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른 마당
제법 너른 마당이 있는 집에 세를 들어 살고 있다. 전형적인 농가 주택으로 내세울 것은 없어도 널널한 마당과 채마밭을 끼고 있어서 손이 바쁘다. 밤낮없이 무성하게 자라는 풀을 뽑느라 구슬땀을 흘리는데 마냥 그 타령이다. 이웃집 아주머니의 손을 타야 집 주변이 말끔해지는 것을 보면 우리 부부의 주변머리로는 아직도 멀고 먼 일인가 보다. 아주머니네 나물을 마당에 널고 걷는 일이나마 성심껏 도와 미안함을 덜고 있다.
이 지역은 전셋집이 드물어서 고르고 말고 할 처지가 아니었다. 형식상 한번 둘러보고 그냥 계약을 해버린 것이다. 규모가 제법 큰 집을 만난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했다. 집에 와서 생각해보니 시멘트로 포장된 마당이 마음에 걸렸다. 울타리와 대문이 없는 집이라는 것까지 걱정을 보탰다. 너무 쉽게 정해버린 게 아닌가 싶어 고민깨나 했었다. 마당이 시멘트로 온통 도배를 해버려서 삭막한 데다 그 반사 열기로 여름에는 더위를 감당키 어려울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전원생활의 첫 걸음부터 삐걱거렸다. 서두른 것이 화근이지 싶었다. 긴 한숨이 절로 나왔지만 ‘딱 일 년만 살다가 내 집을 짓자’는 것으로 마음을 다독였다.
이삿짐을 풀면서도 시멘트로 숨이 막힐 지경으로 도배한 마당이 거슬려서 내심으로 “그래, 딱 일 년만 사는 거야”를 수없이 되뇌었다. 마당 한편에 있는 가마솥을 두고 남편은 친구들에게 삼계탕을 삶아주겠다고 전화로 목소리를 높였다. 친구들을 몰고 와서 뙤약볕 아래 닭을 삶으랄까 봐 은근히 걱정이 앞서기도 했다. 너른 마당과 솥단지가 막중한 소임을 봄부터 가을까지 너끈히 수행한다는 것은 꿈에도 생각하지 않고 우리 부부는 마음대로 해석하기에 바빴다.
쾌청한 날이면 어김없이 이 너른 마당에는 봄부터 각종 나물로 시작해서 도토리와 무말랭이 등이 연이어 널리는데 나물 이름을 외우기도 바쁘다. 햇빛으로 달구어진 시멘트 바닥이 정남향에다 평면이 약간 비스듬하게 기울어져 있기에 농산품을 말리기에는 아주 효율적이고 이상적이다. 이 마당에 나물이나 곡류를 널어놓기가 무섭게 바짝 말라버리니 농촌 살림살이에는 긴요하고 안성맞춤이다. 무미건조하고 단순한, 숨이 콱 막힐 듯 견고한 시멘트마당이 이 동네에서 인기를 톡톡히 누리고 있다.
주로 이웃집 아주머니가 봄에 산나물을 삶아 말리는 것으로 시작해서 된장집의 아주까리 잎이 여름을, 서리가 내릴 즈음에는 무말랭이로 한 해를 갈무리한다. 그 사이에 끝집 아저씨네 벼까지 말리다 보면 너른 마당은 쉴 겨를이 없다. 처음에는 나에게 마당을 사용하는 것에 대해 미안한 내색으로 상의를 했지만 요즘에는 용도가 바쁜 그네들끼리 순번을 정하면서 사용한다.
봄에 산나물이 널리면 향긋한 냄새에 취해 우리 부부는 그 옆에서 햇볕 바라기를 한다. 아주머니의 바쁜 일손을 도와 나물을 널기도 하고 그것을 개평으로 얻어 밥상을 차린다. 어디 그뿐인가. 나물을 삶는 장작불에 고구마와 감자를 구워 아궁이 앞에 둘러앉아 커피와 함께 먹고 마시면 더 이상 부러울 게 없다. 숨가쁘게 바쁠 때에는 한가한 내가 대충 상을 차려서 이웃들과 식사를 같이 한다.
여름에 시멘트에서 받은 땡볕의 열이 집안에 반사되어 찜통같이 더울 것이라는 예상이 다행히 빗나갔다. 에어컨 없이 지낼 만하다. 쓸데없는 걱정을 땅이 꺼지도록 했던 것이 무색하다.
입버릇처럼 말했던 '딱 일 년'이 두 해 째로 접어든다. 내년에는 여기서 십 리쯤 떨어진 곳에 집을 지어 이사를 갈 예정인데 이웃의 만류가 그냥 하는 말이 아니다. 웬만하면 이 집에서 우리 부부가 오래오래 살았으면 좋겠단다. 아무래도 이 너른 마당이 그들과의 친분을 돈독케 하는 끈이지 싶다.
그렇게 되기까지에는 숱한 노력과 시간이 필요했다. 불면으로 지새다가 새벽녘에 겨우 눈을 붙이려는데 마당에서 발걸음 소리와 장작불을 지피는 소리에 어쩔 수 없이 일어나야 했던 적도 허다했다. 싫은 내색을 할 수가 없었다. 게으른 잠버릇이 무안해서 변명이라도 할라치면 그네들은 단잠을 깨워 미안하다고 손사래를 친다.
문제는 변덕스러운 날씨였다. 갑자기 소나기라도 지나가면 말리고 있던 나물을 재빨리 걷어야 하는데 옆집 아주머니는 들에 나가 있어서 그 일은 내 담당이 된다. 그것을 걷자마자 해가 나오면 또 다시 펼쳐 놓는 일을 수없이 되풀이하기도 한다. 봄에서 가을까지 말린 나물을 정월 대보름에 묵나물로 팔아 쏠쏠한 수입원이 되는 것을 모르는 채 할 수가 없어서다.
너른 마당이 장마철을 맞아 휴식기에 들어갔다. 겨울에 삭풍이 몰아치고 눈이 마당을 뒤덮고 있을 때에만 긴 휴식기로 여겼는데 장맛비가 연일 쏟아지니 너른 마당은 말끔하게 세수를 한 채 쉬고 있는 중이다. 밭에서 아주까리 잎이 지천으로 너울거리고 있다. 줄창 쏟아지는 비에 아주머니는 발만 구르고 있다. 대책없이 마냥 기다릴 뿐이다. 너른 마당의 소임은 무용지물이 되어 나까지 일없이 빌빌거리니 좀이 쑤신다. 햇빛을 언제 쬐었는지 가물거린다.
문득 말로의 교향곡<대지의 노래> 볼륨을 한껏 올렸다. 웅장한 선율로 빗소리를 휘감아 버리면 말끔히 개일 것만 같아서다. 너른 마당이 나보다 더 햇빛을 기다리고 있을 게다. 창창한 햇살 아래에서 분주한 손놀림으로 너른 마당에 일감이 가득 채워질 때에 그도 제 소임을 다하고 있다고 기꺼워할 것이다.
전원생활을 설계할 때에는 푸른 잔디밭과 정원, 아름다운 경관을 연상하고 꿈에 부풀었었다. 정작 시골 생활을 겪어보니 그게 아니었다. 나의 알량한 정서가 얼마나 표피적이고 이기적이었는지 새삼 돌이켜보게 된다. 매사에 내 잣대를 들이대고 내 마음대로 재단하고 저울질하는 삶으로 일관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감성을 들먹이며 전원생활을 꿈꾸었던 것들이 너른 마당 앞에서 꼬리를 내리고 말았다. 자연 안에서 주어진 여건에 순응하고 타협하면서 효율성까지 배가하는 농부의 지혜를 터득하는 중이다.
첫댓글 하긴 농촌에서는 차량이 드문 아스팔트 찻길에서도 가을이면 이것저것 많이 말리더군요. 무람없이 마당을 내어주고 사용하는 시골인심이 따스해 보입니다. 처음의 실망보다 있는 것에서 좋은 점을 발견하는 작가의 마음이 바로 살아가며 터득하는 지혜 같아요. 서난석 선생님은 상당히 도시적인 분이라는 느낌이었는데 전원생활의 참모습으로 진입하셨네요.
그렇지요?
송현 합평회에서도 그런 얘기가 나왔었어요.
서난석 선생이 도시적 이미지가 강하잖아요.
시골 사람이 되어가는 과정이 잘 드러난 글이에요.
전원생활을 하면서 마음밭이 한결 풍요로워지고 여유로워진 것 같아요.
이웃과 잘 어울려 즐겁게 살고 계셔요.
콩크리트 마당에 나물, 고추를 말리며 가곡은 무엇을 불렀을까요.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