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향의 물레방아를 읽고 (오준영)
이 글을 맨 처음 접하게 된 것은 내가 도서관을 갓 다니기 시작한 중학교 1학년 때였다.
도서관을 둘러보다 우연히 단편소설 모음집을 보게 된 나는 그 책들을 하나씩 읽어나갔고 유명한 작품들이 많았다. 벙어리 삼룡이나 수난이대, 운수 좋은 날 등 정말 꼭 한번씩은 읽어보아야 할 글들이 있었다. 나는 그 중에서도 나도향의 물레방아라는 작품이 마음에 들었다. 그렇게 읽은 지 3년이 되던 어느 날 난 다른 날과 마찬가지로 인터넷에 올라 온 글이나 검색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떤 문학페이지에 우연히 가본 자료실에는 내가 그때 읽었던 글들이 올라와있었다. 난 다시 보고 싶었다. 자료실을 뒤적이다 보니 물레방아가 있었다. 하지만 줄거리만 있어 책방에 가서 문학 집을 빌려보았다.
그때는 좀 이해가 안가는 부분들도 있고 했는데 지금 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이 글의 처음은 제목이자 사건들이 발생하는 장소인 물레방아를 묘사하며 시작된다. 은가루나 청룡, 백룡 등을 등장시키며 물줄기에서 품어져 나오는 힘과 맞물려 돌아가는 물레방아를 잘 표현하고 있다.
그 묘사를 뒤로 하고 물레방앗간 옆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는 늙은 노인과 젊은 아가씨, 노인의 이름은 신치규, 이 마을에서 가장 부자이다. 젊은 아가씨의 정체는 신치규의 밑에서 일하고 있는 이방원의 아내, 그들의 대화는 심상치 않은 미래를 제시하고 있었다. 권력과 돈이 있는 치규는 방원의 아내를 원한다. 여기에서 돈으로 방원의 아내를 매수하려고 하는데 신치규는 돈으로 무슨 일이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도 물질만능주의로 팽배한 이 사회에서 돈이면 모든지 할 수 있다는 생각이 사람들을 지배하기도 하고 그로 인해 많은 범죄들이 일어나고 있다. 이런 사회가 온 것은 어쩌면 신치규와 같은 인물들이 많아 생기게 되었을 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러한 사상들을 언론이나 주의에서 더 부추기고 있다. 드라마를 봐도, 지금 한참불고 있는 복권 열풍을 봐도 그런 것이 모두 그 목적이 돈에 있는 것이다. 드라마에서는 재벌2세나 잘 나가는 사업가가 등장하여 돈으로 명예, 권력을 얻으려는 내용이 나오고 더 많은 돈을 위해 수십 명의 희생 따윈 아무 상관없는 듯이 표현하고 있다. 또 복권으로 인생역전을 꿈꾸는 사람들은 하루에 몇 십만 원을 그냥 허공에 날리기도 한다.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배팅 금을 보고 있으니 어이가 없다. 다시 소설로 돌아가서 신치규는 자신이 먹여 살릴 테니 이방원이라는 놈을 버리고 나와 같이 살자고 했다. 하지만 방원의 아내는 방원에게 미안한 맘이 없지 않아 든다. 결국 신치규의 감언이설에 넘어가 결국 그러기로 약속한다. 이것을 통해 인간은 재물에 약하다는 생각이 든다. 하긴 나도 지금 가지고 있는 물건이 있으면서도 더 좋은 물건을 가지길 원하니까 사람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신치규는 방원을 쫓아내기로 하고 방원을 불렀다. 방원에게 여기서 그만 나가줘야겠다는 말을 듣고 이방원은 먼저 아내에 대해 걱정하고 있다. 갑자기 나가라고 하는 주인, 갈 곳 없는 몸, 젊고 예쁜 아내, 방원은 막막하기만 하다. 방원은 치규에게 아무리 사정을 해봐도 주인은 무정하기만하다. 하는 수 없이 아내에게 안주인에게 사정을 해보라고 했지만 오히려 아내는 그런 이방원의 마음도 모른 채 어떻게 먹여 살리나며 대들기 시작한다. 이 것은 일종의 연극이다. 아내는 벌써 이런 일이 일어날 줄 알고 있었고 또 남편의 능력 없는 면을 들어 내놓기 위한 연극인 것이다. 어차피 방원이 나가면 자연스럽게 부를 누릴 수 있는 처지에 있는 아내이다. 울화통이 치민 이방원은 아내를 때리고 만다. 그렇게 방원과 아내가 싸우고 싸우는 소리는 마을에 들려 동네사람들도 듣게 된다. 하지만 동네사람들은 그들의 싸움 소리는 사랑싸움으로 여겨 그냥 부러워하고 인제 그만두라는 말리는 시늉만 한다. 이런 상황은 1920년대에는 가능한 설정이다. 지금은 어떤지 살펴보자 밤늦은 시각 아파트, 단지 전체를 울릴 듯한 소리와 쿵쾅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하나, 둘씩 잠을 깨고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이웃집에서 싸우는 소리가 시끄럽게 들려도 아무도 막지 못한다. 솔직히 말리러 가기도 뭐하고 용기 내어 말리러 가면 내 집일인데 당신이 왜 참견하냐며 오히려 쓴 소리를 듣고 오는 것이 다반사다. 이런 일로 인해 가정폭력이니 아동학대니 하는 범죄가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이웃집이 누구건, 뭘 하건, 상관도 안하고 이웃간에 교류도 없이 두꺼운 철문이란 것이 이웃의 정까지 막는 게 요즘 현실이다. 지금 농촌에서는 아직도 어려울 때, 기쁠 때 같이 돕고 서로 상부상조하면서 지내고 있다. 마을 어른들이 주최가 되어 행사도 열고 또 누가 돌아가시거나 일손이 부족하면 달려가서 내 일처럼 일한다. 이 글에서도 이런 농촌사회의 특징이 잘 나타나 있다.
방원이 아내와 싸우고 속이 상해 술을 먹고 취한채로 집에 왔다. 그래도 아내라고 미안한마음이 든다. 본시 사람이 좋고 마음이 약하고 다정한 그는 무식하게 자라난 까닭에 무지한 짓을 하기는 하나 그것은 결코 그의 성격을 말하는 무지함이 아니다. 돈에 대한 푸념을 늘어놓고는 아내를 불렀다. 하지만 아내는 집에 없었다. 방원은 옆집에 가서 아내가 어디 갔는지 물어보았다. 아내는 단장을 하더니 방앗간으로 갔다는 것이다. 이 글 처음에 신치규와 아내가 음밀한 대화를 나눈 그 곳에 아내가 갔다. 이것은 새로운 사건이 전개될 것 같은 분위기다. 그랬다. 이 소설에 사건의 발생장소는 물레방앗간이다. 방원은 술이 취했고 아내는 단장을 하고 물레방아로 갔다는 것은 신치규를 만나기 위한 것이다. 방앗간에 도착한 방원은 아내와 신치규가 방앗간에서 나오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 그렇게 믿었던 아내의 배신, 방원의 몸의 피가 거꾸로 솟을 만도 하다. 난 이런 것을 경험해보지 못해서 그 기분을 잘 알지 못한다. 하지만 이 소설은 내가 그 심정을 느낄 수 있게 잘 표현하고 있다.
‘그의 눈에서 쌍심지가 거꾸로 섰다. 열이 올라와서 마치 주홍을 칠한 듯이 그의 눈은 붉어지고 번개 같은 광채가 번뜩거리었다.
그는 한참이나 사지를 떨었다. 두 이가 서로 맞혀서 달그락 달그락하여졌다. 그의 주먹은 부서질 것같이 단단히 쥐어졌다. 이를 악물고 부르르 떨었다.’ 의 부분에서는 정말 그 처참한 배신감을 느낄 수 있었다.
눈에 불이 붙은 이방원은 상전이고 종이고 가릴 것 없이 인간 대 인간으로 신치규를 보고 모루돌멩이로 마구 쳤다. 신치규와 아내의 비명소리와 돌멩이에 묻어나는 살점과 피, 정말 참혹한 광경이 내 머릿속에 그려졌다.
결국 이방원은 주재소에 끌려가고 신치규는 머슴들이 업어 들었다.
상전과 종, 그 인간을 갈라놓는 한계가 옛날사회를 지배하고 있었다니 정말 끔찍하다. 지금은 평등한 사회가 되어 누구나 보호받을 수 있는 사회가 왔다고들 한다. 하지만 이건 어찌 말뿐인 것 같다. 이 소설에도 문제가 되고 있는 돈으로 그런 보호 장벽들을 무용지물로 만들어버리기 때문이다. 억울한 일을 당해서 변호사를 선임하고 싶어도 돈이 없어 할 수 없고 법으로 해결 가능하다던 문제가 뒷돈이 오가면 더 쉽게 해결되는 사례들을 볼 때 이건 아니다 싶다.
석 달 후 이방원은 풀려나고 신치규의 몸을 거의 다 회복 되었다. 신치규의 마음에서야 방원이가 감옥에서 오랫동안 푹 썩었으면 하는 마음이 굴뚝같았다. 감옥에서 나온 방원은 마을에서 문둥병자나 마찬가지의 대우를 받고 세상이 차디차다는 것을 느꼈다.
감옥에 다녀왔다! 이것은 우리가 또 다른 시선으로 보는 관점 중에 하나다. 다시 말해 편견을 갖는 것이다. 범죄를 저질렀으니 또 다른 범죄를 저지를지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멀리하게 되고 차별하게 된다. 하지만 이런 차별이나 편견 때문에 그 당사자가 또 다른 범죄의 원인이 된다는 건 우리가 미처 생각해 보지 못한 일이다. 무조건 나쁘다고 저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만 하지 말고 따뜻한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보고 위로하고 새로운 일자리를 준다면 2차, 3차의 범죄가 과연 생길까? 라고 생각해 본다.
방원은 그런 차가운 대우 속에 산을 헤매다 밤이 되어 촌으로 내려와 신치규의 집을 찾아간다. 그와 아내를 죽여 버릴까 생각도 하지만 오랜만에 듣는 아내의 목소리에 얼어붙은 마음이 녹는 듯 했다. 그래서 한번에 기회를 주기로 했다. 방원은 그의 아내를 업고 물레방앗간으로 갔다. 그리고 물었다. “너 나랑 도망갈래? 죽을래?”
하지만 아내는 단호했다. 칼은 무섭지도 않다고 죽일 테면 죽여보라는 심보였다. 방원은 끝까지 물었지만 아내는 역시 아니었다. 결국 아내를 죽였고 자신도 따라 죽었다.
부를 원하는 아내와 비록 천한 삶이라도 행복을 원하는 방원, 이들의 의견이 대립하는 가운데 누가 더 옳고 맞음을 가릴 수 없다. 결국 이 소설은 경제적인 빈궁의 문제에 따르는 계급적인 갈등과 함께 인간의 본능에 관한 사실적 묘사가 두드러지게 나타나, 인간의 야수성이 노골적으로 표현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