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집 한 채
파란색 페인트가 벗겨진 담장이 조금 기울었다. 서 있는 모든 것의 기울기는 제 생의 무게를 닮아 가는지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집이 부쩍 늙었다. 잠든 벌레 같았던, 복도 끝에 오래된 의자처럼 앉아계시던 어머니는 꽃 지고 난 빈 자리에 고인 그늘 같앜T다. 그늘의 손을 가만히 잡아본 적이 있다. 흠칫 그늘이 놀란다. 그늘 속에 가만히 몸을 들여놓고 잠들고 싶다. 여든 해의 나이테가 우물처럼 깊은 집.
기울어진 담장을 따라 손가락 마디같은 꽃밭으로 담장의 그늘이 피고 지고, 따뜻한 세간의 흠집들도 집 속의 또 다른 집처럼 그늘을 만든다. 죽은 나무로 지은 집, 죽은 것들이 산 것들을 따뜻하게 품어주던 저녁이 그늘을 물고 집안으로 그윽하게 들어오신다. 오늘도 복도 끝 빈 의자에 앉으신다.
집에서 길을 잃었다. 불 꺼진 집은 온통 어둠과 한통속이다. 그늘인지 어둠인지 깊은 뿌리로 집의 아랫도리를 꽉 움켜쥐는 저녁. 내 몸에 집 한 채 온전히 들어와 불 켜고 싶다.
첫댓글 집에서 길을 잃어도 그래도 그곳은... 집-
내 맘에 등불 켜서 쉴 수 있는,
어머니
'죽은 나무로 지은 집, 죽은 것들이 산 것들을 따뜻하게 품어주던 저녁이 그늘을 물고 집안으로 그윽하게 들어오신다.'는 표현이 백미입니다. 잘 감상했습니다. 좋은 시 감사합니다.