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왼팔로 창문을 열어두고
김기형
이불 안에 손이 놓여 있다
꿈을 꿀 땐 손을 쓰지 않는다
잘 익은 토마토를 머리맡에 둔다
일어나면 새카맣게 탄 새 한 마리가 창에 와 있다
토마토를 창가로 옮긴다
바람이 소리를 끈질기게 낸다
지붕이 열릴 수도 있다
이 집엔 공기가 너무 많다
창문 밖으로
긴 장례 행렬이 지나간다
설탕을 뿌려 개미를 모은다
담벼락이 흔들린다 토마토가 검게 덮인다
새들이 소리도 없이 내려앉는다
다 같이 매달려 조금씩 사라진다
집게손가락을 높이 들어 새들을 불러본다
푸시시 주저앉은 토마토, 넓고 둥글다
동선을 바꿔오는 두 발
까만 재가 머리카락 사이에 붙는다
크게 젖는다
토마토를 반으로 갈라
새들을 위한 제사를 지낸다
뒤죽박죽 엉켜있는 옷장을 연다
축축한 얼굴이 아직 웃고 있다
모락모락 연기를 채운다
검은 반점이 번진다
⸺ 계간 《열린시학》 2018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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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형 / 1982년 서울 출생. 강남대 국문과 졸업. 건국대 국어교육과 석사. 2017년〈동아일보〉신춘문예 시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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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승현의 내가 읽은 좋은시
너의 왼팔로 창문을 열어두고 / 김기형
김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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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0.05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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