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 다니는 명품 / 심상옥
친구들과 함께 베네치아를 찾는다는 기대감 때문인지 몸과 마음이 한층 가벼운 여행길이다. 밝고 따사로운 봄볕이 베네치아 운하를 더욱 평화롭게 보이게 한다. 그 아래 펼쳐진 수심이 푸르다. 못해 검게 넘실거린다.
수많은 관광객들이 명품 티셔츠와 청바지를 입고 그런가 하면 소박한 차림에 수수한 모습도 하나같이 멋쟁이로 보인다. 걸어 다니는 여인들이 마치 물감을 짜는 팔레트처럼 다양하다. 이들의 멋진 모습을 보는 것 자체가 이색적이고 볼거리이다.
나는 운하를 보면서 지난날의 일들을 회상하였다. 건물과 건물 사이에 출렁거리는 모습에서, 갑작스레 욕심과 번뇌를 지녔던 지난일이 마음을 저리게 하였다. 문득 외로움이 파도를 타고 밀려온다. 지금까지 살아온 자신의 일에 오만과 가식으로 사람을 대했던 일, 모든 것이 내 뜻대로 된다는 허황된 꿈들이 한꺼번에 몰려와 그야말로 인생을 모르는 철부지였다. 그렇지만 내가 살아온 과정과 지나간 모든 일들이 허무한 것으로만 여겨지지는 않는다.
요즘 여성들은 명품이면 사족을 못 쓴다. 대체 명품이란 무엇인가. 코코샤넬을 고상하고 우아한 것의 대명사로, 오랫동안 로고 패션에서 제일로 꼽는다. 누구든 샤넬을 입는 순간 자신이 가진 재력과 권력, 고상한 취향을 드러내었다. 샤넬을 입을 수 있다면 여자로서는 그 이상의 행복감과 더불어 우월감에 젖곤 하였다.
에르메스, 페라가모, 프라다, 에트로, 펜디… 등 명품 브랜드에 중독되어, 카드빚에 쫓겨 패가망신을 한다. 이들은 명품을 사며 자신의 가치가 상승된 듯이 근사하게 보이고 싶은 순간의 도취에 빠져든다. 나는 머리에서 발끝까지 온통 명품으로 둘러싼 여인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명품을 입는 사람이 명품 디자이너를 만들어 주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20대 젊은 여인들의 옷차림에서 가슴에 붙은 티셔츠와 배꼽을 드러낸 모습들, 더구나 옷을 몸에 많이 걸치지 않을수록 멋스럽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탈리아의 여인들이 풍기는 차림새는 우리 젊은이와는 분위기가 다르다. 이들의 머리는 천연의 갈색에 배꼽을 드러내 보이는 차림새가 나름대로의 멋을 갖고 있다. 마치 삶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옷차림으로 물결치는 모습들이 바로 패션이다.
사람들이 서로 비슷하다는 점에서 안정감을 느끼는 경향이 있다. 너무 눈에 띄는 것들에 대해서도 거부감을 가지게 된다. 자신의 개성을 표현하면서 아름답고 조화로운 모습이 주위의 시선을 끌게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많은 사람들이 가짜 명품을 입고 다닌다고 하는데, 그 모습을 생각할수록 웃음이 나지 않을 수 없다. 빈껍데기를 입고 대낮에 활보하는 모습이 생각만 해도 우습지 않는가.
나는 베네치아에 걸어 다니는 여인들을 보면서, 르네상스문화와 융합된 명품을 엿볼 수 있었다. 운하는 서서히 어둠이 깔리고 바림에 스치는 물결이 속삭인다. 끊임없이 출렁이고, 별빛은 운하 위로 더욱 신비로운 은빛으로 반사시킨다.
나는 이 베네치아에서 밤이 깊어가는 줄 몰랐다. 보헤미안처럼 여정도 모른 채 떠있는 돛단배들이 한층 천연적인 신비와 우주의 섭리를 느끼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