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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설 시혼 따라 시조 맥을 찾아
(석우 김 준 의 한눈으로 보는 시조세계)
심상(心象)으로 뚫는 시조 빙하의 숨구멍
송 귀 영 (한국 시조협회 부이사장)
1, 서론
차원 높은 이상을 추구한 창작의 주체가 탈속의 경지에서 우러난 무심의 송가(頌歌)는 현실적인 감각과 예리한 직감으로 고통을 감내한 끝에 튼실하고 이목구비가 뚜렷한 옥동자를 생산하게 된다. 시인들은 천성으로 창조 본능의 혼과 육체의 체험에서 파생되는 잉태를 수용한다. 시인은 자신이 빚은 창작물을 지식으로 치부하여 이에 따른 고통을 출산의 진통으로 비유하는 것은 큰 무리가 아니다. 시인은 자신의 영혼을 부활시키기 위하여 작품을 창작한다. 작품을 빚는 것은 빙하의 두꺼운 얼음덩이를 작가적 정신으로 바다 포유류가 숨을 쉴 수 있도록 숨구멍을 뚫는 행위이다. 이 평설에서 석우에 대한 작가론을 논하는 것이 아직 미숙한 논자가 접근 하는데 한계를 느끼면서도 언급하게 된 기회가 영광스럽다. 10여 년간 상호 교류를 했지만 곁 사리로 알고 있는 그에 대한 첫인상은 인품이 중우하고 후덕한 풍채에 넉넉한 겸양의 미덕이 언제나 존경심을 끌어 들인다는 점이다. 굴곡 많은 인생의 경륜 속에 녹아있는 체험적 요소들로 만월(滿月)의 시상은 감동을 유발시키기에 족하다. 그가 60년대 자유 문학으로 등림하고 1968년도 “도산의 시 정신과 작품 배경 연구” 라는 논문으로 경희대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한 후 서울여자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면서 시조계의 혜성으로 떠오른다. 석우의 시조세계에 대해 제자 같은 시조 단 후배인 필자가 가히 언급 할 수 있을까하는 우려를 금 할 수 없다. 그가 취사선택한 시어는 지극히 부드럽고 한편의 시 속에 수많은 단어들이 서로 낯설지 않게 조화를 이룬다. 가슴속에 깊숙이 깔려있는 사상, 번뇌, 묵시, 자비, 화해의 낱말들을 표방하고자 하는 내적 객관화는 침묵에 함의로 활력을 포괄한다. 시인의 성향에 따라 유사한 언어라 할지라도 그 의미와 내포한 묘미에 취택한 독창적 연금술을 함축한다. 어느 시조시인과는 달리 단 시조의 문학성 고조와 함께 언어를 절재와 형식미에 역점을 두고 있다. 석우의 문학이 보여주는 특징은 사물의 시세계가 자연적 존재 가치로 생멸에 서정을 담보하고 있다. 따라서 인간적 인격을 통해 제시하는 생성극락에 온당한 갈무리로 초점을 맞춘다. 그의 시작(詩作)행위는 자신의 생활주변과 일상에서 체험한 실체들을 의인화하고 자연의 원리에 터를 잡아 순환론의 사유세계로 활강하고 있다. 또한 관념적 소재나 생활주변의 일상적인 것들을 놓치지 않고 생성과 조락을 환유의 원리로 활용하여 인식의 폭을 넓게 잡아 안착 시킨다. 그가 갖는 시간속의 현실과 꿈은 끊임없는 미래로 이어지는 터널을 통과하며 살아온 실제성에 포괄된 삶의 그자체인 것이다. 한쪽 눈이 실명된 신체적 악조건에도 언제나 사계(四季)의 소생력이 눈부시고 황홀하며 심중의 질곡을 스스럼없이 녹여내고 있다. 신비한 시조 힘의 세계에 닿아 있는 그의 생명 현장에 다그치는 황홀감은 흉중을 채우기에 충분하다. 자연과 사계절의 섭리대로 그의 작품에서 풍기는 향기는 인간 정서에 미추를 넘어선 달관의 경지로 안착하고 있음을 감지하게 된다. 석우의 문학에서 그 원리는 사륜구동의 고리를 물고 윤회하듯 인지할 수 있는 손쉬운 현실인식이다. 그래서 긍정적이고 합리적인 시세계의 추구에 몰입하도록 이유를 제시하며 유도하고 있음이다. 선시(禪詩)의 경지까지 도달한 문학의 본질에 여생을 걸고 있는 노(老)시객에 선비 정신의 뒷모습을 겸허하게 바라보고자 하는 당연한 이유이다.
2, 자연과 사계(四季)에 타협하고 순응하는 순수 서정의 미학
기후의 온난화와 산업의 발달에 부수한 난개발로 자연이 주는 특유의 신비감이나 경외감이 자꾸 사라져가는 현실에 안타까운 마음도 있다. 그러나 여전히 아름답고 정다운 우리의 자연이다. 이러한 자연 속에서 석우의 시적 대상이 갖고 있는 본질을 관통하여 투명한 시선 안에 서정의 미학을 발아 시킨다, 육화한 율격과 언술로 세상을 담아내고 있음에 독자들을 주목하게 한다. 자연의 사물을 직시하여 작품을 통한 우리들이 흔히 격을 수 있는 것들에 대하여 은밀하게 다가서며 세밀히 포착하여 정신적인 결정체로 시각화하고 있다. 인간과의 상생에 묘미를 빚어 삶의 모습을 명석하게 각색하고, 심미적 감수성의 수준을 넘어 시조의 본색을 되새기게 한다. 석우가 창작한 작품 속에 한 시대를 살아가는 배경과 사물을 바라보는 시각은 상상력의 종합적인 주옥같은 물량을 시조 곡간에 가득히 채우고 있다. 영민한 시작으로 나타나는 자연의 다양한 색상을 경험한 시어의 발굴과 이에 따른 시재(詩材)의 다각화를 추구한다. 그는 한 작품을 직조하기 위하여 새로운 감성의 오브제(Objet)로 참신성은 물론 풍성한 시어를 거느려 시작의 열성을 생활화 하고 있다. 대부분 우리시조는 서정성에 박힌 뿌리에 자연을 소재로 하는 작품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소재의 상투성을 벋어나 우리의 삶과 직접 연관된 물상들을 구체화하여 다양하게 직유나 비유 또는 은유로 형상화한다. 이제 자연 속 사계절에서 석우의 자연과 봄 색깔이 어떻게 비쳐지는지 음미 해보려 한다.
나무나 풀이거나 꽃이나 잎이거나
돌이나 바위거나 구름에 바람까지
자연은 글자 그대로 스스로가 있는 것.
『자연에 대하여』전문
사물에 자신의 감정을 이입시켜 비유적으로 나타내는 추측은 더욱 성숙한 자아를 추구하는 시인들의 이념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모든 물체의 독특한 이미지를 부각시켜 관념을 형상화 하고 있음은 시인의 지각과 사상, 그리고 관념과 상상력을 자연스럽게 꿰뚫어 보게 한다. 인용한 “자연에 대하여” 에서 화자는 나무나 풀 한포기도 자연 그대로를 사랑하고 돌과 구름 그리고 바람까지 자연을 수용하고 있다. 시조에서 서정이 깊이 뿌리박은 자연을 소재로 하는 작품일수록 인간이 자연을 떠나 살수 없는 연유를 구증한다. 시조의 본질이 단아한 서정성이나 섬세한 감정의 기폭을 돋보이게 함으로써 관념적인 풍조로 그 대상물을 다각화한다. 단순히 자연 친화를 넘어서 속진에 오탁하기 쉬운 자신을 성찰하고 자연과 인간이 동화되어 합일되는 전 과정을 표현함으로써 아무도 범접하기 어려운 한편의 맛깔스러운 작품을 생산해 낸다.
아무런 걱정이나 근심을 갖지 않고
세상을 편안하고 행복을 누리려면
자연의 하나가 되어 살아가는 일이다.
『자연의 하나』전문
자연을 통한 온도를 상승시키기 위해서 청각과 촉각을 뻗어 상상력을 확장하고 사유의 튼실한 뿌리를 탄탄하게 착근 시킨다. 계명과 영감의 빛은 여전히 눈부시고 자연 속 지구는 수명을 다해서 죽어간 별들의 타고남은 재도 수용한다. 자연의 넓은 품에 안기면 무아의 경지에 돌입하게 된다. 오탁한 속세에서 뿌리칠 수 없는 근심이나 걱정은 자연 속에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우리들이 살아가는 과정에서 보다나은 생활로 행복을 누리려면 자연에게 순응하고 타협하는 일이다. 인유한 “자연의 하나”에서 자연과 하나가 된다는 것은 자연과 인간이 온전히 합일 하는 일이다. 자연에 타협 하고 순응하면서 살아가야 한다는 관념의 메시지를 넌지시 던지고 있다.
자연은 우리에게 많은 것 보여 준다
아침 산 오르면서 느끼고 있는 것은
돌멩이 풀 한 포기도 제자리에 있어라.
『돌멩이 풀 한포기라도』전문
하늘에 빛과 어두움의 질량이 거의 비슷하게 느낄 때 쯤 삶의 설렘을 느낄 때가 있다. 지금 우리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느냐에 따라 말과 생각과 태도가 달라지는 놀라운 통찰력을 자연에 섭리를 통해 배운다. 보이는 것만 가진 기억이 우리를 착각하게 하거나 속일 수 있지만 보이지 않는 진실은 속일 수가 없다. 이러한 진실이 자연 속에 매장된 친화의 속살은 무궁무진 하다. 시조의 정형성은 우리 한글과 맛 물려 천(天) 지(地) 인(人)의 원리를 바탕에 두어 초장은 하늘이고 중장은 땅이며 종장은 사람에 해당한다. 시적 영감을 얻고 좋은 시상을 포착하기 위하여 생활주변에 항상 예리한 촉각을 되밀어 남이 보지 않고 보지 못하며, 느끼지 못한 것들을 채광 하는 일이다. 사물을 유심히 관찰하는 자세는 항상 그 사물이 어떤 형상으로 무슨 이미지를 풍기는지 요모조모 따져 살펴보고 돌멩이 풀 한포기라도 제자리에 있어야 한다는 질서의 법칙을 인식한다. 이러한 식견은 자연을 통한 물체의 내면에 담긴 속성까지 꿰뚫어 보라는 교시를 하고 있다.
산 내린 바람결도 조금씩은 달라지고
입춘이 지나가고 이른 봄날 오려는지
산보다 높게 앉았던 잔설들이 사라졌다.
『이른 봄』전문
이른 봄은 대기만성의 미학을 발현시킨 사계절 속에 으뜸이며 백미인 것은 분명하다. 절기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는 포근한 날씨가 늦겨울을 물리치고 이른 봄을 불러들인다. 지난겨울 내린 눈이 양지쪽에만 녹고 응달에는 아직 잔설이 남아있어도 이른 봄이 성큼 다가서는 자연의 섭리를 누가 막겠는가. 초봄에 싹을 틔운 잡풀들의 생명력은 불가사의한 수준인데, 우리 인간들은 또한 풀들과 다름이 없다. 자연 속에서 이름 모를 풀들과 어울려 살면서 하늘을 바라보고 세상 이치에 살을 비빈다. 인생에 궂은일이 일어나면 어김없이 호명되어 맨 앞자리에 서야할 신세이다. 도시의 빌딩 숲속에서 매일 숨 가쁜 삶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피로에 지친 모습에서 자신을 만나고 스스로를 실종 시킬 때 화사한 봄의 전령은 필경 삶의 활력을 불어넣어 줄 것이다.
하늘엔 흰 구름이 꽃처럼 피어나고
새로운 생명들이 부활을 맞고 있어
스스로 봄 길이 되어 내가 가고 있어라.
『봄 길이 되어』전문
겨울 끝자락을 덧씌우고 얼음 밑을 조용히 흐르던 냇물은 자연의 명령에 따라 봄의 소리를 머금고 흐른다. 적어도 한 두어 달쯤 세월을 먼저 끌어당겨 따스한 봄을 맞이하고 싶은 마음 이다. 귓속과 눈으로 봄의 울렁거리는 소리를 듣고 본다. 대지는 간지러워 수물 대고 기지개 켜는 소리까지 수군덕거리며 지표에 번지는 두드러기로 봄볕을 긁어댄다. 개울이 봄빛을 담고 수즙은 향기를 내뿜으며 서서히 산야를 누비고 계곡 아래로 흐를 것이다. 겨울잠에서 눈을 슬그머니 뜨면 어느덧 버들강아지들이 파란 새싹을 틔우며 조곤조곤 머리를 내민다. 위에 인유한 작품 “봄 길이 되어”는 봄이 오면 화자 자신과 함께 새로운 생명의 부활을 맞는다. 겨울 내내 움츠렸던 몸을 쫙 펴고 살갑게 다가서는 이 계절에 사랑하는 연인과 손잡고 어디든 가고 싶어 한다. 우수의 등을 떠밀고 경칩이 봄볕을 낚아챈다. 깍지 손을 끼고 기지개를 켜면 새순 돋는 소리가 들린다. 햇볕은 봄기운을 있는 대로 한껏 북돋아 주며 광합성을 데워 놀라운 호흡에 심장 박동을 최대 눈금으로 끌어 올린다. 만물이 서로에게 생명을 움직이게 하여 공생하는 모습을 보는 화자가 스스로 봄 길이 되고 있다.
길가에 피었다는 그 하나 생각으로
지나는 사람들의 무관심 그 속에서
무심히 피었다 지는 들꽃들을 봅니다.
『들꽃들을 봅니다.』전문
지구상에 들꽃의 종류는 수없이 많아 신만이 알 수 있다.많은 꽃 중에서 최고의 꽃은 무슨 꽃인가라는 질문에 그 대답이 멈칫 멈춰 선다. 그러나 시의 향기가 꽃의 중심이니 향기로운 꽃이 아닐까. 눈에 보이지 않는 향기가 최고를 판가름한 눈금이다. 꽃은 소리 없이 피고 지며 고고하다. 눈부신 이름 모를 들꽃들은 단아함에 각양각색의 띠를 덧씌우면서 꽃 몽우리를 만들고 있다. 아름다운 색깔은 세상의 비루함을 잊게 한다. 폭죽처럼 사방에서 터졌다가 미련 없이 피고 진다. 무심한 봄바람에 꽃잎들이 분분히 날릴 때, 이 허전한 마음을 달래기가 쉽지 않으리라. 주변을 둘러보니 봄볕만 외롭고 그 숫한 맹세와 언약들이 허망 할 줄 예전에 미처 알지 못한다. 봄은 화사해서 견딜 수 없는 슬픔이었다고 그 누가 말했던가. 시간은 반짝이지만 고여 있지 않고 세상 밖으로 밀려난다. 부딪쳐 봄꽃이 지천으로 붉게 물드는 것도 기다림에 지쳐서일까? 이 파상적인 질문은 분노가 되고 자책이 된다. 봄은 오지만 이 봄은 다시 오지 않을 것이다. 이 봄이 다가기 전에 봄꽃을 꽃다지로 맵시 있게 가슴에 달아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겨우내 얼어붙다 봄 되는 땅속에서
죽었던 몸으로도 새롭게 일어서듯
어느 날 봄비가 와서 새싹들이 솟았다.
『봄비』전문
인용한 “봄비”는 주관적인 관념으로 자연의 현상을 묘사함과 아울러 봄에 비가 내린 후의 상태에서 상쾌함이 파생된다. 봄비의 느낌을 형상으로 의인화한 환유의 표현 기법이 구사 된다. 당초에 의도한 시의(詩意)는 초장에서 과거의 동결된 현실을 끌어들이고 중장에서 소멸과 환생의 법리를 환기시킨 뒤 종장에서 새로운 생명의 근원을 소명한다. 봄비가 내린 뒤에 싱그러움을 한층 더해 화려한 산하의 언 가슴을 녹여준다. 봄비가 내린 뒤의 저 들길은 이미 마음속에 길게 뻗어 있다. 가까이서 마냥 아롱거리며 새싹이 돋는 저물녘 한시름을 부려놓는다. 그 삽삽한 빛을 그대로 떠서 푸른 내공에 생기의 움을 틔우게 한다.
봄날을 맞으면서 추위를 말하듯이
한여름 보내고서 가을을 맞고서도
무더위 있던 얘기에 즐거움을 갖는다.
『무더위 잊던 얘기』전문
언제나 아쉬움은 남았다 하였기에
제일로 어려웠고 힘들게 보냈지만
그래도 여름한철이 기억 속에 남으리.
『여름한철』전문
인유한 “무더위 잊던 얘기”와 “여름한철”은 여름을 보내던 일상을 실체적이고 실감 있게 노래하고 있다. 따뜻한 봄날에 지난겨울의 혹한을 말하며 가을을 맞이한다. 한여름의 무더위를 넘기던 일들을 이야기하는 즐거움은 한때의 기분을 전환시킨다. 이렇듯 시인은 일상의 한순간도 놓치지 않고 자연스런 어조로 시적 대상물을 형상화 한다. 계절의 관계성에 근저를 두고 시적 혜안의 세계를 추구하고 있다. 이러한 일상들을 이야기하면서 아쉬움이 남아 “여름한철”을 힘들게 보냈던 그러한 여름 한철이 기억 속에 뚜렷이 남아있음을 술회하고 있다.
나이를 먹었어도 생각지 아니하고
추위와 싸우면서 보냈던 겨울처럼
한여름 복판에 서서 무더위를 맞는다.
『한여름 복판에 서서』전문
인용한 시인의 “한여름 복판에 서서”는 나이를 먹었어도 지나온 참다운 삶의 선택이 겪어야하는 어쩔 수없는 폭서의 고통이다. 지난겨울 추위와 싸우면서 주름하나 머리카락 한 올 까지 삶의 풍랑이 절절이 추위와 함께 와 박힌다. 자신의 혐오감을 통해 변신하고 숙성하려는 의지는 넘을 수없는 이상과 고립된 시간 사이에서 빚어지는 내면의 갈등에 고심한다. 때문에 순응적인 태도나 자기의 인내심이 새로운 자신을 발견한다. 화자가 변신하려는 성숙한 내재의 시간들은 즐거움이 된다. 결심은 내부에서 내면을 함몰시킨 감정을 현실 세계에서 떼어내고 자아와 세계를 격리 시키려는 시도가 필요하다. 자아 성취의 좌절과 고통스러운 무더위를 의식한다. 무의식이 분리한 단절의 시간을 통해 인내 하면서 무더위를 맞이하고 또한 피한다.
한낮의 무더위가 꺾이지 아니하여
바람은 있지 않고 햇볕만 쨍쨍하다
한여름 보내는 일이 겨울보다 더하다.
『한여름』전문
화자의 한여름은 견디기 어려운 무더움이다. 꺾이지 않은 더위의 열대야가 계속되고 체온을 훨씬 넘긴 기온은 사람을 지치게 한다. 불면의 한여름을 다스린다는 것은 참으로 어렵다. 인간의 운명과 필연적으로 맞닥트린 자연의 질서를 고뇌에 찬 심정으로 곡호한다. 한여름을 보내는 일이 겨울의 혹한보다 더 독하다는 심산으로 고통의 순간 뒤에 영원한 환희를 내장하고 즐거움을 끌어안는다.
3, 추정(秋情)의 심상을 안고 세한(歲寒)으로 건너가는 서정(抒 情)
석우의 시조세계는 자연 속에서 피어나는 생명력을 섬세한 필치로 밀접한 연관성을 이룬다. 이러한 시상을 채굴하어 아름다운 시적 생동감을 불어넣고 있다. 자연의 파노라마가 펼쳐진 대자연의 색채가 발색되는 그 속에서 환상의 세계를 이루는 감정 이입과 대상들이 시각적 수단으로 투영되고 있다. 시적 물상에 대한 진지하고 성실한 바탕으로 주관성을 확보하면서 이를 자신의 내면으로 끌어드려 가공한다. 문학적 감성을 통해 꾸준한 창작으로 자신만의 독창적 문학 세계를 구축하고 있는 이유이다. 시작은 정신적 내면에서 작동되며 모든 발상은 자연의 형상에서 나온다. 시조는 겨레문화의 유산이며 우리의 삶을 가락으로 읊음으로써 언어 예술의 향기를 향유한다. 시조가 우리고유의 문학 양식으로 정취에 표현과 서정적 지평을 여는 고유성을 구축하여 문화 창달에 활력소 역할을 한다. 시조가 정형의 틀인 3장 6구에 온 우주의 만물과 인간 정신세계에 담을 수 있는 문학적 형식이며 우리민족의 한 장르이다. 그의 시조세계는 발효 음식처럼 숙성된 깊은 맛과 개성의 빛깔로 감상의 미각을 자극해 낸다. 또한 긍정적이며 서정적인 시선과 감성으로 이 세상을 껴안는 선명한 이미지의 밀도를 높이고 있다. 그리고 이념에 경도 되지 않은 진솔한 스스로의 현실 체험에 지식을 얻고 뿌리를 뻗어 착근시킨다. 이러한 개념을 염두에 두면서 다른 푸짐한 추정(秋情)의 심상을 안고 세한(歲寒)으로 건너가는 석우의 서정(抒情)을 엿보고자 한다.
나무들 제 빛깔로 저마다 황홀하고
들녘의 벼이삭은 알알이 영글었고
이제는 가을 왔으니 살아가기 좋아라.
『가을 왔으니』전문
풍년을 맟기 위해 한여름이 무덥더니
산들은 큰 변화를 만들기로 시작하고
누런 벼 넓은 들판을 넉넉하게 차지했네.
『가을을 맞으려고』전문
화자는 가을이 오는가 보다하고 느낄 틈도 없이 가을이 다가서고 더위도 계절 앞에 견딜 수 없어서 바람이 다르다는 것을 처서 지나고야 알게 된다. 우리들이 흔히 접하는 가을맞이에서 시각적인 감각으로 표현하는 심상을 반영해 비유로 나타낸다. 서리 묻은 바람이 알곡을 더욱 살찌워 익게 한다. 잎사귀들은 제 빛깔을 간직한 채 저마다 아름답고 들녘의 오곡은 알알이 여물어간다. 가을이 왔으니 어찌 천고마비의 계절이라 하지 않겠는가. 가을을 맞으려고 지난여름이 그렇게도 무더웠으리. 산야는 다시 올 겨울을 준비하기 바쁘고 넉넉한 들판을 서서히 비울채비를 하고 있다.
무더운 여름날을 헛되도록 보내놓고
아직도 사랑할 줄 아는 이가 찾아와서
이 가을 아름다움을 이러하게 만들었나.
이 가을 아름다움을』전문
아직도 무더위가 떠나지 아니하여
한 여름 못지않게 어려움 있지마는
그래도 가을 소식을 듣고 있는 참이다.
『가을소식』전문
봄철과 여름철에 몸을 숨긴 서늘한 가을바람이 힘차게 불어와서 이제는 아예 드러내 놓고 싱싱한 나뭇잎들을 흔들고 있다. 이러한 화자의 가을은 아름다운 소식이 참으로 넉넉하여 그 폭 또한 넓으며 푸짐한 소식을 안고 온다. 조락의 계절인 가을의 나뭇잎은 필연적인 아쉬움을 남긴다. 또한 가을은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찾아와서 미련을 남기는 아쉬움의 가을 소식에 아직도 목매 인다. 인용한 “가을소식”에서 “못지않게”는 “통하지 않다.” 라는 의태어를 끌어 들임으로서 가을 소식에 색다른 깊이의 맛을 더 해주고 있다.
한여름 비 오기를 너무나 잦더니만
흰 구름 그마저도 어디로 떠나가고
가을의 높은 하늘이 닿지 않게 푸르다.
『가을하늘』전문
무더운 여름날시 그래도 많았기에
산에는 나무들이 제 빛깔로 단풍들고
들녘엔 누런 벼들이 익어가고 있어라.
『이 가을은』전문
가을을 마주하는 순간에도 실존의 자리를 잡은 화자가 삶의 현장에서 머뭇거리는 저마다의 아름다운 모습을 채집한다. 숲에선 가을 준비가 빠르도록 분주하다. 화자는 가을의 정서적 연결성으로 개념의 벽을 넘어 의미의 확실성을 향해 흘러간다. 그래서 삶의 배면에 짙은 추정(秋情)을 절묘하게 교감하여 생명의 영원성을 무의식속에서 육화하여 시조세계로 시각화 한다. 위에서 인용한 “가을하늘”은 단순이 맑고 높은 것 보다 지난여름 무더위의 하늘과 단풍이 물든 가을하늘을 비유하고 그 틈에서 생성되는 물상을 형상화 했다. 여름과 가을의 아득한 거리에 간격을 좁히는 사유가 강열한 기세로 세상에 꽃 한 송이를 피운다. 시인이 견뎌낸 시간의 이면에 수많은 형용사들이 타자화한 욕망의 주머니에서 시적 언어의 존재를 조몰락거린다.
저마다 제 빛깔로 모두기 빛나면서
가을이 오고 나서 외롭지 않으려고
슬프지 않기 위해서 나뭇잎은 물든다.
『가을이 오고 나서』전문
절정을 이루도록 푸르던 나뭇잎은
한여름 무더위에 시들고 있더니만
가을이 짙어갈수록 제 빛깔로 물든다.
『가을이 짙어갈수록』전문
시인은 가을초입에서 아직까지 한낮은 무더워도 아침저녁 날씨의 기온이 다르게 체감되어 오늘은 가을소리를 가까이서 들어보고 싶어 한다. 이러한 때에 한 사나흘 나들이로 세상을 두루 만나보고 맛있는 음식으로 기쁨을 느끼면서 드넓은 산야에 서서 익어가는 가을맞이를 상상해 본다. 화자의 가을이 외로운 계절임을 인지하고 외롭지 않으려고 생활의 리듬을 찾아 나선다. 위의 시제처럼 “가을이 오고 나서” 나 “가을이 짙어 갈수록”처럼 일상은 어울려 사는 삶과 혼자 사는 삶에 관계성으로 압축시킨다. 잠시 동안 스쳐간 기억과 추억의 만남에서 인과는 모순에 점철되는 존재의 시간 속으로 깊이 침잠한다.
머잖아 어렵사리 여름이 떠나가고
가을이 돌아오면 언제나 어디서나
약속은 있지 않지만 우리 다시 만나요.
『가을편지1』전문
가을이 오나보다 가을이 오나보다
더위도 계절 앞에 어쩔 수 없게 되어
바람이 다르다는 걸 처서 지나 알겠다.
『가을이 오나보다』전문
한여름 무더위에 시달리면서 오곡이 익어가는 가을을 맞아 모든 사람들의 깊은 마음에 풍요가 더하기를 기원하는 편지를 쓴다. 위에서 인유한 시편 ”가을편지1“는 어느 특정인을 지칭하지는 아니했지만 무더운 여름이 지나갔으니 언제 어느 곳에서든 만나 술잔을 나누면서 세상 물정을 이야기 하였으면 하는 마음속 편지를 쓰는 것이다. 시인은 현실의 외로움과 소외감에 무료함을 시적 감정으로 표현 하고 있다. 위 시편 “가을이 오나보다” 는 앞서 인용한 ”가을이 오고 나서“ 와 유사한 정서로 들녘을 지나던 고추잠자리의 무상에 일엽지추(一葉知秋)의 가을과 몸을 섞는다.
어젯밤 밤새도록 내리고도 모자라서
아침에 눈을 뜨니 하염없이 내리는데
쌓이고 다시 쌓이어 가는 길을 잃었다
『폭설』전문
옛날이 그리워서 옛날을 말하는가.
가을의 허수아비 그대로 있으면서
텅 비인 겨울들녘에 싸락눈이 내린다.
『겨울들녘에』전문
사나운 겨울바람이 거침없이 불어오고 어제 밤부터 아침까지 계속 내리는 눈은 온 산야와 마을을 하얗게 덮어버린다. 이러한 폭설로 눈이 쌓이고 쌓여 마을 어귀를 잇는 길이 어디인지 짐작할 수 없다. “폭설”은 또 다음 계절을 맞으려는 마지막 설국(雪國)의 다채로운 형상에 미망(彌望)으로 촉각을 세운다. 흰 눈은 만인에게 평등하며 더럽고 추한 것을 그대로 두지 않는다. 허물을 덮어주고 관용을 베풀게 하여 겸허한 마음으로 삶의 공백을 채우기도 한다. 위에서 인유한 작품 “겨울 들녘에”는 과거와 현재의 도사림을 조리개로 끌어당긴다. “한눈으로 보는 세상”의 시조집에 장진한 <가을의 허수아비 그대로>와 <싸락눈>이 시공간적 거리를 가깝게 하는 은유의 기법을 취하고 있어 더욱 눈길을 끌게 한다.
매서운 바람으로 이 겨울 깊어가고
무서운 추위 앞에 굴복을 하고 나서
겨울 강 얼음판 되어 미끄럽다 말한다.
『겨울 강』전문
여름이 다가도록 폭염이 이어져서
날마다 시달리고 밤잠을 못 이루어
오늘은 누구에게나 들려주는 겨울얘기
『겨울얘기』전문
겨울을 비워둔 자리에 늦은 강추위가 찬바람으로 대신할 때 창문을 두드리며 아주 먼 곳에서 그 누군가 시인을 찾아올 것 같은 기대를 갖게 한다. 날마다 맞는 적막을 보내기 어려워서 세상의 험난함을 느끼던 외로움이 문득 그 누구와 빙판길을 걸어 볼 까하는 사념에 잠긴다. 미끄러운 얼음 빙판을 미끄러지기도 하고 넘어지기도 하면서 유년시절의 추억을 되살리고 싶은 화자의 염원이다. 참으로 맑고 밝은 순수한 시심은 겨울 강이 얼어붙은 빙판으로 미끄럽다고 술회한다. 지난여름의 폭염에 시달려 밤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한 사람들에게 이러한 겨울의 이야기를 들려주면 조금은 더위를 잊게 하지 않을까 하는 배려도 아끼지 않는다.
4, 일상을 음유(吟喩)하는 울림의 깊은 미학
석우의 시조세계는 단수 시조의 소담스런 우리의 전통질서를 구현하고 섬세한 감성의 진폭이 깊게 드리우는 모색의 열정을 보인다. 시조 특유의 형식미와 가락이 자연스럽게 흐름을 부추긴다. 스스로 만든 사고의 패각을 탈피하여 아주 쉽게 쓰는 것이 시조라는 입장에 변함의 여지를 주지 않는다. 때로는 자연 친화를 넘어 속진에 오탁 되기 쉬운 자신을 성찰하면서 되돌아보고 한편의 단아한 작품을 건져 올린다. 가상할만한 경지까지 올라 작품을 통한 언어로 형상화하는 조탁의 조미료를 섞어 찰진 맛으로 작품을 조리하고 있다. 우주의 자연에서 계절과 관계가 있는 물질과 그 형상을 소재로 하여 때에 따라 변하는 감정과 사유를 펼친다. 사색과 관찰을 통해 시적 자아의 존재성에 따른 감회와 인생 도정에 드리운 황혼 빛을 응시하는 직감적 심상이 여실하다. 시인의 사상이나 의식 그리고 관념적 감성이 고스란히 작품에 담기는 것은 시인이 추구하는 시 세계의 구축이다. 시인의 자존의식은 솔직하고 꾸밈없는 언술이 자연스럽게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이러한 의식은 자유가 넘쳐 방종으로 치닫고 있는 현대사회에서 누구나 절실한 마음으로 본받아 귀감으로 삼아야할 고귀한 경구이다. 편화 하는 시대상인 허상을 쫒아 동고동락한 문우들의 격조에 다각화한 작품도 간혹 눈에 띄지만 죄다 언급하기가 미상불 어렵다. 알다시피 시조의 율조는 단순한 외형 물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의미율도 살려서 시적 언어의 탁마 과정을 거쳐야 만이 문학성을 격상 시킨다. “진솔하고 소박한 서정의 정조는 시조 본래 내면적 특성 이라고 할 수 있는 긍정적인 경향과 그 맥을 같이한다.” 라는 석우의 주론에 토를 달수가 없다. 시조는 감정의 유로나 시인에 지각, 감정, 사상, 관념이 작용하는 상상력의 산물이며 자신을 표현하는 정의가 바로 서정성이 풍부한 시조를 두고 지칭하는 것이다. 이러한 개념을 염두에 두고 일상을 음유(吟喩)하는 울림의 깊은 미학이 탑재된 다음 작품들을 살펴본다.
적막과 마주앉아 지난 일 생각하면
덧없는 세상에서 부질없이 사느라고
회한은 아직 남아서 외로움을 갖게 한다.
『회한』전문
아무리 부질없고 덧없다 하지만 회로애락을 겪으며 인생을 경영해 온 과거지사의 “회한”에 젖어 든다. 시인은 적막과 마주하며 “회한은 아직 남아서 외로움을 갖게 한다.” 라고 허탈해 한다. 황혼녘 에움길에 그림자를 밟으며 귀를 닿고 눈을 감은 채로 세상을 멀리하려 애써본다. 스쳐간 인연들을 뒷자락에 남겨두고 초연히 살려고 노력해도 외로움과 함께 늙어가는 화자의 황혼 길이 생각할수록 부질없는 삶임을 가리 늦게 깨닫고 있다.
투박한 그 얼굴을 이참에 가지고서
언제나 벌어질까 생각을 갖게 하다
가을의 선두에 서서 소리 없이 익는다.
『석류』전문
석류는 몸 안에 붉은 알갱이들을 탐스럽게 숨기는 특성을 갖는다. 앞앞이 말 못하고 내심에 감춰둔 순정과 삶의 이야기를 알갱이로 박는다. 익을 대로 익으면 어느 날 느닷없이 툭 터져 나와 내장의 심저에서 심상을 끌어내어 생명력을 보인다. 위의 작품 “석류”를 대하면서 문득 조윤의 “석류”가 떠오른다. 김준은 “가을의 선두에 서서 소리 없이 익는다.” 라고 노래한 반면 주현은 “보소라 임아 보소라 빠개 젖힌 이 가슴” 으로 불숙 내민다. 똑 같은 소재를 두고 석우와 조운이 각기 보는 시각이 상당한 온도 차이를 보이면서 짧은 시구의 종장 처리는 과히 빼어난 절구가 아닌가.
아침에 일어나서 바람을 이용하여
겁 없이 날아가는 한 마리 새를 본다.
이참에 허공에 올라 하늘까지 닿아라.
『허공을 나는 새』전문
이어진 무더위에 견디지를 못하고서
하늘을 올려보며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춘추가 정정하여서 삿대질을 하고 있다.
『삿대질』전문
인용한 “허공을 나는 새” 에서 화자는 아침 일찍 일어나 창밖을 내다본다. 바람을 타고 거침없이 날아가는 새를 보면서 자신도 저 새처럼 창공을 훨훨 나르고 싶은 삼정을 갖는다. 또한 시인은 계속되는 무더위에 지치다 못해 하늘을 향해 두 주먹을 휘두르며 멈칫하고 있는 가을이 빨리 오기를 바라는 동시 여름철 무더위에 삿대질을 해본다.
진료를 받으려고 병원을 가기위해
땡볕을 생각 않고 한참을 걸어가다
길 건너 저만치 있는 신호등을 기다린다.
『신호등』전문
화자는 진료를 받으러 병원에 가다가 횡단보도에 설치된 신호등의 실제 길에서 저만치 서서 신호를 기다린다. 신호등은 빨강, 파랑, 노랑의 3색으로 표시 한다. 세계의 모든 나라들이 이 세 가지 색을 신호등 색으로 쓰고 있다. 교통 신호등이 많고 많은 색 중에서 이 세 가지 색으로 쓰이게 된 이유가 있다. 혈액과 동일한 빨강색은 정지를 의미하고, 파란색은 시야를 편하고 시원하게 해주어 진행을 의미한다. 색상환표에 노란색은 빨강과 파랑의 반대편에 위치하여 이 두색과 쉽게 구별되는 주의를 환기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5, 맺는 말
자연에 보답하며 즐기고 고독을 삼킬 줄 아는 석우의 서정은 맑은 영혼의 샘터이다. 또한 자연과 조화의 합일에 미세한 음성으로 몰아 일체의 경지에서 들려오는 울림의 연가(戀歌)이다. 시조를 쓰는 이유가 우주의 큰 신비를 전하기도 하고 자연의 그 이치를 깨우치면서 인간의 숭고성을 보려고 시조 창작을 한다는 술회에 빈틈없는 공감을 하게한다. 인간의 욕심은 한도 끝도 없지만 분수를 알지 못하고 스스로를 망각하고 있음이다. 이런 욕심들을 다 버리고 살아가겠다는 그에 무욕의 다짐들이 시류로 편승하여 다부진 생각을 하게한다. 그가 인생 경영의 도정에는 번뇌와 고통을 수반한 우여곡절이 수없이 교차 하였다. 정열과 신념으로 맞닥트린 자신의 생활을 극복하면서 일상의 만족과 기쁨을 느끼는 흐뭇한 모습을 생경하게 표출해 내고 있다. 시인의 창조적 언어로 구축한 시세계는 그의 삶과 의식이 용해된 하나의 특수한 시공간이다. 석우의 시조세계는 운명적인 고뇌와 단아한 이미지가 매끄럽게 어우러진 단시조의 백미를 전개한다. 그리고 번뇌하면서 휴머니즘(Humanism)을 갈구하고 있다. 휴머니즘의 속성은 그를 포함한 인간들의 그리움이고 갈망이다. 정제된 간결한 시어로 풀어내는 그의 탁월한 노련미가 참으로 담대하다. 그의 강열한 그리움을 서정적 미감으로 시대의 향기를 뿜어내는 숲과 같은 시적 좌표에 함의를 찍는다.
시안(詩眼)의 뜨락에 시적 풀잎과 꽃들은 영혼의 꽃 몽우리를 영글며 퍼포먼스(Perfomance)를 즐긴다. 시인은 세상을 읽어내는 전지적 심안으로 시조를 쓰고 있다. 가슴속에 깊숙이 각인된 다각의 사유들을 잔잔한 울림에 형상으로 부각시킨다. 서정적 산물들을 촉발시킴으로서 중요한 근간으로 작동하는 수용자적 관점을 포획한다. 인간의 본성 내면에는 본래 순수한 황홀경의 감성적 촉을 뻗어 아름다운 극치에 도취한다. 시인의 자아 성찰과 철학적 사상을 바탕으로 시대의 각성을 여과 시키며 관조의 형상을 끌어 들인다. 시적 자아의 미학은 인간에 대한 존재의미를 탐구하고 문학적 작업으로 새순을 싹틔운다. 석우의 심상(心象)으로 뚫는 시조 빙하의 숨구멍에 자연과 사계(四季)를 타협하고 순응하는 순수서정의 미학을 살폈다. 추정(秋情)의 심상을 안고 세한(歲寒)으로 건너가는 서정(抒情)과 일상을 음유(吟喩)하는 울림의 깊은 미학도 덤으로 맛보았다. 이러한 특유의 영역에 묻혀있는 시적 진실과 시인의 의도를 정확히 간파한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우리 모두는 이제 석우의 쨍쨍한 고성을 들을 일만 남았다. 한쪽 눈으로 보는 세상도 이렇게 환한데 “우둔한 청맹과니 농아(聾啞)들! 두 눈뜨고 두 귀를 갖고 있으면서 보지도, 듣지도 못하는 멍청한 벙어리들아! 종아리를 걷어 죽비를 맞고 정신을 차릴 지어다!.” 마지막으로 두 손을 모아서 석우의 건강과 건필을 빌어두며 필을 거둔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