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월 15일 쇠날. 2일차 저녁
<사랑이란? 사랑어린이란?>
고린도전서가 떠오른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10대 이후 사랑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구나. 왜 그랬을까? 사랑, 나와 세상의 합일인 듯. 사랑과 삶을 맞바꿀 수 있겠다는 마음이 회복되었으면 좋겠다. 내 안의 중단된 사랑의 여정을 다시 시작해봐야겠다.
사람들 간의 사랑을 떠올리면 두가지 장면이 떠오른다. 첫 번째 장면은 공립학교서 한 학교로 진학하는 두 동무의 이야기다. 자폐성 장애를 가진 동무는 일반적이지 않은 행동으로 자주 사건사고의 주인공이 되는 편이다. 지적장애를 가진 동무가 고등학교에 가서 자폐성 장애를 가진 친구를 자신이 잘 챙기겠다고 하더라. 어떻게 챙기는 것이 잘 챙기는 것이냐고 물으니, 사건이 생기면 선생님이나 친구들에게 다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그것을 잘 찾아보라고 말하겠다고 하더라. 또 다른 한 장면은 작년 <두 번째 패미니스트>를 읽고 동무들이 하나같이 감동받은 문장이 있다. 시각장애를 가져오는 병을 앓게 된 여자친구에게 작가가 용기를 내어 ‘같이 아프자’라고 말했던 장면이다. 사랑은 이해할 수 없는 일에도 뭔가 이유가 있을 것이라 믿는 것과 상대의 고통/아픔을 함께 짊어지고 가는 것 아닐까 싶다. 사람과 다른 생물종간의 사랑은 얼마 전 본 다큐멘터리 <나의 문어 선생님>에서 감독과 문어와의 교감해가는 장면에서 본 듯 하다. 어느날 문득 바닷 속에서 문어를 만나며 감독의 삶이 변하는데, 사랑은 그런 만남이 아닐까 싶다.
노래 두 곡이 떠오른다. 사랑밖에 난 몰라. 사랑해선 안 될 게 너무 많아. 사랑은 찌찌 붙이지 않고 괜찮아.라고 하는 것은 아닐까? 모든 답은 사랑이 아닐까. 치유만 그러랴. 그럼에도 내가 하는 일 아니구나. 정말 많은 사람들을 통해 하는 것이구나. 전체가 사랑이구나.를 배운다. 자연의 따뜻함만이 아니라 찬 바람도 사랑이라던 도법스님 말씀처럼 온 세상의 일이 사랑임을 배워가는 것. 아픔, 화남, 슬픔 모두 본질적으로 사랑이구나.를 배워간다.
사랑에 울고, 병들고, 나를 포함한 모두가 그리 살아왔다. 천방지축으로 40여년 이상 살아왔다. 관옥선생님 만나고 사랑과 함께 살아가는 모습, 오직 예수. 실험하시는 살아온 여정 생각난다. 틱낫한 스님 참사랑 보며 단순명료하게 말하는 것에 놀랐다. 자비. 새롭게 이해, 깊이 한 것 스물 번도 넘게 읽었다. 기독교 사랑, 이분법적 사랑이다. 청년들과 읽고 싶었으나 안되었다. 어릴 때부터 그런 사랑 이야기 듣는다면 달라질텐데. 사랑하면 마지막 스승 달라이라마. 자비의 현현. 개인, 민족 고통스럽게하는 중국에 대해 자비 정신 놓치지 않고 매일 기도, 수행하는 모습이 떠오른다. 내 남은 인생 그리 살고 싶다. 난 내가 사랑(관세음보살)이라는 본질을 알았다. 처음 말했을 때 사람들 비웃었다. 관세음보살과 사랑. 한 시대, 한 하늘 아래 산다는 것이 은총이다. 한 생을 살며 사랑어린존재로 산다는 것은 멋진 일이다.
말의 빚.이란 시 읽으며 희망에 대한 북돋움. 사랑, 보살. 쉽지 않은 일.이란 생각이 연결된다.
아버님 돌아가신 뒤에도 아버님 그늘/핑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나와 아들의 관계에서도 아들의 여자까지 폄하했는데.. 아버지의 죽음이 너를 살리기 위해. 아들을 살린 이는 너가 아니라 아들의 여자이다. 말빚. 고만고만한 사람끼리 힘줄 수 있는 말 아닐까. 그러고 싶다. 모두가 실수투성이의 삶들 산다. 희망과 북돋음이 사랑 아닐까.
사랑. 내 입으로 사랑이란 말을 뱉는 순간 사랑일까 의문 들어 잘 말하지 않는다. 굳이 표현되지 않더라도 풍기지 않나. 시월의 어느 멋진 날. 노래 속 더 바라면 죄라는 것. 사랑아닐까.
사랑이란 것. 어마어마한 특정 짓거나 범위 지을 수 없는 것. 나는 그런 사람인가. 아니다. 냉소와 회의. 얼마 전 오해해서 선민이한테 화냈다. 미안하고 어렵더라. 하루 뒤에 오는 선민이를 만나 사과를 했는데 나는 괜찮아. 하니 선민이 사랑이 더 크구나. 울컥했다. 나이와 사랑 크기 같이 않구나. 느꼈다.
마음공부시간. 아름다운 장면. 떠올려 보라했는데 품을 열어둔 팔을 편 모습. 떠오른다. 또 하나 함께 어울려 놀면서 크는 것이 사랑이다. 다 통용되며 연결된다.
20대 때 김남주 시인 만나 내가 만인을 사랑할 때 나는 자유이다. 라는 말이 크게 왔다. 이 두 가지 사랑과 자유가 따로 왔다. 끈덕지게. 해야는데. 하나로 모아가는 것을 알았더라면. 그 때 수준이 그랬고 돌고 돌았다. 사랑어린. 깊숙이 들어왔는데, 오늘 돌아보니 풀지 못했던 직면하지 못했던 것이 사랑에 담겨있었구나. 다시 그 지점으로 돌아가 그 단계를 밟아서. 그 길을 나와야지.
우주이야기에서 사랑은 중력. 만유인력.처럼 사이에서 일어나는 작용을 말한다. 사이. 관계에서 경험되는 것이다. ....
어렸을 땐 우리 엄마가 사랑을 주는 법을 몰랐다고 여겼다. 이젠 내가 원하는 사랑 아니라고 사랑이라 여기지 않고, 엄마의 사랑을 받을 줄 몰랐던 나를 알게 되었다. 치유하고 보니 눈에 보이는 것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더 소중히 합니다.라는 말이 더 가까이 다가온다. 모두가 사랑이구나. 성숙한 눈은 낮과 밤. 빛과 어둠 모두 사랑.이구나. 아는 것. 추락과 회복. 모두 사랑이구나. 상처주고 받는 과정에서 옹근한 사랑 이루겠구나. 눈이 바뀌어가는 것. 연금술사구나.
이름값을 하고 살면 좋겠다. 이름값 하려면 사랑어린, 사랑어린사람에 관한 기초적인 공부 필요하겠다. 틱낫한. 예수. 또한 하느님 사랑하고 내 이웃 사랑하는 것 무엇일까. 티벳불교(?)하는 사람 17-20년 공부하더라. 뭔가 하려면 그 정도는 공부해야지않나. 건강한 과정, 집단. 걸맞게 살아야. 세월만 보내면 안 된다. 끝없이 공부, 토론, 실천하며 가는 길이다. 이에 공감했으면.
아이들과 살다보면 고민의 지점 생긴다. 어차피 나중 커서 편의점 알바, 택배기사 할텐데. 라고 말하는 동무에게 어떻게 해야하나 질문한다. 사랑.으로 같이 사는 방법. 뭘까? 그런 아이에게 사랑어린마음으로 한다면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충격과 화가 나더라. 그 자체로 소중한데, 함부로 말하는 것에 화가 나더라. 존재가치를 함부로 하는 것에 불편하다. 늘 어짜피라고 말하는 동무보며 고민된다. 선민이가 똑같이 말했다면 저를 돌아보고 왜 그리 생각했나 물을 듯. 왜 그리 생각하는지. 물을 듯 하다.
나와 만나는 사람들의 불평불만 조금 들어주면 다른 시선 가지게 되더라. 그들이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은 들어주고 받아주고 믿어주고 신뢰해주는 사랑해주는 사람이더라.
전쟁영화. 헥소고지. 원모어.가 생각난다. ..
2021년 1월 18일 달날 5일차 저녁
<‘사랑어린’에 관해 이야기 해보자>
_ 풍경소리 2021년 1월호 113쪽/ 영성수련으로서의 인간관계를 읽고
수행자의 기도만큼 함께 할 수 있는 사랑의 노래가 있을까? 모임의 끝에 늘 같이 하면 좋겠다.
말씀이 참 좋다.
내가 무엇을 하는 것이 아니라 빈공간을 마련해두면 사랑어린 보살핌이 일어난다.는 말씀이 들어온다. 사랑어린이 달리 들려온다.
오늘 사랑어린은 김치 밥 된장국 시금치나물 나무타는 냄새 편백향 눈 천지 만물에 사랑어린이 느껴지며 이 순간에 사랑이 어려있다 느껴진다.
네 인생을 영적수련장으로 만드는 일에 얼마나 많은 이들을 동원하는지 아느냐?라는 말씀에 공감한다. 에고의 작용이 뭘까? 자기를 자기마음에 일치시킨다. 무슨 말일까? 궁금하다.
깨친 사람과 함께 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오히려 그의 에고가 상대한테서 큰 위협을 느끼는 편이 훨씬 쉽다. 이 구절이 다가온다. 그런 경험을 한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