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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애비 밀어내고 나온 녀석…….”
이제막1살이된훈이가거실바닥을기어와살며시무릎에기대자
외할머니는 훈이를바라보시며한숨을내쉬셨다. 영문도모른 채웃기
만하는 훈이를 바라보시던 외할머니는 주름진 손을 내밀어 훈이의 얼
굴을안쓰러운듯쓰다듬으셨다. 어머니의산후조리때문에오신외할
머니께서 서울의 용하다는 점집에서 훈이의 사주를 보고 오신 후 항상
입에 달고 계신 말씀이셨다. 훈이의 사주에 아버지가 없다는 것이다.
훈이가 태어나자마자 아버지가 집을 나간 것이 그것 때문이라고 믿고
있으셨다. 정말 외할머니의 말씀처럼 훈이가 아버지를 쫓아내는 사주
를 타고난 것이 사실일까. 왜냐하면 훈이가 태어나고바로 집을나가
신아버지가 1년이다 되도록집으로돌아오시지않았기때문이다. 훈
이는 하루하루 건강하고 밝게 잘 자랐지만 외할머니는 팔이 아프시다
는핑계로훈이를한번도안아주시지않으셨다. 혹시나아버지가오시
지않을까기대했던훈이의첫돌에도아버지는오시지않으셨다. 돌이
라고 해봤자 나와 소희 때와 달리 케이크 하나와 장식 풍선 서 너 개가
다였다. 우리삼남매 중 가장초라하고 쓸쓸한첫 번째생일날을 맞이
한 훈이를 가장 가슴 아프게 생각한 사람은 어머니 뿐이었다.
훈이에게 냉랭하시던 외할머니께서는 첫 손주인 나에게 온갖 정성을
다하셨다 내가 태어났을 . 때부터해마다한국에서오셔서키워주신 외
할머니에게나는특별한존재였다. 거의 8년 후동생소희가태어나기
전까지 하나 밖에 없는 손자인 나 혼자 집안 식구들의 사랑을 독차지
했었다. 매일아침시리얼을먹거나 굶고학교에가던나에게외할머니
는 계란하나라도 구워 아침밥상을 꼭차려 먹여주셨다. 또저녁에는
우리가 좋아하는 한국 음식들과 국이나 찌개를 끓여 따뜻한 밥을 해
주셨다. 그동안 내가 혼자 해 먹던 냉장고 가득한 인스턴트 음식들은
외할머니께서오신이후먹을일이없어졌다. 하지만집안가득구수한
음식 냄새가 흘러넘치고 외할머니의 따뜻한 보살핌을 받아도 내 마음
에는 채워지지 않는 허전한 무언가가 있었다.
매일 새벽 일찍 일터나 학교에 가야하는 어머니가 한국에서 오신 두
노인네에게 해 드릴 수 있었던 것은 한국 케이블 방송을 신청해 드린
것뿐이었다. 나와소희가없는낮에는훈이를돌보시며지나간한국드
라마나 뉴스, 쉴 새 없이 나오는 광고뿐인 텔레비전만이 유일한 낙이
되었다. 매번미국에오시면서변변하게관광한번못하시고집에만계
시다 가시면서 항상 오실 때마다 쌈지돈을 털어 우리들의 선물들을 사
오셨다. 그것도 모자라 쉬시지도 않고 계속 집안 일만 하시다 가셨다.
몇 해 전 외삼촌네도 미국으로 유학을 와 두 분이 외롭게 한국에서 사
시다가 이렇게 모두 얼굴 보는 것만으로도 만족한다 하셨지만 하루 종
일 집안에서 갇혀 지내는 일상이 반복되자 곧 바쁘게 사시던 한국 생활
을 그리워하기 시작하셨다.
외할아버지는 공무원으로 정년 퇴직하셨는데 한평생 나라를 위해 일
했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계신 분이셨다. 정년퇴직 후 70이 넘은 연세
에도 한국에서 활발하게 사회활동 하시던 외할아버지께서 특히 아무도
아는사람이없는미국에계시는것을갑갑해하셨다. 외할아버지는외
할머니 없이 하루도 생활 할 수 없으셨기 때문에 어디를 가시더라도
항상 꼭같이 다니셨다. 미국에오셔서도 세 끼니를국과 밥으로외할
머니가차려드려야만식사를 하셨다. 할일이없으신외할아버지는생
각다못해한인록을뒤져동문회에연락했다. 외할아버지는바로동문
회모임에초대를받으셨다. 한국최고대학의동문회모임에서선배를
모시러 집 앞으로 차까지 와 외할아버지를 흐믓하게 했다. 그날 저녁
외할아버지는 기분이 좋아서 오셔서는 누군가가 자기를 소개해줘서 연
단에 서서 인사도 했다고 자랑했다.
“아, 글쎄 갑자기누가 고위 공직에서정년퇴직하고얼마 전에 한국
에서오신대선배님을소개하겠다고하잖아? 그래서얼떨결에나가한
마디했지.”
하지만 그날 이후 동문회에서 외할아버지에게 더 이상 연락은 없
었다.
“남들은 속도 모르고 내가 미국을 밥 먹듯 드나든다고 부러워만하
지…….”
한국의 외할아버지 친구분들은 외할아버지께서 미국에서 이렇게 지
내는 줄 모르고 편안히 자식 집에 놀러나 다닌다고 하신다는 것이다.
오시던 날부터 집안의 손주들 뒤치다꺼리나 하고 바람난 딸, 집 나간
사위 불안한 아들 , 직장 걱정이나 하고 있을 줄 아무도 모를 것이다.
나는게임에만 빠져있고, 소희는 고집불통에다제멋대로, 못마땅하게
태어난 늦둥이 훈이까지 어느 것 하나 우리 사는 모습이 외할아버지
보시기에 만족스러운 것이 없으셨을 것이다.
“너희아버지가집에없으니너희들이엉망이구나… 이어린것들을
놔두고 집에 안 들어오다니 괘씸한 애비일세.”
외할아버지는모든것을집에돌아오지않는아버지탓을했다. 더구
나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는 미국에서 외할아버지와 말 상대 해주던
아버지가 없다는 것은 외할아버지 자신에게도 지내기 힘드신 일이셨
다. 어머니, 외삼촌가족모두일이바쁘다는이유로 얼굴보기도 힘들
었고 외할머니는 외할아버지와 이야기 하는 것을 좋아하시지 않으셨
다. 두 분의 관심사와 의견이 너무 틀리기 때문이었다.
외할아버지는 호기심을 가지고 미국 방송을 보시다가 궁금한 것이
있으시면언제나나를부르셨다. 서툰한국말로내가통역해드리면혼
자말로그래, 그렇지, 아니면 아이고그래서? 하시며 내가대견스러우
신지 더 오래 붙잡고 이것저것 말씀하시고 싶어 했다.
“미국이참좋아졌구나. 오바마같은사람도대통령에당선되고…이
것 좀 봐라.”
외할아버지께서 매일 이메일을 열어 보시고 나서 인터넷에서 뉴스나
기사를찾아내게보여주시면서이런저런말씀을많이해주셨다. 평생
을 공직에만 계시고 돈이나 집안 일 돌아가는 것에는 관심이 없으셨던
외할아버지는사회나정치적인화제에더관심을가지신분이셨다. 특
단편소설 부문 43
히 외할머니께서 적은 공무원 월급으로 집안 살림을 하시면서도 한 번
도 외할아버지에게 돈 걱정을 시키지 않으신 덕분에 더욱 현실에 무감
각 해지셨다고 했다 . 식구들은 그런 외할아버지를 비현실주의자 같다
고뒤에서불평하곤했었다. 그중에서도그런외할아버지에대한어머
니의 반감이 가장 심했다.
“그런데, 김 서방은 왜 이리 집에 안 들어오는 거야?”
오후 해질 무렵이 되어 집안에 어두운 적막이 흐르면 외할아버지는
뜬금없이 아버지가 왜 집에 안 들어 오냐고 역정을 내시며 성화를 부리
시곤하셨다. 그때마다외할머니는 입을다무시고방으로들어가자리
에누우셨고외할아버지 거실에서혼자성질을부리셨다. 성격이불같
이 급하고 보수적이신 외할아버지에게 누구도 우리 집 이야기를 꺼내
고 싶어하지 않아 유일하게 살갑게 대하시는 며느리인 외숙모가 우리
집안사정을자세히말씀드렸다고 했다. 외숙모는 외할아버지께서 사
위가 집을 나가 왜 안 들어오는지 잘 아시면서 저렇게 모른 척하시는
것은 지금의이 상황을못 받아들이시는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자존
심 강한 외할아버지의 부정에도 불구하고 변하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어머니가 매일 바쁘다는 핑계로 두 노인네와 대화를 피하는 이유는 더
이상누구의이야기도듣지않겠다는무언의표현이었다. 그것을잘아
시는외할머니는 어머니를그냥지켜보기만해야했다. 하지만성화를
부리시는 외할아버지의 비위를 맞추며 우리들 챙기느라 심신이 지치신
외할머니께서 드디어 몸져누우셨다. 그제야 한국으로 돌아갈 이유를
찾은 듯 외할아버지는 외할머니에게 빨리 한국으로 돌아가자고 재촉하
시기시작했다. 이곳에더있어봐야 상황이나아질희망도없고마음만
아프고몸만상한다고 판단하신것이다. 병원비가비싼미국에서보험
도 없는 노인네가 병이라도 생기면 큰일이라고 하시며 어머니와 외삼
촌내외가붙잡아도서둘러한국행 비행기를 예약하셨다. 아마도딸의
불행한 결혼 생활을 더 이상 보기 싫은 것이 가장 큰 이유였을 것이다.
다행히 예전에 우리를 봐 주시던 아주머니가 외할머니 대신 우리를
봐 주러 오시기로 했지만 외할머니는 이국땅에 아이 셋과 홀로 살아갈
딸의앞날걱정때문에마음을놓지못하셨다. 한국으로떠나시기전날
밤 어머니도 그동안 외할머니에게 데면데면하게 대했던 것이 미안한지
외할머니와 내가 자던 방에서 이야기를 나누셨다.
“아버지가 저렇게 한국 들어가자고 난리시니 나도 어쩔 수 없구나.
사실 내 몸도 성치가 않고…….”
“그래도 난 밖에 있는 동안 엄마만 믿고 안심 했었는데 이렇게 일찍
한국에돌아가실줄몰랐어. 좀있다시간나면맨해튼이라도구경시켜
드리려고 했는데…….”
잠결에 들려오는 이야기 소리에 나는 깨어났지만 그냥 자는 척하며
계속 외할머니와 어머니의 대화를 들었다.
“구경은무슨… 지금 이경황에… 그런 것안해도 된다. 너희아버
지하고 내놓고 이야기는 못하고 있다만 대충 혜나 어미한테 듣고 다
아시는데도 그성격에 지금까지 잘참고 계시네. 내가그 양반때문에
도 여기 더 못 있겠다.”
“올케가 다 말 했다니까 잘 됐네.”
“못된 것, 들어와 같이 살면서 힘들게 사는 시누이 좀 도와주면 안
되나.”
외할머니는 이웃에 사는 외삼촌 내외가 우리 집에 들어와 살면서 집
안을 돌보고 우리들도 좀 보살펴 주기 바랬지만 외숙모가 거절한 것에
매우 서운해 하셨다.
외삼촌 내외는 미국에 몇 년 전 유학을 와 우리 집에서 한동안 같이
살며 우리를 돌봐주었지만 외삼촌이 졸업하고 취직이 되면서 따로 나
가 살기 시작했다. 외삼촌댁에도 2살짜리 딸아이가 있어 우리와 같이
살았을 때는 집이 아이들 넷으로 아수라장이었다. 외삼촌이 외할머니
께서 부치시는 돈으로 공부할 동안에 힘든 내색없이 우리를 잘 돌봐주
던 외숙모는 외삼촌이 돈을 벌기 시작하자 우리들을 돌보는 것이 힘들
다고 불평을 하기 시작했다. 집을 나가버린 아버지, 매일 바쁜 어머니
를 대신 해 우리를 고스란히 맡게 된 외숙모가 가장 힘들어한 것은 소
희가외숙모의딸 혜나를괴롭히는 것이었다. 소희가 1살 어린 외숙모
의 딸 혜나를 괴롭히는 이유는 단 한가지였다. 자기는 아빠가 없는데
외숙모 딸 혜나는 아빠에다 매일 엄마도 집에 있다는 이유로 장난감을
혜나에게던지고때리며못살게굴었다. 순한성격의혜나는매일소희
에게얻어맞기만 하고 울었다. 그러다 소희는저녁에퇴근하는어머니
에게도소리를지르고 투정을 부리며 히스테리를부렸다. 무엇이든 제
마음대로 해야만 했고 그것이 안 되면 바닥에 드러누워 울며 소리를
질렀다. 소희는 어렸지만 자기도모르게받은아버지에대한스트레스
를이렇게난폭하게표출했다. 어머니는하루 종일엄마, 아빠없이있
도록 한 것이 불쌍하다는 생각에 소희를 혼내지 않자 소희는 더욱더
제멋대로 굴었다 외숙모도 . 소희가말을안들어도자기아이가아니어
선뜻나서서혼내지못했다. 그렇게참던외숙모가한번은내가할로윈
데이 전날 저녁 학교에서 할로윈 파티에 입을 옷을 사야 된다고 말했더
니 갑자기 화를 냈다.
“도대체너희엄마는뭐하는거니? 너는그걸이제와서나한테이야
기하면 어떻게 하라는 거야?”
외숙모는 먹던 저녁 밥상을 서둘러 대충 치우고 우리 모두를 차에
싣고쇼핑몰로 향했다. 3명이나되는아이들을차에태우고나까지데
리고 움직이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지만 그날 나는 외
숙모의 뜻밖의 태도에 놀랐다. 외숙모를 어머니처럼 편하게 생각하고
있었기때문이다. 동생들이가게안을정신없이뛰어다니자나는입고
싶었던 스타워즈 분장 찾기를 포기하고 드라큘라 분장 옷이 눈에 띄자
대충 집어 들고 빨리 계산대로 나왔다.
“이런 것까지 맨날 내가 다 사줘야 하나? 뭐야 이게…….”
계산을 마친 외숙모는 혼자말로 중얼거리며 마음대로 돌아다니고 있
던 동생들을 쫓아갔다.
“이왕 이혼 할 것이면 이 어린것들이나 잘 키우고 그냥 혼자 살거라.
애들 아범이 아이들 양육비도 보내고 너도 버니까 먹고 사는 걱정이야
없잖아.”
외할머니의 말씀을 가만히 듣고 있던 어머니는 조용하지만 단호하게
말하기 시작했다.
“내가 애들이나 키우고 혼자 살려고 했으면 먼저 이혼 하자고 하지
도 않았어 애들 . 아빠 말대로 그냥 지금처럼 살지. 그 사람이 왜 집을
나간 줄 알아? 내가 먼저 애들 놔두고 나갈까봐 미리 선수 친 거야.
머리하나는정말좋아. 모든일을 계획적으로하는사람이니까. 그사
람하고의미래는생각하기도싫어. 난애들아빠와빨리깨끗이끝내고
새로운 내 인생을 찾고 싶어.”
외할머니는 자신의 힘으로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을 느낀 것
같았다.
“그러면 이것아, 아이들은 애들 아빠에게 보내고 새 인생을 찾던가.
바보 같이이 아이들을 다맡아서 어쩌겠다는거냐. 그리고 그전부터
둘이 갈라서려고 마음먹었으면 막내는 왜 또 낳아가지고서… 쯔쯔
쯔…….”
“지우려고 병원까지 갔었지만 도저히 그럴 수가 없어서 그냥 돌아왔
어. 그때도애들 아빠는 내게멍청하게 애를 그냥낳으려고 한다고난
리를피우는걸내가우겨서낳은거야. 엄마도마음풀고훈이좀예쁘
게봐줘. 제아빠랑한번도제대로살아보지도못한불쌍한 아이잖아.
그아이인생을이렇게만든건다우린걸… 애들아빠는자기만알고
아이들에게 관심도 없는 사람이야. 그 동안 살면서 아이들하고 나한테
한 번도 따뜻하게 대해 준 적이 없었어. 오히려 애도 없는 잭이 우리
애들을더좋아해. 나만애를셋이나데리고가서좀미안한데양육비
도내고나도생활비는낼거니까… 이아이들도 자기만아는무책임한
제친아버지보다잭이훨씬아버지로써낫다는걸알게될거야. 잭은
애들 아빠하고 달라.”
한 때는 이 집안의 기쁨이고 희망이었던 나의 존재가 이제는 쓸모없
는 짐짝처럼 부모님 인생의 걸림돌 신세가 되어버렸다는 사실이 슬퍼
졌다.
“이 바보 같은 것아! 그렇게살고도아직남자를믿느냐? 다그놈이
그 놈이야!”
외할머니는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버럭 지르셨다.
잭은 강한 러시안 악센트를 쓰는 러시안 이민자로 잘생긴 미남이었
다. 금발에푸른 눈동자를 가진키가 아주 큰전형적인 유럽스타일의
남자였다. 조용한목소리에차분한동작은내가봐도매력적이었다. 함
께 일하는 직장에서 인기 많은 그가 애가 둘에 임신해서 배가 부른 유
부녀인어머니를 좋아하자모두놀랐다고한다. 처음에는잭이임산부
인 어머니가 힘들게 일하는 것을 옆에서 도와주다 차츰 정이 들고 가까
워졌다. 일과공부그리고육아와살림까지하느라심신이황폐해진어
머니에게 무심한 아버지와 반대인 자상하고 핸섬한 남자가 나타나 위
로를해주니어머니는 순식간에사랑에빠져버렸다. 하지만 잭도가정
이 있는 유부남으로 아내 메리의 불임 때문에 남모를 고민을 안고 있었
다. 대학에서 만난 잭의 아내는 잭과 결혼하면서 그에게 영주권을 해
주고병원에서일할수있도록도와준여자였다. 그래서잭은어머니를
만나자아내에게 빚진 기분과 배신에 대해 미안함을가졌다. 아버지는
잭이 신분을 위해 여자를 이용해 결혼해 놓고 이제와 바람이 난 아주
비열한 인간이라고 어머니도 언젠가는 또 다시 버릴 것이라는 악담을
해댔다.
“엄마도 알잖아 ? 내 인생은처음부터가내 것이아니었어. 아버지는
자신만 중요했지나따윈관심도없었잖아? 내가대학입학시험칠때
뒤늦게 박사 공부 시작한 아버지가 오빠 공부에 나까지 의과 대학 보내
는 것은 힘들다고 의대 떨어진 나를 데리고 간 곳이 어디였어? 그래,
집 앞에 있는 간호 전문학교더라고 아버지는 처음부터 내가 재수 할까
봐겁이났던거야. 그때아버지가내게뭐라고한줄알어? 여기나오
면취직도잘되고시집도잘간다고. 고맙게도미국와서그나마그걸
로밥벌이는하니맞는말씀이네. 하지만가고싶은대학에못간것때
문에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어? 그래서 모두 다시 시작하려고 미
국 온 건데… 나 이제라도 처음부터 전부 다시 시작 할거야.”
어머니는 자기 스스로에게 다짐하듯 말했다.
“그래, 이것아 공부 더 하겠다고 미국에 왔으면 공부나 더 할 것이
지… 왜 남자는만나 가지고네가 원하던공부도 못하고이날까지 똥,
오줌 받아내는 고생만 하고 있냐.”
외할머니께서 원망스러운 목소리로 어머니에게 말했다.
“엄마, 다 내가 좋아서 선택한 결혼이고 내가 사서 한 고생이야. 그
사람공부더하라고한것도나야. 난내가살아온거후회없어. 이제
라도 잭이랑 정말 새롭게 잘 살 자신 있어.”
어머니는 외할머니에게 자신 있게 말했다.
“그사람도 처가있다며. 네가 남의가정까지깨가며 이렇게살아야
겠니? 막말로김 서방이널때렸냐. 노름을하냐. 단지자기일에미쳐
산다는 것과 너한테 따뜻하게 대해 주지 못했다는 건데 그런 걸로 이혼
하는 사람이 어디 있냐. 너희 아버지 성질 너도 잘 알지? 너 그 외국
사람하고 살면 너희 아버지하고너하고인연끝이다. 아직아버지가그
건 모르시니까 지금이라도 잘못했다고 김 서방에게 빌고 합치자고해
라. 이제 조금만 더고생하면 모두 편안히 잘 살수 있을 텐데… 그걸
못 참고…이 바보야… 이제라도 애들 애비가 이번 일 그냥넘어가 준
다면제발그냥같이살아라, 응? 이어미를봐서도안되겠니? 아버지
그러는 것 평생 보고 살았는데 사위라고도 그런 인간이 들어와 내가
너를이해못하는것은아니다만… 에휴, 나도모르겠다. 네팔자나늘
그막에 이런 꼴 보는 내 팔자가 왜이런지…….”
두 모녀의 목소리가 꿈결처럼 아련히 멀리서 들려오면서 우리 가족
이가장행복했던 텍사스에서살던때가떠올랐다. 회사에서보내준어
학연수를 하기 위해 미국에 오신 아버지와 공부를 하러 오신 어머니가
같은 대학의한 영어 수업에서처음 만났다. 한국학생이 드물던시절
아버지는 어머니와 금세 가까워졌고 서로 의지하게 되었다. 1년의 짧
은 영어 연수가 끝나고 다시 한국의 회사로 돌아 갈 계획이셨던 아버지
는어머니를만나면서 새로운 계획을 세우시게되었다. 한국에서간호
사로 일하셨던 어머니가 미국 간호사 라이선스를 받아 돈을 벌어 아버
지를 계속공부 할 수있도록 했기때문이다. 그렇다고 어머니는자신
의 학업을 포기하거나 아버지에게서 대리 충족하려고 한 것은 아니었
다. 그저누군가 한사람은 돈을 벌어야했으므로 직장을먼저 구하기
쉬운 어머니가 돈을 벌기로 하고 아버지 공부가 끝나면 아버지가 직장
을구해어머니를공부시키기로약속한것이다. 아버지는예전부터 학
업을 계속 하고 싶었지만 넉넉하지 못한 형편 때문에 바로 직장을 다녀
야만 했었다 생각지 . 않게미국에서공부를하게되었지만아버지는마
치 오랫동안준비 해 온사람처럼 학교에서금세 두각을 드러냈다. 자
신의 꿈을 미루고 낯선 땅에서 아버지 뒷바라지를 위해 돈을 벌기로
한결정은사랑이나희생정신이없었다면불가능했을것이다. 더구나
어머니는 영주권을 얻기 위해 힘든 널싱 홈에서 매일 환자나 노인들의
대소변을치우는일을해야만했다. 매일절인파김치처럼피곤하게일
하고 집에 돌아오는 날이면 어머니는 꼼짝하지 않고 시체처럼 잠만 잤
었다. 하지만어머니에게는아버지에대한희망이있었고어머니의 꿈
도 머지않아 이룰 수 있다는 기대에 차 있었기 때문에 힘든 줄 모르고
열심히일했다. 우리도한때 소박하지만평화롭게살았던시절이있었
다는 것이 이젠 꿈만 같이 느껴진다.
다행히 학위를 받기도 전에 대학에 강의를 나갈 수 있게 되어 꽤 많
은 돈을 벌기 시작하자 아버지는 점점 커가는 우리를 위해서라도 집이
있어야한다고생각했다. 좁고낡은학생아파트를전전하던우리식구
들은번듯한우리집을가진다는사실에흥분했다. 집을사자아버지는
아메리칸 드림이 이루어진 것 같이 좋아했지만 앞으로 은행에 융자한
집값을 내기 위해 계속 일 해야만 하는 어머니의 얼굴빛은 밝지만 않았
다. 아버지의 공부가 끝나고 자신이 공부할 차례가 되기만 기다리던 어
머니가 일을 계속 해야 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머니의 꿈과는 멀어
지는일이었기때문이다. 한편 아버지도대학에서살아남기 위해학생
때보다더심한스트레스를받고여유가없어졌다. 완전하게자유롭지
못한 영어로 미국 학생들 앞에서 강의를 해야 하는 부담과 남들보다
더 좋은 논문을 써서 유명 학회지에 내고 싶은 욕망으로 스스로를 채찍
질했다 이런 아버지의 . 고민을 이해하지못하는어머니는차츰아버지
가 자신의 출세에만 관심 있는 이기적인 사람이라고 생각되기 시작했
다. 어머니는교직원가족에게학비가면제되는아버지가근무하는대
학에몇학점등록했다. 학생들과교수들사이에어머니가공부하러오
는 것을 봤다는 소문이 나자 아버지는 학교에서 어머니와 부딪치는 것
조차 싫어했다. 하지만 얼마안 있어여동생 소희를 가져어머니가 휴
학을하자아버지도뉴욕의한사립대학으로자리를옮기게되었다. 뉴
욕으로 일자리를 옮기게 된 아버지는 기뻐했지만 모든 생활 터전을 옮
겨새로시작해야한다는생각에어머니는 내켜하지않았다. 더군다나
산지 얼마되지 않은 집을 다시 내놓아야만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마켓에 내놓은 텍사스의 집이 생각보다 오랫동안 팔리지 않
고 어머니의 텍사스 간호사 라이선스가 뉴욕 간호사 라이선스로 바꾸
는데도 시간이 걸려 일을 하지 못하자 순식간에 빚이 크게 불어났다.
“집을 사놓고 이렇게 금방 뉴욕에다 일자리를 구하면 어떻게 해?”
“이렇게 될 줄 그땐 몰랐지. 할 수 없잖아.”
“이 학교에서도 테뉴어 못 받으면 어떻게 할 거야? 또 이사 가야
해?”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짜증 섞인 목소리로 다그치듯 물었다.
“열심히 해서 받도록 해야지. 교수라는 직업이 그런 걸 어떻게 해.
그러니까 내가 안정 될 때까지 당분간 당신의 도움이 계속 더 필요하다
는 거야.”
끝이 보이지 않는 아버지의 불투명한 미래는 어머니에게 암담한 현
실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 뉴욕으로 이사와서부터 어머니와 아버지의
말다툼하는 날이 잦아졌다. 아버지는모든것을잊고학업에만열중하
도록 어머니가 도와주었으면 했지만 어머니는 기다림에 지쳐가고 있었
다.
“당신, 내가지금몇살인지알아? 내가언제까지똥, 오줌이나시체
를 치우며살아야 하는 거야? 솔직하게 말해봐. 이제 와서 당신공부
끝나니까 마음 바뀐 것 아니야? 처음부터 나를 이용하려고 결혼한 거
였지?”
중환자실에서 일하는 어머니는 매일 죽어 나가는 시체를 치우거나
뇌사 상태에 있는 환자들만 다루어 항상 우울 할 때가 많았고 일에 흥
미가 없었다. 돈이 아니라면 하루빨리 그 일에서벗어나고 싶은마음
이간절했다. 그런어머니가일에서 돌아오면아버지는재수없는기운
을 집에 가져 온다고 말해 한 번 더 어머니에게 상처를 주었다.
“내가 당신을 이용했다고? 그까짓 돈 좀 벌어 왔다고 지금 나한테
생색내는 거야?”
“뭐라고? 그까짓 돈?”
“그래, 나도그동안장학금타고조교도하면서공부했어. 당신일하
는 동안 내가 애도 보고 집안 일도 했다고. 서로 이제 와서 이런 것
다 따지겠다는 거야?”
“흥, 당신그동안우리가쓴돈이얼마나되는지알아? 그리고한국
우리집에서보내준돈도 얼만줄이나 알아? 당신집에서는뭐해줬는
데?”
54 재외동포 문학의 창
“우리 집에서 뭐 해줬냐고? 대학원 학비도 한번 내줬잖아. 그리고
당신은 우리집안 맏며느리라는 것잊지 마. 그동안명절이나 제사한
국에있는 제수씨가다 당신대신 해온 것잊었어? 미국에 있다는 핑
계로 아무 것도 안하고 편하게 잘 지내놓고는…….”
“뭐라고? 내가 미국에서 편하게 잘 지냈다고?”
아버지의 공부가 끝나면 모든 것이 계획대로 될 것이라고 믿었던 아
버지와 어머니는 빗나간 현실에 크게 실망했다.
아버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어머니가 다시 학교에 등록하자 어머니
는 또아기를 임신했다는 것을알았다. 학교를 등록할 때마다아이가
생겼다는 사실을 깨달은 어머니는 아버지가 계획적으로 임신을 시킨
것이아닐까의심했다. 지난번소희를임신했을때처럼어머니가학교
다니는 것을 포기할 것이라 생각했던 아버지에게 어머니는 아이도 포
기할수없고공부도포기할수없다고선언했다. 저녁식사를마치고
거실에 앉아 텔레비전을 보시던 아버지는 설거지를 하고 있는 어머니
에게후식으로과일을가져오라고시키셨다. 잠시후 무거운배를앞으
로 내밀며 사과를 깎아 들고 온 어머니에게 아버지는 한심하다는 듯
쳐다보며 말했다.
“당신 말대로 지금 그 나이에 공부 시작해서 그깟 학부 졸업장 따서
뭐할 건데? 그걸로 어디 다른데 취직이라도 하려고? 당신 아버지도 쓸
데없이 박사 학위 딴다고 온 식구 고생 시킨 것 보면 집안 내력인가보
지? 당신도 그렇게 생각한다고했잖아. 그런데지금당신이하는짓이
꼭… 괜한데 시간 낭비, 돈 낭비하지 말고 아이들이나 잘 키우고 나
내조나 잘 해. 공부는 아무나 하는 줄 아나…….”
평소에도 한국에서 명문 대학을 나온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무시하는
말투로 말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느끼고 있었지만 자신의 오랜 희생으
로 공부를 마친 아버지가 고마워하기는커녕 더욱 비아냥거리자 어머니
는 억울한 생각이 들었다.
“우리 결혼할 때 했던 약속은 어떻게 할 거야?”
부엌으로 돌아가 다시 씻던 설거지 그릇을 쾅 소리가 나게 던지고
어머니는 거실로 걸어 나오며 아버지에게 따지듯 물었다.
“아니, 결혼할때약속한걸다지키는사람도있나? 그때는하늘의
별도 따다 준다고 할 때라고. 정신 차리고 지금의 당신을 좀 보라고.
이젠 조금있으면 애도 셋이나되. 그때랑 지금은상황이 많이틀리잖
아. 생각좀 하고살아. 우리에겐적지않은 빚도있다고, 아이들키우
고 빚 갚기도 머리가 아픈데 뭐라고? 그리고 앞으로 교수 사모님으로
편하게 사는 것도 나쁘지 않잖아?”
아버지는 사과를 씹다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어머니를 쳐다보며 말
했다.
“교수 사모님? 누가 그런거 하고 싶대? 그리고 그 빚 누구 때문에
생긴 거야?”
“내가 나만 좋다고 이러는 거야? 다 우리를 위해서 그러다 이렇게
된 거지. 가장인 내가 자리를잡아야 우리 식구모두가 편해진다는걸
모르겠어? 정말 답답한 여자군.”
“나는지금까지한번도내꿈을포기해본적없었어. 그리고당신의
성공이 왜 나의 성공이야?”
아버지가 텔레비전을 끄고 자리에서 일어서고서야 두 사람의 다툼이
끝났다.
다음날 학교에서 돌아와 숙제를 거의 끝낼 때쯤 제일 친한 친구인
챈에게서 전화가 왔다.
챈은 내가 뉴욕에 오고 처음으로 사귄 한 동네 친구로 우리 집에서
몇 블록 안 떨어진 곳에사는중국아이였다. 낮에외할머니와둘만집
에있는챈은심심하면내게전화를해자기집으로불렀다. 우리는낮
에 부모님이 없다는 것과 형제 없이 혼자뿐인 그 아이와 동생들과 나이
차이가많이나혼자놀던나와비슷한점이많아쉽게친해졌다. 같이
살던 외숙모에게 그 날도 놀다 오겠다고 이야기하고 저녁에 집에 돌아
온나는학교에서퇴근하신아버지에게혼이났다. 챈의어머니가우리
집에왔었다는것이다. 챈이자기외할머니에게말도없이사라져일에
서 돌아온 챈의 어머니가 화가 나 우리 집으로 아들을 찾아 온 것이었
다. 그날 챈과 나는 챈의 집에서 만나 이웃에 있는 다른 친구의 집에
가놀았다. 외숙모는내가어디를돌아다니다왔는지궁금해하기보다
챈의 엄마와 함께 온 백인 남자가 누군지 더 궁금해 했다.
“너, 챈의 어머니랑 같이 온 남자가 누군지 아니?”
“몰라요. 왜요?”
“걔는 완전 중국 아인데, 아빠 같이 보이던 그 사람은 백인이던데?”
나는 그 남자가 누군지 알고 있었지만 왠지 외숙모의 호기심 어린
질문에 대답하기 싫었다. 하지만 며칠 후 아버지가 내게 다시 물었을
때는 대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챈 엄마는 챈 아버지하고 이혼하고 지금 그 백인 남자 친구랑 같이
살아요.”
아버지는 아무 말씀 없이 내게 이제 챈이랑 어울리지 말라고만 하
셨다.
어머니의 배가 제법 많이 불러오자 헐렁한 병원 유니폼으로도 가려
지지 않았다 항상 푸르스름한 . 색이나회색의유니폼만입고다니던어
머니가어느날부턴가사복을따로챙겨일하러나가기시작했다. 어머
니의 입가에 반짝거리는 립스틱만큼 얼굴이 밝아지고 생기 있어지기
시작한 것도 그 무렵쯤이었던 것 같다.
“따르릉…….”
전화벨소리가유난히요란하게집안에울렸다. 누가걸어온전화인
지 아버지는영어로 한참을 통화한 뒤표정이 점점 굳어져갔다. 키가
크고 목소리도 크신 아버지는 자신의 감정을 잘 숨기지 못하시는 성격
이셨다. 전형적인 경상도 사람이신 아버지는 어머니나 우리들에게도
자신의가슴속에있는사랑을잘표현하실줄모르시는분이셨다. 멍
하니 한참을 해가 떨어지는 거실 창가에서 서성이시던 아버지는 옆에
서 징징거리는 소희의 울음소리에 정신이 드시는지 소희를 번쩍 안아
올려꼭껴안으셨다. 아버지의 거친 수염이 소희의 볼에라도닿았는지
소희는 더 큰 소리로 울어대었다.
잭의 아내가 아버지에게 전화를 한 그 날 저녁 이후 아버지는 더 이
상 안방에서 주무시지 않았다. 낮에항상 혼자지내던 지하방에 아예
잠자리까지 가지고 가셨다. 집안에는 차가운 공기가 흘렀고 아버지는
하루 종일 지하에서 올라오지 않았다.
“안 그래도 모두 말하려고 했었어.”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담담하게 모든 것이 사실이라고 순순히 인정하
자 아버지는 더 기가 막힌 표정이었다.
“이혼해.”
아버지는 그저 모든 것을 참고 희생만 하는 여자로만 알았던 어머니
에게이런면이있으리라고짐작도 못했다. 아버지는어머니의마음을
돌려보기 위해 온갖 제안을 했지만 어머니는 아버지의 제안을 아무 것
도 받아들이지않았다. 하는 수없이 아버지는 잭까지만나 사정을해
보았지만 어머니는 계속 아버지에게 오로지 이혼만 요구했다.
아버지는 마지막으로 한국의 외할머니께 연락해 도움을 청했다.
“장모님, 어미가 밖에서 무슨 짓을 하고 다닌 줄 아십니까?”
아버지는 외할머니라도 딸의 잘못을 빌어주길 바라는 당당한 표정
으로 말했다.
“그래. 그래서?”
외할머니의 기죽지 않은 뜻밖의 대답에 아버지는 눈이 둥그레지
셨다.
“네?”
“자네는 어미가 왜 그랬다고 생각하나?”
외할머니께서 어머니를 이렇게 만든 원인을 아버지의 탓으로 돌리자
상황은 오히려 거꾸로 되었다.
“만약 이 사람과 헤어져도 애들은 못 줍니다.”
아버지는 마지막 카드로 우리를 내밀었다.
“당연하지 김 씨 . 아이들인데당연히자네가데리고가야지. 왜얘가
데리고 가나? 자네가 다 데리고 가게나.”
작은 짐 가방 2개를 달랑 들고 아버지께서 집을 나가시던 날 나는
처음으로 아버지의 눈물을 보았다. 항상 당당하시고 자신만만하시던
아버지의눈물은내게큰충격이었다. 나는그제야내게닥쳐온불행이
어떤 것인지 깨달았다.
어머니는아버지가 집을나가신지 정확히 1년이되던 날아예 잭을
집으로 데리고 들어오셨다. 어머니가 아버지가 돌아오기를 기다린 것
인지 안돌아오기를 바랬는지 모르겠지만 그동안 잭과 앞으로의 계획을
세우신것같았다. 잭이우리집에와살기전날스페니쉬청소도우미
들이 와 집을 대청소하고 안방에 있던 훈이의 작은 침대를 소희의 방으
로옮겼다. 이제소희와훈이는더이상안방에서어머니와잠을잘수
없게 되었다. 갑자기 안방에서 다른방으로 옮기자 소희는잠을 못이
루고 밤마다 안방 문을 두들기고 울었지만 어머니는 예전처럼 소희를
데리고같이잠을자지않았다. 잭을집으로데리고온뒤어머니는법
으로 별거 1년이면 이혼이 성립 된다는 설명을 외삼촌과 나에게 하였
지만 외삼촌은 아버지와 이혼도 하기 전에 어떻게 잭을 집으로 데리고
오느냐고 어머니를나무랐다. 사실내심모두아버지와다시합치기를
기대했던 식구들의희망을깨버린것이다. 어머니의행동에 크게실망
한 외삼촌 가족들은 얼마 뒤 외삼촌이 미국 회사에서 감원 해고되자
바로 한국으로 돌아갔다.
나는 같이 살게 된 잭의 새빨간 차가 아침저녁 드나들기 시작하자
옆집이나 앞집 이웃들이 우리 집을 어떻게 생각할까부끄러웠다. 처음
우리가 이사 오던 날 아버지에게 웰컴 인사하러 왔던 옆집 백인 죠지
아저씨도 잭과 다니는 어머니를 이상하게 보는 것 같았다. 나는 아침
마다 학교 버스 정류장에 동네 아이들과 부모들이 모이면 우리 집 이야
기를 하는게 아닐까 걱정이되었다. 그런데 정작어머니는 전혀사람
들의시선에개의치않으며이웃들과 웃으며 인사하고떠들었다. 어머
니는아주행복해보이기까지했다. 아버지와살때볼수없었던애교
도잭에게부려꼭다른사람이된것만같았다. 어머니는우리끼리잭
이 알아들을 수 없는 한국말로 이야기를 하는 것은 잭에게 실례라고하
며 우리에게 더 이상 한국말을 쓰지 못하게 했다. 아버지는 어머니가
이젠 자기에게도 영어로만 이야기 한다고 제 정신이 아닌 것 같다고
했다.
아버지는 잭이 우리와 모습이 다른 서양 사람인 것이 싫다고 했다.
그건 잭이 우리의 새아버지가 되면 챈처럼 우리들이 이혼 가정의 아이
라는 걸남들이 색안경 끼고보는 것이싫었기 때문이다. 중국사람인
챈이백인남자와사는것을이상하게보던외숙모처럼말이다. 하지만
어머니는 아버지의 사고방식이 고리타분하다면서 입양도 많이 하는 미
국에서별걸다따진다고코웃음을쳤다. 아직철없는소희는아버지의
사랑에 굶주린 듯 잭에게 금세 아빠라고 부르며 계집아이답게 온갖 애
교를 다떨었다. 이제말하기 시작한훈이도 소희를 따라대디하고 매
달렸다. 하지만내가 그냥 잭의이름을 부르자 어머니보다 한참연하
인 잭이 나와 나이 차이가 얼마 나지 않아 어색해서 그런 거라고 어머
니는 잭에게 말했다. 잭은 그런 나에게 친근하게 다가서기 위해 많이
노력했지만 아무 것도 모르는 동생들처럼 대디라고 부르기는 힘들었
다. 어머니는잭이아버지보다우리에게얼마나잘해주는지, 잭이얼
마나 자상한 사람인지 끝없이 말하면서 이제야 우리도 완벽한 가정을
가졌다고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잭의 아내가 집을 구해 이사를 나가자 우리는 잭의 집이 있는 뉴저지
로 이사를 했다. 자기 집을 가지고 있던 잭이 집을 팔고 우리와 사는
것 보다 렌트를 사는 우리가 잭의 집으로 이사 가는 것이 훨씬 간단했
기때문이었다. 잭의집은깔끔하게 다듬어진정원들이펼쳐진조용한
주택가에 자리잡고 있었다. 어머니는잭의 집 동네학군이 좋아내가
옮길학교도 아주 좋은 학교여서라고다행이라고했다. 2층으로된집
의지하에는우리들을 위해 놀이방을 설치해놓았고1층에는내 방을,
그리고 2층에는 동생들 방과 안방을 꾸며 놓았다. 한 점 흐트러진 것
없이 제자리에 정리 정돈된 집안 분위기는 잭의 성격을 말해주는 것
같았다. 잭의집에서는 예전의 우리 집에서처럼우리마음대로해서는
안 된다는것을 어린 나이에도눈치로 깨달을수 있었다. 잭은우리가
이사 오기 전에 이미 많은 준비를 해둔 듯 집안의 규칙들을 세워 놓았
다. 가령 지하 놀이방에 있는 장난감이나, 색연필 등 우리들의 물건이
지하 이외의 1층이나 2층에 돌아다녀서는 안 된다는 것, 음식이나 과
자는 부엌 의자에 앉아서 꼭먹을 것, 텔레비전에비밀 번호를만들어
정해진 시간과 채널을 설정 해두는 장치를 한 것 등등 세세한 것들까지
있었다. 잭이 우리 집에서 사는 동안 아무 말 없이 두고 보고 있다가
고쳐야 될것들을 이렇게 치밀하게짜 놓고있었다. 잭은 조용하고친
절한 표정을 항상 짓고 있었지만 자기가 정해 놓은 룰에 대해서는 단호
하고 엄격하게 행동해 막무가내인 소희도 꼼짝 없이 순한 양처럼 따랐
다. 어머니조차몰랐던잭의결벽증에가까운성격은그동안우리가살
아오던 것과 너무나 달라 모두 힘들어했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원했던 한국사람 내니를 구하지 않고 잭이 구해
온러시안내니를고용했다. 그루지야 출신인내니의이름은마리아였
다. 그녀는잭에게는러시아어를쓰며우리에게는 영어로대화를했다.
미국에서 돈을 벌어 자기 나라에 있는 식구들에게 돈을 부친다는 마리
아는나이가40이넘어보였고아주뚱뚱했다. 한국아주머니에게우리
가 한국말을 배우고 한국 음식을 먹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 했던 아버
지는 잭이 자기 방식대로 우리를 키우려고 하자 어머니에게 맡긴 것이
지 잭에게 맡긴 것이 아니라며 아이들 교육에 아무 생각이 없다고 어머
니에게 화를 냈다. 우리가 미국에서도 한국 사람인 것을 잊지 않기 바
랐던 아버지는 외국인 새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정체성에 혼란이 오는
것을제일걱정하셨다. 잭과사는것이한국사람에게보이기창피해서
그러냐고 하자 어머니는 애를 셋씩이나 데리고 온 자기를 애도 없는
잭이 같이 데리고 사는 것만도 고마운 일이라며 아버지가 집안일에 간
섭하는것이불쾌하다고 했다. 아버지는이제우리에게그저양육비만
의무적으로 보내야하는 사람이 되었다. 어머니는 또 한 달에 한 번씩
우리들이 아버지를 만나는 것도 없애자고 했다. 소희가 아버지를 만나
고 돌아오면 너무나 혼란스러워 한다는 것이다.
채식주의자인 잭이 우리에게도 고기를 먹이지 않는다는 것을 안 아
버지는우리가갈때마다불고기와갈비를잔뜩해놓으셨다. 아버지혼
자사는집은대학가근처의여러집이세들어사는낡고허름한1층에
있었다. 수입의 절반가까이를 우리에게양육비로부치고나머지는 빚
갚느라이렇게초라하게살고계셨다. 좁은부엌에어질러진냄비와그
릇들을 보자 어머니와 살 때 부엌에 한 번도 들어서지 않았던 아버지의
모습이생각났다. 방에는침대와작은옷장하나가전부였고거실에구
형 텔레비전과 식탁과 낡은 의자가 놓여 있었다. 이 가구들도 주변의
아는사람들에게하나씩그냥얻은것들이라고했다. 아버지가사는모
습을 보자 마음이 조금 아팠지만 깔끔하게 정돈된 잭의 집 보다 훨씬
편안했다. 집안의음식냄새걱정이나 소희와훈이가 쫓아다니며음식
을 여기저기 흘리고 다녀도 아무렇지 않다는 게 제일 기뻤다.
잭이 그렇게 채식주의자로 식이 조절을 하는 것은 덩치와 키가 큰데
다 코카사스인으로 살이 쉽게 잘 찌고 살이 찌면 관절에 무리가 오기
때문이었다. 아버지는우리동양인은그렇게까지 할필요가 없을뿐더
러 한참 자랄 아이들인 우리들이 채식만 먹거나 저지방 식단으로 먹는
것은 바보짓이라고 걱정했다.
“그럼, 엄마는 어떻게 먹고 지내냐?”
밥 위에 노릇하게 잘 구워진 고기 한 점을 올리시며 아버지께서 내게
물으셨다. 유난히 고기를 좋아하던 어머니가 궁금하신 것이다.
“엄마는잭이만들어주는음식 다잘먹어요. 샐러드나뭐 그런 거.
그런데김치는지하실냉장고에넣어두고혼자먹어요. 잭이김치냄새
난다고 싫어하거든요.”
“잭이 요리해?”
어머니와 살 때 물 한잔도 어머니에게 시키던 아버지였다.
“네, 만날이것저것잘만들어줘요. 엄마는잭이만든거다맛있다고
잘 먹어요. 난 별로던데…….”
“그래…….”
갑자기 아버지가 쓸쓸하고 외로워 보였다.
“아버지는 앞으로 어떻게 할 거예요?”
“뭘?”
“그냥요. 엄마는 잭이 있는데 아빠는 혼자니까.”
“글쎄… 아직 생각 안 해봤는데… 누가 이렇게 사는 아빠를 좋다고
하겠냐.”
“아빠도 엄마처럼 꼭 한국사람 중에 안 찾아도 되잖아요?”
“뭐? 아버지는 김치찌개 매일 같이 먹을 사람이 좋거든.”
“하하, 그럼 할 수 없네.”
학교에서 서양 여자들은 동양 남자들을 투명 인간 취급한다며 아버
지는 웃으며말했다. 그날 저녁아버지와 나는 모처럼농담도 하고낄
낄거리며 장난을쳤다. 옛날에아버지가 이렇게자상하고 우리와화목
하게 지냈더라면 우리 가족이 지금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 텐데 하는
단편소설 부문 65
생각이 들자 씁쓸했다. 아버지는 내게 어머니에게 갖다 주라고 하시며
남은 갈비를 도시락에 싸주셨다.
신나게 뛰어놀던 막내 훈이와 소희가 배가 부르자 졸려 할 즈음 어머
니는 우리를 데리러 오셨다. 그날밤 집으로 돌아가는차 안에서잠깐
잠든 소희는 깨어나자마자 왜 우리는 아버지와 함께 살지 않느냐고 어
머니에게 물었다.
“그건 아빠랑 잭이 서로 좋아하지 않아서 그렇지.”
어머니가 궁색한 대답을 하자 소희는 졸리운 듯 눈을 부비며,
“난 둘 다 좋은데. 왜 서로 안 좋아하지?… 아함.”
잠꼬대를 하는 것처럼 중얼거리던 소희가 다시 잠이 들자 나는 창
밖으로 뉴저지로 넘어 가는 불빛에 반짝이는 조지 워싱턴 브리지와 허
드슨 강을 바라보았다. 아까 낮에 아버지가 하신 말이 생각났다.
“소희야, 소희는 이 아빠랑만 뽀뽀해야 하고 다른 사람하고는 뽀뽀
하면 안 된다. 알았지?”
아버지 등에 올라 타 장난치는 소희에게 아버지는 사뭇 진지한 목소
리로 말씀하셨지만 소희는 듣는 둥 마는 둥 알았다고 했다. 아버지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소희를 바라보셨고 나는 아버지의 그 눈빛이 무
엇을 걱정하는지알 것 같았다. 그래서 더욱 나는잭이 소희의목욕을
시키고 있다는 이야기를 할 수 없었다. 내니가 돌아간 저녁이나 잭이
혼자 우리를 돌보는 주말에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어머니는 항상
학교수업과시험공부, 그리고일때문에바빠우리가어떻게지내는지
신경 쓸 겨를이 없었기 때문에 아버지가 걱정하는 것까지 미쳐 신경
쓰지 못했다.
아버지를 만나고 돌아온 후 며칠 동안 소희는 또 밤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밤마다 자기 . 방에서 나와어머니와 잭이 자는안방 앞에서울
기시작했다. 어머니는 한동안 안정을 찾은 소희가 예전처럼행동하자
아버지를 만나고와 그러는것이라 생각했다. 몇 주가 지나도 밤에 우
는 소희의 버릇이 없어지지 않자 잭이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허니, 재 좀어떻게좀 해봐. 매일밤마다 우는 소리때문에죽겠다
고.”
어머니는잭의눈치를보며우는소희의입을틀어막아야했다. 어머
니와 같이 자야만 잠이 드는 소희는 자다가도 어머니가 곁에 없으면
울며 어머니를 찾았다. 참다못한 잭이 소희에게 수면제라도 먹이라고
했을 때어머니는 처음으로 잭에게화를 냈다. 하루종일 밖에서일하
고 공부하느라 지친 어머니에게 소희까지 밤에 괴롭히자 갑자기 배에
통증을 느꼈다. 고통스러운 통증이 계속되자 어머니는 응급실을 다녀
오고 나서 안정을 취하라는 의사의 지시대로 병원에 휴직 신청을 하고
소희를데리고여기저기상담을받으러다녔다. 여러가지테스트와상
담 결과 소희는 부모와 기본적인 신뢰 관계 형성에 문제가 있다는 판정
을 받았다. 2살 때집을 나간아버지와 집에 늘없다시피 한어머니에
게 받지 못한 사랑과 신뢰를 떼를 써서라도 애정을 받고 인정받고 싶은
심리적불안때문에그런것이라고했다. 어머니는잭과어머니가충분
히 잘 돌봐 줬다고 여기고 있다가 이런 결과가 나오자 죄책감을 느끼는
것 같았다.
내 방에 평소에 잘 들어오지 않던 어머니가 무슨 일인지 무거운 얼굴
로 들어왔다. 컴퓨터 게임을 하던 나는 어머니의 눈치를 보았지만 어머
니는 내가 게임을 하던것에신경을쓰지않았다. 여느때와다르게무
슨 말을 할 듯 머뭇거리다가 서 있기 힘든 듯 침대 한쪽 끝에 걸쳐 앉았
다. 내가 어머니의 얼굴을 조심스럽게 살피자 말을 하기 시작했다.
“너도 눈치 챘겠지만 얼마 안 있으면 네 동생이 태어날 거야.”
나는 어머니의 눈길을 외면하며 고개를 돌려 자판을 마구 두들겨 적
들에게 총을 쏘기 시작했다.
“그래서 너희 아버지가 너를 데리고 가고 싶다고 하는구나. 그래도
네가이제다컸다고네아버지가키울수있겠다고하네. 애들다두고
나갈 땐 언제고 하지만 아버지가 걱정하는 것처럼 잭의 아기가 태어나
도 너희들은달라지는 것 하나도없을 거야. 잭도자기 아이태어났다
고 변할 사람이 아니고 엄마는 너를 못 보낸다고 네 아버지에게 일단
이야기 했지만 네 의견을 물어보기로 했단다. 네가 정말 누구와 살고
싶은지 잘 생각 해 보고 말해줘.”
어머니의 말이 끝나자 나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나, 아버지랑 같이 살래.”
처음 아버지가 집을 나갔을 때 나도 어머니의 말대로 아버지가 우리
를책임지기부담스러워 한다고생각했다. 아버지가나를데리고가겠
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내가 아버지와 살겠다고 하자 그동안 잭이
나에게 얼마나 잘 해주었는데 다 소용없는 짓이었다며 잭이 얼마나 실
망할까 걱정했다.
내가 잭의 집에서 나온 후 아버지는 더 이상 동생들을 아버지 집으로
부르지 않으셨다 . 소희가 불안 증세를 보인 것 같이 아버지도 우울한
감정때문에힘들었기 때문이다. 동생들이보고싶었지만당분간서로
를 위해 참기로 했다.
“새 학교는 다닐만하니?”
뉴욕으로 다시 온 나는 아버지 집 근처의 작은 교회 사립학교로 전학
했다. 내학비며생활비가들어어머니에게보내던양육비를줄이자어
머니는 돈이 적다고 아버지에게 매일 같이 연락했다.
“네, 성경 공부만 빼고요.”
“서양은성경을 빼면 이야기가안 된다. 꼭종교라고만 생각하지 말
고 열심히 배워.”
“네.”
“왜 엄마 전화 안 받고, 이메일 답장도 안 보내냐?”
아버지는 늘 한 주가 끝나는 금요일 저녁에 식사를 하며 드시는 소주
를 한 병 부엌 찬장에서 꺼내오셨다.
“그냥전화기 충전하는 걸깜빡했어요. 이메일은 그냥답 쓰기 귀찮
아서…….”
다 차려진 식탁으로 다가가 앉으며 아무렇지 않은 듯 말했지만 나는
사실 어머니와 할 말이 없었다.
“그래도 전화는 받어.”
“알았어요.”
아버지는 내가 더 이상 엄마를 찾는 어린 아이가 아니라는 것을 다행
스럽게 생각하면서도 나에게 인정머리 없는 녀석이라고 하셨다.
“아버지는 소희랑 훈이 안보고 싶어요?”
“보고 싶지만 어쩌겠니 . 걔네들이 잘 지내리라 믿는 수밖에. 소희도
이제 안정을 찾았는데…….”
아버지는유난히딸인소희를끔찍이생각하졌었다. 딸이귀한 집안
에 태어난 소희는 태어날 때부터 아버지의 사랑을 유난히 많이 받았었
다. 그래서 아버지가 집을 나가던 날도 그렇게 소희를 안고 우셨다.
“우리 한국에 한번 다녀올까?”
갑자기 아버지가 지나가듯 물었다.
“한국요?”
“할아버지, 할머니도 한번 찾아뵙고… 사실은…….”
그때밖에서인기척소리가났다. 아버지가현관문을열자배가남산
만큼 부른 어머니가 내일이 아버지의 생일이라며 케이크를 들고 서 있
었다. 아버지는 어이없는 표정으로 케이크을 받아들고 들어오라고 했
지만 어머니는 문밖에서 나에게 잠깐 나오라고 했다. 차에 타고 있던
어머니의 옆 자리에 앉자 어머니는 아무 말 없이 흐르는 눈물을 닦고
있었다.
“엄마가 뭐라던?”
어머니가 돌아가고 난 뒤 집 안으로 들어오니 아버지는 새 소주병
뚜껑을 열고 있었다.
“그냥 보고 싶었다고요.”
“내가 네엄마와 10년이넘게 살았는데도 내생일이 언젠지모르는
구나. 하긴 그동안 그나마 양력 생일도 모르고 그냥 지나갔었는데. 무
슨 이제 와서 챙기겠다고 , . 허, 참네. 음력으로생일 지내는 것을어째
해마다 잊을 수가 있지?”
거실 입구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케이크를 바라보며 허탈한 표정을
지으셨다. 어머니는무슨 마음으로안 챙기던아버지의생일케이크를
사들고 이 밤에 온 걸까?
“오늘 엄마가 아빠 학교에도 찾아왔었어. 곧 아기를 낳는다는구나.”
아버지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가득 담긴 소주잔을 비웠다.
“아이를 낳으면 잭에게 주고 자기는 다시 예전으로 돌아오면 안 되
겠냐고 하더구나.”
나는 어머니가 그렇게 말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그래서그럴것없다고했다. 이젠끝난거야모든게. 너는아직도
엄마가 돌아오길 바라니?”
아버지가 풀린 눈동자로 나를 쳐다보며 묻자 나는 눈물이 나오려는
것을 겨우 참으며 고개를 저었다.
“네엄마말믿지마라. 괜히하는소리야. 잭의 아이를가지려고오
래전부터준비해온여자가뭐, 임신하니까나더러내가낳지말라면
안 낳겠다고 하더라. 그래서 그냥 하고 싶은 데로 하라고 했지. 모든
책임을 나한테돌릴려는수작이지. 결국에는 제멋대로할거면서…….”
아버지는 술기운이 올랐는지 횡설수설 하시며 침대로 가 쓰러져 누
우셨다.
비행기가 케네디 공항을 이륙하자 옆 자리에 앉은 아버지는 두 눈을
감으셨다. 어머니가잭의 아이를낳았다고전화가왔을때 아버지께서
내게 물었다.
“엄마가 아기 낳았다고 너 보러 한번 오라고 하는데 가 볼래?”
“싫어요.”
잭의 집에서 나온 이후한번도다시가본적이없었다. 그리고특히
잭의아이를동생이라고부르는것도듣기싫었다. 어머니는아기를낳
고바쁜지늘걸어오던전화도뜸해졌다. 소희는아기가생겼다고좋아
하겠지…처음부터 아기 생긴다고 멋도 모르고 좋아했었는데.
“이번 겨울 방학 때 한국에 좀 다녀오자.”
아버지는 책상에 앉아 읽던 책을 덮어 책장에 꽂으시며 옆에 앉아서
컴퓨터를 보던 내게 갑자기 말했다.
“한국요?”
한 번도 가보지 못한 한국에 가게 된다니 놀라웠다. 해마다 한국에
가시던아버지를늘불만스럽게여기던어머니생각이났다. 아버지어
머니가태어난곳, 일가친인척들이모두사는그곳에처음으로간다는
것이 오히려 이상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내가 한국에 간다는 생각을 해
본적이 없었다.
“그래. 한국의 대학에 지원 했더니 인터뷰 오라고 연락이 왔구나…
사실 그동안 갈 기회가 많았는데 너희들이 걸려서 계속 여기 있었던
거야. 이제 너라도 내가 데리고 있으니 미국을 떠나도 될 것 같아서.”
“그럼, 앞으로 한국에서 사는 거예요?”
“그럴 수 있다면 그렇게 하고 싶구나. 그런데 네가…….”
아버지는 미국 생활을 모두 정리하고 떠날 결심을 하자 내가 걱정이
되었다.
“만약 알아보니 , 네가한국에가 살게되더라도요즘은 국제학교가
많아져 여기서처럼 계속 공부 할 수 있겠더라만, 그래도 미국에 남고
싶다면…….”
말끝을 흐리는 아버지가 무슨 말을 할지 알 것 같았다.
“싫어요. 나도 한국에 갈래요.”
얼굴에 웃음을 가득 담은 스튜어디스가 다가와 필요한 것이 없냐고
물었다. 나는잠시생각해본뒤없다고말하고의자깊숙이몸을누웠
다. 내짧은 인생동안 있었던수많은 일들과 얼굴들이 구름처럼 머릿
속에서 떠올랐다 흩어지자 하얀 새 한마리가 하늘 위로 훨훨 날아올라
가는 것이보였다. 남의 둥지로알을 낳으러 날아가는새가 멀리사라
지자 나도 아버지처럼 두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