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尹 모두 '참배'부터 했다, 유독 죽은자 불러내는 韓 왜
[한국 중앙일보] 입력 2021/08/07 13:02 수정 2021/08/07 14:46
여권 1위 대선주자인 이재명 경기지사는 지난달 1일 출마선언을 한 뒤 첫 일정으로 현충원 무명용사탑을 참배했다. 그는 “세상은 이름 없는 민초들의 헌신과 노력으로 만들어진다”는 메시지를 냈다. 야권 1위 주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 역시 지난달 6일 민생행보 첫 행선지로 대전현충원을 찾아 천안함·제2연평해전 등 전사자 묘역에 참배했다. “목숨으로 지킨 대한민국을 공정과 상식으로 바로 세우겠다”는 방명록을 남겼다.
주요 정치인들이 중요한 결단의 순간, 특히 큰 선거를 치리는 과정에서 참배·추모 정치에 나서는 건 익숙한 풍경이다. 2007년 대선에 출마했던 이명박 전 대통령 역시 출마선언(5월 10일) 직후 13일 5·18 기념탑, 19일 부산민주공원 충혼탑 등 참배 일정이 줄을 이었다. 정동영 당시 대통합민주신당 후보는 출마선언 이틀 뒤 광주 망월동 묘역 참배를 시작으로 본격 대선행보에 돌입했다.
전직 대통령들의 기일은 이미 여야를 막론하고 대규모 정치행사로 자리를 잡았다. 지난해 11월 YS(김영삼 전 대통령) 5주기 추도식 때는 국회의장·국무총리와 여야 지도부가 모두 현충원에 집결했다. 지난 5월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2주기에는 여권 주요인사들이 김해 봉하마을에 총출동했다.
경쟁적 추모…감정 정치냐, 역사관 투영이냐
추모의 정치는 해외에서도 관찰되지만, 빈도나 양상은 다소 차이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등 미국 민주당 대선주자 전원은 지난해 1월 마틴 루터 킹 목사 추모 예배에 참석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해 3월 앨라배마주 ‘피의 일요일’(1965년 흑인 민권운동 유혈진압) 추모 예배에 참석해 흑인 유권자 표심을 다잡았다. 일본에서는 선거 과정에서 참배 일정이 언론의 주목을 받는 경우가 드물다.
책 『죽은자의 정치학』을 쓴 하상복 목포대 정치언론홍보학과 교수는 “많은 나라에서 특정한 정치적 목표가 있을 때 죽은 자들을 불러내지만, 한국은 유난하다. 굉장히 자주 죽은 자들을 만나러 간다”며 “유교에 퍼져있던 재현과 호명의 역사들이 한국 정치문화 속에 남아있는 게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 또 하 교수는 “정치적 갈등이 극심할 때도 죽은 자들을 동원하는 정치가 다반사로 일어난다”고 지적했다. 감정적 결속의 효과가 뛰어난 추모 행위의 특성상, 진영 결집의 수단으로 쓰일 수 있다는 취지다.
이 때문에 ‘추모의 정치’가 진영 경쟁의 수단으로 쓰이는 데 대한 우려 역시 적지 않다. 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는 “86세력 사이에는 노무현 정신을 독점적·배타적으로 계승했다는 식의 주장이 있다. 추모는 정치경쟁에서 떨어져 나와 통합의 요소가 돼야 하는데, 정치적 무기로 활용하는 문제”라고 말했다. 하상복 교수는 “대전현충원에 안장된 백선엽 장군을 놓고 벌이는 정치 대결을 봐도 경쟁적 양상이 해결되지 않고 있다”고 봤다. 보수 정치권에서 지속적으로 ‘문재인 정부가 백 장군을 홀대한다’는 비판을 하는 상황을 지적한 것이다.
논문 「재난의 감정정치와 추모의 사회학」을 쓴 김명희 경상대 사회학과 교수는 “경쟁적으로 유권자 표를 구하기 위해 하는 추모행위, 정파의 가치를 주장하는 행위로서의 추모는 일종의 감정정치”라고 규정했다. 그러면서 “경쟁적 정쟁의 도구로서 정치인들이 추모 행위를 하게 될 때는 오히려 사회를 분열시키고 새로운 논쟁들을 만드는 행위가 된다”고 말했다.
반면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는 “경쟁적으로 추모하는 걸 부정적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과거를 돌아보고 미래를 내다보려 하는 출발점으로 의미가 있다. 정치를 할 때 중요한 건 결국 리더의 철학과 역사관인데, 참배는 역사관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