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베르트 발저의 『산책자』
- 한겨레 출판(2017.3.15.), 배수아 옮김의『산책자』
로베르트 발저는 독일어권의 한 세기를 대표하는 작가이자 스위스의 국민적 작가다. 1878년 스위스 베른 주 비엘에서 태어났다. 가난 탓에 14세에 중학교를 중퇴하고 오랫동안 하인, 사무보조, 사서, 은행사무원, 공장노동자 등의 직업을 전전했다.
발저의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모티프이자 실제 삶에서도 큰 부분을 차지한 것이 바로 ‘쓰기’와 ‘걷기’다. 산책길에서 발견한 하찮고 작은 것들에 관심을 가지고 애정 어린 시선을 보내던 작가 발저는 1956년 크리스마스 아침 산책을 나간 길에서 홀로 눈밭에 쓰러져 죽은 모습으로 발견되었다.
동시대 작가인 카프카는 발저의 열렬한 찬미자였으며, 헤세는 그를 가장 중요한 스위스 작가로 인정하며 그의 작품이 더 많이 읽히기를 촉구하는 칼럼을 쓰기도 했다.
- 작가프로필에서
본문중에서,
“산책은……” 나는 얼른 대답했다.
“나에게 무조건 필요한 겁니다. 나를 살게 하고, 나에게 살아 있는 세계와의 연결을 유지시켜주는 수단이니까요. 그 세계를 느끼지 못하면 단 한 글자도 쓸 수가 없고, 단 한줄의 시나 산문도 내 입에서 흘러나오지 못할 겁니다. 산책을 못하면 나는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고 열정적으로 사랑하는 내 일도 무너져버릴 겁니다.
(중략)
특별한 목적지 없이 발길 닿는 대로 돌아다니는 산책을 하다보면 수 천 가지 생각이 떠오르는데, 그것이 내게는 얼마나 아름답고 유용하고 쓸모 있는 일인지 모릅니다. 반면 집에 틀어박혀 있으면 말라죽은 식물처럼 한없이 처량할 뿐이지요. 내게 산책은 기분 좋고 건강한 습관을 넘어서 직업상(작가) 유익하고도 필수적인 일과입니다. 산책은 내가 일할 수 있도록 도와주며 개인적으로는 기쁨과 즐거움의 원천이기도 합니다. 상쾌하게 만들고 위로해주고 기쁘게 하는 산책은 나에게 쾌감을 주는 동시에, 나중에 집에서 열성적으로 부지런히 작업할 수 있도록 크고 작은 수많은 대상들을 재료로 제공해줌으로써 폭넓은 창작을 펼치도록 자극하고 촉진하는 고유한 특성을 갖습니다.
(중략)
산책자는 아무리 사소하고 작은 생명체라도 어린아이나 개, 모기, 나비, 참새, 벌레, 한 송이 꽃, 남자, 집, 나무, 울타리, 달팽이, 생쥐, 그름, 산, 잎사귀, 그뿐 아니라 누군가가 구겨서 던져버린 너절한 종잇조각조차도, 아마도 어느 착하고 순한 아이가 태어나 처음으로 써놓은 서툰 글자들이 있을지도 모르는 그런 것들을 모두 놓치지 않고 관찰하고 연구하기 위해 최대한의 사랑과 주의력을 갖추어야 합니다. 가장 좋은 것과 가장 남루한 것, 가장 진지한 것과 가장 유쾌한 것, 산책자에게는 이 모두가 마찬가지로 마음이 끌리며 아름답고 소중합니다. 산책자는 그 어떤 경우에도 감정에 겨운 나르시즘이나 너무 민감하게 상처받는 성향을 지녀서는 안 됩니다. 산책자는 사물을 오직 바라보고 응시하는 행위 속에서 자신을 잊을 줄 알아야 합니다.”
♣ ♣ ♣
폴 발레리paul valery(1871. 프랑스 시인,비평가)는 “시는 무용이요 산문은 도보다”라고 했다. 수필은 어쩌면 산책의 결과물일 수 있다. 생각하지 않는 글이 있을 수 없듯, 우리는 사소한 일상과 사물들, 그리고 자연에서 소재를 찾고 그것을 글로 표현해 낸다. 산책은 자신을 정직하고 단순하게 만들어 준다. 발저의 말대로 산책길에서 만나는 사소한 사물에도 애정을 가지고 들여다보면, 제 속을 열어 보인다. 그것을 낚아채고, 정제하여 한편의 글로 담아내는 것이다.
철학자만의 사색일까? 조금 과장하자면, 수필은 발에서 시작해 머리로 굴러들어온다. 발품 없는 수필, 사색하지 않은 수필, 사물을 통찰하지 않은 수필은 공허한 메아리다. 어쩌면 수필에 있어서 발은 머리의 상수上手다.
-최장순
주인과 고용인
“복종하는 것과 명령하는 것은 서로 복합적이다. 훌륭한 문체는 주인이나 고용인 모두를 지배한다. 나는 지금 내가 쓰고 있는 이 글을 고용인의 자세로 내 놓으며, 이것을 정독하는 사람을 내 주인으로 간주한다. 나는 그 주인이 내가 제공한 것을 높이 평가하여 만족감을 얻는 모습을 볼 수 있기를 소망한다.”
- 로베르트 발저의 「산책자」 중에서
이 글을 읽으면서, 글 쓰는 사람의 자세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내가 주인이라고 생각하며 쓰는 글은 자칫, 독단에 빠지기 쉽지 않을까 싶습니다. 독자를 배려하기보다, 자신의 감정이나 주장을 지나치게 강조하다보면 독선에 빠지고, 독자는 외면하게 되겠지요.
나를 떠난 글은 이미 내 것이 아니라는 생각, 즉 주객이 바뀌는 상황을 염두에 두어야 하겠습니다. 내가 고용인이고 독자가 주인이 되는 경우를 감안 한다면 글에 대한 태도나 문체가 조금은 바뀌지 않을까요?
작가는 독자의 고용인이라는 생각.
- 최 장 순
첫댓글 산책/홍해리
산책은 산 책이다
돈을 주고 산 책이 아니라
살아있는 책이다
발이 읽고
눈으로 듣고
귀로 봐도 책하지 않는 책
책이라면 학을 떼는 사람도
산책을 하며 산 책을 펼친다
느릿느릿,
사색으로 가는 깊은 길을 따라
자연경을 읽는다
한 발 한 발.
홍시인의 산책, 좋은 표현입니다.
'살아있는 책' 와 닿습니다.
이제 막 산책길에서 돌아왔습니다.
감사^^
네, 올리신 글 읽다가 생각나서 올렸습니다.
선생님, 건강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