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짓는 일 / 정태헌
도마에서 사각사각 무채 써는 소리, 양푼에서 주물럭주물럭 나물 무치는 소리, 흐르는 물에 솨솨 상추 씻는 소리, 뚝배기에서 보글보글 찌개 끓는 소리, 솥에서 설설 밥 익는 소리. 이 소리들은 생명의 증거이며 가슴을 데우고 목숨을 잇게 하는 음향이다. 먹기도 전에 뱃속을 훈훈하게 하는 감미로운 음(音)이다. 언제부턴지 이런 음향이 들려오면 하던 일을 멈추고 그 쪽으로 귀를 바싹 세우곤 한다.
그날 해질 무렵도 그랬다. 부엌에서 저녁을 준비하는지 도마에 칼질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음향은 묘한 울림으로 다가와 귀청에 아련히 젖어들었다. 하던 일을 멈추고 아내 곁을 기웃거리며 맴돌다가 전부터 벼르던 말을 끄집어냈다. 음식 만드는 법을 몇 가지 배우겠노라고 뜻밖에 반응은 심드렁했다. 아내는 칼질을 멈추고 나를 빤히 바라 보더니 무슨 봉창 두드리는 소리냐는 듯 뜨악한 표정이다. 실없는 소리 말고 집안일이나 좀 거들어 달라고 한다. 하긴 그런 말을 들을 법도 하다. 벽에 못 하나 제대로 쳐 준 적이 없고, 청소기 한 번 변변히 돌릴 줄 모르는 위안이 뜬금없이 그런 말을 불쑥 꺼냈으니까.
때마침 기회가 왔다. 아내는 시방 장기 출타 중이다. 동호인들과 어울려 풍경 구경을 가겠다며 외국 여행 의사를 타진하기에 동의했다. 애들은 다 커서 각기 외지로 나가있고, 불편함이야 다소 있겠지만 외려 얼마간 혼자 뒹굴며 살아보는 맛도 괜찮을 성싶었다. 이참에 혼자 밥을 짓고 국과 반찬을 만들어 볼 요량이다.
반찬이야 냉장고에 몇 가지 마련해 두고 갔지만, 밥통에 지어놓은 밥은 이제 바닥이 났다. 스스로 밥을 지어 먹어야 할 때가 왔다. 그동안 아내가 음식을 만드는 기미가 보이면 묻거나 넘성거리며 대충이라도 배워둔 게 다행이지 싶다. 장년의 나이에 무슨 궁상맞은 짓이냐고 눈총 받을 일인지도 모르겠다. 더구나 어머니께서 살아 계셨다면 분명 된통 꾸중하셨을 것이다. 그러나 어쩌랴.
먼저 밥을 지어 본다. 밥이야 전기밥솥이니 쌀을 씻어서 붓고 손등까지 물이 찰랑대게 맞춰 스위치를 누르면 그만이지만 국이 문제다. 된장국을 끓여보기로 한다. 즐기는 국인데다 조리가 쉽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맹물을 뚝배기에 받는다. 맛국물을 내는 큰 멸치와 다시마를 넣고 끓인다. 물이 끓기 시작하자 다시마를 건져 낸다. 된장을 체에 담아서 끓는 국물을 끼얹어 가며 살살 내린다. 이렇게 해야 된장에 들어 있는 콩 건더기가 안 들어가서 깔끔해진다고 했다. 그리고 간을 칠 필요는 없다. 국물이 바글바글 끓자 큰 멸치는 건져낸다. 여기에 청양고추를 숭숭 썰어 넣고 고춧가루를 살짝 치고 파하고 다진 마늘을 조금 넣는다. 마늘을 많이 넣으면 맛이 씁쓸해진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두부를 잘라 넣는다. 그리고 한 번 더 부르르 끓인다. 드디어 완성이다. 조금 싱겁다. 그래도 맛이 구뜰하다. 반찬은 고사하고 국을 끓이기조차 만만치가 않다.
물이 많았는지 밥은 약간 질지만 그런대로 먹을 만하다. 혼자 밥을 씹어 넘기며 곰곰 생각해 본다. 장년이 되도록 이제껏 곁에서 해준 음식만 먹고 살아왔다는 게 여간 미안하지 않다. 예전엔 어머니가 해 준 밥을, 결혼 후엔 아내가 해 준 밥을, 때론 밖에서 외식이라며 식당에서 해 준 밥을 사 먹으며 살아왔다.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평생 먹어야 할 밥을 스스로 지어 본 적이 거의 없다는 게 짓쩍기만 하다.
남정네가 부엌에서 알짱거리는 꼴은 남우세스러운 일이라는 어머니의 가르침과 타박에 길든 탓도 있다. 그렇다고 생명을 잇는 밥을 끓이는 일을 이제껏 주변에 의존해왔다는 것은 잘한 일은 아니지 싶다. 그 밥을 끓이는 재료를 구하기 위해 동분서주하지 않았느냐고 항변할 수도 있겠지만 손수 지어먹는 정성과 수고에 어찌 비견하랴. 음식을 먹는 일은 본능 중에서도 상위다. 살과 피를 만드는 밥. 목숨을 잇는 밥을 짓는 일은 매우 소중하다.
다음 끼니엔 콩나물국을 끓여 볼 작정이다. 오이소박이나 김치처럼 공력이 들어가는 반찬은 아직은 엄두가 나지 않지만 이도 차츰 배워둬야겠다. 다른 이에게 의탁하지 않고 온전히 독립적 자아가 되기 위해서는 스스로 먹이를 해결할 일이다. 먹이를 남에게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해결하는 일은 독립된 삶의 첫걸음이다. 이는 제 목숨을 잇는 것을 넘어서 스스로 삶을 짓는 일이다.
음식을 만들어 남에게 먹이는 것처럼 복 받을 일이 또 있을까 싶다. 가족들을 위하여 날마다 세끼 밥을 짓는 사람의 모습은 아름답다. 뿐이랴. 주린 배를 다순 밥으로 채워 주는 자야말로 참으로 이웃을 사랑하고 기쁨을 주는 사람이다. 한데 이웃을 위해 밥을 짓기는커녕 생명을 위해서도 이제껏 손수 밥을 짓지 않은 나 자신이 스스럽다. 지은 밥을 꿀꺽 목구멍으로 넘기며 이제야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난 늦어도 참 늦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