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국립묘지에서
홍오선
진다홍 뜨거운 사랑 이제 여기 돌비 하나
절절한 네 아픔을 뻐꾸기가 대신 울고
한 송이 풀꽃이 피듯 묻어나는 하얀 적요
그 옛날 다운 숨결 진혼곡에 실려 오면
다습고 순한 눈매 고향 하늘 예대론데
그리운 어머니 품 속 절로 자란 비망록
이름 없는 군번에도 나비 하나 찾아들어
잃어버린 꿈을 주워 다독이는 손길일래
발원의 깊은 바다에 고여 앉는 그 음성
빗발처럼 포화소리 귓결에 새삼 이는데
노송은 침묵 지켜 낙화만 흩날리고
삼십년 세월도 잊은 대답 없는 메아리여.
-제1시조집 ‘수를 놓으며(1988) 중에서
리태극 교수님의 작품평
녹슨 철조망으로 갈려 초목이 무성한 비무장지대만 남기고 같은 겨레가 갈라져 30여년을 지난 그 비정!. 날짐승 길짐승들의 놀이터를 바라볼 때 아픈 기도만을 올려보는 이 겨레의 아픔을 말하였다. ‘국립묘지에서’를 통해서 젊은이들의 애국심을 기리며 현재의 분단현상을 가슴 아파하며 불행했던 6.25의 상흔을 회상시켜주고 있다.
남편의 작품평
이 작품이 계간지 ‘시조문학’에 실린 이태극교수님의 추천 완료 작품이다. 어느 날 아내는 출근하는 나를 보며 갑자기 국립묘지를 다녀와야겠다고 한다. 국방일보에 아는 시인이 원고청탁을 해서 시상을 다듬으러 잠시 전장의 상흔이 어린 국립묘지를 가본다는 것이다. 마침 6.25가 얼마 남지 않아서 좋은 주제라며 격려했더니 6.25의 상흔을 뼈속 깊이 느끼게 하는 좋은 작품을 썼다. 이 시를 읽으며 동작동 국립묘지를 지나갈 때마다 조국을 위해 산화한 나라의 영웅들을 생각하곤 했던 기억이 새롭다.
우리는 중학교 때 모윤숙시인이 쓴 ‘국군은 죽어서 말한다’를 배우며 자란 전쟁세대다. 나는 충남 예산 촌구석에서 묻혀 지내어서 6.25의 처참한 상흔을 별로 느끼지 못하였다. 다만 초등학교 6학년 14살일 때 아산군 선장국민학교에서 ‘김일성 장군의 노래’ ‘빨치산의 노래’ 등 북한 노래를 선생님한테 배운 경험이 떠오른다. 그리고 고향으로 온 식구가 피난을 갔으니 전쟁의 참화를 듣도 보도 못하였다.
하지만 아내는 7살의 어린 나이에 서울의 신당동 자택에서 부모님과 함께 적 치하 3개월을 보냈다고 한다. 장인어른과 고모부님은 자택 지하에 숨어서 3개월을 지냈다고 하며 6.25얘기만 하면 진저리를 쳤다. 총탄이 집 위로 날아다니기도 하고 죽은 시체가 가마니에 덮여 발목만 삐죽 나온 흉측한 모습을 보며 소름이 돋았다는 경험담을 말하곤 했다. 그래서 풍부한 감정으로 이 시를 썼다고 생각한다.
국립묘지에서 돌비에 새겨진 이름을 보며 한 송이 풀꽃이 피듯 하얗게 묻어나는 하얀 적요를 가슴으로 느낀 듯하다. 빗발치던 포화소리에 귀를 막고 혼비백산했던 갓 20의 앳된 영혼이 지금 국립묘지에 6자 흙을 덮고 누워 있다. 그리운 가족의 목소리를 뻐꾸기가 대신 전해주는 녹음 속 노송이 오늘 따라 한 층 외로워 보이는 것은 그리운 어머니 품속이 절로 안겨오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 평화공존이니 종전선언이니 하며 대통령부터 통일장관, 국정원장, 그리고 여당의원들에게 이르까지 평화타령만 하니 핵을 머리에 이고 사는 국민들은 덩달이 적과의 동침이라는 환상에 젖어 있다. 전쟁을 겪어 보지도 체험해 보지도 못한 세대들이 어찌 공산당의 만행을 막걸리 한잔 입에 넘기듯 제 맘대로 얘기하는지 정말로 처음 가보는 길이 참으로 험난하고 암담하기만 하다. 이런 전쟁은, 더욱이 동족상잔의 비극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중년 여인의 간원에 글을 읽는 내 마음마저 먹먹하다.(2020. 11. 8) 시조시인 지산
첫댓글 작품평이 있으니 이해하기가 쉬워용 ㅎ
작가님 건강하세여~!
thank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