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를 깎아 장승을 만들어 가는 일은, 내 내면에 그려진 상상을 현실로 옮겨가는 과정이었다. 분명 만들기 전에 생각하고 구상해 놓은 계획이 있었음에도, 정작 두 손에 망치와 끌을 쥐고서 맨들 맨들한 나무를 깎아 나가다 보면, 어느새 생각과는 다르게 만들어지고 있는 장승이 보인다. 이미 내 마음 속에는 완성된 장승이 놓여져 있는데, 뜻대로 잘 되지 않는 일을 붙잡고 하다 보면 짜증도 나고, 애초에 내가 뭘 하고자 했는지 조차 까먹기도 한다.
맨 처음, 불필요한 부분을 통으로 깎아낸다. 같은 동작을 몇 번이고 계속 반복하다 보면, 답답한 마음에 불필요한 감정들이 마구 샘솟는다. 그러면 주변에서 들려오는 온갖 잡음들이 불편한 나의 감정과 만나 마음 위에서 반작용을 일으키고, 그만큼 깎여 나간 표면도 거칠어 진다. 울퉁불퉁하고, 결을 따라 삐죽 삐죽 튀어 나온 가시들. 그 모습이 마치 내 마음을 그대로 들어내는 듯 하여 기분이 묘해진다.
그러다가 이제 눈썹과 코, 눈과 광대같은 얼굴의 외형적 부분을 깎아 내기 시작하면 혼란했던 마음이 가라앉는다. 이제 제대로 내가 장승을 깎는 다는 자각을 느끼고, 그렇게 마음이 안정되며 일정한 리듬감을 가진다. 탁 탁 탁 탁. 울리는 망치질 소리도 일정해 지고, 깎이는 면 또한 섬세하고 고운 자태를 보인다. 본격적으로 내 마음 속 장승의 모습이 나무 위에 나타나기 시작한다.
얼굴의 윗 부분이 어느정도 모양이 나오면, 이제 하관을 만들 차례다. 하관에서 가장 돋보이는 부분은 바로 입. 쩍 벌려진 웃음 짓는 입을 깎아내기 위해 깊고 둥근 곡선을 깎아 나간다. 하지만 투박한 망치와 직선인 끌을 가지고 유려한 곡선을 깎아내는 일은 의외로 쉽지 않은 일이었다. 끌의 넓이보다 더 좁은 원형을 파내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 했기 때문이다. 한쪽을 깎아내면 다른 한쪽이 같이 파이고, 반대쪽을 깎아내면 다른 한쪽도 같이 파였다. 그렇게 점점 더 깊숙히 들어가다 보니 결국 투박한 망치를 내려놓아야만 했다. 오직 끌을 쥐고 세세한 디테일을 긁어내듯이 장승을 깎아 나간다. 또 가능한 한 면을 줄이기 위해 끌을 대각선으로 쥐고서 파냈고,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입 안을 깎아냈다. 이때가 장승을 깎으면서 가장 집중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아주 작게 튀어나와 있는 잡티를 조심스럽게 없에고, 원형이 나타나도록 세세한 반복 작업을 이어갔다.
그렇게 입이 만들어지고 나자 마지막으로 입 밑을 완전히 깎아내고 사포 질까지 하니, 마침내 웃는 얼굴의 장승이 완성됐다. 맨 처음 내가 계획한 모습과 완전히 같은 모습은 아니었지만, 장승을 깎아 내는 과정에서 있었던 모든 사건들이 담긴 결과물이었기에 훨씬 의미있게 느껴졌다. 정말 ‘내가 만들고자 한 장승을 만들어 냈다’하는 말에는 담기지 않는 것들, 직접 순간을 살아내지 않았더라면 알 수 없는 것들이 내 장승에 담겨있었다. 그러니 뿌듯한 마음도 들고, 그 뒤론 허전한 마음이 따랐다. 아직 장승을 깎을 시간은 많이 남았고, 장승도 이대로 완성이라 하기에는 뭔가 아쉬웠으며, 무엇보다 내 마음이 다음을 원하고 있었다. 그래서 웃음 짓는 장승 뒷면에 울상 짓는 장승을 하나 더 깎아내기로 마음 먹었다.
나는 의기양양한 마음으로 처음 그 자리로 되돌아 왔다. 아무것도 그려져 있지 않은 평범한 통나무의 맨들 맨들한 면. 그 위로 끌을 가져다 대고 시작을 끊었다. 전과는 달리 한 번의 경험이 담긴 끌질이었기에 어느정도 자만 또한 가지고 있었다. 이미 하나 잘 완성 했으니까. 그런 심정으로 열심히 얼굴 주위를 파낸 이후 얼굴의 윗 부분을 깎아내기 시작하였을 때, 불현듯 문제가 생겼다. 내 생각보다 나무가 휠씬 더 약했다. 반댓면과 달리 정말 조심히 깎아내더라도 자꾸만 눈썹이나 눈이 툭 툭 떨어져 나갔고, 그만큼 내가 파내야 하는 깊이만 더 깊어져 갔다. 계획에는 없는 일이었다. 자만하던 마음은 금새 뭉개지고 세심하게 얼굴을 이루고 있는 부위들을 깎아나갔다. 아주 작은 부분이 잘려 나가더라도 그만큼 얼굴 전체를 낮춰야 한다. 그러니 떨어져선 안 될 부분이 떨어지는 일은 내 가슴을 철렁 하도록 만들었다. 하지만 내 계횓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깎아내면 깎아낸 만큼 떨어져 나가는 부속들을 보며 답답함과 짜증을 동시에 느끼고 있을 때였다. 내가 구상한 모습대로 되지 않으니, 현실과 이상 사이의 간극이 만들어낸 조급함. 그 주위하지 않으면 자각조차 할 수 없었던 조급함이 결국 장승의 왼쪽 눈을 통째로 뜯어 갔다. 아주 살살, 톡.. 톡.. 톡.. 하고 쳤음에도 툭 하고 떨어진 눈은 정말 암담하기만 했다.
그렇게 내 구상은 실현할 수 없는 꿈이 되었다. 적어도 돌이킬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고, 결국 놓아야만 했다. 두 손에 쥔 끌과 망치보다도 꽉 쥐고 있었던 구상을 내려놓고, 다른 방식으로 깎아 나가야만 하는 것이다. 애초에 슬픈 장승이었으니, 아예 눈 부위를 전부 파버려서 명암으로 슬픈 모습을 연출하기로 하고, 거침없는 손길로 반댓쪽 눈도 아예 파내어 버렸다. 떨어지지 않도록 할 때는 참 힘겨웠는데, 마음을 바꾸니 참 별 거 아닌 듯 힘없이 떨어져 나갔다. 바닥에 있는 무수한 나무 껍질 사이로 떨어진 눈은 이제 구별조차 가지 않았다.
이후 하관을 깎아 나가기 시작했다. 눈과 광대를 만들 때 들어간 얼굴의 깊이만큼 입 주변을 파내고, 입 안을 깍아 나가며 다시 집중하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웃는 장승을 깎을 때와 달리 축 쳐져있는 입 모양을 깎아야 했다. 그만큼 턱을 얼굴 전체에서 가장 앞으로 나오게 해 돋보이도록 만들어 입을 입체적으로 표현했다. 아주 조금씩, 아주 조금씩. 장승의 입 안을 깎아 나가며 주변 소리를 하나 둘 지워갔다. 가뿐하면서도 신중한 마음으로. 장승을 깎는데 임했다.
입을 다 만들고 나서 턱 밑을 아예 깎아냈고, 사포로 울퉁불퉁한 면을 평평하게 갈았다. 거칠었던 표면이 맨들 맨들 해 질 수록, 내 마음 또한 거친 부분을 내려놓았다. 그런 식으로 나를 불편하게 하던 부분들을 다듬고 보니, 썩 마음에 드는 장승이 하나 더 만들어 졌다. 전과는 달리 ‘그래. 그래도 잘 됐다.’ 싶은 기분이었다. 처음 만든 것 보다 만들면서 더 많이 깨지고, 힘겨웠던 두 번째 장승이었으니까. 정말 눈이나 눈썹이 깍여 나갈 때는 할 의욕도 같이 떨어지고, 그래서 딴청 피우며 농땡이 치기도 했다. 사실 장승을 만드는 과정 내내 내가 왜 장승을 계속 깎아내는지, 알 수 없었으니까. 나는 무엇을 위하여 무엇으로 살아가는가. 나에게 있어 장승을 깍는 과정은 이중 두 번째 물음을 삶을 통해 직접 경험해 보는 일이었다. 무엇을 위하여 장승을 깍는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장승을 깎는 것. 내 기분에 따라 설렁 설렁 할 때도, 열심히 할 때도 있지만, 결국 계속해서 장승을 깍으며 일상을 살아냈다. 마치 오늘 아침 눈을 떴기에 하루를 살아내는 사람 처럼. 직접 해보지 않는다면 알 수 없는 자리. 묵언으로 말 하는 자리에서 하루를 살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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