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um
  • |
  • 카페
  • |
  • 테이블
  • |
  • 메일
  • |
  • 카페앱 설치
 
카페 프로필 이미지
우리역사문화연구모임(역사문)
 
 
 
 
 

회원 알림

 
  • 방문
    1. 킥돌이 공
    2. movietic
    3. 김용만
    4. 지나아빠
  • 가입

회원 알림

다음
 
  • 방문
  • 가입
    1. 토담
    2. 박예인
    3. 시에스타
    4. 소정
    5. 갈메기
    1. 삼산이수
    2. 剩愛
    3. 최해덕
    4. 단대
    5. 대종교천부경학회
 
 
카페 게시글
신라,가야토론방 고인돌 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아혜모호 추천 0 조회 305 06.07.18 13:06 댓글 6
게시글 본문내용
 
다음검색
댓글
  • 06.07.20 23:51

    첫댓글 다른건 몰라도 첫번째 의문점의 이유는 종교(혹은 "신")가 아닐까요? 고인돌은 지배자의 권위를 나타냈지만, 어느 순간부터 자신의 권위보단 신에게 "후손이 잘되었으면.." 하는 생각을 갖게 된것이 아닐까 하는데요..

  • 작성자 06.07.22 07:01

    대체로 지배층이 바뀌거나, 종교가 바뀌었을 때 무덤형태가 변화됩니다. 종교가 바뀌었을 때는 사후세계관의 변화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신라에서 적석목곽분에서 석실분으로 바뀔 때인데.... 이승의 생활을 저승에서도 누린다는 계세사상이 큰무덤에 화려한 부장품을 넣게했었고, 법흥왕 이후 불교의 윤회사상이나 '공수래공수거'같은 생각들이 부장품을 줄이고, 부장품의 성격을 바꾸어 줍니다. 또 무덤의 형태까지 바꾸게 합니다. 만약 종교가 이유라면 구체적으로 어떤 이유일까요? 지배자의 무덤이 권위의 상징인 것은 그 이후로도 계속되는 생각인 것 같습니다.

  • 작성자 06.07.22 07:11

    소국 시대의 지배자급 무덤에서 발견되는 부장품들, 즉 청동거울, 무기와 공구, 청동방울 등이 권위의 상징입니다. 그러므로 이들의 종교가 바뀌었다면 '단순히 후손이 잘 되었으면...'보다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이유가 있을 것 같습니다. ^^

  • 06.07.26 22:34

    50~60년대까지 우리 시골에서 사용했었다는 내용은...나름대로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 작성자 06.07.28 09:19

    농기구의 모양이 기계화 이전의 시골에서 사용하던 것과 별반 차이가 없지요? 그래서 고인돌 시대에 손으로 하는 일들은 (농업 뿐만 아니라) 거의 오늘날의 수준으로 발달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이 시기가 중국에서는 춘추전국시대임을 생각한다면 아무리 차이가 많이 난다고 해도 상당한 수준에는 이르지 않았을까요? 고인돌 문화가 남방 혹은 북방에서 전래되었다면 고인돌 이외에도 상당한 교역이 이루어졌을 것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중국의 춘추시대처럼 그 시대를 알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단순하게 반만년의 역사라고 자랑하지 말고 기원전 300년까지만이라도 복원할 수 있다면......

  • 06.08.09 02:53

    고인돌시대에 짐승가죽을 입은 지저분한 석기시대 원시인들이 우갸우갸 하더라는 것이었다./// ㅋㅋㅋㅋㅋ 정말 웃었습니다.

최신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