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장게장의 연가(戀歌)(Led Zepplin 2015. 5. 30.)
나는 간장게장을 무쟈게 좋아한다. 오래 전 부터 ‘평택으로 시집가면 밥걱정/ 반찬걱정을 안하고 산다’라는 말이 있는데, 평택에는 꽃게와 쌀이 유명하여 질이 좋고 맛이 있는 쌀이 있으며 밥도둑이라는 애교 섞인 별명까지 붙은 게장이 있으니 그럴 만도 했다고 본다. 속살이 꽉 찬 꽃게를 가장 맛있게 먹는 방법은 역시 간장게장. 꽃게 특유의 감칠맛은 살리되, 짜지 않게 담그는 것이 최고의 포인트이다. 우리집에는 대체로 항상 냉장고의 큰유리병안에 제법 들어있는데, 이 글을 우리 친구(?)들이 읽지 않기를 기도하는 마음이다.
기록을 더듬어 보면, 조선시대의 기록에 있으니 최소한 조선시대부터는 먹기 시작했다고 봐도 무방하리라 생각한다. 이전에도 먹었는지는 기록이 없어 확인할 수 없으므로 미루어 짐작컨대 최소한 1600년대 이전임을 알 수 있다. 날게와 생감은 상극이라 동시에 먹지 않는다는 것인데, 조선의 영조가 형인 경종에게 게장과 생감을 올렸다가 평생 ‘경종 시해’의 논란에 시달렸다는 역사는 유명한 이야기이다.
간장게장은 바닷게나 민물 게를 이용해서 담는데, 바닷게는 보통 서해에서 잡은 꽃게를 많이 쓴다. 물론, 섬사람들이나 해안가 지방에서는 껍질이 단단하고 크기가 작은 돌게도 담궈 먹는다. 간장게장을 좋아하는 나는 돌게도 없어서 못먹는다. 꽃게는 살이 통통하게 오르는 5월에 잡은 것이 가장 맛있으며, 암꽃게를 많이 사용한다. 암꽃게는 살이 부드럽고 비린내가 심하지 않으며 알이 차 있어 게장을 담기에 좋다. 특히 게딱지 안의 주황색 ‘장’이 가장 맛이 있는데, 그 ‘장’이 가득 찬 게딱지안에 더운밥을 넣고 비벼먹는 것이야말로 진미라 아니할 수 없을 것이다.
세금을 안내는 일명 체납하는 고수의 수법은 대체 무엇일까. 복잡하지 않단다. 그것은 바로 간장게장과 복어란다. 무신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냐고? 놀랍게도 똑똑한 사람들은 “게 눈 감추듯 빼돌리고, 복어처럼 완전 배 째라!!”로 버틴다는 거다. 일각에서는 세금을 아래와 같이 정의한다. “세금이란, 학창시절 공부 안 한 놈들이 국가로부터 받는 징계이다.” 다시 말해서, 공부 잘하고 좋은 대학 나온 잘나신 분 개새들은 ‘탈세’ ‘변칙 증여’ ‘해외도피’ ‘분식 회계’ 따위로 세금을 안 낸다는 거다. 공부 못하고 덜 떨어진 우리같은 떨거지들만 꼼짝 못하고 세금내며 살고 있는 거다. 대통령 출마했던 허경영이가 언젠가 이런 말을 했단다. “세수가 부족해서 국가가 어렵고 국민이 힘든 게 아닙니다. 국가에 도둑놈들이 너무 많은 겁니다.” 쓰바, 욕 나온다.
꽃게가 간장 속에
반쯤 몸을 담그고 엎드려 있다
등판에는 간장이 울컥울컥 쏟아질 때
꽃게는 뱃속의 알을 껴안으려고
꿈틀거리다가 더 낮게
더 바닥쪽으로 웅크렸으리라
버둥거렸으리라 버둥거리다가
어찌할 수 없어서
살 속으로 스며드는 것을
한 때의 어스름을
꽃게는 천천히 받아들였으리라
껍질이 먹먹해지기 전에
가만히 알들에게 말했으리라
저녁이야
불 끄고 잘 시간이야
- 안도현/ 스며드는 것
불 끄고 잘 시간이라고 나지막하게 다독이는 어미의 말에 가슴이 저며온다. 크게 사랑하고 가엾게 여긴다는 자비(慈悲)의 뒤 글자는, 슬픔 비(悲)이다. 진정으로 함께 아파할 수 있는 마음이 사랑의 핵심이라는 것을 ‘자비’라는 단어가 말없이 알려준다. ‘통혁당사건’으로 오랜 수감생활을 하였으며 ‘감옥으로 부터의 사색’이라는 책을 낸 근래에 작고하신 신영복 교수는 이 시를 읽고 더 이상 간장게장을 먹을 수 없게 되었다는 말을 강의중에 실토하셨다.
평생을 살아왔던 그 바닷물보다도 짜고 어둠보다도 시커먼 간장이 울컥울컥 쏟아지는 순간에 제 몸의 새끼가 다칠까 꿈틀거리며 버둥거리는 그 어미 꽃게의 마음은, 생명의 절규와 같은 본능이다. 우리가 다 죽어 가는 순간이 되었을 때에 이르러서야, 저 힘없고 낮은 목소리 속에 숨은 어미꽃게의 뜨거운 사랑을 들을 수 있을 게다. 어둠을 두려워하는 새끼들을 다독이며, 자신의 최후를 두려워하면서도 자장가를 애잔하게 자장자장 부르는 어머니가 거기에 있다. 이 더러운 뒷골목같은 삭막한 현실을 살고는 있지만, 때로는 기도하는 마음으로 이런 통증도 느낄 수 있어야 하지 않겠나. 우리는 사람이니까 말이다.
*** 유소년기의 저는 서울에서 살았던 지라, 비린 것을 먹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외갓집인 전북의 군산엘 다니면서 외할머니가 만들어주신 여러가지 바다의 먹거리들에 대하여 깊은 맛을 알게되었던 거죠. 홍어가 그렇고 박대가 그렇고 각종 젓갈이 그렇고 간장게장이 그렇습니다. 사시미(회)는 성장하여 업무출장과 세미나/ 연수/ 여행 등으로 일본을 자주 다니고 몇달씩 생활하면서 그 진맛을 알게되었습니다. 저에게는, 이 반찬 저 반찬으로 끼니를 줄곧 이어가다가도 호강에 지친 되바라진 못된 입맛을 달래는 방법으로는 간장게장만한 것이 없다는 생각됩니다. 간장게장의 그 진맛을 익힌 저의 입맛은 돌아가신 외할머니께서 삶에 지치고 화학조미료에 질식할 것만 같은 현대를 살아가는 저에게 유산처럼 입력시켜 주신 선물이라는 생각입니다. 그래서, "저녁이야. 불 끄고 잘 시간이야"를 말하는 어미게의 떨리는 속삭임은, 마치 죽을 수도 미칠 수도 없이 살아내야만 하는 오늘의 저에게 들려주시는 외할머니의 다정한 토닥임과도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