더니
(아줌마 내가 갖다 먹어요 http://blog.daum.net/fotomani/70081)
그집에서 오래 일하다 나온 분이 하는 곳이라고 방산시장 내 춘천면옥을 소개해 주었습니다.
드디어 막국수가 나왔습니다. 이 집은 물막국수, 비빔막국수 구분이 없고 이 한가지입니다.
비벼먹든 주전자에 담긴 육수를 부어 먹든 손님 마음입니다.
양념을 좀 더 얹어 달라면 더 얹어주고 양을 좀 더 달라면 사리를 좀 더 얹어 주는 센스도 있습니다.
양념은 맵고, 달고, 신 그런 양념이 아니라 오히려 무덤덤하고 투박한 양념입니다.
그런 면에서 젊은 사람들 입맛과는 약간 거리가 있습니다.
이집 막국수의 특징은 위에 말씀드린 맵고 달고 신 양념이 아니라
달짝지근하면서도 면맛이 제법나는 그런 맛입니다.
달짝지근한 닭삶은 육수 맛에는 약간 싼 맛이 가미된 듯도 하지만
면맛은 가격에 비해 훌륭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먹고나서 뒷맛의 여운이 길게 가는 편이지요.
저는 오히려 자극적인 양념 맛보다 이 심심한 맛에 무게를 더 두고 싶습니다.
이포막국수나 흔히 보는 막국수는 양념이 짙고 후춧가루가 깔린 듯 맵고 깨와 김을 잔뜩 뿌려
주인보다 객이 설치는데, 달작지근하고 잔잔한 맛이 오히려 뒷맛을 깊게 남기는군요.
여기는 비빔이나 물의 접두사가 붙지 않은 오로지 막국수 한가지입니다.
대신 생전 처음보는 생김새의 투박한 '스뗑'주전자에 얼음이 둥둥 뜬 육수를 붓고 말아 먹든 비벼먹든
상관하지 않겠다는 그런 막국수입니다.
나는 값을 올릴테니 먹든 말든 상관치 않겠다는 것과는 차원이 훨씬 다르지요.
그러나 싸다고 허투루 볼 수 없는 남산골 샌님 정도의 고고함을 지닌 그런 막국수입니다.
컵바닥에 후춧가루가 보이지 않습니다.
02-2285-1244
배도 부르고 취기도 오르고 어제까지 진흙탕물이던 청계천 산책로는 벌써 소방호스로 청소했는지
진흙이 보이지 않고 깨끗합니다.
http://blog.daum.net/fotomani
첫댓글 천서리 수육과 막국수 .... 정말 맛 있지요
그나저나 이집 육수 주전자 정말 특이하게 생겼네
천서리 수육은 세우젓에 겨자를 듬뿍 뿌려 먹으면 맛이 개운합니다.
맛, 아니 멋 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