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이라는 것의 밑바닥을 내려가 보면, 거기에는 언제나 인간이 웅크리고 있다.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자태로 때로는 우울한 채로, 때로는 광기어린 눈으로, 벌거벗은 채로 남겨져 있다. 학문을 논하는 것은 그러한 인간과 인간들, 그리고 인간들 간의 소통에 대한 철학적 전제로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에 대한 철학적 성찰은 국부적으로 뻗어나가는 개별 학문을 가로지르는 샘 같은 것이며 혹은 그들 사이를 이어주는 매듭 같은 것이다.
오늘 정신분석학이라는 주사위를 공중에 던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정신분석학의 무의식이론은 프로이트 이후, 오랫동안 선별되고, 배제되며, 오해되고, 비틀림으로써 타자의 자리를 굳게 지켜왔다. 마치 해괴한 증상을 통해 무의식이라는 존재에 대해 끊임없이 추파를 보내온 인간 자신처럼 정신분석학은 수많은 증상의 대상이 되어 왔으며 메타포를 생산해왔다. 무의식은 인간의 상상력을 증폭시키며 인문학 사이의 거대한 십자로를 건설해 낸 것이다. 십자로의 한 복판에서 혹은 모퉁이에서 우리는 뒤틀리거나 혹은 전복당한, 그러므로 해서 피 흘리는 혹은 맑게 씻긴 얼굴의 프로이트를 혹은 라캉을 만나 곤 했던 것이다. 결코 원초적이지 않은 것, 처음의 그들이 아닌 것, 변형되고 전치된 것으로 그들을 만나온 것이다. 이것이 정신분석학의, 무의식이론의 본성이 아닌가.
요컨대 인문학의 여러 분야에서 정신분석학의 무의식이론의 영향에 대해서 살펴보는 것, 그것은 그러므로 정신분석학의 기원을 찾아내는 것. 혹은 정신분석학으로의 회귀를 말하고자 하는 것이 결코 아니며, 비틀린 지점 그곳에서 어떻게 다시 더 멀리 생성할 것인가, 어떤 다른 학문의 몸을 입어 새롭게 태어날 것인가를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정신분석학의, 무의식이론이 지니는 여성성 혹은 타자적 학문의 속성인 것이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4가지의 영역에서 무의식이론이 이루어놓은 빙판을 역설의 난장으로 이름 붙이고자 한다. 여기에서 우리는 줄곧 미끌어지거나, 이질적인 것들과의 절합을 시도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곧 정신분석학의 욕망이라는 믿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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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의 및 주제
프롤로그------------------------------------------
1. 프로이트와 라캉의 무의식과 욕망이론, 그리고 그 후
-정신분석학 지도 그리기
시간 : 7월 22일(화)
강사 : 권택영 선생님 (경희대 교수)
Ⅰ부 무의식과 언어의 유희 --------------------------
2. 소쉬르에서 라캉으로, 라캉에서 소쉬르로- 시니피앙 개념을 중심으로
시간 : 7월 24일(목)
강사 : 최용호 선생님 (외대 조교수)
3. 데리다의 정신분석학 해체 - 정신분석학에서 ‘정신’이란 무엇인가?
시간 : 7월29일(화)
강사 : 김보현 선생님 (부산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