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1/118일차> 2012년 2월 6(월) 리야드-->이스탄불, 맑음, 이스탄불의 첫인상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공항(킹 칼레드 공항)에서 새벽 3시부터 일어났다 깼다를 반복했다. 아무래도 공항 출국 대기장 의자에서 꼬부랑 잠을 자다 보니 불편했고, 특히 새벽이 되니 기온이 내려가면서 추위가 몰려왔다. 주위를 둘러보니 아내는 물론 창희와 동희, 승희도 고개를 앞으로 처박기도 하고, 옆으로 눕기도 하고, 의자에 길게 몸을 뉘기도 하면서 잠을 자고 있다. 모두 불편하기는 마찬가지다. 나도 이리 꾸부렸다 저리 꾸부렸다 하면서 기어코 잠을 더 자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아무래도 조금이라도 더 자야 버틸 수 있으니까...
그러다가 새벽 5시가 넘자 도저히 추워서 잠을 잘 수 없었다. 5시15분이 되자 공항에 꾸란 경전을 읽는 소리가 울려퍼졌다. 인도에서는 매일 힌두 경전을 읽는 소리를 들으며 깨곤 했는데, 사우디에서는 꾸란이었다. 추위에 떨던 나는 공항을 이리저리 왔다갔다 하면서 몸에 온기를 불어넣었다. 의자에 꾸부린 채 잠을 자던 때와 비교하면 한결 몸이 따뜻해졌다. 아내도 더 이상 꾸부리고 잠을 자는 게 힘들었는지 아예 일어나서 공항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와 아내는, 어제 20달러를 주고 승희 저녁을 사준 다음 거스름돈으로 받은 16리알로, 각각 7리알 하는 차와 커피를 한잔씩 사서 마셨다. 속도 따뜻해지고 기분도 한결 나아졌다.

하루 한걸음 가족이 사우디 리야드공항에서 아침식사를 하고 있습니다.
7시 가까이 되자 모두 일어났다. 피로가 풀리지 않은 상태이지만, 견뎌야 한다. 아무래도 따뜻한 차와 식사를 하는 게 피로와 추위를 이기는 지름길이라 생각이 돼 50달러를 환전해 닭고기 샌드위치와 양고기 샌드위치를 따뜻한 차 한 잔씩 곁들여 먹었다. 마침 공항 창밖으로 아침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활주로 저쪽 넘어 사막에서 떠오르는 해를 보면서 현대적으로 잘 지어진 리야드 공항의 탑승 대기실 스낵코너에서 먹는 샌드위치는, 장기여행자가 누릴 수 있는 이색적인 경험의 하나였다. 이제 막 아침을 맞는 공항 대기실에서 마시는 커피 한 잔과 샌드위치는 방랑과 떠남, 이국적인 것과의 만남, 국경의 넘나듦 같은 예사롭지 않은, 운치 있고 낭만적인 풍경이었다. 그러고 나서 세수를 하니 살 것 같다. 화장실에서, 비록 치약은 없었지만, 칫솔로 양치질로 하고 비누로 얼굴과 손, 목 등을 박박 문질러 닦으니 한결 개운해졌다.

리야드공항 저쪽으로 아침 해가 떠오르고 있습니다.
8시30분쯤 되자 전광판에 이스탄불행 SV 263 항공기의 탑승구가 21번으로 게시됐다. 남은 리알화로 차와 커피를 사서 모두 소진하고 21번 탑승구에서 기다렸다. 10시 가까이 되자 탑승이 시작됐다. 비행기에 손님은 많지 않아 빈자리가 수두룩하다. 비행기가 이륙한 후 제공된 식사를 마치자 잠이 쏟아졌다. 바로 잠에 들어 눈을 뜨니 벌써 오후 1시가 훌쩍 넘었다. 2시간 가까이 잠을 잔 듯싶다. 어제 밤에 공항 탑승 대기실에서 제대로 자지 못한 잠을 보충하고 나니 한결 개운해졌다. 시계를 다시 1시간 되돌려 이스탄불에 맞췄다.
사우디 리야드공항을 출발한지 4시간이 걸려 이스탄불 시간으로 오후 1시55분에 터키의 관문 아타투르크 공항에 내렸다. 비교적 간단한 입국 수속을 마치고 밖으로 나오니 역시 날이 생각대로 차다. 동희는 얼른 배낭을 풀어 따뜻한 옷을 하나 더 껴입었다. 그러고 메트로로 향했다. 론리 플래닛에는 메트로 편도 티켓이 1.5터키리라로 나와 있었지만, 2리라로 올라 있었다. 어디가나 물가가 껑충껑충 뛰고 있다. 바로 직전에 여행을 한 코치나 뭄바이에서도 물가가 계속 오르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 아무래도 향후 세계경제의 최대 골칫거리는 물가가 되지 않을까 생각이 됐다. 물가가 오르면 소득이 올라도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드디어 이스탄불 아타투르크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분주하고 활기가 넘칩니다.
공항에서 메트로를 탄 다음, 중간에 트램으로 갈아타고 이스탄불 시내로 진입했다. 창밖으로 크진 않지만 말끔하게 단장된 건물들과 자동차들, 깨끗한 도로, 잘 정돈된 상가들이 죽 이어졌다. 시 외곽에는 대형 쇼핑몰들도 눈에 띄었다. 그 동안 인도의 구질구질하고 처참한 외곽풍경에 질려왔던 우리의 눈이 번쩍 띄었다. 여기는 세련된, 우리가 생각하는 도시다운 도시였던 것이다. 인도 풍경에 익숙해져 있던 승희는 밖을 보면서 “도로가 깨끗해요. 좋아요”하면서 연신 감탄사를 연발했다. 이스탄불이 인구 1600만명에 이르는 대도시로 아주 복잡할 것으로 예상했던 나에게도 이토록 잘 정비돼 있는 것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아무래도 우리의 눈을 비롯한 감각기관은 네팔과 인도에 길들여져 있어 더 강한 인상을 받았던 것 같다.

자, 지도도 보고 아이폰도 보면서 지리와 방향을 파악해야 합니다.
어디든 첫 발을 내디딜 때는 혼란스럽고 막막하지만, 금방 익숙해집니다.
그걸 믿고, 과감하게 도전하는 사람만이 새로운 길을 갈 수 있지 않을까요?
우리는 이스탄불의 중심역인 술탄아흐메트(Sultanahmet) 역에서 내렸다. 우리가 어느 쪽으로 가야할지 약간 망설이고 있는데, 한 터키인이 “한국인들은 우리 형제입니다(Hi, Korean, My brother)”하면서 숙소로 가는 길을 친절하게 알려주었다. 이스탄불의 2대 명소인 아야소피아(Ayasopia)와 블루 모스크(Blue Mosque) 사이 길을 따라 꼬불꼬불 내려가는 길이었다.
그러자 다시 눈이 휘둥그레졌다. 겨울인데다 유럽을 휩쓸고 있는 이상한파의 영향으로 날씨는 쌀쌀했지만, 아야소피아와 모스크 주변의 풍경이 너무 아름다웠기 때문이었다. 길은 잘 정돈돼 있고, 상가들이 아기자기하게 자리잡고 있는 데다, 웅장한 석조건물을 비롯한 유적들이 마치 보석처럼 곳곳에 박혀 있었다. 소피아성당과 블루모스크는 책에서 본 대로 웅장하면서도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고, 그 주변의 길들이 그림처럼 펼쳐졌다. 모두들 탄성을 자아냈다.
우리가 예약해놓은 바 하우스(Ba Haus) 호스텔이 있는 숙박시설 및 음식점 밀집구역 역시 아름다웠다. 평화롭고 여유가 있는 분위기였다. 음식점들은 추운 날씨를 피하기 위해 비닐로 바람을 막고 있었고, 그 안에는 하얀 천으로 덮인 테이블들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날씨가 좋은 여름철 많은 사람들이 이곳의 멋진 풍경에 취한 상태에서 음식을 먹고, 거리 곳곳에서 연주하는 악기 소리를 듣는 모습이 눈에 선했다. 여행자들이 현저히 줄어들어 있는 지금도 멋지고 아름답기는 마찬가지였다. 오히려 사람이 없고, 쌀쌀한 날씨에 옷깃을 여미어야 하는 지금이 더 멋지고 아름다운 것 같았다. 이스탄불의 첫인상은 일단 합격점이었다.
숙소에 들어와서는 한참 동안 환율에 시달려야 했다. 터키가 유로화를 사용하는 유로존에 가입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아직 공식 가입이 되지 않은 상태다. 때문에 터키리라를 사용하면서, 관광지에서는 유로를 사용하고 있었다. 우리가 머문 3일간의 숙박비는 인터넷에서 유로로 계산해 보증금(deposit)을 지불했는데, 보증금을 빼고 지불해야 할 금액이 221유로였다. 숙소에선 그것을 터키리라로 1유로당 2.5리라의 환율을 적용해 553리라를 요구했다. 시장 환율은 1유로당 2.3리라였지만, 숙소 환율로 지불하면 10% 정도를 더 지불해야 했다.
그래서 우리가 갖고 있는 달러로 낼 수 없으냐고 물으니 316달러를 요구했다. 553리라를 기준으로 리라/달러 시장환율인 1달러당 1.76유로를 적용한 것이었다. 처음 기준이 됐던 유로를 기준으로 달러 금액을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불리하게 적용된 리라 금액을 기준으로 달러를 계산했다. 결국 유로로 지불하는 것에 비해 10% 정도를 더 내야 하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결론은 유로로 지불하면 가장 유리하고, 리라나 달러로 지불하면 10% 정도를 더 내야 하는 것이었다. 터키의 ATM에서는 리라밖에 인출할 수 없어, 우리는 한참 환율 계산을 한 다음에 우리가 갖고 있는 달러를 유로로 환전해 내기로 했다. 숙소 인근의 환전소에서 300달러를 223유로에 환전해 지불했다. 그나마 환율손실을 최소화하는 방식이었다.
아주 복잡한 계산이었지만, 모든 근원은 가격의 기준을 리라로 하지 않고 유로로 표시해 놓은 데 따른 것이었다. 공항에서 여행사들과 셔틀버스비를 문의했을 때도 상황은 비슷했다. 이들은 처음에 유로로 가격을 부르고는 시장환율보다 높은 유로당 2.5리라를 적용해 리라 금액을 산출했다. 교묘한 방법이었다. 애초부터 리라로 가격을 정해 놓지 않고, 유로로 적어 놓은 다음 자신들에게 유리한 환율을 적용해 10% 정도의 금액을 더 받는 묘한 ‘환율 상술’이 관광지 주변에서 교묘하고 광범위하게 이뤄지고 있었던 것이다. 아무튼 유로가 도입되지 않고, 유럽의 주변부에 위치한 터키의 오늘날 현실의 일면을 볼 수 있는 기회였다.
그런 다음 인근 식당에서 양고기 요리와 피자, 스파게티 등으로 식사를 했다. 식사비는 총 80리라로 한국 원화로는 5만원이 넘었다. 아무래도 네팔과 인도의 저렴한 가격과 비교가 됐다. 피부로 느끼는 물가가 엄청났다. 네팔과 인도 식사비의 5배를 훌쩍 뛰어넘었다. 네팔에서 인도로 넘어오는 국경에서 만났던 유럽 출신의 한 여행자가 물가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서 “유럽의 물가는 미친 물가”라고 했는데, 정말 그 말이 실감이 났다.

이스탄불에서의 첫 저녁식사. 인도에서 카레와 차오면, 브리아니와 단연 다릅니다.
저녁을 먹고 숙소로 돌아와 씻고 나니 저녁 8시였다. 우리가 떠나온 인도 시간으로는 밤 11시30분이었다. 인도 뭄바이에서 사우디 리야드공항으로, 다시 터키 이스탄불로 이틀에 걸쳐서 온 피로가 몰려왔다.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이제 아시아이기도 하고 유럽이기도 한, 그렇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아시아도 아니고 유럽도 아닌, 터키에서의 새 여정이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