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가 지는 해처럼 쑥쑥 내려간다. 버킷리스트를 써볼까 하는 생각이 잠시 스친다. 적는 내용은 다를지라도 방향은 나침반처럼 오직 하나, 행복을 가리킬 것이다. 행복의 사전적 정의는 ‘생활에서 충분한 만족과 기쁨을 느끼어 흐믓해 하는 것’이다. 모든 생명이 지향하는 그 상태다. 나를 행복하게 할 일을 100가지든, 1.000가지든 마음껏 쓴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설레는 일이 아닌가.
우리 동네 길은 대체로 경사가 완만해서 걷기가 쉽고 즐겁지만 가파른 경사가 한 50미터 가량 이어지는 곳도 있다. 평지를 걷다가 만나는 그곳은 마치 황영조가 몬주익 경기장을 향해 뛰어오르던 마의 구간을 연상시킨다. 2년 넘게 꾸준히 걸었지만 그곳에서는 어김없이 다리에 팍팍함을 느끼니 느는 근육보다는 소실되는 근육이 더 많아서 일 것이다.
한 마을 주민에게는 그곳이 바로 훈련장이다. 왜 마을 전체를 도는 대신에 그 가파른 언덕을 딱 잘라내어 잰걸음으로 오르내리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아마도 그곳에서 가장 큰 행복감을 맛보기 때문일 것이다. 남은 힘들겠다고 말하는 일도 속을 들여다보면 그 동기는 행복이듯, 말이다.
벌써 오래된 이야기지만 지금 살고 있는 집에 잠시 한국 분이 산 적이 있다. 곤충을 잡아 박제하는 일을 해서 우리끼리는 파브르아저씨라 불렀다. 밤이 되면 그분은 ‘녀석들이 활동할 때가 되었다’며 해맑은 얼굴에 채집통을 들고 마을 곳곳을 돌아다녔고, 어떤 날에는 텐트를 챙겨 화산지대에 올라가 1박을 하고 오기도 했다. 박제한 것을 들고 입국하려다 세관에 붙들린 적이 많아 자기 이름이 입국자 블랙리스트에도 올라있다며 자랑스레 웃곤했다. 엊그제는 죽은 풍뎅이 한 마리를 쓸어담으며 그분이 잠깐 떠올랐다. 그분이 하는 일이 내게는 바퀴벌레를 손으로 만지는 것처럼 싫은 일이었지만 그분은 결코 포기할 수 없는 행복이었다.
열대의 태양이 작열하는 도로를 질주하는 사이클링이나 보기에도 아찔한 빙벽을 오르는 일, 극지대를 탐험하거나 극한 직업에 종사하는 일, 비좁은 고시원에서 책과 씨름하거나 보기에도 무거운 바벨을 드는 일도,심지어는 내키지 않은 일도 하는 이유는 따지고 보면 양치기 소년 산티아고가 이집트 피라미드에 있다는 보물을 찾아 고향을 떠나는 것처럼 행복을 누리거나 미래의 행복을 예약하는 길이다.
예수님이 하신 일에는 하나님께서 그분을 보내신 이유가 나타난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눅 4:18) 사람의 행복이다. 갇혀있거나 눈이 멀어 보지 못하는 상태라면 답답하고 고통스러울 수 밖에 없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이 주신 행복을 생생하게 경험했다.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자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 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뇨 그는 너를 돕는 방패시요 너의 영광의 칼이시로다 네 대적이 네게 복종하리니 네가 그들의 높은 곳을 밟으리로다”(신 33:29)
아버지는 우리의 걸음을 그와같은 행복으로 인도하시는 분이시다. “그들이 주리거나 목마르지 아니할 것이며 더위와 볕이 그들을 상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을 긍휼히 여기는 자가 그들을 이끌되 샘물 근원으로 인도할 것임이니라”(사49:10) 그 근원은 예수 그리스도시다.
그 행복을 아는 사람은 주인의 움직임에 모든 신경을 곤두세우며 반응하는 개처럼 그 근원을 중심으로 산다. 시켜서가 아니라 좋아서다. “누구든지 내게 들으며 날마다 내 문 곁에서 기다리며 문설주 옆에서 기다리는 자는 복이 있나니”(잠 8:34)
그 관계에서 대체불가의 행복을 누린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시 1:1,2)
그 행복을 흡족히 누리는 사람을 보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산마리노 친구들을 보는 것이 그렇다. 그들을 생각하며 버킷리스트 1번을 썼다. “이탈리아 중앙에 있는 산마리노 공화국을 우리 산마리노 친구들과 함께 방문하기”. 그 생각을 나누니 모두가 행복해했다. 가난이 환경인 산마리노 마을에서 함께 유럽 여행을 떠난다니, 꿈조차 꿀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모든 여행 경비를 자기들이 맡을 것이라고, 감당하게 해주시라고 기도하는 그들을 보며 또한 행복하다.
2028년, 우리는 그곳 산마리노공화국을 갈 것이다. 마음은 그곳을 향해 출발한 지 오래다. 행복하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