놓고 온 전화기
건망증 때문에 시시때때로 난감하기 이를 데 없다. 일상생활이 불쑥불쑥 짝 맞지 않은 양말처럼 튄다. 빨래를 삶는다고 가스 불 위에 올려놓고 나가는 통에 불이 날 뻔한 적이 여러 번 있었다. 그런 나의 증세가 심각해서 위기의식을 느꼈는지 남편은 간판 가게에 가서 「가스 불 확인」이라고 적힌 스티커를 만들어 신발장 앞 현관문에 부쳤다.
한 가지만 생각하면 괜찮은데 머릿속이 복잡해지면 영락없이 무엇이든지 빠뜨리기가 일수다. 그러는 내 모습을 보고 남편은 “핸드폰, 자동차 키 모두 목에다 걸고 다니라.”고 강조를 하다못해 어쩌다는 소리까지 질렀다. 그의 말에 따라 한동안은 핸드폰을 개목걸이마냥 목에 걸고 다녔다. 그러자 걱정스러운지 “언니 전자파 때문에 핸드폰 목에 걸면 안 좋다는데요?”하는 후배 말에 목에서 빼고 큰 인형을 달아 쉽게 눈에 띄게 하였다.
이렇듯 자꾸 잊어버리고 실수를 하다 보니 점점 더 자신이 없어지면서 ‘혹시 이게 치매초기증상이 아닐까?’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어제 일만해도 기가 막힐 일이다. 서울 도곡동에 자리한 병원에 가기 위해 이촌동에서 택시를 탔다. 빨리 갈 마음으로 택시를 타기는 했지만 미터기가 딸칵 소리를 내며 요금이 만원을 넘어설 때쯤에는 ‘차라리 내려 좀 걸어갈까?’하는 마음이 생길지경이었다. 그래도 참고 목적지에 도착하여 적지 않은 돈 만 삼천 원의 요금을 지불하고 병원 안으로 들어설 때 앞에 가는 아가씨의 전화하는 모습을 보다가 불현듯 핸드백 속에서 핸드폰을 찾았다. 아무리 뒤져도 보이지가 않았다. 일단 입원실에 들어가 핸드백을 뒤집어 탈탈 털어보았지만 찾는 핸드폰은 어디에도 없었다.
화장대 앞에 있을 때 ‘잊지 말고 넣어야지!’ 했던 기억이 뚜렷했다. 전화를 걸어도 신호음만 가지 받지 않는 게 분명 화장대에 그냥 두고 나온 것이었다. 그렇다고 또 택시를 타고 핸드폰을 가지러 갈수는 없었다.
마침 병문안을 온 분이 내 상황을 알고 고속버스 터미널 앞에 내려 줄 수 있다고 하였다. 하지만 터미널에 가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생활의 중심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핸드폰을 손에 넣는 일이 급선무였다.
방법을 찾다가 결국 회사에 출근한 아들에게 전화를 해서 자초지종 이야기를 하고 점심식사시간을 이용해서 집으로 가 전화기를 찾아가지고 백화점 1층에서 만나자고 약속을 하고서야 마음이 놓였다.
터미널 앞에서 내려 보니 아들과 만나기로 한 시간까지 1시간 30분이나 남아 백화점 구경을 하고 있기로 했다. 백화점에 들어가려는 순간 가는 날이 장날이었다. 하필이면 월요일이라 백화점 휴점일 이었다.
아들에게 연락 할 방법이라고는 공중전화 밖에 없었다. 이리저리 공중전화를 찾는데 현금 인출기만 눈에 띄고 공중전화는 찾을 수가 없었다. 공중전화기가 다 없어졌을 리는 만무한데 아무리 두리번거려 봐도 없었다. 여기저기 기웃거리다가 결국 버스 내리는 화장실 앞에 서있는 공중전화를 어느 때보다 반갑게 찾아냈다.
그 많던 공중전화박스는 핸드폰에 밀려 왕따가 되다시피 구석진 곳에 겨우 한 자리 차지하고 있었다. 모두 핸드폰을 손에 쥐고 다니니 공중전화가 필요 할 리 없었다.
휴대폰이 나오고도 한 동안은 일반화가 되지 않아 공중전화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랬는데 어느새 휴대폰에 밀려 공중전화가 필요하지 않은 세상이 되어버렸는지 나처럼 핸드폰을 두고 나오거나, 휴가 나온 군인의 공유물이 되어버렸다.
뿐만 아니라 공중전화도 신식이 되어서 카드와 현금사용만 가능했다. 예전에 공중전화를 사용 할 때는 수화기를 들고 동전을 넣으면 ‘딸칵’ 하고 걸렸었다. 그런데 익숙하지 않은 신식기계 앞에서 촌스러워져버린 나는 바삐 서두르다가 100원만 날려버렸다. 동전을 삼킨 공중전화를 아무리 두드려 봐도 토해 놓지 않았다. 하나밖에 남아있지 않은 100원짜리를 조심히 공중전화에 넣고 연결 음이 울릴 때까지 기다렸다. 이윽고 아들과 연결이 되자 서둘러 “백화점 휴점이야.” “엄마 나 집이니까 한 20분-”하는데 전화가 딱 끊겨버리더니 잔돈 30원만 남았다.
더 이상은 100원 동전도 없고 서로 마무리는 안 되었어도 소통은 되었으리라 믿고 끊어야만 했다. 그 순간 ‘10초에 70원일까? 20초에 70원일까?’ 궁금했다. 알아서 뭐 하랴만 너무 황당해서 드는 생각이었다.
놓고 온 휴대전화기 때문에 내 생활 전부 마비가 된 느낌이 들었다.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 속에서 나만 아무것도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것 같았다. 휴대전화 하나에 이토록 망연자실해야 하다니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옛날에는 휴대폰이나 수많은 기계들이 없었어도 잘 살아왔으련만 반나절도 안 되는 시간 동안 휴대폰 하나에 쩔쩔 맨 나를 생각하니 우습기도 하고 어이가 없기도 했다.
만약 세월이 더 지난 후 핸드폰도 놓고 나오고 집도 잃어 버려 이렇게 서성이는 노인네가 되면 어찌할까 하는, 걱정스런 상상을 하다가 “엄마!”하고 부르는 아들 목소리에 슬픈 생각들은 날아가고 마비되었던 내 생활도 풀렸다. 한 순간이었다. 휴대폰을 두고 나와 낭패스러워 한 일도, 휴대폰을 손에 넣고 안도감에 웃음이 나는 일도. 우리가 얼마나 기계에 길들여져 버렸는지, 그리고 오히려 얽매어 살아왔는지 절감을 하면서도 이런 일을 다시는 만들지 않게 정신 줄을 놓지 말고 현실감 있게 생각 좀 꽉 잡고 살자고 속으로 여러 번 다짐을 했다.
그렇다고 통신회사에서 나 같은 사람을 위해 공중전화 부스를 늘려주지 않을 테니까 휴대폰을 놓고 나오는 일은 하지 말 일이다.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그래도 통신회사를 향해 세태에 밀려 찾아보기 힘든 공중전화 부스를 정책적으로라도 적재적소에 비치해두길 바래본다. 물론 시대에 맞지 않고 수지타산이 맞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렇더라도 휴대전화가 없을 시 누구든지 당황하게 되는데, 그러지 않아도 될 수 있게 말이다.
변명 같지만 나 같은 사람이 더러는 있을 것 같고, 또 그래도 별 문제가 되지 않는 그런 세상이었으면 참 좋겠다.
놓고 온 휴대전화기 때문에, 아니 건망증 때문에 우리에게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챙겨보고 생각해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