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이 있어 걷다보니 여기까지 왔다. 길은 늘 외줄기, 선택의 여지는 거의 없었다. 하나의 길이 끝나갈 무렵이면 또다른 외줄기 길이 나타나곤 했다. 심장이 터질듯한 깨끌막도 있었다. 오솔길도 헤치고 외나무다리도 건넜다. 등허리 휘도록 삶의 무게를 짊어지고 산 넘고 물 건너 쉴새없이 걸어왔다.
여기는 느림보길..천천히 걸으라 한다. 쉬엄쉬엄 가라 한다. 그렇다! 너무 바삐 걸었다. 너무 쉬지 않고 걷기만 했다.
이제는 천천히, 쉬엄쉬엄, 뒤도 돌아보고, 먼 산도 바라보고, 길가의 꽃도 보며 나머지 길을 가야겠다.
강원도 평창의 성필립보생태마을은 TV 명강론으로 스타덤에 오른 황창현신부가 운영하는 생태공동체다. 천주교 종교방송인 평화방송은 물론이고 일반 메스컴에서도 꽤나 유명세를 얻고 있어서 내자가 자주 노래를 불러왔던 곳이다.
이 마을의 주된 수익사업은 청국장 제조및 판매인데,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에서도 인기가 대단하여 주문이 많이 들어온다고 한다. 이 마을의 배달물량 때문에 평창우체국이 직원을 몇명이나 증원했다고 할 정도다.
마을의 제일 높은 언덕위에 성당이 자리하고 있다. 하늘에 오르듯이 조심조심 계단을 오른다.
성당을 배경으로 하고 앉아 바라보는 경관은 가히 절경이라 할 만하다. 이곳에 터를 잡은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구나 싶기도 하다.
고산 윤선도가 제주도를 가다말고 보길도에 눌러앉은 그 심사와 같을지도 모를 일이다.
평창, 봉평, 대화장터, 허생원, 동이, 메밀꽃 필 무렵..여기 와서 이효석이 생각나지 않을 수가 없다. 어린 시절에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을 읽고나서 글쓰기를 하고 싶었던 것이 아마도 나혼자는 아니었으리라 장담한다. "소금을 뿌린 듯이 흐붓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이 문장은 내가 접한 '하얀 풍경'의 묘사 중에 단연 최고의 걸작이라 할 수 있다. 그 다음에 가와바다 야스나리의 《설국》의 "밤의 아랫자락이 하얗게 되었다"가 2등일 것이다.
이효석생가보다 더 메밀꽃스러운 곳이 있어 보니 메밀음식을 전문으로 하는 식당이다. 메밀묵밥과 메밀전병 한접시로 저녁을 때우기에 충분하다.
'이효석생가' 팻말 앞에 피어 있는 하얀 꽃은 백발백중 '메밀꽃'이 아닐까? 아니었다. 감자꽃이었다. 세세연년화상사는 옛 (중국)시인의 허사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감자를 다 캐고나서 메밀을 심으면 한여름에는 메밀꽃밭을 볼 수 있으려나?
봉평서 자고 아침에 초당순두부를 먹으려고 강릉으로 향했다. 대관령을 넘는데 소나기와 비안개로 앞이 잘 보이지 않아 전조등과 깜박이를 켜고 느림보로 차를 몬다. 7개월여의 극심한 가뭄 끝에 비다운 비가 내리니 여행길은 불편해도 기분은 아주 좋다.
연년세세..세월의 의미를 짚어보려고 정동진에 왔다. 이 모래시계의 모래가 다 내리는 시간은 꼬박 일년이라고 한다.
'시간박물관'에서 시간의 개념과 시간의 측정법을 알아보고 여러가지 희한한 시계들도 구경할 수 있다. 시간의 흐름이 장소와 상황에 따라 속도가 달라진다는 사실이 새삼스럽다. 중력이 큰 물체의 곁에서는 시간의 흐름이 느려진다고 한다. 지구표면에서보다 태양의 표면에서 시간이 훨씬 천천히 흐르고, 중력이 무한대에 가까운 블랙홀 근처에서는 시간이 거의 정지상태가 되는 원리가 바로 그거라고 한다. 품이 넉넉한 사람과 함께 천천히 남은 시간을 보내리라!
이 레일바이크는 어디로 가는 것일까? 미래로, 천천히~! 선로 도중의 포토존에서 자동으로 이런 사진 두 장을 찍어서 인화한 사진은 15,000원, 파일까지 폰으로 날려 주면 20,000원이라 칸다. 인화사진만 받아서 사진을 사진찍었다. 화질은 좀 떨어졌겠지만 뽀샵으로 어느 정도는 보정이 되었을 것이다.
"찔레꽃 붉게 피는 남쪽나라 내 고향...", "남도 천리길 찔레꽃이 붉게 피어나면..." 이런 노래를 처음 들었을 때 황당했다. 이전에 내가 보았던 찔레꽃은 모두 하얀꽃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때는 내가 보지 못해서 그렇지 붉은 찔레꽃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는데..훨씬 나중에야 알았다. 남도지방에서는 '해당화'를 찔레꽃이라고 부른다고 누군가가 알려주었다. 그 후로 해당화에 대해서 관심이 많아졌고 해당화가 눈에 띄면 유심히 살펴보았다. 미국 동북부의 Cape Cod 해변에서도, 러시아의 극동 블라디보스톡의 바닷가에서도 해당화는 모두 붉게 피고 있었다. 오늘 여기 삼척해변길가에서도 붉은 해당화 즉 '붉은 찔레꽃'을 본다.
멋진 조각공원에는 인어공주도 있다. 조각상의 여인 하나는 목이 달아나고 없어도 태연히 앉아 있다.
비바람에 거친 파도가 모래톱을 할퀴는 소리도 상쾌하게 들린다. 파도소리 따라서 세월을 넘는다. 처얼썩 처얼썩...
대구의 지하철 등에서도 광고를 많이 하는 '국립해양과학관'에 왔다.
5대양을 향한 대한민국의 원대한 꿈이 보이는 것 같다. "검푸른 파도 삼킬 듯 사나워도, 나는 언제나 강철의 사나이, 막걸리 생각날 땐 바닷물을 마시고, 사랑이 그리울 땐 시궁창을 해메인다. 사나이 한평생 바다에서 벗을 삼고, 충정에 살다가 바다에서 죽으리라. 아~아 아 바다는 나의 고향, 고향은 바다란다!" 군대에서 해양훈련 중 몰개박실에 머리를 박고, 눈물콧물 범벅이 되어 이 노래를 부르던 시절도 이제는 추억이 되었다.
신기한 바다놀이터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어린 손녀들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아이들을 여기 데려오면 좋아하겠지? 이제 42주년 무슨기념일의 느림보여행을 마무리하고 일상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첫댓글 울진까지 오셨네요,,,~
뵐수 있는 좋은 기회
였는데,,,~아쉽지만
다음 오시는 길,,~
기다리죠,,~♡
아~ 그랬구나! 담에 그쪽 갈 일 생기면 미리 연락하리다~
@박이달 넵,,~
언제든 기다리겠슴다,,,~
숙식 무료제공,,~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