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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생을 위한 시 창작 강의] 직접 말하기 2
내 안의 적
김민지(3-1)
이번만은 꼭 하겠다고
이번만큼은 해 내겠다고 다짐한다.
하지만 말일뿐이다.
생각일 뿐이다.
몸과 마음은 서로 적이다.
그래서 인지 마음이 말을
듣지 않는다.
이상한 현상이다.
진실하게 말하자면
나도 몸이 하는 행동을
알면서도 모른 척 하는지 모른다.
이제는 나이가 들어서인지
몸과 마음을 구별할 수 있는
시기가 온 것 같다.
자, 이 시에 앞서 배운 어떤 표현이 있나요? 없지요? 특별한 기교를 찾아볼 수 없습니다. 이 학생이 현재 고민하고 있는 생각의 질서만이 나타날 뿐입니다. 그래도 자신의 갈등을 아주 잘 정리하고 있습니다. 이런 간략한 정리 역시 생각의 질서를 나타내는 것이고, 그런 생각의 질서를 아무런 꾸밈없이 드러내는 것 역시 시의 중요한 방법입니다. 그래서 <직접 말하기>라고 제목을 붙인 것입니다. 말 그대로 자신의 생각을 직접 전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학생의 작품을 한 편 더 보겠습니다. 겉모습은 많이 다른 것 같지만 원리는 같은 시입니다.
나들이 가던 날
김민지(3-1)
어미 닭과 그 뒤를 졸졸 따르는
병아리들처럼……
우리도 선생님 뒤를 따라
쫑쫑거리며 봄나들이를 간다.
우리가 나들이 왔다는 걸 어떻게 알았는지
곤히 자던 잠을 깨고 눈을 비비며
서로서로 먼저 나올려고 발버둥을 친다.
할미꽃은 허리 많이 아픈지 고개를 들을 생각도 않는다.
진달래는 우리를 환영하기 위해 줄지어 서서
바람을 따라 산들산들거린다.
진달래가 샘이 났는지, 소나무와 다른 나무들은
우리를 막아서서 못 가게 가시를 이용해 마구 찔러댄다.
우리는 ‘아야’ ‘아야’ 하며, 화를 내지만
우리는 알 수 있다.
샘이 나서가 아니라
관심을 끌기 위해서란 걸…….
중간 중간에 비유도 나오지만 이 시를 잘 보면 선생님을 따라서 산으로 봄나들이 간 체험을 말하고 있습니다. 봄나들이야 누구나 다 하는 일이지요. 그런데도 이것이 시가 되는 것은 이 학생이 경험한 느낌을 적었기 때문입니다. 체험은 같을지 몰라도 그것을 느끼는 것은 사람마다 다 다릅니다. 선생님을 따라갔기 때문에 이 학생만 간 건 아닙니다. 다른 학생들도 다 갔지요. 그런데 이 느낌은 이 학생만의 것입니다.
앞서 자신의 느낌을 적으라고 했던 것 기억날 겁니다. 자신의 느낌이라는 것을 유달리 강조하는 것은 바로 이런 것 때문입니다. 느낌은 사람마다 다 다르고 시에서는 사람마다 다 다른 그런 느낌을 존중합니다. 사람마다 느낌이 다 같다면 시라는, 나아가 문학이라는 예술이 성립할 수도 없습니다. 예술은 독자성이 그 생명입니다.
가는 도중에 꽃도 구경하고, 바람도 느꼈고, 나무들에게 찔렸습니다. 그리고 그 나무들이 사람의 사랑을 받으려고 샘을 냈다고 썼습니다. 아마 그 날 산에 가서 본 것은 이것만은 아닐 것입니다. 구름도 봤을 것이고, 동네도 봤을 것이고 무덤도 봤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것들은 시에 등장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여기서 한 가지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시에서 자신의 체험을 쓸 때 모든 것을 다 쓰는 것이 아니라 꼭 필요한 몇 가지만 추려서 쓴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이와 같이 자신의 경험 중에서 특별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요약해서 제시하는 방법이 바로 지금 우리가 세 번째의 방법으로 제시한 <직접 말하기> 방법입니다. 어떤 다른 표현법을 사용하지 않고 체험을 추려서 중요한 부분만 직접 말하는 것입니다.
이 시에서는 비유도 들어있지만, 전체의 흐름은 자신의 체험을 말하는 것이라고 미리 말했습니다. 그래서 <직접 말하기>의 범주에 넣은 것입니다.
4연 첫 행의 <나올려고>는 <나오려고>가 맞는 것이겠지요? 그렇기는 합니다만, 시에서는 그런 거 너무 골치 아프게 따질 필요가 없습니다. 나중에 말하겠지만, 그런 거 시시콜콜 따지다가는 정작 생각이 끊겨서 시를 잘 못 씁니다. 그리고 이런 틀린 표현이라고 하더라도 실제 생활에서 그렇게 발음하고 쓰면 그게 오히려 더 시의 분위기를 살려줍니다. 시에서는 맞춤법보다 어감이 더 중요합니다. 그리고 아래 5연을 보면
진달래가 샘이 났는지, 소나무와 다른 나무들은
우리를 막아서서 못 가게 가시를 이용해 마구 찔러댄다.
<못 가게>는 굳이 없어도 되는 말입니다. 그렇지요? 없어도 앞 뒤 의미 연결에 전혀 지장을 주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있다고 해서 무슨 문제가 되는 건 아닙니다. 이렇게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을 경우에는 없는 것이 더 낫다고 판단합니다.
계속해서 작품을 보겠습니다.
시 쓰는 친구들
김봉진(2-1)
지금은 국어시간.
노는 시간이라 착각하고
놀고있는 친구들
병덕이는 나무에 매달리고.
광섭이는 돌아다니며 시를 자랑하고.
연호는 노래를 리매이크를 하고.
제연이는 “방카”의 카리스마를 자랑하고.
팔장 끼고 돌아다니는 윤표.
시를 쓰고 들어오는
정근이와 희성이 춤을 추며 들어오고.
우리 반은 시 쓰는 시간이 체육시간보다 쬐금 재미있다.
시를 쓰라고 시간을 주면 얌전히 앉아서 쓰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자꾸 떠들려고 하지요. 한 번은 시상을 떠올려야 한다면서 밖으로 나가자고 하더군요. 말하자면 야외수업을 하자는 겁니다. 그래서 모르는 체하고 허락을 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시 쓸 생각은 안 하고 엉뚱한 장난만 하면서 놀더군요. 그래도 그냥 두었습니다. 그랬더니 자기들이 해놓은 말이 있으니까 뒤가 켕겼는지 집에서 써왔습니다. 이 시도 그 중의 하나죠.
국어 시간에 시 쓰는 친구들의 모습이 자세히 묘사돼있죠? 여기서 병덕이니, 광섭이니, 연호니 하는 학생들이 누구인가를 굳이 알 필요는 없겠지요? 왜냐하면 여러분의 경험으로 보아 어떤 상황인지 모두 떠올릴 수 있기 때문이지요. 이름은 특수한 명사이지만, 이렇게 독자로 하여금 연상할 수 있는 상황에서 쓰이면 보통 명사처럼 쓰인답니다.
이 시에서 우리가 배울 것은 어떤 상황을 잘 요약한 겁니다. 특별히 화려한 표현도 없고, 재미있는 표현도 없지만, 시 쓰라고 준 시간을 활용하는 아이들의 모습에 눈에 잡힐 듯이 보입니다. 이렇게 우리들이 살고 행동하고 느끼는 것을 잘 요약하여 옮겨놓으면 그것이 그대로 시가 되는 것입니다.
맨 마지막 줄에는 재미있는 심리가 드러나 있지요? 남학생들에게 체육시간보다 더 재미있는 시간이 어디 있겠어요? 그런데도 국어시간이 <쬐끔> 재미있다고 말하는 것은 미안한 마음이 투영된 것이겠죠? 앞부분에서 제시했듯이 시를 쓴다고 하면서 엉뚱한 짓을 하는 데도 혼내거나 뭐라고 잔소리를 하지 않으니까 일종의 아부를 한 것이겠죠. 그런 순수한 마음이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그런 마음을 숨기지 않고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상황이기 때문에 이 시의 장점이 살아나는 것입니다.
애개개! 이런 정도는 누가 못써? 이런 생각을 하는 학생들이 있을 겁니다. 그런 학생들은 여태까지 약간 잘못된 고정관념에 빠져있던 것입니다. 시는 무언가 그럴 듯한 것을 표현해야 한다는 그런 고정관념 말입니다. 그런 고정관념은 틀림없이 교과서의 시에서 배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이 학생들처럼 자신의 생활을 노래하는 과정을 충분히 거쳐서 그런 시에서 시의 재미를 느끼게 된 다음의 일입니다. 시는 결코 특별한 것을 노래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소박하게 담는 훌륭한 그릇입니다. 바로 이 점을 깨닫는 것이 시를 잘 쓰는 것보다 더 중요합니다.
무시무시한 놀이터
이세호(1-1)
놀이터는 위험을 주는 곳
항상 조심해야 할 곳.
시소는 무척이나 재미있다.
하지만 엉덩이가 다칠 수도 있다.
그네도 무척이나 재미있다.
하지만 뒤에 있다가
부딪칠 수도 있으며 떨어질 수도 있다.
미끄럼틀도 재미있다.
하지만 굴러 떨어질 수 있다.
놀이터는 언제 다칠지 모르는
위험한 곳.
재미있지요? 놀이터를 재미있는 곳으로만 생각했지, 위험하다고 노래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듯합니다. 그러나 내막을 살펴보면 정말 그렇지요. 누구나 놀이터에서 다친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놀이터라는 머릿속의 개념 때문에 그런 위험을 노래한다는 생각을 미처 못 한 것입니다. 이 학생은 놀이터라는 선입관을 버리고 자신이 처했던 위험한 경험을 시로 쓸 생각을 했습니다.
이와 같이 남들이 흘려버리기 쉬운 것을 한 번 깊이 생각해서 옮겨 놓는 것도 좋은 시가 될 수 있습니다. 이런 경우는 너무나 많지요.
시작과 끝 부분에 비슷한 말을 반복하면 의미를 강조하는 효과를 냅니다. 물론 이 학생이 그러한 시의 이론을 알고 썼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생각을 잘 정리하면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는 명쾌히 몰라도 그렇게 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바로 이와 같이 자신의 내면을 조용히 들여다보는 것이 시를 잘 짓는 것입니다. 시의 이론을 배운다고 해서 시를 잘 쓸 수는 없습니다. 이와 같이 생각이 움직이는 방향을 면밀히 살피면 복잡한 시의 이론에서 설명하는 효과를 나도 모르게 시에서 발휘하게 됩니다.
봉진이
김준석(2-1)
우리 반의 실장
우리 반의 덩치
얼굴에는 여드름 꽃.
얼굴에는 하얀 미소를 띠고
귀에는 항상 이어폰을 꽂고
노래를 부르네.
내가 놀리면 도끼눈을 뜨고
나는 도망을 가네.
잡히면 죽으니까.
사람의 특징을 아주 짧게 요약하여 보여주는 것도 시의 좋은 방법입니다. 사람은 사람을 무수히 만나면서 살고 사람 사이에서 감정을 느끼고 살아갑니다. 그런 감정들을 소홀히 하지 않고 주위의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져서 그들의 특징을 노래하는 것 역시 즐거운 일입니다.
맨 끝에 보듯이 장난을 많이 치는 관계인가 봅니다. 잡히면 죽는다는 표현은 좀 과장된 것이겠지요? 하지만 이렇게 표현하는 상황을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 만큼 친하게 지낸다는 뜻입니다. 장난치고 도망가고 하는 두 사람의 관계가 눈앞에 선하게 떠오르게 상황을 아주 잘 요약했습니다.
내 필통
채희성(2-1)
내 필통은 갈곳 없는 볼펜들의 종착점
갈곳 없는 볼펜은 다 내 필통으로 온다.
교실에 굴러다니는 볼펜도……
복도에 굴러다니는 볼펜도……
내 눈에만 띠면 전부 다 내 필통으로 모여든다.
그래서 내 필통에는 내 볼펜 조금.
줏은 볼펜 하나 가득.
우리가 자랄 적에는 연필도 귀했고 볼펜은 더더욱 귀했습니다. 그래서 보통 잉크를 펜촉으로 찍어서 썼지요. 그런데 잉크는 병에 담겨서 가지고 다니면 아주 불편합니다. 깨지는 수도 있고 엎질러지는 수도 있고, 또 펜촉은 너무 날카로워서 찔리는 수도 있습니다. 연필 같은 경우에는 쥐고 쓸 수 없을 정도로 짧게 닳으면 볼펜깍지에 끼워서 썼습니다. 종이도 그렇습니다. 그때는 질도 나빴고 귀했습니다. 교과서도 몇 해를 건너면서 빌려다 보아야 하던 시절이었으니까요.
그런데 요새는 물자가 너무 흔해서 탈입니다. 연필은 절반도 쓰기 전에 잃어버리기 일쑤이고, 볼펜 종이 말할 것도 없습니다. 학생들이 돌아가고 난 교실에 가보면 볼펜이나 공책 따위는 쉽게 주울 수 있습니다.
이 학생은 볼펜을 줍는 버릇이 있는 모양이지요? 자신의 그런 습관을 잘 묘사한 작품입니다. 옛날 같으면 남의 볼펜을 주워서 자기 필통에 넣기 쉽지 않습니다. 도둑놈으로 몰릴 테니까요. 그런데 요즘이야 물자가 흔한 세상이니 설사 다른 사람이 가져간다 해도 그거 돌려달라고 할 사람 거의 없을 것입니다. 흘린 것이니 말이죠.
이와 같이 자신의 습관을 소재로 표현하는 것도 중요한 재미입니다. 그래서 늘 자신의 버릇이나 생활을 꼼꼼히 살피는 것이 시를 잘 쓰는 지름길입니다. 시는 주변에 대한 관심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3년 마지막 행의 <줏은>은 <주운>이 맞겠지요? 그러나 이런 거 함부로 따지면 안 된다고 아까 말했죠? 그 사람의 말버릇이라고 봐도 되기 때문입니다. 시에서는 개인의 그러한 소소한 버릇까지도 존중해주어야 합니다.
우유
길영근(2-1)
월 화 수 목 금 토
매일 매일 나오는
매일 우유
화요일엔
정근이 얼굴처럼
검은 초코 우유
금요일엔
소풍을 가고 싶던지
피크닉 우유
우리 학교엔
언제나 3가지 맛!
우유가 찾아온다.
요새는 학교마다 거의 우유를 먹습니다. 옛날에는 상상도 못하던 일이지요. 면장 아들이라든가 아니면 최소한 양조장 주인의 조카쯤은 되어야 먹을 수 있는 음식이었습니다. 그런데 우유 역시 흔한 것이 돼놓으니, 이젠 잘 먹으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학생들이 돌아간 뒤에 교실에 가보면 교탁에는 꼭 우유가 몇 개씩 남아있습니다. 그 만큼 흔한 것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각 학교에서는 성장기에 있는 학생들이 우유를 먹도록 갖가지 꾀를 냅니다. 그 중에 좋은 것이 입맛을 당기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흰 우유를 주다가 어떤 때는 딸기 우유, 초콜렛 우유같이 다른 맛이 나는 우유를 주기도 하지요. 어떻게든 먹여보려는 선생님들의 노력입니다.
이 시는 그렇게 해서 배달되는 우유를 보며 장난삼아 쓴 것입니다. 매일 우유, 초코 우유, 피크닉 우유. 이렇게 오는 우유 이름을 갖고 나름대로 해석을 붙여본 것이죠. 매일 오니까 <매일 우유>, 초코 우유는 밤색이니까 친구의 얼굴색을 닮아서 <초코 우유>, 피크닉에서는 소풍을 연상하고는 <피크닉 우유>, 모두가 친근하고 엉뚱한 생각입니다.
발상이 참 재미있지요? 그런데 잘 보면 비유도 있어서 시 전체의 균형을 잡고 있습니다. 그런데 전체의 흐름은 매일 공급되는 우유에 대해서 쓴 것이기 때문에 비유에서 다루지 않고 이 단원에서 다룬 것입니다. 이렇게 재미를 느끼면서 시를 쓰다 보면 나중에 저절로 훌륭한 작품을 쓸 수 있게 됩니다. 그전에 여러분이 해야 할 일은 이렇게 생활 주변에서 재미있는 시의 소재를 찾는 일입니다.
처마 밑 고드름
노은희(1-1)
언제 녹아서 고드름이 되었는지
처마 밑엔 고드름이 줄지어 서있다.
누가 더 키 크나, 누가 더 뚱뚱하나
대결하기 바쁘다.
제일 큰 고드름은 뽐내다가
어느 개구쟁이의 손에 떼어지고
두 번째로 큰 고드름도 뽐내다가
두 번째 개구쟁이의 손에 떼어진다.
이렇게 처마 밑의 고드름들은
개구쟁이 손에 하나 둘씩 떼어져 간다.
언제 녹아서 고드름이 되었는지
처마 밑엔 고드름이 줄지어 서있다.
이 시에도 역시 비유가 나오지요? 그렇지만, 비유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고드름을 보고서 그것을 관찰했다는 것이 이 시의 장점입니다. 고드름은 추녀 끝에서 땅 쪽으로 자라지요. 추울수록 굵기도 굵어지다가 햇빛을 받으면 물을 뚝뚝 흘립니다. 아이들이 이것을 신기하게 여기고서는 똑똑 떼어서 먹기도 하고 차버리기도 합니다. 그런 과정을 눈에 보이는 대로 정리하여 적은 것이지요. 어른들의 눈에는 보일 리 없는 현상입니다. 세심한 관찰이 이룬 일이지요.
그림
정윤섭(3-1)
하얀 백짓장 위에
색색깔로 그림을 그린다.
살색으로 얼굴을 그리고
검은색으론 머리를 그리고
파랑색으로는 옷을 그리고
회색으로 바지를 그리면 나의 모습 완성
옆에서 누군 줄 모르는 사람을 그리고
그 사람을 향해서 빨간색을 날린다.
누군 줄 모르는 사람이 나를 보고 웃는다.
그 사람이 누굴까?
다음 장으로 넘기고 그림을 한 장 더 그린다.
이번엔 그 사람이 보인다.
누구지?
아직 내가 모르는 사람
그 사람이 나에 사랑에 상대
그 사람의 색깔을 모르겠다.
나는 사람에 색깔을 모르는 아직 애송이다.
사춘기 학생이면 누구나 이성에 대해서 사랑을 느낍니다. 대부분 그것이 부끄러운 것인 줄 알고 숨기지요. 그리고는 혼자서 끙끙 앓습니다. 표현력이라도 좋고 배짱이라도 좋으면 과감하게 자기감정을 표현하면 되는데,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그것도 여의치 않습니다. 그래서 속을 속 태우지요. 그런 감정을 시로 쓴 것입니다. 그것을 그림에다 비유를 했고, 그림을 보면서 완성하고픈 사랑을 노래한 것입니다. 사춘기의 섬세한 감수성이 아주 잘 나타난 경우가 되겠습니다.
시험
김영주(2-1)
시험은 나에게 어려운 문제
시험을 보면 틀릴까봐
마음이 콩닥콩닥.
풀고도 걱정되어 또다시 풀어보고
수학시험을 보면
내 마음은 긴장하듯
시험은 왜 어려울까?
아이들은 고민하네.
틀린 문제 싫어
시험을 부모님께 보여 주면
부모님이 나에게 하시는 잔소리.
자, 이 시는 학생들의 절실한 고민을 담은 시지요? 무슨 기법이나 기술을 가지고 쓴 시가 아닙니다. 성적을 두고 걱정되는 생각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입니다. 그저 시험 때문에 애간장 타는 심정을 있는 그대로 적은 것이지요.
이렇게 자신의 심정을 직접 말하듯이 쓰는 방법이 있습니다. 마음이 간절할수록 시는 감동을 줍니다. 아주 많은 시들이 이 방법에 의존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