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직도 연애를 꿈꾼다 (隨筆)
影園 김인희
나는 아직도 연애를 꿈꾼다. 다람쥐 쳇바퀴 돌리는 일상에서 전환하고 싶을 때 내가 지르는 외마디 입버릇이다. 계절이 또 다른 계절로 옮겨 갈 즈음 몸살처럼 바르르 떨면서 연애를 꿈꾼다고 실토하는 버릇은 어쩌면 불치인지도 모르겠다. 타인들이 얼핏 들으면 놀라움을 감추기 힘들겠지만 우리 가족들은 허허 웃으면서 넘겨버린다. 내 나이 지천명을 넘기고 두 자녀들이 성인으로 성장한 지금도 불치는 호전될 기미가 없다.
나의 이십대는 교회에서 헌신하고 살겠다고 다짐했었다. 마음의 빗장을 걸어 두고 거룩한 소망을 마음에 간직하고 직장생활과 교회생활을 오갔다. 가족들의 의기투합으로 남편을 소개로 만나고 손가락 꼽을 만큼 짧은 만남 후 결혼을 했다. 작은 아파트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할 시기에 우리 살림집이 고등학교 근처라는 이유로 고등학교 3학년이었던 시동생과 동거를 했다. 그때 나는 바람직한 모범적인 새댁이었다. 새벽에 일어나서 밥을 지어 먹고, 시동생 도시락을 챙기고, 저녁에도 밥을 지어서 상을 차리고 밤에 야식을 준비해서 책상에 올려두고 고단한 잠을 청했던 기억이 새롭다. 지금도 남편에게 연애기간이 없었던 것과 달콤한 신혼이 없었던 것을 심심풀이 삼아 잔소리를 해댄다. 아마도 늙어 파파할머니가 되어도 내 연애에 대한 한풀이는 멈추지 않을 듯싶다.
언젠가 ‘오늘부터 나 연애 시작 했어’하고 선포하고 책을 들고 이층으로 올라갔다. 시집을 펼치고 미소를 머금은 나를 보면서 딸아이가 ‘엄마 애인이 누구예요?’하고 맞장구를 친다. 나는 말없이 시집 표지를 보여주었다. 그날 이후로 나의 연애 상대는 시한부라는 것과 언제든지 상대가 교체된다는 것을 우리 가족은 알고 있다. 몇 년 전에 태백산맥이라는 소설을 읽기 시작했을 때는 아들아이가 호들갑스럽게 아빠에게 달려가서 ‘아빠, 이번에 어머니 연애는 장기간 유지될 것 같습니다.’하고 말해서 가족들이 박장대소 한 에피소드 가 있었다.
나와 딸아이는 일 년에 두 번씩 서울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에 전시회를 가기로 약속을 했고 고스란히 지키고 있다. 프랑스의 오르세 미술관이 왔을 때 고흐에 매혹되어서 지낸 적이 있었다. 모네와 르누아르는 지금도 우리 모녀의 대화에 등장하곤 한다. 샤갈 전에 다녀왔을 때는 감동이 몇 배 컸었다. 아름다운 색채 못지않게 샤갈이 유대인이라는 사실과 그의 그림 곳곳에 유대인의 삶 –랍비와 성경-을 표현해 둔 것에 감동이 커서 말을 잇지 못했었다. 샤갈은 그림으로 2차 대전에 유대인의 학살의 역사 홀로코스트를 잊지 않도록 유대민족에게 민족의식을 전해주려는 사명을 가지고 있었다고 했다. 역시 유대인은 다르구나! 감탄을 금치 못했었다. 서울에서 내려오는 버스 안에서 그 감동을 역설한 나를 보고 딸아이는 ‘엄마 이번에는 샤갈과 연애중이죠?’하고 결론지었다. 그날 우리 가족들에게 나는 국제적으로 연애하고 있다고 대단하다고 놀림을 받았었다.
여름에 진해에서 대학교를 다니고 있는 아들아이가 3주 하계휴가를 와서 같이 지냈다. 남편과 둘이 지내던 적막한 가정에 쿵쿵거리면서 다니는 아들 발걸음 소리가 들리는 분위기가 좋았다. 퇴근하면서 간식을 사들고 귀가하는 시간이 달콤했다. 일과를 마치고 밤늦은 시간에 책을 펼쳤더니 아들이 바짝 다가온다. 내가 읽고 있던 책을 살짝 뺏어 들고 표지를 살피더니 갸우뚱 한다. 그때 나는 <칼의 노래>를 읽고 있었다. ‘엄마, 이번에는 애인이 누구예요? 감 잡기 어렵네요. 작가인지 주인공인지. . .’ ‘응, 둘 다야. 작가도 멋지고 주인공은 말 할 것도 없지.’ 아들아이가 엄청 난감해 하더니 소리 지른다. ‘와! 대박사건이다. 아빠, 누나~~ 이번 어머니 연애는 삼각관계예요.’ 하하 호호 낄낄. 난리 났었다.
불타는 태양이 물러가면서 코스모스를 불러들이고 있는 계절의 기로에서 나는 다시 신음하고 있다. 오늘도 사무실을 나와서 몇 번을 푸른 하늘을 우러러 보면서 탄성을 질렀다. 지금 글을 쓰고 있는 늦은 밤에 가을벌레들의 합창이 한창이다. 주체할 수 없는 이 감정을 어찌할까? 아, 다시 연애를 시작해야겠다. 내일 주말에는 서점에 들러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