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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쓰게 된 동기는 세 가지이다.
첫째, 한국교회사를 공부하다가 발견한 소중한 자료를 친구와 함께 나누기 위함이다. 교회사란 학문이 자료를 찾고, 읽고, 해석하는 작업이다보니 다른 분야보다는 많은 자료를 접하게 되는데 대부분이 앞서 살았던 ‘신앙 선배’들의 삶과 신앙, 교회 역사에 관한 것들이다. 그런 자료를 읽다보면, 역사학자로서 지녀야 할 객관적 중립성이나 가치중립적 냉정을 잃을 정도로 때로는 감동, 때로는 아픔을 느끼게 만드는 것들이 있는데 그런 경우는 내가 자료를 읽는 것이 아니라 자료가 나를 읽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마치 내가 시공간을 초월한 역사무대에 끌려 나가 선배들로부터 “우리는 이렇게 살았는데 너는 어떻게 살고 있느냐?”라고 심문을 당하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아무튼 그것은 격려와 채찍이었고 도전과 충고였다. 그렇게 ‘감동을 받은’(소위 은혜를 받은) 자료를 “받은 은혜는 나눠야 한다.”는 신앙 원리에 따라 나누기로 한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이 책은 한국교회사의 원자료(primary source)를 읽는 것에 최우선 목적을 두었다. 근대역사학의 개척자 랑케(Leopold von Ranke)가 제시한 바, “자료가 말하게 하라.”(Laß sprechen die Materiallen)는 명제를 굳이 인용하지 않더라도 역사는 자료의 음성을 듣는 것으로 시작하는 학문이다. 주관적 판단과 해석을 최대한 절제하고 자료 안에 함축되어 있던 메시지와 의미를 ‘깨달아’ 가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그런 과정을 통해 ‘과거’는 ‘현재’에게 질문하고 ‘현재’는 ‘과거’에게 대답하는 식의 대화가 이루어진다. 그래서 또 다른 근대역사학의 개척자 카아(E.H. Carr)는 역사를 “과거와 현재의 대화”(dialogue between the past and the present)라 하였던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이 책에서는 한국교회사에 등장했던 역사적 인물들이 남긴 설교와 논문, 수필과 시론을 가능한 한 발표 당시의 문체로(한문과 고어를 모르는 현대 독자들을 위해 표기법만 현대식으로 바꾸어) 가감 없이 ‘온전한 본문’(full text)을 소개하는 데 주안점을 두었다. ‘자료 읽기’ 앞뒤에 붙인 글은 독자보다 자료를 먼저 읽은 필자가 이해를 돕기 위해 쓴 ‘주해’ 정도로 생각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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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한국교회사를 관통하는 ‘영성운동’의 흐름을 정리하기 위함이다. 한국교회사 밑바탕에 흐르는 영성의 흔적을 추적한다는 말이다.
‘영성’(spirituality)은 종파를 초월하여 모든 종교의 핵심이다. ‘신 체험’(神體驗), ‘진리 체험’ 등으로 바꾸어 부를 수도 있는 이 근본적인 체험과 그것을 바탕으로 나오는 신앙고백과 진술, 그것이 종교의 이론과 실천의 내용이 되는 것이다. 기독교 신학과 목회의 핵심도 이런 진리 체험과 고백을 담은 ‘영성’이어야 함은 당연하다. 이런 ‘영성’을 체험한 사람들이 어떻게 그것을 진술하고 실천하고 전파해 나갔는지, 다른 말로 그리스도 이후 ‘영성에서 영성으로’(spirit to spirit) 이어지고 확장된 역사를 기록하는 것이 교회사를 기록하는 목적이다.
교회사를 영성사(靈性史)라 하는 이유다. 그래서 이 책의 부제를 “자료로 읽는 한국교회 영성사”라 하였다.
오늘 교회 안팎에서 “한국교회가 위기에 처해 있다.”는 말을 많이 한다. 요즘 인터넷에서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안티기독교’, ‘반기독교’ 운동의 문화적 정서를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교회 안을 들여다보면 교세 성장이 멈춘 것은 이미 오래고 점차 감소되는 상황에서 교회재정도 축소되어 선교와 전도활동이 예전처럼 활발치 못한 ‘외적인’ 현상에서 위기의식을 느낄 만하다.
그러나 보다 심각한 것은 ‘내적인’ 요인이다. 현대교회 목회자들의 윤리적 타락과 지도력 부재, 물량적이고 세속적인 교회 운영이 오늘 한국교회 위기를 자초한 원인이 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런 점에서 오늘 한국교회 위기는 ‘영적 위기’에서 비롯되었으며 위기 극복의 방안을 ‘영성 회복’에서 찾는 것이 당연하다. 특히 한국교회 목회자, 그리고 목회자를 길러내는 신학교 교수들이 정신을 차려야 하겠다. 그리고 먼저 ‘영성’을 회복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하겠다.
그런 점에서 우리보다 훨씬 더 열악한 환경, 불리한 조건에서 영성을 체험하고 그것을 실천하면서 한국교회를 세우고 지킨 신앙 선배들의 ‘영성 이야기’(spiritual history)는 영성 회복을 희구하는 오늘 우리에게 도전이자 희망이 될 것이다.
셋째, 영성 신학의 토착화(土着化) 작업을 위한 자료를 제공하고자 함이다. 최근 10년 사이에 신학교에서나 교회, 일반 기독교인들에게 많이 읽힌 책들의 주제가 ‘영성’과 관련된 것임은 이미 확인된 사실이다. 그만큼 오늘 한국교회가 ‘영성’에 목말라 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특히 루이스(C.S. Lewis)나 헨리 나우웬의 영성 관련 책은 미국에서 나오기가 무섭게 한국어로 번역되어 한국 서점에서도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교파를 망라하여 신학교에서도 ‘영성’ 관련 과목들이 개설되어 그 동안 주류 신학과 교회사에서 소홀하게 취급하였던 사막교부와 수도원, 동방교회와 경건주의 영성에 관한 수업을 실시하고 있다. 최근에는 개신교회와 신학교에서 가톨릭교회의 오랜 영성수도 과정인 관상기도(觀想祈禱, contemplatio)와 성무일도(聖務日禱, officium divinum), 영적 독서(靈的讀書, lectio divina) 등을 도입한 영성 훈련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목회자 재교육 과정으로 실시하기도 한다. 바람직한 현상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문제는 한국교회에 유행하는 영성 관련 교재나 훈련이 천편일률적으로 외국에서 들여온 ‘서구교회 전통’의 것이라는 점이다. 물론 기독교 영성이 삼위일체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체험하는 것을 본질로 하기에 시공간을 초월한 인류 ‘보편적’(universal) 가치와 내용을 갖고 있음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처럼 같은 내용의 영성이지만 그 표현 양식에서는 언어와 문화가 다른 민족 ‘고유의’(particular) 형식을 취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아무리 정확하게 번역을 한다고 해도 영어로 표현된 미국인의 영성이 한국인들에게 내용면에서도 정확하게 전달되기는 어려운 것이다. 그런 점에서 같은 문화와 역사 전통을 공유한 우리 선배들이 이 땅에서 체험하고 실천한 영성의 진술은 (번역된 서구교회의 그것보다) 한층 쉽고 정확하게 전달될 수 있을 것이다.
번역본을 읽을 때와 원본을 읽을 때의 차이를 아는 교수라면 번역된 서구교회 자료를 갖고 할 때와 우리말로 된 우리 자료를 갖고 하는 영성 수업의 차이를 알 수 있을 것이다. 한국에서 영성 신학을 ‘우리 것’으로 하자는 이유가 그것이다.
여기서 더 나아가 한국교회의 자랑스러운 영성 전통을 세계교회에 알려야 할 의무가 우리에게 있다. 한국교회는 한 세기 남짓한 역사에서 ‘근대 선교역사의 기적’으로 일컬어질 만큼 괄목할 만한 부흥과 성장의 역사를 이룩했다. 더욱이 그런 부흥과 성장이 한말과 일제시대, 해방 후 분단시대의 모진 박해와 수난, 갈등과 분쟁의 역사현장에서 이루어진 것이고 그 과정에서 형성된 한국교회 ‘영성’이기에 더욱 가치가 있는 것이다.
그 결과 한국교회 역사 속에 발견되는 영성은 서구 기독교 역사에서 형성된 그것에 비하여 조금도 손색이 없을 뿐 아니라 서구 기독교인들이 체험할 수 없는 깊이와 넓이를 담고 있어 서구 영성신학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줄 수도 있다.
나는 그것을 1907년 평양 대부흥운동 때 미국인 선교사가 남긴 기록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1907년 1월 평양에서 일어나 전국으로 확산된 대부흥운동을 현장에서 목격한 미감리회 선교사 무어(J.Z. Moore)가 선교사 잡지 The Korea Mission Field에 발표한 “The Great Revival Year”(대부흥의 해)란 논문인데, 그 해 일어난 대부흥운동의 진행과정과 결과를 상세하게 서술한 후 다음과 같은 말로 대부흥운동의 의미를 요약하였다.
“사실 1년 전까지만 해도 나는 일종의 편견을 갖고 있었는데 서양은 서양이고, 동양은 동양이며, 동양과 서양 사이에는 어떤 유사성이나 공통점도 없다고 생각하였다. 한국인들은 우리 서양인들이 하는 것과 같은 종교 체험을 할 수 없다는 식으로 동료들과 말하곤 했다. 그런데 이번 부흥운동으로 나는 두 가지를 깨달았다. 첫째, 서양인과 한국인 사이에 표면적으로는 서로 다른 점이 천 가지가 넘는다 하더라도 가슴 깊은 곳, 근본적인 영역에서는 서로 하나라는 점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살게 하시고…… 하나님을 더듬어 찾아 발견하게 하려 하시’(행 17:24~27)기 때문이다. 둘째, 이번 부흥운동을 통해 내가 깨달은 것은 동양인들이 여러 가지 형태로 기도생활과 어린아이와 같은 단순한 믿음을 통해 경건한 생활을 영위할 뿐 아니라 한층 깊이 있는 신앙생활을 하고 있어 우리 서양인들이 배워야 한다는 점이다. 우리가 그것을 배우고 나서야 그리스도의 충만한 복음을 알았다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서구 기독교 전통과 역사에 강한 자부심을 갖고 들어왔던 선교사가 대부흥운동 기간 중 한국교회 교인들이 보여준 진솔하고도 열성적인 믿음을 보고 민족적 편견과 인종적 선입견을 깨뜨렸을 뿐 아니라 자기네 본국 교인들도 실천하지 못하는 헌신적이고 희생적인 신앙생활에 자극을 받아 “이젠 미국교회가 한국교회를 배워야 한다.”(The East teaches the West)라고 진술한 것이다.
그렇다고 동양이 오만해서는 안 된다. 서양에 없는 부분을 채워주는 것으로 그 역할을 다해야 한다. 그런 식으로 해서 동양과 서양이 함께 자기 경험을 나눔으로 ‘그리스도 복음의 충만한 분량’(full-orbed Gospel of Christ)을 채울 수 있는 것이다. 그 결과 기독교 신학은 완성을 향해 진화한다. 내가 ‘토착화’(indigenization)와 ‘세계화’(globalization)를 동전의 양면처럼 공존과 상생의 개념으로 보는 이유다.
이런 동기와 관점에서 자료를 모으다보니 편집과정에서 내 주관적인 판단과 해석이 반영되었음은 부인할 수 없다. 그 결과 내가 속한 감리교회 자료, (보수적이기보다) 진보적인 신학자 관련 자료, 심지어 한때 보수교단으로부터 ‘이단’으로 정죄 받은 적이 있던 소수종파 지도자 관련 자료들도 상당수 포함되었다. 역사는 부단한 ‘자기해석’(self-interpretation)이자 ‘재해석’(re-interpretation) 과정이라 여기고 있기에 나와 가까운 자료로부터, 이미 판단을 내린 자료라도 새로운 관점에서 다시 읽어보려 시도한 것으로 이해해주기를 바란다.
특히 이 책에 수록된 자료들이 논문 혹은 책을 집필하는 과정에서 내가 직접 읽은 것들이고, 읽는 중에 도전과 감동을 받아 내 자신 목사로, 신학교수로 사역하는 동안 ‘경계비’(警戒碑)로 삼으려 모아놓았던 것들이라 자료 선정과 편집, 해석에서 내 주관적 판단이 개입되었음은 피할 수 없는 사실이다.
따라서 이 책은 나의 고백이자 이 책의 1차 독자는 나 자신이고 나와 같은 문제의식과 고민을 공유한 독자들이 있어 읽고 공감해 준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그리고 나와 다른 신학적 입장을 지닌 학자가 나와 다른 관점에서 같은 주제(영성과 신학)로 보다 풍부한 자료를 수집하여 책으로 펴내준다면 이 책의 부족한 부분을 채울 수 있을 것이기에 큰 기대를 가져본다.
본래 이 책에 수록된 기본 자료는 2002년 가을부터 2003년 겨울까지 한국기독교연구소(소장 김준우)에서 펴내던 「세계의 신학」에 연재하였던 것인데 1년 연재를 통해 정경옥 교수와 신석구, 주기철, 송창근, 김재준, 이용도 목사 관련 자료를 소개하였다. 안타깝게도 「세계의 신학」 폐간으로 더 이상 연재는 불가능하였지만 여기에다 복음교회 최태용과 무교회주의 김교신 관련 자료를 첨부하여 대학원 ‘한국기독교 영성운동 세미나’ 수업자료로 사용하였다.
이 수업 자료 복사본을 읽어본 신앙과지성사의 최병천 장로가 “형님, 이거 책으로 냅시다. 신학생뿐 아니라 목회자와 평신도들에게도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해서 책으로 내기로 했다. 그러면서 성결교 이명직 목사와 초대교회 전도부인이었던 전삼덕과 김세지 관련 자료를 본문으로 추가했고 왓슨 선교사와 박내철 목사 관련 자료를 중심으로 서론과 결론을 썼다. 그러다보니 분량이 처음 「세계의 신학」에 연재했던 것의 배가 되었다.
이번에도 장사가 될 것 같지 않은 책을 선뜻 내겠다고 결단해 준 최병천 장로에게 고마운 마음뿐이다. 곁에서 “여성 신학 관련 자료도 넣자.”고 조언해준 감신대 역사박물관 책임연구원 조선혜 목사의 격려도 큰 힘이 되었다. 그리고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본문 관련 사진자료를 첨부하고 고어체, 국한문혼용체로 된 난삽한 자료본문을 현대문으로 바꾸기로 했는데 이 과정에서 신앙과지성사 편집실 김영옥 선생과 내 조교 김종규 군이 수고를 많이 하였다. 내 일을 자기 일처럼 돕는 이런 친구들이 곁에 있어 참으로 행복하다.
이런 도움의 손길들이 있어 나오게 된 책이니만큼 이 책을 읽는 독자 중에 한 사람이라도 옛 신앙선조들의 우물을 복원하고(창 26:18) 조상이 마셨던 그 물을 마심으로 자기 안에 고갈되었던 영성의 샘이 채워지는 작은 감격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
2010년 새해 첫날
감신대 만보재에서 이덕주
차례
머리글:영성 신학의 토착화를 위하여 • 3
서론:영성 훈련과 신학 교육 • 15
1. 복잡에서 단순으로:위기 신학과 영성 회복 • 23
1) 정경옥 교수의 영성 위기와 회복 • 24
(1) 잘 나가던 교수가 갑자기 신학교를 떠난 이유 • 24
(2) 자료 읽기:정경옥의 “위기·흙·나” • 30
(3) 신학의 시대화와 향토화 • 41
2) 진보 신학과 토착 영성의 만남 • 44
(1) ‘도암의 성자’ 이세종 • 44
(2) 자료 읽기:정경옥의 “조선의 성자:숨은 성자를 찾아서” • 50
(3) 고독한 수도자의 마지막 길 • 62
2. 내 안에 오직 예수:부흥운동과 신비 영성 • 69
1) 이명직 목사와 성결 영성 • 70
(1) 한국성결교회의 ‘대부’ 이명직 목사 • 70
(2) 자료 읽기:이명직의 “은혜기” • 72
(3) 신학교 교실에서 시작된 부흥운동 • 88
2) 이용도 목사의 신비주의 예수 영성 • 92
(1) 이용도 연구의 한계와 두려움 • 92
(2) 자료 읽기:이용도의‘성자 얘기’ • 98
(3) 시므온? 시무언? • 107
3. 성서와 신앙 혁명:교회 밖의 교회 영성 • 111
1) 최태용의 복음교회 영성 • 112
(1) ‘천래지성’과 ‘영과 진리’ • 112
(2) 자료 읽기:최태용의 신앙선언문 • 116
(3) 무교회주의와 비교회주의 • 130
2) 김교신의 무교회주의 영성 • 135
(1) ‘조선적 기독교’와 무교회주의 • 135
(2) 자료 읽기:김교신의 「성서조선」 창간사와 폐간을 부른 글 • 141
(3) ‘정묵’(靜默)이 그리운 시절 • 147
4. 십자가 은총으로:고난의 시대 순교 영성 • 151
1) 신석구 목사의 ‘십자가 영성’ • 152
(1) 가난과 고난의 목회 • 152
(2) 자료 읽기:신석구의 “십자가에 대한 명상” • 160
(3 )채찍으로 다가오는 아픈 감동 • 166
2) 주기철 목사의 ‘사랑의 순교’ • 168
(1) 주기철 새로 보기 • 168
(2) 자료 읽기:주기철의 설교와 기도 • 174
(3) 불가능에서 가능으로 • 184
5. 신학의 자유를 위하여:진보주의 신학과 영성 • 189
1) 송창근 목사의 신학적 통합 영성 • 190
(1) 송창근과 그의 시대 • 190
(2) 자료 읽기:송창근의 시론 • 199
(3 )경계선에서 양쪽을 아우르며 • 224
2) 김재준의 진보주의 신학 영성 • 232
(1) 김재준 신학에 대한 오해 • 232
(2) 자료 읽기:김재준의“편지를 대신하여” • 241
(3) ‘종교재판’, 그 끝나지 않은 이야기 • 261
6. 휘장 가운데 뚫린 구멍:여성 신학과 해방 영성 • 267
1) 김세지의 세례와 이름 • 268
(1) 여성 신학의 토착화 • 268
(2) 자료 읽기:김세지의 “나의 과거생활” • 275
(3) 이름을 바꾼 어머니 • 291
2) 전삼덕의 ‘휘장 세례’ • 296
(1) 평양교회 여성들의 글짓기 대회 • 296
(2) 자료 읽기:전삼덕의 “내 생활의 약력” • 301
(3) 자주(自主)한 여성들의 복음전도 • 308
결론:‘혼이 깃든’ 강의를 꿈꾸며 • 314
첫댓글 어린아이와 같은 단순성을 추구하고 싶어 책읽기보다 기도하려는데 또 이 책이 당기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