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치나 눈치나 다 중요한 요소다. 사람이 사람으로 사는 동안은 반듯이 필요한 소양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것들을 챙기지 못하고 있다. 나만 그런가. 뭐 대단한 이익이 아닌경우엔 좀 염치나 눈치가 있었으면 좋겠다. 대단하지도 않는, 아주 소소한 찌끄러기 앞에서까지, 아니, 언제고 철판을 깔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으로 사는 것은 나를 슬프게 하고 있다. 자존감은 이미 무너저 저만끔 떠내려갔으니 최소한의 염치나 눈치만이라도 챙기고 살았으면 한다. 대체 뭐가 이토록 나를 무너트렸을까. 오랜 가난이었을까, 외로움이기도 했을까. 나를 혼자라는 감옥에 가둔게 누구였지? 나 스스로가 아니었나? 빗장을 지르고 열쇠를 잠근게 남이 아니라 나 스스로가 아니었을까. 경제적 상위 30%가 아니라 수명 상위 30%안에 들게되었다. 이제 5%안에 들기위해 쏜살같이 달리는 중이다. 길고도 오래고 힘든 질주를. 멈출수 있게 하는것은 오직 하나님 한분이시다. 하나님은 내가 쉽게 설득할수있는 대상이 아니다. 나의 할머니께 했듯이 때를쓰고 졸라서 성취할수있는 대상이 아니다. 하나님은 무한하신 분이시고 전능하신 분이시다. 그런데 이것과 그것이 무슨 상관인가. 내가, 내 삶이 질척대는 것과 그분이 전능하신게 말이다! 내가 염치없는것과 눈치없는것이 그분의 무한하심과 무슨 관계가 있는것은 아니지 싶은데? 인간은 참 작다. 사실 뭐가 그리 많이 필요한것도 아니다. 공부도 그렇다. 사실 못하는 사람이 더 많다. 부나 명예도 갖어보지 못한 사람이 더 많다. 수명도 짧은 사람이 더 많고, 건강한 사람보다 건강하지 않는 사람이 더 많다. 이 모든게 섭리까지는 아니더라도 그분의 광범위한 프로그렘의 한 요소일수는 있다. 언제고 지워지거나 다시 수정될수 있는 비 본질 말이다. 그럼에도 왜 흘러가는대로 바라보지 못하고 안달을 하는 것인가. 손주들이 열심히 노력하지 않는다는 것에 맥빠저 하는 것일까. 다들 딴짓 한다. 헛짓 없는사람 있을까. 수업시간에 몰래 소설책 읽는 정도는 크게 벗어나는 일도 아니다. 학교에 내야하는 월사금, 책값한번 땡처보지 않는 아이가 있을까. 그건 그리 큰일도 아니었다. 공부 잘한 사람이 다 성공한것도 아니고, 부자들이 다 행복한 것도 아니다. 알고있다. 알고있는데, 그래도 거기에 기회가 있는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조금만 더 열심히 노력해주길 바라는 것이다. 내가 못한부분, 내가 못했으니 아이들만은 잘해서 기회를 갖었으면 좋겠다 싶어서, 욕심인가. 욕심맞다. 바닥을 헤매는 인생은 녹녹치가 않다. 변변치 못한 인생은 오나가나 무대접이다. 스스로도 그림자다. 그리되지 않으려면 노력해야 한다. 노력해도 안되는 경우도 얼마나 많은가. 노력이라도 해봐야지 후회가 없지않겠는가. 이런 생각에 매달리다보면 조급해진다. 내 실패가 어디선가 반복되고 있다는 불안이 슬금거리기도 해서다. 나는 참 무능한 사람이었고, 할줄 아는것도 없는 사람이었다. 남편탓만 했고, 그를 비난하는게 나를 지탱하는 동력이 되어주었다. 이런 인생은 아니길 바라는 마음에서 왜 조급하지 않겠는가. 오늘은 주일이다. 날마다 주일이고 휴가인 일상을 살고있다. 무탈이 전부이고 감사가 되는게 내 지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