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기향
엄유진(안양예고 1)
초등학교 1학년 정식이,
늦게까지 학교에 남아
친구들과 얼음땡을 하고 들어와서는
얼굴과 손, 발에 물만 대충 묻히고 잔다
땀냄새 때문에 극성을 부리는 모기 소리에
찡얼대며 일어난 준식이는
미색바탕에 백합 무늬가 그려져 있는
이빠진 접시 위에 모기향을 피워
동생 머리맡에 놓는다.
그래도 형이라고.
2003년 경남대 제32회 전국고교생 한마백일장 운문 장원
이 시의 방법은 아주 간단합니다. 한 형이 동생을 위해 모기향을 피우는 사연을 동작이 이어지는 대로 묘사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시를 시답게 해주는 것은 마지막 구절입니다. 그렇게 하는 이유를 맨 마지막에 제시함으로써 앞에서 무심한 듯이 묘사해온 구절들을 한 순간에 시로 만들어줍니다. 그럼으로써 동생을 생각하는 형의 마음을 아주 잘 나타냈습니다.
이런 시를 보면 좋은 시를 쓰는 것은 글재주가 아니라 주변의 사소한 일들에 대한 관심과 관찰력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이 시에서도 특별히 엄청난 기교나 재주가 사용되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동생을 생각하는 한 아이의 행동을 관찰하여 그것을 시로 써볼 생각을 한 계기가 좋은 시를 낳는 계기가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이 말을 이 학생이 시를 쓰는 재주가 부족하다는 뜻으로 받아들이면 안 되겠죠? 이 상황을 이만큼 간략하면서도 필요한 말들만 골라 쓸 줄 아는 것도 아주 대단한 능력입니다. 그리고 오랜 연습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죠.
앞서 살펴본 두 방법, 즉 1)빗대어 쓰기와 2)그리듯이 쓰기는 나름대로 기술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이 세 번째 방법인 직접 말하기 수법은 특별한 기술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살아가면서 느낀 점을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쓰면 됩니다. 물론 어떻게 쓰면 시가 단단해지고 군더더기 없이 자기의 생각이 잘 전달될 것인가 하는 것을 익히고 연습하는 숙제가 남아있습니다만, 달리기 연습을 많이 한 학생이 잘 달릴 수 있는 것처럼 그것은 많은 작품을 쓰면서 조금씩 숙달시켜 가면 될 일입니다.
금강산
글 깨나 한다는 사람치고
읊지 않은 사람이 없고
그림 깨나 그린다는 사람치고
그리지 않은 사람이 없다.
그런 작품을 위해 나도
기꺼이 절망의 순간을 맞고 싶다.
하지만 내가 걱정하는 것은
조화옹의 손길 앞에서 절망한 나머지
시 한 구절 읊조리지 못하고
그냥 돌아서는 것이 아니라
그리움이 너무 긴 나머지
막상 보았을 때 조화옹의 솜씨가
그 동안 꿈속에서 그려낸
내 작품만 못하면 어쩌나 하는 것이다.
이 작품은 순전히 생각만으로 썼습니다. 비유도 없고 상징도 없고 이미지도 없습니다. 그냥 금강산을 생각하는 마음뿐입니다.
금강산은 우리나라, 아니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산이지요. 그런데 분단으로 인해서 남쪽에서는 가볼 수 없는 땅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래서 금강산에 다녀온 옛날 분들한테 금강산 칭찬을 들으면서 나름대로 금강산을 머릿속에 그려봅니다. 너무 오랜 세월 동안 가장 아름다운 형상으로 금강산을 마음속에 만들었습니다. 분단의 세월이 깊어가면서 그 그림 역시 화려해지지요. 한 사람의 상상력을 최대한 가동해서 그렸으니까요.
그러다가 몇 해 전부터 북한 금강산을 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배를 타고 가기도 하고 얼마 전부터는 육로로도 가지요. 그래서 지금은 갈 수 있는데도 이제는 겁이 나는 겁니다. 만약에 ‘내가 생각한 금강산보다 실제 금강산이 못하면 어쩌나?’ 하는 엉뚱한 생각이 나는 겁니다. 오랜 분단이 사람의 마음속에 만들어놓은 상처지요. 이런 상태를 있는 그대로 생각 따라 적은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만을 적어도 시가 된다는 것을 말하려고 이 작품을 소개했습니다.
이 작품은 비유나 이미지가 없이 생각으로만 썼습니다. 그러나 이 방법이 꼭 순수하게 생각만으로 쓰는 것은 아닙니다. 자기의 생각을 직접 말하는 방법으로 시를 쓰더라도 그 안에 이미지도 나타나고 비유도 나타나도록 하는 것이 더 흔한 방법입니다. 한 번 보겠습니다.
몇 년 전에 우리 가족이 서울 나들이를 간 적이 있습니다. 방학을 이용해서 아이들이 좋아하는 롯데월드를 가서 놀다 오자는 것이었지요. 그래서 기차를 타고 청량리역에서 내려서 잠실 가는 지하철을 탔습니다. 저를 포함해서 아내, 그리고 아이 둘, 해서 모두 넷이었습니다. 낮이어서 그랬는지 자리가 비는 바람에 우리 넷은 나란히 앉았습니다. 몇 시간 기차에 시달리다 보니 피곤했는지 옆에 앉은 아내가 꾸벅꾸벅 졸다가 제 어깨에 머리를 대는 겁니다. 곧 이어서 아이들도 엄마 옆구리에 끼여서 졸더구만요.
그런데 저는 졸 수가 없는 겁니다. 넷 중에 행선지를 아는 사람은 저뿐이고 만약에 제가 졸다가 역을 지나치면 낭패를 볼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졸음이 쏟아지는데도 저는 졸지 않으려고 애를 썼습니다. 마음속으로 내려야 할 역을 꼽으면서 기다렸지요.
그런데 그 순간 묘한 생각이 떠오르는 겁니다. 이거 상황이 꼭 제가 살아가는 것과 똑같은 것처럼 느껴진 것입니다. 남편이라고 아빠라고 한 가족이 저를 따라나섰는데, 저 자신도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인지 잘 알 수 없고, 그러면서도 한 가족을 이끌고 그들을 어디론가 데려가는 제 처지가 생각난 겁니다. 순간 순간의 내 결정에 따라서 이들의 삶도 바뀔 것입니다. 이 얼마나 묘한 상황입니까? 사는 게 뭔지도 모르고 흘러가는 것이 내 인생인데, 그런 인생에 또 다른 인생 여럿이 딸려서 지금 어디론가 가고 있는 것입니다. 갑자기 가슴이 콱 막히면서 막막해지더구만요. 눈시울이 뜨거워졌지만, 나이 마흔 아저씨가 어디 울 수가 있나요? 한 동안 고개를 떨구고 있는데 머릿속에서 갑자기 시의 회로가 작동하기 시작하더군요. 그래서 담담히 속으로 이 시를 썼습니다. 그리곤 집에 와서 정리했지요.
지하철에서
그 붐비는 지하철 안에서 운이 좋게도
우리 식구 넷이서 나란히 앉았다.
잠시 후 아이들이 졸고,
양쪽 옆구리에 아이들의 몸을 받친 아내도 존다.
롯데월드 가는 길,
나는 잠이 오질 않는다.
우리 식구가 누릴 한 때의 즐거움을 향하여
지하철이야 잠실에서 끝나겠지만,
그곳에서 끝나지 않을 또 다른 길이
문득 떠올랐기 때문이다.
살아갈수록 길은 험하고 흐려지는데
방향을 물어도 분명해지는 건 없고
캄캄한 창 밖은 불빛이 번뇌처럼 스쳐간다.
종착점과 방향을 분명히 모르는 한 가장과
그 가장을 철썩 같이 믿고 따라나선
곤한 식솔들을 태우고 지하철은
덜컹거리는 어둠 속을 달린다.
롯데월드 가는 길
간간이 서는 간이역을 잊은 채
식솔들은 곤히 잠들고
나는 잠이 오지 않는 지하철에서.
비유도 나오고 이미지도 나오지만 시의 중심이 되고 있는 것은 지하철을 타고 롯데월드를 찾아가던 체험입니다. 이 체험의 과정에서 깨달은 내용을 독자들이 알기 쉽게 설명해준 것입니다. 이렇게 직접 말하기의 수법으로 시는 써집니다.
<직접 말하기>라는 창작 방법을 마치기 전에 확인하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습니다. 말하기는 누군가 듣는 것을 전제로 하고 속삭이듯 쓰는 것입니다. 산문 중에서 그러한 방법으로 쓰는 것이 바로 <편지>입니다. 따라서 편지의 어법을 시에서 활용하면 아주 좋다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예를 보겠습니다.
해바라기의 사랑
최희정(제천상고 2)
당신의 뒷모습에서
빗물이 묻어납니다.
그리하여
당신의 형태를
흐리게 하고
내 마음을 흐리게 합니다.
언제나
뒷모습만을
바라보며 서 있는
기다림의 마음을,
그것만으로도
행복과 슬픔을 모두
느낄 수 있는
해바라기의 사랑을
당신은 모르십니다.
바람이 세차어도
꺼지지 않을
촛불 하나 가지고 있지만
당신에게서
묻어나온 빗물에
내 가진 촛불 하나
슬픔으로 가물거립니다. 이젠
돌아서서 날
보아주지 않으시렵니까?
사랑하는 사람에게 쓴 편지의 투를 흉내 낸 시입니다. 누군가에게 말하는 형태로 쓰였지요? 물론 이 시의 원리는 비유를 활용한 방법입니다. 해바라기는 해를 바라보면서 삽니다. 해와 해바라기의 관계를 사랑하는 사람과 나의 관계로 바꿔놓고서 쓴 시이지요.
그런데 여기서 설명하고자 하는 것은 그 비유가 아니라 말투입니다. 편지에 쓰이는 말투로 쓰면 시를 쓰기가 굉장히 편합니다. 그래서 어떻게 시를 써야 할지 막막할 때는 편지투를 사용하는 것도 좋습니다.
신혼 초에 주말부부를 한 적이 있습니다. 일요일 날 새벽에 떠나서 토요일 날 오후에 오는 것이죠. 사랑하니까 함께 살자고 하는 것이 결혼인데, 결혼을 하자마자 떨어져서 일주일에 한 번 보니 얼마나 애절하겠어요? 월요일마다 아내는 눈물바람입니다. 그런 아내를 보는 저의 심사는 어떻겠어요. 감정이 북받칠 밖에요.
그런데 현실이 현실이다 보니 아내를 위로해야 할 방법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가끔 편지를 썼지요. 그런데 감정이 애절하다 보니 써놓은 편지를 읽어보면 시 같은 거예요. 그래서 이참에 시를 쓰자 마음을 먹고 그날 그날의 느낌을 시로 썼습니다. 그리고 날마다 그것을 엽서에 적어서 보냈습니다. 아내가 무척 감동하더군요. 그러면서 그 어렵던 시절을 건넜습니다. 옛날에 냈던 시집에서 두 편만 소개합니다.
완행열차
좌석표가 이미 매진이 되어
하는 수 없이 완행열차에 올랐습니다.
긴 의자 두 줄뿐인 맨 뒷칸으로 가니
텅 빈 것이, 속도에 떠있는 것은
덜컹거리는 고요와 나 혼자 뿐입니다.
느긋한 마음에 늘어질 대로 늘어져
긴 의자에 네 활개를 펴고 누웠습니다.
세상이 이렇게 편할 수 없습니다.
당신에게 가는 길은 언제나
이렇게 마음 편하면 좋겠습니다.
마음의 허리띠를 한 칸 늘여놓고
돌아갈 그 어떤 곳이 있다는 것은
이 각박한 세상에 당신이 내게 내린
커다란 축복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투명한 햇살과 시원한 봄바람이
열린 창으로 손뼉 치듯 쏟아집니다.
이 시는 정말 편지 그대로지요? 일요일 날 아내를 헤어져서 돌아오다가 기차를 타고서 느낀 것을 있는 그대로 적은 것입니다.
꽃
아름다움이란
개나리, 튜울립, 장미 같은 꽃들을 염두에 둔 말이지요.
그러나 복숭아, 살구 혹은 사과나 배꽃도
그에 못지않게 아름다운 것들임을
이 아침 과수원 길에 잠시 서서 깨닫습니다.
목적에 가려진 아름다움이라고나 할까요.
그래서인지 삶의 그늘에 가려진 아름다움을
어느 날의 당신에게서 문득 발견하고는 소스라치게 놀라듯이
아름다움이 목적인 꽃나무들보다 더 아름다운
과일나무의 꽃들 앞에서 감탄사를 연발하는 아침입니다.
꽃이 지면 그저 풀일 뿐인 꽃들과
가지마다 풍성한 가을의 예감을 매달고 있는
과일나무의 아름다움을 잠시 생각하곤 이 시간
생활의 먼지 속에 가려져 있을 당신의 빛과
풍성한 당신의 사랑을 생각했습니다.
여기에는 비유가 주축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비유 얘기를 하자는 것이 아니라 편지투로 된 방식을 말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 점을 살펴보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