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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생을 위한 시 창작 강의] 명징한 상관물 1
4. 명징한 상관물(Objective Correlative)
이번에는 외국의 시 창작 이론을 하나 소개할까 합니다. 이른바 ‘명징한 상관물’이 그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여기서 소개할까 말까 정말 오래 망설였습니다. 알고 보면 별 것이 아닌데 깨우치기가 굉장히 어려운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전문가가 아니고는 굳이 써먹을 일도 별로 없는 그런 것이고, 또 모르면 모르는 채로 쓰기도 하는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앞으로 활용할 기회가 무궁무진하고 또 앞으로 우리 시에서 적극 활용할 만한 중요한 수법이기 때문에 일단은 소개를 하고 넘어가는 것이 좋겠다는 결심을 했습니다.
그러니 신신당부하건대, 읽기 지루한 분들은 그냥 통과하기 바랍니다. 괜히 어려운 것에 매달려서 골머리를 앓을 필요가 없다는 얘깁니다. 지금 당장 이해하지 않아도 세월이 가면 저절로 알게 되는 그런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얘기를 굳이 지금 꺼내는 것은 이 책의 독자가 장래에 시인이 될 사람을 상대로 하고 쓰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시를 감상만 하려는 사람이나 재미거리로 읽는 사람들은 이 단락을 넘어서 다음 단락으로 직통하기 바랍니다. 읽으면서 어렵다고 투덜거리면 이 책에 대한 인상 나빠지고 투덜거리는 사람의 마음도 무거워집니다. 다시 한 번 부탁합니다.
그러면 시작하겠습니다.
이 말은 <황무지>라는 장시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적이 있는 엘리어트라는 영국계 미국 사람이 셰익스피어의 명작 <햄릿>을 논하는 자리에서 한 말입니다. 물론 그 전에 이미지즘의 창시자인 에즈라 파운즈가 했던 말을 확대 부연한 것이죠. 이 말이 쓰인 부분을 한 번 인용해보겠습니다.
예술의 형식으로 정서를 표현하는 유일한 방법은 명징한 상관물(Objective Correlative)을 발견하는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그 특수한 정서의 공식이 될 수 있는 일련의 사물, 하나의 상황, 일련의 사건을 말하는 것이다. 감각 체험으로 끝나지 않을 수 없는 이들 바깥의 사물이 주어지면 즉시 그 정서가 환기되는 것이다.
문장이 어렵지 않은지 모르겠습니다. 영어를 번역해놓은 문장이어서 우리나라 사람이 직접 쓴 글보다는 거북하겠지만, 꼼꼼히 읽어보면 그 뜻을 이해하는 데는 어려움이 없을 것입니다.
먼저 번역한 말부터 보겠습니다. <Objective>는 보통 <객관적>이라고 번역합니다. 그러나 적는 이 <적>이라는 말을 독사보다 더 싫어합니다. 그 말의 출처가 꼭 일본이기 때문은 아닙니다. 우리말의 뜻을 가장 모호하게 만들고 그런 영향으로 우리 문장의 구조까지 뒤흔들게 되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이 <적>이라는 말 하나만 우리말에서 없애면 정말 뜻도 잘 통하고 이해하기도 쉽습니다. 예를 들어
사상의 관념적 경도와 토착적 저항
이라는 말을 한 번 보겠습니다. 이게 무슨 말인가요? 사상이 현실 속에 뿌리내리지 못하고 어떤 방향으로 기우뚱 기울어졌고, 그에 따라서 원래 옛날부터 있던 사상들이 그런 경향과 마찰을 일으킨다는 뜻이 아니겠어요? 이렇게 쉽게 전할 수 있는 것을 <적>이라는 글자로 떡칠을 해놓으니 뜻도 잘 안 통하고 한글을 읽으면서도 이게 이해할 수가 없을 지경이 된 겁니다. 그리고 이런 이상한 짓을 자신의 능력이라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이건 배운 사람들일수록 더 합니다. 대학원에서 나오는 논문들을 보면 외계인들의 언어를 보는 것만큼이나 어지러울 지경입니다.
그래서 저는 내가 쓰는 글에서 <적>이란 말을 모조리 쫓아냈습니다. 만약에 말예요? 만약에 여러분이 지금 읽고 있는 이 책이 어쩐지 읽기 쉽다는 생각이 든다면 바로 이 <적>이라는 말이 없기 때문이라고 단정할 수 있습니다. 이 <적>만 없애도 우리말의 절반 이상은 순화된다고 생각합니다.
<Objective>는 누구나 다 알 수 있다는 얘깁니다. 네가 봐도 그렇고 내가 봐도 그렇고, 다른 사람이 봐도 그렇다는 뜻이죠. 그것을 <객관적>이라고 번역해놓으니 이게 무슨 뜻입니까? 그래서 차라리 나는 명징하다는 말로 바꿔쓰기로 했습니다. 명징하다는 말이 어렵다구요? 그래도 <관념적>이라는 말보다는 백 배 낫습니다. 더 좋은 말이 있으면 여러분들이 제안해주기 바랍니다.
상관물이란 말 그대로 서로 관련이 있는 사물이라는 뜻입니다. 가령
내 마음은 호수요.
라는 말을 보면, 마음과 호수는 시인이 볼 때 서로 관련이 있다는 얘깁니다. 이 경우 호수가마음의 상관물이 됩니다. 그런데 이 말 앞에 <명징한>이라는 말이 붙어있습니다. 이 <명징한>은 <막연한>의 반대말입니다. 막연하다(Subjective)는 것은 혼자만의 판단이라는 인상을 강하게 풍기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이 말의 반대말인 명징하다는 자기 혼자만의 판단이 아니라 누구나 그렇다고 여기는 것을 뜻합니다.
따라서 명징한 상관물이란, 상관물은 상관물인데 남들이 다 그렇다고 여기는, 누구나 그렇다고 인정하는 상관물이라는 것입니다. 두 가지 사물이 관련을 맺고 있는데, 그 관계가 누구나 인정하는 그런 관계임을 뜻합니다. 그런데 이 명징한 상관물은 무엇 때문에 필요할까요?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아무런 생각 없이 말을 씁니다. 어머니가 숟가락을 집어달라고 하면 숟가락을 집어드리고 친구가 연필을 빌려달라고 하면 연필을 빌려줍니다. 여기까지는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왜냐 하면 연필이란 물건과 <연필>이라는 말이 서로 밀착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와 달리 말은 있는데 그 말이 가리키는 대상이 없거나, 있더라도 뚜렷하지 않은 것들이 있습니다. 가령, 도깨비 같은 말이 그런 것입니다. 도깨비란 말은 우리가 자주 쓰고 있지만 실상 도깨비는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거든요. 이런 말들은 듣는 사람에 따라서 그 대상의 모양이나 존재가 조금씩 다릅니다. 이렇게 되면 문제는 복잡해집니다. 말이란 어떤 것을 전달하는 것인데 내가 하는 말의 내용과 듣는 사람이 떠올린 말의 내용이 조금씩 다르니까 오해가 빚어질 수도 있는 것입니다.
또 말이란 그 말이 전하고자 하는 뜻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말이 안고 있는 어떤 정서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말의 정서는 사람마다 다를 것입니다. 즉 그 말을 겪은 개인의 체험에 따라 똑같은 말이라도 상당히 다른 느낌을 줍니다. 가령 사랑이란 말을 예로 들어봅시다. <사랑>이란 말은 듣는 사람의 심리상태에 따라서 상당히 다른 느낌을 줄 수 있습니다. 현재 사랑하고 있는 사람에게는 가슴 설레는 말이 될 것이고, 사랑에 실패한 경험이 있는 사람에게는 쓰라린 느낌을 줄 것입니다. 이렇게 한 말이 지니는 내용은 같지만 그 말이 주는 느낌은 사람마다 모두 다릅니다. 그래서 사랑은 그 말을 듣는 사람의 상태와 느낌에 따라 <눈물의 씨앗>이 되기도 하고 <불타는 정열>이 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사랑이 안고 있는 정서를 누구나 알아볼 수 있게 하려면 어떻게 할까요? 이때 ‘명징한 상관물’이라는 걸 끌어들이는 겁니다. 가령 사랑을
장미꽃을 건네는 마음
이라고 해봅시다. 이렇게 해놓으면 이것이 사랑하는 사람의 심리상태를 뜻하는 말이라는 것쯤 누구나 다 알아들을 것입니다. 명징하잖습니까? 사랑이라는 애매모호하고 막연한 말을 누구나 다 알아들을 수 있는 상황으로 바꿔주는 이 방법을 시에 적용할 때 이것을 ‘명징한 상관물’이라고 이름 붙인 것입니다. 어렵지 않죠?
그런데 이 말은 서양의 엘리어트라는 사람이 처음 쓴 말이라고 앞에서 말했습니다. 그러나 이 방법을 그가 처음으로 고안해 낸 것은 아닙니다. 옛날부터 시인들은 이 방법을 자신도 모르게 익혀 썼는데, 거기에다가 명징한 상관물이라는 명칭을 붙이진 않았습니다. 엘리어트가 옛 시를 읽다가 옛 시인들이 자주 쓰는 방법을 발견해내고는 거기에다가 이름을 붙인 것입니다.
그런데 엘리어트는 이 방법을 왜 이처럼 강조했을까요? 시에서 정서가 좀 막연하거나 몽롱하면 안 되나요? 여기에는 엘리어트가 산 시대상황과 관련이 있습니다. 명징하다는 말은 막연하다는 말을 전제로 한 말입니다. 엘리어트는 19세기말에서 20세기에 걸쳐서 산 사람입니다. 그가 이렇게 명징함을 주장한 이면에는 그 당시의 시인들이 명징하지를 못하고 막연했다는 그의 생각이 숨어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생각에만 치우친 당시의 문학 풍토에 반발하여 엘리어트는 문학의 객관성을 주장한 것입니다. 이러한 경향이 20세기초에 미국과 영국에서 발생했는데 이것을 문예사조에서는 이미지즘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서양 사상과 문학의 흐름을 알아야 올바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잘 알려져 있듯이 서양의 근대는 과학과 이성의 시대입니다. 과학과 이성의 공통된 기반은 사고의 합리성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일에는 반드시 원인이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일이 일어나면 그 일이 있게 된 원인이 있고, 또 결과가 있다는 식의 생각 말입니다. 서양의 근대는 이같이 합리와 이성에 바탕을 둔 세계입니다. 오늘날 서양이 보여주고 있는 물질문명의 눈부신 발전은 이러한 배경 위에서 열린 것입니다. 르네상스 이후 모든 사회 분야에서 이성에 대한 믿음은 흔들릴 수 없는 그런 확고부동한 것이었습니다. 중세의 전지전능한 하느님을 잃어버린 대신에 이성이라는 새로운 아버지를 발견한 것이지요.
그러나 문명이 발전을 거듭하면 그에 따라 문명의 어두운 뒷골목도 함께 발전합니다. 인간들이 발명해낸 여러 가지 문명의 이기가 인간의 생활을 점점 윤택하게 하는 동안 그 뒷골목에서는 전쟁용 무기가 대량으로 개발됩니다. 쉬운 예로 노벨이 발명한 화약을 들 수 있을 것입니다. 화약은 그 굉장한 폭발력으로 해서 산을 무너뜨리고 도시를 세워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했지만, 그 반대로 폭탄을 만들어 유사 이래 최대의 인명 살상을 할 수 있게 했습니다. 그래서 노벨은 이를 가슴 아프게 여기고 자신이 번 돈으로 평화를 위해 일한 사람에게 상을 주도록 유언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매년 세계를 떠들썩하게 하는 <노벨상>임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인간이 이성을 믿음으로 해서 세계는 한편으로 발전해 나갔지만, 또 한편으로는 세계를 몰락의 길로 나아가게 했습니다. 이성의 어두운 그림자가 서양 사회에 사실로 나타난 것이 바로 제1차 세계대전입니다. 그 이전까지 서구의 위대한 사상가들은 세계를 지배하는 원리로서 이성을 확고하게 믿었습니다. 그러나 이성이 가장 풍만하게 꽃을 피웠고 또 서양의 지식인들이 털끝만큼도 믿어 의심치 않던 문명이 다다른 곳은 인류가 꿈에도 그리던 유토피아가 아니라 세계대전이라는 처참한 살육의 현장이었습니다.
이 전쟁이 서양의 정신사에 끼친 영향은 엄청난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이성에 대한 믿음이 그 전과 다르게 흔들리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전쟁이 끝난 서구 사회는 짙은 허무주의에 빠져들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얼마 가지 않아 2차 세계대전이 또 발생하여 지식인들의 절망은 극에 이르렀습니다. 이런 파동은 문학에도 여지없이 영향을 끼쳐서 시인들은 고독, 불안, 슬픔 같은 몽롱한 정서로 세월을 눈물과 함께 했습니다. 이것이 말한 세기말의 퇴폐 문학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퇴폐라고 비난은 하지만 당시의 위기의식을 감안하면 이해해줄 만도 한 것입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면 인간의 피괴 본능과 이성에 대한 비난이 문학의 전면에 노출됩니다. 그런 경향이 다다(Dada)라고 하는 전위예술입니다. 그것은 또 초현실주의로 넘어갑니다. 둘 다 인간 이성의 영역을 벗어나려 한다는 점에서 공통분모를 보여주고 있지요.
언제나 그렇지만 한 사조가 무르익어 대다수의 사람들이 그것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일 때쯤이면 다시 새로운 사조가 싹터 그에 대립하게 됩니다. 20세기로 접어들면서 불안과 허무의식이 팽배해있던 서양 사회에 새로운 정신사조가 나타납니다. 도시문명을 꼭 그렇게 우울하고 절망에 빠진 것으로만 보아야 하느냐 하고 묻는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이 몸담고 있는 도시 문명을 슬픔과 허무 일색으로 본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려는 쪽으로 접근했습니다. 이런 현상이 예술에 나타난 것을 모더니즘이라고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현실의 문명을 긍정한 것만은 아닙니다. 이들에게도 문명의 비인간화 현상을 비판하는 자세는 여전하지만 그것을 대하는 태도는 달라졌습니다. 시에서 에즈라 파운즈, 흄 같은 사람들이 그런 부류입니다. 특히 이 운동이 시에 나타날 때를 이미지즘이라고 합니다.
서구 사회가 허무와 불안에 싸여 사람들이 세기말 문명의 우울한 정서를 대책 없이 노래하고 있을 때 그들은 한창 새로운 붐이 일고 있는 동양에 눈을 돌렸습니다. 이성에 대한 믿음이 무너진 그들에게 동양은 이상야릇한 세계로 비쳤습니다. 그곳은 가난한 곳일지언정 정신만은 안정되고 풍요로운 사회로 비쳤던 것입니다. 그때 서양에 주로 소개된 예술은 인도, 중국, 일본의 것이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일본은 일찍부터 문호를 개방하여 서양의 제국주의와 결탁하고 새로운 제국주의 국가로 급속히 성장하고 있었기 때문에 기타 예술도 활발하게 소개되었습니다. 서양사람들이 선불교를 첸(Zen-Buddhism)이라고 한다든가 인삼을 진셍(Zinseng)이라고 한다든가 하는 영향은 우리보다 일본이 먼저 서양에 접촉했기 때문에 생긴 일입니다. 동일한 한문을 일본식으로 발음한 것이거든요. 선불교는 그렇다 쳐도 인삼의 종주국인 우리나라로서는 참 억울한 일이지요. 김치가 기무치가 될 뻔한 일이 실제로 그렇게 된 경우입니다.
서양의 시인들이 바라본 일본과 중국의 시는 신선함 덩어리였습니다. 당시 세기말의 문학에 식상해있던 서구 시인들이 깔끔하고 산뜻한 동양의 시를 보면서 그들의 문학이 나아갈 방향을 암시 받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동양의 문학 특히 일본과 중국의 시를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분위기가 무르익으면서 형성된 사조가 이미지즘입니다. 이미지즘이라고 하는 것은 이들이 주로 이미지 중심의 시를 썼기 때문입니다. 그 이전에는 주로 눈물이나 탄식을 노래했기 때문에 자연히 노래처럼 리듬에 의존하는 경향이 강했는데 이들은 시의 음악성 대신에 시각에 의존하는 회화성을 강조한 것입니다.
이런 경향이 우리나라에도 수입된 적이 있습니다. 1930년대 중반의 김기림, 김광균 같은 시인들이 이런 경향을 실험해보았습니다만, 한결같이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미지즘의 정신을 배운 것이 아니라 반짝이는 기교 몇 가지를 엿보고 그것을 우리나라 풍토에 어설프게 심어본 것이 때문입니다. 정신이 빠진 시는 낙서일 뿐입니다. 이런 분위기는 카프(KAPF)라는, 요즘 식으로 말해서 참여문학을 주장하던 단체가 일제의 강압에 못 견디고 해체되면서 그 빈자리로 잠시 밀려든 것입니다.
그런데 앞서 말했지만 시에서 이미지즘이라는 사조가 동양에서 흘러간 것이기 때문에 그 전통은 우리에게 낯선 것이 아닙니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시조나 한시를 조금만 들여다보면 30년대의 어설픈 이미지즘 시보다 훌륭한 시들이 수두룩합니다. 옛날부터 우리 조상들이 써오던 방법을 외국, 특히 일본에 비싼 돈 주고 유학 가서 배워온 것이니 차라리 해프닝이라고나 할 것입니다. 물론 문예사조란 한 사회의 정신이 물결처럼 흐르는 것이어서 옛 시들이 그대로 현대에 적용될 수는 없는 것이지만, 당시 우리의 문단에 이미지즘을 수용할 만한 여건이 아직 형성되기 전이어서 아마 그들의 시도가 실패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이 명징한 상관물의 방법은 시뿐만이 아니라 불교의 선종에서도 많이 써온 방법입니다. 시에서 쓰이는 것과는 좀 다르지만 그와 유사한 방법으로 선승들은 대화를 했습니다. 화두가 그것입니다. 예를 들면, 당나라의 유명한 운문 스님에게 어떤 중이 와서 부처가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운문선사는 똥 막대기라고 대답했습니다.
선문답은 이렇습니다. 불교의 이치란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성질의 것이어서,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내용을 물어오니 이런 엉뚱한 대답을 한 것입니다. 말로 설명할 수 없으니 진리에 대한 깨달음을 위한 힌트를 줌으로써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깨달음을 주고자 하는 사람으로서는 당연히 부처에 대한 궁금증이 일게 되어있지요. 깨달음이 어렵다고 느낄수록 그 깨달음을 이룩한 부처님에 대한 존경이 커지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이 중도 마찬가지여서 이미 득도한 노승에게 무언가를 얻어들으려고 한 모양입니다. 질문한 사람으로서는 당연히 노스님의 그럴 듯한 대답을 기대했겠지요. 그런데 예상과는 전혀 다르게 위대한 부처님을 똥 막대기라고 한 것입니다. 질문한 중의 기대심리를 어그러뜨리고 새로운 의혹을 일으켜 놓음으로써 깨달음의 실마리를 주려고 한 의도지요. 이렇게 대답함으로써 적어도 그 중이 부처에 대해 갖고 있던 한 가지 고정관념을 깨뜨려준 것입니다. 그러면 왜 그렇게 답했을까 하고 새로운 의혹으로 넘어가겠지요. 어떤 고정관념의 노예가 되면 진실을 꿰뚫어볼 수 없는 법이니, 부처를 굉장한 존재로 여기는 그 중의 선입견을 깸으로써 도에 한 발자국 더 가까이 가도록 한 것입니다. 임제록에 있는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라는 말도 마찬가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논리, 곧 말의 함정과 고정관념을 깨뜨리는 것이 깨달음에 이르는 첫 발자국임을 말하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부처가 똥 막대기면 어떻고 구더기면 어떻습니까? 문제는 대화할 때의 심리상황을 잘 파악해서 부처를 똥 막대기라고 한 그 쓰임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 상황에서 부처를 똥 막대기라고 해야 질문한 중의 고정관념을 깨뜨릴 수 있을 것이니 그렇게 한 것이고, 이때 부처의 대용으로 쓰인 이 똥 막대기가 우리가 말한 상관물에 해당합니다. 부처는 실체가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그러나 앞뒤 문맥으로 보아 부처의 깨달음을 대변해 줄 수 있는 것이 그 대화에서는 똥 막대기였던 것입니다.
더 이상은 불교의 깨달음에 관한 것이어서 나로서는 감당할 능력이 없을뿐더러 여기에서는 필요 없는 이야기이니 이만 줄이겠습니다. 그러나 명징한 상관물이란 이미 우리가 옛날부터 써온 방법임을 기억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