쑥부쟁이에 묶인 넋 (외 1편)
김 해 빈
중화리 뒷산에 부는 바람이 한동안 그대로 있었다
기억이 없다
재갈 물려 묻힌 그 날
세상이 깜깜하기 전이었다
임금의 주검이 왕관으로 치장된 관 속에 들 때
떨어져나가 돌바닥에 나뒹굴었다
아프지 않았다
그때부터였다
어둠을 지키느라 눈 한번 깜박이지 않았다
석양빛이 그립고 어머니가 보고 싶었다
꼭 보리라
언젠가, 빛이 드는 이곳에서 내가 열네 살인 것을 말하고 싶어 하늘과 땅이 막힌 줄 모르고 소리쳤다
‘바람아 바람아 불어라’
‘거북이 등 넘어 불어오너라’
‘내 님이 부르는 노래 싣고 오너라’
‘바람아 바람아 불어라’
아시나요
미명귀도 못되는 죽음을
지산동 무덤 허물어질 때마다 허공으로 흩어지는 숨 막힌 울음 들어 보았나요
고갯길에 핀 쑥부쟁이 허리쯤에 내 넋이 서리서리 묶였다
주산봉우리 저 멀리 목마산에 피어오른 연기
황산강 물결에 번진다
열아홉 번째 응접실을 나오며
성문 열기 전
5마일 언덕을 오른 찰리 채플린과
허리 구부리며 동백 꽃잎에 입 맞춘다
읽고 있던 신문 헤드라인을 저울질하며 미소 머금고 회의실과 서재를 거쳐 첫 번째 응접실 카펫 밟으며 들어서는 허스트
미끄러지듯 들어간 주방
벽 대기의자에 다소곳하던 여자들은 물러가고
만찬이 끝난 빈 접시에는 거물들의 걸쭉한 입담이 쌓인다
전 좌석을 채운 극장엔
찰리 채플린의 익살스러운 흑백웃음이 돌고
응접실에서 우르르 몰려나간 눈들은
푸른 물빛을 유형하던 인어가 찰리 채플린과 눈 마주치며 붉힌 천상의 볼을 보았을까
수영장 타일바닥에 갇혀 부자놀이 하던
내 둔탁한 길을 끌고
열아홉 번째 응접실을 빠져나오자
성 밖에 바다신 넵튠이 요정들과 키득거린다
태평양 발아래 안개에 쌓인 허스트 케슬
역설의 땅을 거슬러 오른 눈이 시리고 시리다
김해빈(金海彬) : 2010년 [시문학]으로 등단. 제3회 한국현대시작품상, 제13회 푸른시학상 수상. 시집 새에 갇히다 원은 시작과 끝이다 저녁을 하역하다 욱신거리는 계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