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촌 어느 전시회에 갔다가 위치가 애매해 많이 헤맨 후 겨우 갤러리 조선을 찾았다.
친구가 아는 화가는 자리에 없었다. 지하 벽에 전시된 그림들은 전시회 제목 <울퉁불퉁한 하루>처럼
우리 감성에도 울퉁불퉁 얼른 다가오지 못했다.
안국동역에서 만나 북촌으로 올라가며 오랜만에 김치찌개와 순두부찌개로 점심을 해결했다.
요즘은 모임을 가지면 가짓수 많은 한식 한 상을 먹는데 값도 비쌀 뿐더러 나같은 사람은
잘 먹지 못한다. 내 앞에 가까운 반찬만 먹다 보면 뭔가 먹은 듯 안 먹은 듯 허기지다.
북촌입구의 어느 골목의 음식점, 우리가 주문한 두 가지 찌개가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개업한 지 얼마 안되는 쾌적한 카페에서 얼음카페라떼를 마시며 넓은 창밖 풍경을 바라보니
오랜 장마 끝의 개인 하늘과 흰 구름, 밝은 햇살이 좀 전의 더위를 잊고 속없이 찬탄이 절로 나온다.
냉방 덕분에 맛본 평화도 잠시 나오니 찜통. 그래도 하늘에 구름이 수시로 흘러가고 사라지는 통에
곧잘 그림자를 만들어 주는가 하면
삼청동길로 빠지는 도로변 가로수가 아주 무성해 넓은 그늘을 만들어 주어 견딜만 했다.
단팥죽집에 들어가 또 수다를 즐기다 일어서 나오니 세종문화회관 쪽으로 가는 편이 가까울 듯 싶었다.
그때부터 걸었다. 나는 광화문 네거리를 무척 좋아했다. 시야가 툭 터진 데다 선명한 인왕산의 스카이라인이
보여주는 불규칙한 듯, 조화로운 산등성이의 선, 또한 바라만 봐도 내 것이 된다. 못 올라가도 내꺼다.
그런데 오래 못 본 사이에 구조물이 세종문화회관 바로 코앞에 늘어서있다.
길거리음식 카페? 별로 운치가 없다. 게다가 아이들 물놀이터도 빼곡하게 만들어 놓았는데
어쨌든 공간 없이 들어차 있어 옛날 같은 시원한 맛이 없다.
불안한 구름들이 굵은 빗방울로 바닥에 성근 무늬를 만들 뿐 소나기도 못 되는 비가 내리다 말다....
어쨌든 우리는 그 폭염과 후끈한 지열과 불완전한 소나기를 뚫고 동화면세점까지 걸었고 친구는 거기서
버스로 떠나고 나는 2호선 전철 아가리로 들어서려는데
길가에 만발한 수국들의 향기인지 공기가 달큰하다. 덕수궁 담을 끼고 쭉쭉 뻗어 서 있는 잘 생긴 가로수는
그 싱그러운 자태로 발길을 멈추게 한다.
이것이 여름이다. !!! 순간 찐여름을 만난 것 같다. 여름의 풍경이야 많지만. 저 청정한 나무들과 덕수궁돌담의 조화는
여름의 또다른 깃발이다.
더위에 지쳤음에도 이 여름에 저 청신한 나무들을 보니 폭염도 빗줄기도 다 잊고 진정한 여름을
만난 즐거움이 한 줄기 분수처럼 솟아오른다.
짐시 우산을 나무에 기대고 카메라에 담아본다. 액정에 비친 그 푸르름과 쭉쭉 뻗은 나무가
생각만큼 반영되지 않아 아쉬움이 크지만 여름의 진실한 얼굴이 거기 있었다. 그런 여름,
폭군 같으면서도 저 가로수들처럼 의연한 생장의 존재감을 보는 강렬한 여름이 좋다.
첫댓글 잘 살고 계시네요
성하의 햇빛도 즐기시고 ㅎㅎ
절해의 고도처럼 살다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ㅎㅎ
더워도 너무 덥네요.
선생님은 쾌적한 실내생활을 즐기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