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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문학> 2020, 가을호 계간평
장마와 홍수, 태풍을 이겨낸 가을 작품
野城 이도현
(한국시조협회 고문)
알밤이 발끝에 뚝 떨어진다. 가을이 오고 있다. 귀한 열매요, 천금보다 값진 보배다. 가을은 그냥 오지 않는다. 긴 장마에 홍수가 넘치고 태풍이 바닷물을 몇 번 뒤집어야 드디어 가을이 온다.
올 여름처럼 지루한 장마, 무서운 홍수, 사나운 태풍이 있었으랴. 게다가 코로나 전염병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으니 하늘도 무심타 이르겠다.
그러한 재앙과 시련 속에서도 귀한 시조의 열매가 빛나고 있으니 글의 힘은 무서우리만큼 강한 것이 아닐까? 이제 그 빛나는 가을 작품들을 함께 읽자.
무언(無言)의 눈빛 좇아 한 곳으로 갈망하다
그림자 움켜지고 홰치며 꿈틀거려
봉황을
닮아서 버려진
전해오는 전설들
언제나 홀로 앉아 먼 숲속 눈길 주다
동구 밖 어귀쯤에 그대로 굳어버린
그 눈빛
황홀한 비상(飛上)
꿈을 꾸는 나목(裸木)들
커더란 날개 접고 꿈꾸며 날아오른
큰 울음 삼키면서 목울대 세워 놓아
그대의 눈부신 비상
솟구치는 나래여
이동배의 -<솟대 1>전문
이동배 시인은 소시집에서 작품 22편을 수록하고 있다. 그중 <솟대 1을> 보기로 한다. 솟대는 민간신앙에서 마을의 안녕과 태평을 기원하기 위해, 또는 마을에 경사가 있을 때 축하의 뜻으로 마을 입구에 세우는 깃대를 말한다. 삼한 시대 신을 모시던 소도(蘇塗)에서 유래하였다고 전한다. 장대 끝에 나무로 조각한 새를 달기도 하고 용을 만들어 붙이기도 하였다.
이 작품에선 봉황(鳳凰)을 조각해서 세운 솟대를 소재로 하고 있다. 봉황은 고대 중국에서 상서롭고 고귀한 뜻을 지닌 전설속의 새였다. 수컷을 봉, 암컷을 황이라 하였다. 그러면서 이 봉황새를 천자(天子)의 상징으로 받들고 비유하곤 하였다.
우리나라에서도 봉황을 고귀하고 품위 있고 빼어난 새의 표상으로 여겨 왔으며 이에 대한 많은 전설이 오늘날까지 전해온다.
이 작품에선 봉황새가 홰를 치며 꿈틀거리는 위용과 천자다운 눈빛 그리고 눈부신 비상을 묘사하고 있다. 봉황솟대를 세운 이 작중 마을은 분명 봉황을 닮아 위엄이 있고, 길하고 태평한 나날이 이어질 게다. 이 시인은 이 작품 외에 동박새, 달, 큰 기러기를 조각한 솟대를 함께 내놓고 있다.
썩은 판자 빼내고 새것 끼워 맞춘 후
알맞은 쇠못들을 고르다 하는 생각
살면서 말로 한 못질 치수 잰 적 없었지
가슴에 박힌 못은 길든 짧든 한인데
뱉어버린 말 허물에 녹슨 지 여러 해라
빼려면 더 아프겠지 그냥 가자 미안해
-고정선의 <못질>전문
못질은 말로서 남을 아프게 한 일, 상처를 준 일을 비유한다. 화자는 평소 다른 사람에게 치수를 재지도 않고 말로 함부로 내뱉은 못질이 많아 그것을 고민하고 있다.
말을 함부로 내뱉고 되돌아 어루만져주고 손 내밀며 사과했어야 함에도 그러지 못한 비겁함에 아파하고 그것을 시로 쓰는 자신이 더 밉다고 시작메모에서 통렬하게 반성한다.
고정선 시인은 판자에다 쇠못을 박으면서 문득 뱉어버린 말속의 허물을 상상하면서 잘못 했음을 후회한다.
몸의 상처는 치료하면 낫지만 말로 준 상처는 좀처럼 치유되지 않는다. 상대에게 쏟은 말 한마디가 얼마나 소중한 것임을 새삼 깨닫게 하는 작품이다. 남에게 상처를 주는 말은 더욱 삼가야 하고, 했다면 즉시 사과할 일이다.
우거진 소나무 숲 한 평 땅 깔고 누워
한 생을 생각하다 정신 줄 잡고 보니
움켜진 두 주먹 속에 흔적 없는 바람만.
서투른 열정으로 호기도 부려보고
모든 게 내 것인 양 큰 소리 쳐 보았건만
한 번쯤 죽어 사는 게 이치라 여기었네.
-김토배의 <작은 무덤의 말>전문
김토배 시인의 <작은 무덤의 말> 전문이다.
시인은 지금 우거진 솔숲 한 평 땅 깔고 누워 작은 무덤 안에서 생각에 잠긴다. 죽음을 체험해보는 것이리라. 움켜진 두 주먹 속엔 흔적도 없는 바람뿐이었다.
그간 서투른 열정으로 호기도 부려보고, 모든 것이 내 것인 양 큰 소리 쳐 보았건만 모두가 허황한 꿈이었다. 한 번쯤 죽어 사는 게 이치라 깨닫는다.
사즉생(死卽生)이니 나를 죽여야 하늘이 보이는 이치를 말함이다. 색즉시공(色卽是空)이라 이 세상 모든 현상은 모두다 공이니 호기도 잠시요 큰 소리도 공일뿐이다.
시인은 소나무 숲 한 평 땅에 누워 세상을 겸손하게 사는 이치를 깨닫는다.
시뻘건 섬진강물 두려워하지 않고
누구를 원망함도 잘못도 탓함 없이
사성암 성현님들께 차분하게 빌었소.
가파른 산꼭대기 사성암 도착하여
인간의 무지함을 깨닫게 하기 위해
성현 적 가르침 달라 간절하게 빌었소.
-문병설의 <사성암으로 간 소>전문
사성암(四聖庵)은 4인 성현을 모신 전남 곡성의 암자다. 올여름 50여일 긴 장마로 우리나라 도처에서 물난리를 겪어야 했다. 특히 섬진강 범람으로 곡성일대가 물바다가 되는 바람에 곡성의 어느 농가의 소가 지대가 높은 사성암으로 피신한 사례가 있었다.
문병설 시인은 이 정황을 고발키 위해 스스로 떠밀려 올라간 소가 되어 사성암 성현께 그 억울함을 호소하고 가르침을 달라고 간절하게 빌고 있다.
지순하기만한 소가 무슨 죄가 있으랴? 아무 잘못도 없이 시뻘건 흙탕물에 쓸려 가파른 산꼭대기 사성암까지 올랐으니 얼마나 놀랐을까?
그러면서 누구를 원망하지도 탓하지도 않으면서 인간의 무지함을 깨닫는 가르침을 달라고 간절하게 빌고 있다.
긴박한 상황을 의인화 하여 해학적으로 구성한 솜씨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벌 나비 푸념하며 물통이 비웃는다
꿀단지 없다 한들 쓸모도 없겠냐만
꿀 보다 소중한 물통 가득 안고 피우네.
보랏빛 알맹이를 나지막이 펼쳐놓고
청순한 이슬방울 송송히 맺혀있네
불일함 나도물통이 욕심 없는 삶이라
들꽃이 피고 지는 교향악 들리는가
물통이 피는 들밭 스님이 참선할 제
무소유 깨달음조차 너에게서 배운다.
-박병윤의 <불일암(佛日庵) 나도물통이>전문
박병윤의 <불일암 나도물통이>전문이다.
불일암은 전남 순천시 송광면에 있는 암자로 법정(法頂)스님의 발원지이다. 송광사에서 불일암으로 가는 길이 ‘무소유 길’이다.
나도물통이는 전남지역에 자생하는 아주 작은 꽃을 피우는 식물로 법정스님이 참선하던 불일암 주변에 많이 자생한다고 한다.
세 수로 된 작품에서 첫수는 아주 작은 꽃 ‘물통’이 꿀보다 소중하다 하였고, 둘째 수에선 보랏빛 물통이 꽃의 욕심 없는 삶을 찬양하고, 마지막 수에선 법정스님의 참선 당시의 ‘무소유’의 깨달음을 배운다고 시를 닫는다.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은 보랏빛 알맹이 꽃, 나도물통이 꽃은 나지막하게 살고자 했던 법정스님을 상징하는 꽃이 아닌가.
화자는 이 꽃의 향기를 감상하며 법정스님의 무소유, 버리고 떠나기 등 그의 고고한 삶의 정신을 찾고 있다.
바람 앞 등불같이 국운이 쇠잔할 때
남해를 지키시어 이 나라 구하시니
역사여 청청하여라 고개 숙인 작은 기도
격랑이 치는 바다 일엽편주 같은 국운
님께서 지키시어 천만대로 잇는 평화
병기를 씻어 보관할지니 준비해야 후회 없다.
-박영숙의 <세병관에서>전문
박영숙 시인의 <세병관에서>전문이다.
세병관(洗兵館)은 통영시 문화동에 있는 조선시대의 건물로 선조 때 통제사 이경준이 이순신 장군의 전공을 기념하기 위하여 세운 건물로 국보 제305호로 지정되었다.
시인은 첫수에선 풍전등화(風前燈火)의 위기에 처한 남해바다를 지키시어 나라를 구하신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위업을 추모하고, 둘째 수에선 임의 승리로 지금까지 평화를 누리게 한 당시의 전술무기를 정성을 다하여 보관하겠다는 의지를 밝힌다.
‘하늘의 은하수를 가져다 피 묻은 병기를 닦아 낸다’는 뜻을 가진 세병관은 통영에서 남해를 지키고 오늘에 선다. 박시인은 지금 세병관 앞에서 임의 위업을 기리며 고개 숙여 기도하고 있다.
산으로 도망친 달 누가 좀 잡아주오
먹구름 밀려오더니 길이 막혀 못 온다
지붕에 박도 떨어지고
소가 올라가 징을 친다
보름달 횃불 들고 삼거리로 모여들 때
교장인 양 세워놓고 묵언(黙言)하던 목장승
산신각 종적이 없다
황토사태 다 삼켰다
역병·액살 씻어 달라 물의 신(神) 청했더니
한꺼번에 쏟아져 물난리가 더 커졌다
소들이 절로 올라가
부처님 귀에 징을 친다
-박헌오의 <징소리 2>전문
박헌오 시인의 <징소리 2>이다. 예로부터 우리 조상들은 홍수나 산불 등 위기에 처하면 징을 쳐서 알리고 구조를 청했다.
올 여름 장마와 홍수가 얼마나 긴박했으면 소가 절간에 올라가 징을 쳤을까? 산으로 도망친 달이 먹구름에 길이 막혀 돌아오지 못하고, 마을을 지키던 목장승, 산신각도 황토가 순식간에 삼켜버렸다. 역병과 액살을 씻어달라고 제를 올렸더니 한꺼번에 물이 쏟아져 홍수가 터 커졌다. 기가 찰 노릇이다.
앞의 문병설 시인의 작품 <사성암으로 간소>에서는 암자에 도착한 소가 인간의 무능을 깨닫기 위한 성현의 가르침을 달라고 간절하게 빌었다면, 박헌오 시인의 작품 <징소리 2>에서는 역병, 액살 등 인재까지 겹쳐 물난리가 더 커졌다며 소들이 절간에 올라가 부처님 귀에 징을 쳐 고발한다. 어쩌면 두 작품이 이렇듯 내용은 유사하면서도 제목만 다를까?
박시인은 근자에 없던 홍수사태, 물난리를 사실적으로 묘사하여 독자들을 긴장시키면서 해학과 은유를 빌어 고발하고 충고한다. 그러기에 더욱 실감실정(實感實情)으로 독자들의 가슴에 와 닿는다.
“소들이 절로 올라가 부처님 귀에 징을 친다”는 해학적 경고는 일품이다. 다급한 위험신호가 아닌가.
다음은 가을 시조단을 보자 가작들이 줄을 잇고 있다.
햇살이 묻어왔나 노랗게 물든 얼굴
실바람 입맞춤에 모가지 한들거리면
심쿵한 사랑의 숨결 속삭이듯 밀려온다.
-강성희의 <금계국>전문
강성희 시인의 <금계국>전문이다.
가을을 대표하는 꽃이 국화가 아닐까. 금계국(金鷄菊)은 길가에 많이 피는 한 해살이 가을꽃이다. 서양 닭처럼 금빛 색깔의 국화라는 뜻의 꽃 이름이다.
9월이면 꽃이 피어 가을을 알린다. 가을이 왔다고 호들갑을 떨지 않아도 강성희 시인은 금계국 한 송이면 가을이 왔음을 안다.
금계국 한 송이가 노랗게 물든 얼굴로 모가지를 한들거리면 심쿵한(놀라거나 설레이는) 사랑의 숨결이 밀려오는 가을 정경이다.
국화 한 송이를 노랗게 물든 얼굴, 모가지 한들거리면, 사랑의 숨결로 병치은유(竝置隱喩)시켜 의인화(擬人化)하여 가을 분위기를 촉촉이 적신다. 여기서 종장 첫구 ‘심쿵한’의 시어가 천금에 값한다.
바싹 구운 전어를 가을 입에 베어 문다
전신을 휘감는 살 썰물 속에 전율 이고
불 속에 몸을 던진 후 뼈 둘 데를 찾는다.
-강영환의 <소신공양>전문
강영환 시인의 <소신공양>단수이다.
가을을 처음 알리는 꽃이 금계국이라면 가을 맛을 처음 알리는 생선이 전어다. 밀물 썰물을 타고 바다를 유영한 전어란 놈이 살이 통통한 채 그물에 걸려 불판 석쇠 불에 노랗게 구워지면 바로 이 행위가 소신공양(燒身供養)이다.
노랗게 구워진 전어 맛이 입안을 깜짝 놀랜다. 얼마나 맛이 놀라우면 집나간 며느리도 돌아온다 할까?
부처님 공양을 위해 자신을 사르는 소신공양을 인간의 입맛을 돋우는 전어구이 맛으로 환치(換置)한 솜씨가 걸작을 탄생시켰다.
동굴에서 불을 먹고 태어난 항아리들
먼 고향 잊었는지 적막 내린 뒤뜰에서
외롭다 말을 잊은 채 삐딱하게 앉아 있다
애지중지 여기시다 어머니 두고 간 뒤
호젓이 당신생각에 눈물 섞어 닦는데
찬바람 귓가에 와서 쉰 목으로 윙윙댄다.
부딪치면 깨질까 다문다문 옮겨 놓고
대문 밖 발소리에 달려가 문을 열자
맨발로 앞산 넘어온 저녁달이 환하다.
-권봄이의 <장독을 닦다>전문
권봄이 시인은 지금 장독을 닦고 있다. 동굴에서 불을 먹고 태어난 항아리가 고향을 잊었는지 뒤란 장독대에서 삐딱하게 앉아 있다고 한다. 재미있는 표현이다.
그러면서 장독대를 애지중지 여기시던 가신 어머니를 떠올리며 눈물을 섞어 장독을 닦아낸다. 부딪치면 깨질까 다문다문 조심스럽게 장독을 옮길 때 대문 밖 발소리에 문을 열자 앞산을 넘어온 저녁달이 환하게 나타난다. 저녁달은 어머니 얼굴임에 틀림없다.
보고 싶은 어머니 얼굴을 저녁달로 환치한 상상이 곱다. 부드럽고 고아한 정취가 무르녹는다.
낙엽을 보면 짠해진다. 아무 이유도 없이
보내 준 손수건이 울긋불긋 살아나서
연둣빛 속잎이 벗어 둔 꽃의 부호를 읽는다.
자, 빛을 사세요 연보라 빨강 노랑
천국의 눈물이 고여 깊디깊은 호수가 된
눈이여 한 번 빠지면 돌아 못 올 저문 강
떠날 때를 아는 것이 얼마나 황홀한지
사랑의 그 꽃말을 다신 전하지 않으리
마지막 지상에 남아 세례 불길을 받는다.
-권혁모의 <가을 편지>전문
권혁모 시인은 지금 가을 편지를 읽고 있다.
낙엽 한 장에 가을 사연 세 수를 담은 편지 내용이다. 낙엽은 쓸쓸한 이미지를 선물한다. 아무 이유도 없이 보내 준 손수건이 울긋불긋 살아나서 연둣빛 속잎이 벗어둔 낙엽 한 장, 꽃의 부호를 읽고 있다.
연보라, 빨강, 노랑, 천국의 눈물이 고여 깊디깊은 호수가 된, 한 번 빠지면 돌아오지 못할 저문 강,,,
떠날 때를 아는 것이 얼마나 황홀하고 서러운지 차라리 사랑한다는 꽃말을 다시는 전하지 않으마. 마지막 지상에 매달려 이승의 죄를 씻는 세례(洗禮) 불길을 받겠다는 사연이다.
낙엽 한 장을 이렇게 미화하고, 은유하고, 서러운 의미를 점층 시켜 이야기를 전개하는 상상력이 어디서 오는 걸까?
마지막 지상에 남아 세례 불길을 받는 너무 서러워서 아름다운 낙엽! 화자는 지금 그 쓸쓸한 가을 편지를 읽고 있다.
아버지,
셋째사위 따르는 술 한 잔에
이 한잔 받으려고 스무 해를 키웠노라
아쉬움 애써 씁쓸히 이런 말씀 하신다
아무런 조건 없이 예쁘게 키웠는데
안주도 하나 없이 눈물로 대신하며
돌아서 미처 못 한 말 잘살게요
아버지!
-김경옥의 <시집가는 날>전문
김경옥의 <시집가는 날 >전문이다. 시집가는 날처럼 가슴 설레고 서러운 날이 있을까.
작품을 대화체로 구성하고 ‘아버지’란 단어를 앞뒤에 수미쌍괄(首尾雙括)로 내세운 점이 독특하다. 그러면서 앞의 아버지엔 쉼표를, 뒤의 아버지엔 느낌표를 달았다. 일품이다.
첫수는 아버지의 대화다. 셋째사위 따르는 술 한 잔에 “이 한 잔 받으려고 스무 해를 키웠노라”
둘째 수에선 시집가는 딸이 안주도 하나 없이 눈물로 대신하며 돌아서 미쳐 못한 말 “잘살게요, 아버지!” 라고 대화를 끝낸다.
시집가는 날의 대화가 길수가 없다. 만단정화(萬端情話)를 어찌 다 풀으랴. “잘살게요, 아버지!” 짧은 한마디면 다 되는 것이 아닌가.
느닷없이 날벼락에 먹장구름 휘몰아쳐
빗줄기 바람타고 사정없이 퍼붓고는
시침 뚝 햇살이 반짝 무지개를 걸었다.
-김기옥의 <소나기>전문
김기옥 시인의 단수이다.
소나기는 먹구름이 몰려와 사정없이 금시 비를 퍼붓다가 순간 햇살이 반짝 빛나는 지나가는 빗줄기다. 이 작품은 소나기의 속성과 특성을 잘 함축한 명편이다.
종장에서 ‘시침 뚝 햇살이 반짝 무지개를 걸었다.’ 고 마침표를 찍었다. 무슨 군말이 필요할까? 종장 한 줄만 가지고도 장문의 사연을 모두 압축했으니 놀랍지 아니한가.
김기옥은 뚝딱, 시조 한편을 지어냈다. 여기서 종장 첫구 ‘시침 뚝’은 절묘한 단어이다. 천량에 값한다.
궁창에 흔들리는 숨가쁜 물보라
천사의 옷자락이 일렁이는 절벽길
해조음 몰아붙이며 바위섬을 흔든다
석병풍 둘러친 울퉁불퉁 바위옹두라지
흰 거품 토해내는 바다를 껴안은 채
아침놀 걷어 올리며 하늘 꽃을 피운다
수로부인 거닐던 칠보궁전 바닷길
천 길 높은 곳에 가슴 펼친 철쭉꽃
노옹이 꺾어 바쳤던 향기로운 순정길
-김남구의 <헌화로(獻花路)>전문
김남구 시인의 <헌화로> 전문이다.
헌화로(獻花路)는 강릉시 옥계면 금진에서 심곡까지의 바닷길로 동해안의 명승지로 알려졌으며 ‘헌화가(獻花歌)’의 작품무대가 되는 길이라 하여 1988년 강릉시에서 ‘헌화로’라 이름 지었다고 한다. ‘헌화가’는 신라 33대 성덕왕 때, 한 노옹에 의하여 불린 4구체의 향가다.
김 시인은 헌화로를 거닐면서 넘실대는 파도와 그 파도를 감싸 안고 바위병풍을 두른 빼어난 승경(勝景)을 찬양하고, 마지막 수에선 헌화가의 주인공 수로부인의 철쭉꽃 사랑이야기를 상상한다.
순정공(純貞公)이 강릉 태수로 부임해 가는 도중, 아내인 수로부인이 건너편 천길 벼랑에 핀 철쭉꽃을 갖고 싶었다. 그러나 너무도 가파른 절벽이기에 아무도 철쭉꽃을 꺾어 오겠다고 선뜻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때마침 암소를 끌고 가던 노옹(老翁)이 위험을 무릅쓰고 꽃을 꺾어 노래를 부르며 수로부인께 꽃을 바친다.
이렇듯 헌화가(獻花歌)의 감동적인 이야기가 ‘헌화로’란 길 이름을 만들었다.
한 박스 몇 개 하고 녹슨 쇠붙이 몇 점
그 위에 해를 싣고 손수레에 끌려가는
주야로 부침하는 그 핏물이 든 발자국.
-김명호의 <노인>전문
김명호 시인의 <노인>전문이다.
한국의 노인들은 대접받지 못해 서럽다. 소득도 OECD국가 중 최하위란다. 인생의 후반기를 정리하고 즐기며 마무리해야 할 시기에 살기가 힘들어 손수레를 끈다.
하루를 연명키 위해 길에서 휴지를 줍고, 쇠붙이를 주어 생을 끌고 간다. 힘들게 끌고 가야 겨우 한 리어카에 4,5천원을 받는단다. 끌고 가다 지치면 끌려서 간다. 이 모습을 ‘주야로 부침하는 그 핏물이 고인 발자국’이라 했다.
눈물겨운 한국노인의 실상이다. 김 시인은 이 작품 외에 <삼한사온> <달동네>에서도 힘들게 살고 있는 우리 소시민의 삶의 실상을 그려내고 있다.
도시의 품어대는 코로나 독기 피해
소리 없이 두드려 본 생명의 초록 산문
이름도 사는 곳조차 묻지 않고 열어주네
앞장서는 다람쥐도 친구 보면 부벼대고
사슴벌레 모여 든 나무 등걸 식탁엔
한 그릇 나누어 먹는 만찬이 부럽구나
빛 고운 6월의 남은 햇살 매만지며
가까운 숨결의 따스한 나눔이
7월은 매일이기를 두 손 모아 기도해요.
-김미경의 <간절한 기도>전문
김미경 시인은 코로나를 피해 도심을 벗어나 산문(山門)을 두드린다. 이름도, 사는 곳조차도 묻지 않고 열어 주는 산문, 다람쥐가 반겨주고 사슴벌레가 모여들어 만찬을 베풀고 있다.
빛 고운 6월의 햇살을 녹음 짙은 산속에서 함께 나누며 즐기며 이제는 작별의 시간, 7월도 따스한 나눔이 계속되기를 손 모아 기도한다.
지금 코로나가 우리들의 생활을 아니 문화를 바꾸어 놓고 있다. 사회적 거리를 두어야 하고, 마스크를 꼭 써야 하고, 외출을 막고 자제하기를 당부한다. 이는 코로나 감염 확산을 막고 이를 퇴치하기 위한 국가 차원의 방역 수단이니 어쩌랴. 좀 힘들어도 이를 실천하자. 그래서 하루 속히 원상으로 회복하기를 함께 기도하자.
“하늘만 쳐다보며 똑바로 누우세요”
불침번 돌아가며 일거수를 감시하는
폐쇄성 요추골절에 발목 잡혀 누운 날
올라갈 하늘에도 내려설 하늘에도
이 빠진 사다리조차 등 돌려 앉은 들녘
조립식 침상마저도 천 길 만 길 벼랑길
묵정밭을 구른 게 무슨 죄가 되나요
네 발로 기던 습성만 고스란히 남아서
빙벽에 뿔을 바친다. 까만 발도 시리다.
-김미향의 <내몸엔 염소가 산다>일부
김미향의 <내몸엔 염소가 산다>일부이다.
김 시인은 폐쇄성 요추골절과 싸우며 살아가는 투병기를 ‘내 몸엔 염소가 산다’고 제목을 달았다. 긴장되는 제목이다.
어느 날 묵정밭에서 굴러 허리를 다친 김 시인은 병상에서 하늘만 쳐다보며 반듯이 누워 치료를 받아야 하는 불편한 생활을 하게 된다. 마치 초식성 동물 염소의 생활처럼 네발로 기어 다녀야 하는 가련한 처지가 되었다. 얼마나 아프고 고통스러우면 ‘조립식 침상마저도 천 길 만길 벼랑길’이요 ’빙벽에 뿔을 바친다. 까만 발도 시리다.‘ ’내 몸엔 염소가 산다‘ 하였을까.
‘내 몸엔 염소가 산다’는 제목이 걸작이다. 제목이 특이해서 관심을 집중하는 작품이다. 시인의 조속한 쾌청 쾌휴를 기원한다.
“뜨거워 못 살겠다” 비명을 질러 봐도
모른 척 모르쇠로 살아가는 사람에게
“너희도 열 받아 봐라” 형벌을 주고 있다.
-김정희의 <앓고 있는 지구별이>전문
김정희의 <앓고 있는 지구별이>전문이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는 몸살을 앓고 있다. 인간들의 무지와 욕망으로 지구가 열을 받아 날로 뜨거워지고 있다.
공장에선 하늘 높이 연기를 뿜어대고, 날로 증가하는 자동차의 매연은 눈을 뜰 수가 없이 도로를 질주한다. 땅에서, 바다에서, 하늘에서 세계는 지금 문명을 창조 한답시고 다투어 열을 뿜어 대기를 오염시킨다.
때문에 지구 온난화로 빙하가 녹아 바닷물이 넘치고, 산불이 도처에서 일어나 는 등 각종 지구 이변이 일어나 인류가 재앙을 당한다. 문명이 발달할수록 지구는 더 훼손되어 폭발하는 재앙을 어이 막을까.
김 시인은 이를 걱정하고 “너희도 열 받아 봐라”라고 인간들에게 경고한다. 자숙하고 겸손해야 한다. 한걸음 느리게 살고 오만을 벗고 나지막하게 살자.
김정희 원로 시인은 천리 길 진주에서 한국시조문학관을 운영한다. 건승건필을 빌어드린다.
화합의 리더십이 세상사를 팽개치고
상생을 덧칠하여 거리 넘친 아우성에
흔들린 자유의 기둥 무게감이 기운다.
아무리 분배해도 아직까지 배고프고
웅크려 비틀대는 빈자들의 하소연이
무너진 고달픔으로 허기마저 쌓인다.
면역이 없는 쓰림 인고 쌓인 결핍들은
철저한 고달픔을 그 누구도 대신 못해
갈라진 마음을 엮어 한숨으로 뒤챈다.
-송귀영의 <빈자의 여로>전문
송 시인은 지금 어렵고 힘든 빈자(貧者)들의 삶의 실상을 묘사하고 고발한다.
빈자의 가는 길은 언제나 고달프고 서럽다. 가난하기에 그 삶이 궁하고 힘이 빠진다.
가진 자들은 리더십을 외면한 채 허울 좋은 상생만을 외칠 뿐이다. 그러기에 힘이 없는 빈자들은 거리로 나가 자유를 달라 아우성이다. 소득을 분배한다 해도 빈자들은 배고프고, 싸인 고달픔으로 하소연을 외쳐대고 허기만 쌓인다. 이렇듯 빈자들의 쓰린 심정은 한숨으로 뒤챌 뿐 늘 부익부 빈익빈 그대로다.
예부터 가난구제는 나라도 어렵다 했으니 무슨 해결방법은 없는 것인가. 사회와 권력은 평등과 공익 그리고 공정(公正)을 주장하고 있지만 실현가능성은 요원한 길이다.
더욱이 코로나로 인해 나라경제가 말이 아니다. 자영업자. 영세민, 노인세대 등 소시민은 지금 너도나도 죽겠다고 아우성이다. 세금을 풀어 난국을 수습한다지만 그것도 임시 땜질일 뿐이다. 당국의 세심한 배려가 있기를 기대한다.
눈물로 바친 사랑 열반에 든 사리인 양
언제 죽을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아무런 바람도 없이 널 지키려 불사른다.
-최은희의 <촛불>전문
최은희 시인의 <촛불>전문이다.
촛불은 자기를 태워 이웃을 밝히는 사랑이다. 이것이야 말로 소신공양(燒身供養)이다.
언제 죽을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아무런 바람도 욕심도 없이 널 지키려 불사른다. 하고 있다.
여기서 ‘널’은 누구를 말함인가? 사랑 또는 자비가 아닐까. 따라서 촛불은 사랑과 자비와 희생의 상징이요 객관적 상관물이다.
최은희 시인은 불심(佛心) 깊은 경지에 들어가 촛불을 사르고 기도하고 있다.
이제 단시조 특집에 수록한 작품을 보자.
초가을 풀 섶에다 귀뚜리소리 묻어두고
달빛 밝은 날 조용히 그들을 풀어 놓으면
어디든 금실을 푸는 소리에 가을 들판이 황금이다.
-박영교의 <추성(秋聲)>전문
귀뚜리 소리는 가을밤을 대표하는 악성이요, 예술이다. 달빛 밝은 밤이면 더욱 가슴팍을 파고드는 애절한 가락이다.
박영교 시인은 이 귀뚜리소리를 놓지지 않고 한 폭 시경(詩境)으로 꿰어 한 수를 지었으니 그것이 금실(琴瑟)이 되었다.
달빛 밝은 가을밤 금실 좋은 귀뚜리가 정을 푸는 소리는 유난히도 적막을 흔들어 깨운다. 흐드러지게 잦은 가락 친다. 귀뚜리 소리가 노랗게 황금 들판이 되었다. 소리가 황금들판으로 전이 된다. 가편이다.
바람은 바람을 업고 물은 물을 품으면서
끝없는 회상의 숲 안기며 감아 도네
유년은 그리움 되어 온 산야를 내달리고.
-오승희의 <고향길>전문
오승희 시인의 <고향길>이다.
오승희 시인의 고향은 어디일까. 바람은 바람을 업고 물은 물을 품으면서 끝없이 감아 도는 곳, 그 곳이 오승희의 고향이요, 유년의 그리움이다. 누군들 고향이 없으랴? 그러나 시인의 고향은 유독 바람은 바람을 업고 물은 물을 품는다. 유년의 그리움으로 다시 떠오른다.
시인은 지금 고향 길에 들어섰다. 산천은 의구하되 반기는 이는 없다. 세월이 그만큼 흘렀기 때문이리라. 그것이 절여오는 향수(鄕愁)가 아닌가.
병이 도는 거리에 장대비는 내리고
사람들이 죽어가는 아득한 비명이여
갇혀서 숨죽여보는 무서워라 한세상
-유자효의 <장마>전문
유자효 시인의 <장마>다.
금년처럼 오랜 장마가 있었으랴. 장대비가 쏟아져 전국 곳곳에 물난리를 쳐, 사상 유례가 없는 피해를 입혔다. 설상가상으로 태풍까지 겹쳤으니 놀람과 공포가 아직도 가시지 않는다.
논과 밭을 순식간에 덮치고, 사람들이 물에 갇히고, 급기야 홍수에 떠밀려갔다. 아수라장을 이루었다. 무서운 여름이었다.
하늘이 내린 가혹한 징벌이었다. 올 봄, 여름은 빼앗긴 한 해였다. 장마와 코로나, 태풍이 함께 섞어 쳤으니 참으로 무섭고 사나운 한 해였다. 어찌 이 악몽을 잊겠는가?
삼천 언덕 호젓이 앉아 백로들의 몸짓을 본다
꼼짝 않고 살피다가 엉금엉금 걸어가서
잽싸게 콕 찍어 채는 하얀 리듬 삼박자
-유휘상의 <하얀 리듬>전문
유휘상 시인은 물가 언덕에 앉아 백로들의 몸짓을 세밀하게 관찰하고 그 순간 행동을 포착, 동영상으로 찍어내고 있다.
백로는 물속에서 먹이를 살핀다. 그러다 먹잇감이 발견되면 엉금엉금 걸어가서 잽싸게 콕 찍어 챈다. 물고기를 잡는 순간의 동영상이다. 그 스릴과 쾌감이 어떠했을까. 이를 하얀 리듬 삼박자라 했다.
백로의 색깔과 동작을 하얀 리듬 삼박자라 했으니 화자의 섬세한 관찰력과 표현력이 조화를 이루었음에랴. 이렇듯 공감각적인 수사가 시의 정서를 한층 세련된 분위기로 환기시키고 있음을 본다.
여기서 종장을 구성하고 표현한 솜씨는 가히 놀랄만하다.
저 양반 입 좀 보게, 근지러워 죽겠나봐.
관록을 앞세우고 여기저기 무불간섭.
우지끈 망신당할라, 얄미워도 걱정되네.
-윤상희의 <망신당할라>전문
우리가 세상을 살다보면 말을 함부로 내뱉어 실수를 하게 되고 망신을 당하는 사례가 많이 있다. 그것도 사회의 지도급 인사가 그러한 경우라면 지탄을 받아 마땅하다.
윤상희 시인은 평소 관록을 앞세우고 여기저기 무불간섭, 함부로 말을 내뱉는 사례를 질타하고 걱정을 한다.
오늘 아침 어느 조간신문 1면 상단에는 ‘국민 가슴에 상처 주는 사람들’이란 제목으로 대서특필한 기사가 눈에 띄었다. 그것도 공교롭게 현직 장관 2명, 국회의원 1명이었다. 그들도 관록을 앞세워 말을 함부로 하는 사람들이었다.
얼마나 부끄럽고 치욕적인가? 국민가슴에 기쁨과 희망을 주기는커녕 상처를 주는 사람들이었다. 이러한 사람들이 높은 자리에서 국록을 받고 있으니 파렴치한 노릇이다. 무엇인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었다. 그러다가 작품 종장에서처럼 ‘우지끈 망신당할라, 얄미워도 걱정된다’
이상 가을 호에 수록된 작품들을 살펴보았다. 지난여름엔 코로나 감염병으로 가뜩이나 우울하고 답답한 판에 설상가상으로 장마와 홍수, 태풍을 만나 근자에 없던 큰 재앙을 당했다. 때문에 우울하고 어두운 작품들이 많았다.
이젠 코로나를 비롯해 모든 재앙이 흔쾌히 물러갈 게다. 그래서 겨울 호엔 밝고 건강한 작품이 많이 생산되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