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평설>
서정성의 동일화와 ‘조각보시’의 양상(樣相)
-이하 시인의 시적 구조와 매혹적 형사(形似)
엄창섭(가톨릭관동대 명예교수, 월간「모던포엠」주간)
1. 시적 구조의 대응과 감성의 일상화
특정한 정신작업 종사자의 ‘시 읽기와 감상’에 앞서 30여 년 전 제주도에서 개최된 전국대학교 교무처장회의에서 평자와는 공적인 만남이라 지나쳤다. 그러던 차에 2018년 9월 월간『모던포엠』의「모던포엠 초대석」에서 「이중구조의 시적 감응과 서정적 개아(個我)-이하 시인의 시적 행간의 틈새 좁히기와 순환」에서 그의 시론을 ‘일상의 서정성과 시적 대응’으로 정리한 계기가 주어졌다. 한편 지난 2019년 6월 경동대학교 국제회의실에서 재학생 대상으로 『감동의 느낌표와 아름다운 삶의 잠언』주제의 문학특강을 통해서 다소 소원했던 관계가 회복되었다. 또 하나 일관된 집념으로 그 자신이 오랜 날 추구해온 ‘8음보 조각보시의 동일화 양상의 자리매김’은 신세훈의 지극히 창의적인 민조시(民調詩)처럼 우리현대시단의 신선한 충격이다.
특히 <꽃 1~12/ 조각보시>를 포함한 시편을 이 땅의 독자들에게 거부감 없이 새롭게 관심을 일깨워준 이하(李夏, 본명 이만식) 시인은 경북 영주태생으로 한국문단으로부터 “사상과 서정의 미묘한 선상에 완성된 미학적 시세계를 구축했다.”라고 검증받은 자존감 빛나는 실체이다. 새삼 문학외적인 정황이지만 “좀 더 시다운 시가 되려면 기존관념에서 벗어나 세계를 달리 보고자 늘 깨어 있어야 한다.”는 객관적 자술(自述)은 해법의 차별화된 모양새다. 어디까지나 한국시단에서 ‘정립되지 않은 한국의 짧은 시 장르를 ‘한국의 8음보 이하의 짧은 자유 시형’으로 결론 맺고 하이쿠에 대응하여 ‘조각보시’라는 시집출간은 그 양식이 더없이 특이하다.
그 자신의 처연한 삶의 지문(指紋)에 해당하는 시적 수사는 멕시코의 문인출신의 외교관 옥타비오 파스의 “언어는 리듬이 되려고 하는 본래의 경향을 갖는다. 마치 신비스러운 중력의 법칙에 따르기라도 하는 것처럼, 말들은 자발적으로 시로 돌아간다.”는 주장처럼 바람의 초상에 빗대어 언어의 응결체가 시적 상상력을 작동시켜 현대시의 이중구조를 적절히 처리한 실례다. 각론하고 “내성천 물길에 씻긴/갈포 한 타래(어머니 등에 칡덩굴 한 타래가 있다)”의 보기에서 ‘달(月)’은 빛의 상징으로 화자의 정감을 유발하거나 동일시하여 그 틈새를 좁혀주는 매개물로 작동된 객관적 상관물로, 자잘한 일상의 느낌과 감응을 극대화시킨 정신작업의 결과물이다. 모처럼 애씀과 집념을 통해 생산된 결과물은 보람과 감사, 감동을 안겨주는 매개로 작용하기에 그만의 시적 작위(作爲)는 정치(精緻)한 심성의 드러남이다. 이처럼 잘 다듬어진 목관악기에서 쏟아내는 투명한 음계는 시적 치유의 가능성을 역동적으로 수용한 실재성에서 응당 그의 시사는 체계적으로 정리될 것이나 한편 시학의 예술성은 혼재된 창조물에 해당한다. 그렇다. 인간심리의 잠재적 가능성의 결과로 짐짓 원형(archetype)의 관점에서 ‘무덤’의 이미지는 모태의식인 ‘어머니의 대지’로, 무의식이 지배하는 깊음의 공간은 창조의 질서가 예비 된 처소이기에 에드워드 호퍼(Eward Hopper)의 시선이 닿은 모든 대상과 공간이 사각형으로 이루어지듯 무미건조한 사각형에 익숙한 현대도시 위로 햇빛이 쏟아지는 ‘사각형 유리창 너머에 앉은 소통하지 못하는 사람’은 숙고할 과제다.
비록 조락(凋落)의 계절일지라도 “갈바람에 눈빛이 선하다./그런 나무가 그런 나무에게/임자는 아직 곱소하고 말한다.(노인의 벤치)”에서 시적 상상력을 한층 확장할 수 있듯이 환경론의 선구자인 레이첼 캇슨이 『침묵의 봄』에서 ‘새가 사라진 거대한 숲의 침묵을 상상하여 볼 때’, 한순간 우리를 엄습하는 불안과 초조, 그리고 공포의 구속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하나의 도구로 시작(詩作)의 분할에 접근하여 잠시 영혼의 잠식에 머무는 생명적인 행위는 지극히 합목적적이다.
2. 담백한 시격과 매혹적 형사(形似)
이하 시인의 처연한 삶의 지문(指紋)에 해당하는 응결체가 시적 상상력을 작동시켜 “연못으로 고개를 돌려/붕어를 보니/물위에 떠있는 나를/뒤틀고 있었다.(역(逆) 3)”의 보기나 또는 화자가 처한 삶의 현장으로 지구상의 유일한 분단국의 현주소인 “철원에 가면 어떨까 궁금하였다. 아마도/지도책을 몇 번 뒤져보아도(고성(高城)에는 고성이 없다-‘고성’ 교통표지판을 보며)”를 통해 알맞은 정신기후의 조성과 시적 의미망 확장을 현대시의 이중구조로 적용하고 있다. 그 같은 점에서 한국전쟁(The Korea war) 당시의 종군기자였던 마가렛 히긴스가 참혹한 전장의 혹한과 기아 속에서 들려준 “give me tomorrow."라던 미국병사의 절규에 저려오는 가슴이다. 고통을 통해서 얻어진 것이 진실하듯 “우리가 덧없이 흘려보낸 오늘은 앞서간 어제의 그들이 그렇게 소망하던 내일이었다.”는 소포클레스의 생명외경에 대한 가르침은 새로운 일깨움이다. 그렇다. 불안감이나 어두운 그림자는 ‘증오, 시기, 불투명’ 등의 부정적 요소인 모순성을 말끔 씻겨내기 위한 시의식의 변주는 간과치 말아야 한다. 까닭에 상징의 숲을 거니는 시인은 사회적 생태론의 창시자 머레이 북친의 지적처럼 생태위기를 벗어나려면 인간중심주의의 경계를 무너트려야 한다. 이처럼 차고 처연하되 담백한 그만의 시격은 고통을 눈뜨게 하는 빛나는 응결체로 작동한다. 모처럼 서정성이 내재된 시편에 수용된 현대인의 불안의식과 감각적 표현 에 내면인식의 중량감이 더해지고 눈부심이 주어짐은 목가적 서정성에 연유한 탓이다.
5. 너는 나를 보고 핀다 하지만/나는 너를 보고 피는 걸 - 달, 달맞이꽃에게//
7. 가만히 보면 꽃은 꽃을 베꼈나 봐./꽃잎은ㄲ/꽃가지ㅗ/그 뿌리ㅊㅡ하늘나리//
10. 바람의 꼬리가 지나갔다./그 자리에/네가 서 있을 것 같다.ㅡ코스모스//
-<꽃 1~12/조각보시>에서
그간에 현실적으로 자유시 형식으로 짧은 시를 창작하고 있음에 적절한 명칭과 범위가 확정되지 않은 정황에 비춰 비로소 이하 시인에 의해 그 효시로 ‘한국의 8음보 이하의 짧은 자유 시형’으로 체계화되었다. 차제에스위스의 문예학자인 에밀 슈타이거(E.Steiger)는 서정의 본질을 회감(懷感)으로 정의하면서, ‘시인은 자연을 회감하고 자연은 시인을 회감한다.’라고 제시하였듯 시적 자아에서 분출되는 서정감은 동일성에 합일된 자연과 인간, 그리고 사물에 대한 주체의 동일자적 욕망의 산물로의 인식이다. 따라서 동일자적 욕망으로 타자를 왜곡시킬 수 있는 점과 타자 중심의 사유를 관통해 공감의 영역을 확장시킬 수 있는 가능성의 추이는 짐짓 파악될 것이다.
‘지극히 현대적임을 자처했던’ 독일의 시인·수필가인 고트프리트 벤이 “시는 시작하기도 전에 이미 완성된다. 무릇 작가는 그의 텍스트를 아직 모를 뿐이다.”라는 지적을 저마다의 분별력으로 가늠될 바다. 또 한편 ‘순진무구한 마음을 지키기 위한 시적 작위에 몰두하며 상처받고 소외된 이들을 치유하며 실존적 상황과 치열하게 대면하는 시인’으로 평가해도 지나치지 아니할 그만의 진정성 있는 술회(述懷)는 일맥상통하는 조짐이다. 특히 “낙엽이 지는 날은/바람이 불어야 해.//(낙엽이 지는 날은)”의 보기나 ‘아직도 뻐뻐꾹뻐꾹 눈물 흥건한 안부’는 ‘에미 애비 해준 거 없어도 잘 지내라.’ 이처럼 따뜻한 일상의 서정적 자아로 한 폭의 무채색 수채화는 정신풍경화로 클로즈업되기에 “뒤뜰 애기 감이 자라기는 이른 초여름/네 울수록 지붕 그늘도 작아졌다.(뻐꾸기 울음 인제야)”에서 시적 정조는 눈물겨울뿐더러, 시적인 모티프이며 열린 우주로의 지평을 열어 보인 합일의 공간으로 ‘하늘의 의미는 즉, 천(天)과 공(空)이라는 이분법적 구분이다. 까닭에 현대시론에서 이중구조란 ‘새로운 느낌을 일으키는 상징적 기능의 물체’인 오브제(objet)를 수용하는 구조 또한 유의미하다.
각론하고 잠시 ‘홀로 있기’라는 깊은 사유를 필요로 할 때, 그 자신이 ‘평면을 놓아버린 도시와 가시철조망을 잊은 채’ 생명의 씨앗을 파종하는 농부의 보폭으로 거닐며 “네 서글서글한 세상/반쯤 감으며/눈으로 들어야 한다.(화진포 바다에 오면)”에서 모처럼 확인되듯 ‘은빛 바다의 침묵’을 감지하는 따뜻한 감성은 차원을 높여 영성(靈性)으로 관통하는 통로이며 삶의 여적이다. 그렇다. 시의식의 다양성을 허드슨(W.H.Hudson)이 “시는 상상과 감정을 통한 인생의 해석임”을 지적하였듯 그의 시편에서 시적 감응의 보기라면, 짧은 호흡처리로 ‘화진포 바닷가를 거니는’ 천재일우의 연(緣)이 닿기에 시적 행보 역시 알맞은 정신기후를 조성시킨 정신적 행위이다.
3. 열린 우주의 통로 찾기와 시적 치유
극소수의 인문학자들이 표현인문학을 주장하지만 일단 시 창작의 실제와 이론에 관심을 보이는 독자들에게 하나의 작은 일깨움을 안겨주려는 창조자로서의 한결 같은 소임은, 이질감을 공감케 하여 이중적 거리의 틈새를 허락하지 않는 일이다. 일단 시 창작에 있어 주제의 선명성을 확증 짓기에 있어 현대시의 창작을 위한 다양한 시적 이론의 실험성 또한 우리시단의 토양에서 동일화의 양상으로 시의 본질인 서정시의 틀에서 포스트 모더니즘적 시 짓기는 철저하게 이행되어야 한다.
한 편의 시가 상상과 감정을 통한 생명의 재해석임은 그렇지만 미국의 20세기 현대시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결과로 '시인의 시인'으로 일컬어지는 에즈라 파운드가 “많은 양의 작품들을 내놓는 것보다 일생에 걸쳐 하나의 이미지를 제시하는 것이 낫다.”고 강력하게 시사(示唆)하였다. 모처럼 언어공해가 심각한 삶의 일상에서 생명기표로 고뇌의 밤을 지새우는 뜻있는 이와의 만남은 감동을 회복시켜줄 동기부여다. 한편 불확실한 시간대에 그 자신의 시편을 접하는 일순간 세월의 격랑에 흘려버린 아득한 기억들은 가슴 저며 오는 일상화의 양상은 신선한 충격이다.
무엇보다 현대인의 존재론적 불안 심리는 특정한 시인의 정신적 생산물의 형성과정에서 내면인식과 결부된 시적 응시와 자아의 변주에서 비롯한 자연이법을 거스르지 아니한 결과로 풀이된다. 짐짓 ‘비킬 뿐 산은 산을 가리지 않는다.’는 시적 발상에 의해 “은밀히 강바닥으로/무릎을 맞대어, 그저/그 자리에 있었다.(산은 산을 가리지 않는다)”는 행간을 좁혀가는 적당한 거리두기가 다소 호흡이 긴 산문시 형태로 “산 너머 너머 호랑이 보았노라고 붉은 수숫대처럼 술렁거렸대. 그날 그해부터 수수밭 대궁이란 대궁 속이 붉었고.(설화의 형성 1–문수골 교통사고)”에서 점차 가증되는 서사시(Epic)의 구도적 대응은 독자에게 또 하나의 지대한 관심사다.
그 자신의 시편들은 순수서정성의 확립과 생명에의 변주에서 기인된 파동(波動)의 탐색이다. 모처럼 그의 시적 발상은 법심(法心)의 틈새를 열어가다 심부에서 끌어낸 섬세한 정감의 심적 발현은 호소력을 지닐뿐더러 친근한 일면은 한순간의 격한 분노도 평정심을 회복케 한다. 비록 인간은 “날개가 있어서 나는 것이 아니라, 날고 싶은 우리의 욕망이 날개를 만들어낸다.”라는 가스통 바슐라르의 지적처럼 창조적 자아의 성취로 그만의 강한 집념은 타자의 고통을 온몸으로 이겨내며 조응할 공동의 관심사다. 따라서 인류의 정신적 스승인 헤르만헤세가 “작가는 독자가 아니라 인류를 사랑해야 한다.”라는 그 의미심장한 지론처럼 시적 여백의 행간 좁히기와 느림의 시학을 검증하는 과정에서 소중한 연(緣)이 잇닿은 시인과의 뜻있는 조우(遭遇)는 정신기후를 따뜻하게 조성시켜 주기에 묵언의 응시로 관망할 점이다.
결론적으로 시적 상상력을 확장하여 불가능을 가능으로 전이시키는 ‘비공인 된 입법자’인 이하 시인에게 거는 기대감이다. 비록 상처받은 타자와 불확실한 삶의 공간에서 살갗 부비며 따뜻한 감성과 시적 감응은 공유할 점이다. 까닭에최소한 담백한 품격을 지닌 시인이라면 차별화된 어휘와 시의식이 날(刃) 푸르게 깨어있는 자여야 한다. 모쪼록 ‘무사독오(無師獨悟)의 자세’로 견고한 고독을 감내하되 빛과 향이 눈부신 존재의 꽃은 피워내야 할 일이기에 인간의 소중한 생명을 한층 더 사랑하고 배우며 존엄한 영성(靈性)을 끊임없이 검증할 바다.
* 강릉출생, 성균관대학교(문학박사), 「화홍시단」(1965년, 발행인), 「시문학」출신,
시선집 「골고다의 새와 눈부신 약속」, 문화비평서 『사유의 그물망과 시적 감응』 외 다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